실천  2005/12/30 18:44

2005년을 마무리하며


올해도 여전히 기회주의적 조류가 혁명적인 사회주의진영에 판을 좌우하고 있었다. NL이라고하는 이미 쁘띠부르조아 집단부터 시작하여 전진, 해방연대 등 민주노동당내에서 쁘띠부르조아를 위하여 헛소리를 즐기며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는 세상에, 피지배계급은 여전히 지배계급에 대항하여 자신의 생존권을 위하여 투쟁을 하고 있으니, 아직도 노동해방의 추상적인 개념은 구체화하기에는 요원하다. 혁명을 위하여 혁명에 목을 매면서 꿈을 꾸는 혁사진영은 단편적이며, 선후배들 속에서 아웅다웅하면서  그 안에서 우물안 개구리로 살면서 써클주의 빠져 아직도 한탄 만 하고 있다. 대중의 투쟁은 비정규직이라는 개량주의 투쟁속으로 매몰시켜  혁명의 진전은 뚜렷한 목적의식이 아니라 무정부적인 함정으로 몰아가고 있어, 터져 나오는 모든 투쟁을 하나로 엮기에는 어떠한 이데올로기적인 저항이나 비판조차도 한탄으로 물들어 갈 수뿐이 없는 패배주의로  머물고 있는 혁사진영에게선 더 이상의 바람을 느낄수가 없다. 대안도 정책도 오로지 하나의 현실에 안주하는 개량의 물고 곳에서 대중의 투쟁이 혁명적인 분위기로 이끌러 주기만을 목매어 기달리는 아나키적인 무정부주의는 또 다른 패배를 나을 것이며 투쟁의 경험을 오로지 쁘디부르조아에게 헌납하고 대중을 기만하는  노동관료적인 습성으로 나타나 제2의 개량주의단체만을 양산 할 뿐이다. 이젠 바뀌어야 한다. 투쟁의 방식이 아니라 투쟁의 목적과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수준을 바꾸어야 한다. 생각을 바꾸면 피안이 보인다. 우리는 세상을 여러 가지 각도로 해석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젠 변혁해야한다.
혁명의 전통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계급투쟁에서 권력을 원하고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목적의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것은 강령을 통한 구체적인 현실의 적용에서 대중은 목적의식성을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개량적인  비록 어쩔수 없는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한계점은 자본주의 체제내의 개혁은 다람쥐 채바퀴 돌듯이 한발짝 움직였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일뿐 진전이 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대중이 아닌 혁사진영에 알고만 잇다. 하지만 대안을 몰라 그 자리에서 투쟁에 매몰되어 대중을 기만하면 언제든지 그 무게는 다시금 우리의 어깨를 누를 것이다. 정규직이던 비정규직이던 실지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신들의 위치는 언제든지 바뀔수가 있으며, 그 불안감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배계급에게 저항을 할 수뿐이 없는 위치들이다. 현재 지배계급의 이익의 일부를 받아 그나마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에 투쟁에 소극적인 대기업의 노동자들은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없지만, 자본주의는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며, 정리해고라는 칼을 들었을 땐 그들도 하나가 될 수뿐이 없는 가련한 처지이다. 이들도 함께 -하지만 그 주체는 엄연히 비정규직 노동자 일수뿐이 없다 -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하는 생각과 더불어서  더 낳은 혁명의 조건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서 작금의 투쟁의 목적을 비정규직 투쟁이 아니라 노동자통제를 내세워 노동자계급이 공장 회사를 운영하는 주체로 다시금 서야 함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자주관리를 내세우던지 노동자 통제를 내세우던지 현시기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체제에서 자본주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목적의식은 그들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주체로 스스로가 일어 설 때야만이 가능한것이고 그것의 표현을 노동자 통제로 표현한다.
강령은 대중에게 자신들이 가야하는 길을 표현 해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과잉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계급과 더불어서 농민대중의 투쟁의 파고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땅의 투쟁의 힘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아무리 쁘디부르조아진영을 비판한다고 해도 자신들조차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대중의 투쟁을 방기했던 지난 시간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는 없다. 동지들의 그 눌리던 어깨를 펴고 허리를 피고 대중에게 선전선동 하라. 물류시스템을 장악하고 이를 통제할 때, 생산시스템을 장악하고 이를 통제할 때, 금융시스템을 장악하고 이를 통제할 때, 비로서 노동해방의 길이 열릴 것임을 알려야한다. 노동자계급이 아무리 가열찬 투쟁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본가계급은 자신들이 손해를 보지 않는 상태에선 어떠한 타협과 협조는 없다. 비정규직노동자의 투쟁이 아무리 오래되어 간다고 해도 공장이 돌아가는데 무슨 상관인가! 이것이 바로 자본가들의 사고 방식이다. 투쟁의 방식은 양심적으로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한다는 것은 쁘띠부르조아의 생각임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지 않았던가! 생산시스템을 장악해서 공장의 기계가 멈추었을 때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힘을 느끼고 있다. 우리에겐 한푼의 월급도 중요하다. 하지만 계속적으로 우리 안의 다람쥐처럼 채바퀴만  돌리 수는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내에선 노동자는 우리 안의 다람쥐 신세 일뿐이다. 이 자본주의체제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노예상태는 계속해서 이어질 수뿐이 없다.
2006년엔 혁명적인 사회주의진영의 조직이 건설되는 토대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더 이상  쁘띠부르조아진영의 NL과 더불어서 그 진영에 빌붙어 살아가는 빈대가 없어지기를 바란다. 자칭 사회주의를 외치면서 그이상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 빈대는 대중의 투쟁을 이야기하면서 노동해방을 꿈으로 만드는 작태는 이젠 그만두어라!  자본주의는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되며 이젠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에겐 더 이상의 선택이라는 것은 없다.
혁명적인 사회주의진영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기회주의진영에 남아서 대중의 피를 빨아먹을 것인가의 선택이다.
혁사진영의 패배의식은 서서히 대중의 투쟁 속에서 살아져 갈 것이다.
이제 주저함은 동지의 나약함을 나타낼 뿐이다.
우리에겐 혁명의 앞날이, 노동자계급에겐 승리의 전진이 존재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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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18:44 2005/12/3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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