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는 자본주의사회의 계급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경기의 순환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적대 계급간의 모순이 최고조로 다다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경제위기의 대표적인 상태는 공황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며, 언제 그 원인을 밝히고자, 지배계급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들 및 진보 진영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견해는 크게 몇 가지로 압축이 된다. 과소소비, 이윤율하락의 경향, 또는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과잉생산의 내용이다. 그러한 원인들을 제시하는 이유는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투쟁을 해야 할 것인가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의 물적 기초를 이루며 사회주의 또는 공산사회를 건설하는 맹아를 가지고 있다. 맹아의 껍질은 단단하여 자신 스스로 깨고 나오기가 힘이 든다. 무계급사회의 건설을 좀 더 편하게, 안전하게 나가고자 한다면 맹아중의 하나인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다음 세계의 지배계급은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트로츠키의 이행기강령(과도강령)의 의미는 자본주의사회의 물적 토대에서 대중을 사회주의사상으로 물들여가며, 프롤레타리아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자본주의의 위기의 원인에서 투쟁의 방향성을 찾을 때 몇 가지 부분에서 바라봐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내의 개혁적인 의미인가 아니면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으로 등장하여 쟁취해야하는 과업인지 두 번째로서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대중에게 투쟁의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세 번째로는 이러한 내용들이 사회주의사회와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강령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강령이야말로 사회주의사회로 갈수 있게 만드는 다리이며,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령을 현실투쟁에 어떻게 접목을 시켜야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왔으며 그에 대한 내용으로 각 시기, 정세적인 면에서 무엇이 주요한 문제인가를 파악하고 해결책으로 제시해 왔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상항에 대한 투쟁의 방향을 찾아내기 위한 조건을 사회정치경제인면에서 파악을 해 왔으나, 그 투쟁의 방향은 각 정파의 위기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는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점으로 확연히 갈라진다. 대부분이 인식하고 있는 개량적인 사고방식으로 가지는 과소소비론의 형태는 피지배계급의 물적인 개량을  선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주로 노동시간단축으로 일자리 늘리기의 형태로 나타나고,  과잉생산과 이윤율 저하를 제시하는 정파는 국유화를 통한 노동자통제를 주장한다. 여기서는 좌파계열의 혁명성을 제시하고 있는 그룹들의 과잉생산과 이윤율 경향적 저하의 법칙을 자본주의의 위기라고 제시하고 그의 대안으로 세운 국유화를 통한 노동자통제에의 의미를 다시 집어본다.


1. 이윤율 하락의 경향이 원인?


잉여가치의 실현은 자본주의발전의 원동력이다. 더 많은 잉여가치를 실현하고자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이윤에 저해가 되는 모든 것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한다. 남보다 더 낳은 조건으로, 더 많은 이윤의 실현을 위하여 계속적인 투자를 확대하고 이윤의 원천인 가변자본의 착취율을 높여왔다. 자본의 집중은 이윤율의 하락을 불러왔고, 이윤율의 하락은 자본의 축적을 높여왔다.


“이윤율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개별적 자본가의 손에서 노동을 생산적으로 적용하는 데 필요한 자본의 최소한 즉 일반적으로 노동을 착취하는데도 필요하고 적용되는 노동시간이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며 또 적용되는 노동시간이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평균노동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그러한 자본의 최소한이 늘어난다. 그리고 동시에 집적도 느는데 그것은 이윤율이 높지 않은 큰 자본이 이윤율이 높은 작은 자본보다 더 빨리 일정한 한계를 넘어 축적되기 때문이다. 이 늘어나는 집적은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또 이윤율을 다시 떨어뜨린다. 이 때문에 다량의 흩어져 있는 작은 자본들은 투기, 신용시기, 주식사기 등 모험의 길에 내몰리며 그리하여 이 자본들은 공황에 직면하게 된다.”(자본론 3권)


공황은 자본주의의 위기중의 하나일 뿐이다. 공황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게 하는 자연적인 치유력이다. 자본론에서 공황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하나의 사이클로서 제시한다. 공황은 자본주의 경제의 전반적인 위기가 표출되어 나온 것이지만, 모든 경제적인 부분에서 또한 모든 국가적인 형태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 기업들에겐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기회의 시간이다. GM 크라이슬러 AIG 등등의 세계의 굴지의 기업들의 몰락과 사실상 국유화를 통한 회생 그리고 그 빈자리를 메우려는 다른 기업들 간의 경쟁은 그러한 예를 보이고 있으며 결국 공황의 의미는 자본이 이윤율을 회복하는 시기이며 그 동안 쌓여 왔던 모순을 일시적으로 폭력적으로 해소 시키는 시기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결렬하게 모순이 폭발하는 시기이며, 계급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시기이다. 고조가 되는 갈등은 사회주의로 가는 투쟁의 모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자본주의의 위기일 뿐이다.


“낮은 이윤율은 투자 부진의 원인이 되었다. 투자는 신규 이윤과 대비하여 이전만큼 급속히 증가하지 않았다```````바로 이 이윤율 저하(낮은 수익성) 및 이로 인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쌓여 있는 자본의 토사더미(즉 과잉축적)가 밑바탕 위기이다. 거기에 현 위기의 뿌리가 있다. 그리고 이 토사더미가 도박판으로 쏟아져 들어가 투기 거품을 부양시켜주다가 결국 거품이 터져 금융위기를 맞는다.”(자본주의는 어디로. 사회주의자 2호)


떨어지는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은 착취율을 높이고 노동 강도를 강화하고 경쟁에서 추가수익을 얻고자 더욱더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를 불러일으키면서 자본의 축적 및 집중 향상을 이룬다. 자본의 집중은 경쟁을 독점으로 또한 더욱더 격화된 경쟁으로 내몰아 한층 더 격렬함을 뛴다. 떨어지는 이윤율은 회복하는 방안은 노동시간연장, 노동유연화정책 등으로 임금인하, 불변자본의 가격하락(자본의 유기적구성의 고도화를 막는다) 자유무역(FTA의 체결을 통한 자유시장의 확대는 자국의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하며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고자 하는 자본의 쇼이다. 자유무역은 자국의 독점자본에 대한 자본의 확충을 더욱더 쉽게 하기위한 시장 확대 방안 일뿐이다.) 핵심적으로 독점자본(1)의 독점적 이윤의 확대다. 공황은 떨어지는 이윤율을 회복시켜주는 계기다. 


이윤율이 떨어지면 자본은 유기적 구성을 높인다. 유동자본의 총자본에서의 상대적인 축소는 생산수단의 발전을 촉진 시키고, 생산성의 향상을 통하여 더욱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시장의 확대한다. 이윤의 획득은 자본주의발전의 원동력이다. 주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이윤의 극대화다.


 경제의 현실성은 사회적 수요의 측면과 생산 경쟁의 실재적 운동에 의해서만이 설명 될 수 있다. 공황의 의미는 재생산과정의 붕괴를 의미하며 자본의 축적의 중지를 의미한다. 금융위기 전부터 시작된 기업들의 과잉저축의 의미는 재생산과정의 위축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미 사회적으로 나타난 잉여가치를 편안한 위치에서 더 많이 획득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산업자본의 과잉저축의 의미는 일시적인 모습이며 떨어지는 이윤율을 회복하는 공황의 상태에서 공격형 기업주들은 위기라는 기회를 살려 투자를 광범위하게 이루어 시장에서 최대의 이윤을 가지기 위한 선두의 자릴 차지하고자 경쟁에 몰입한다. 불황과 공황기엔 기업 간의 경쟁은 무한으로 치닫는다. 기업 간의 경쟁은 시장을 무정부적 상태로 만들어 간다. 경쟁은 자본의 축적을 활성화 시키고 사회적 수요 및 소비를 늘리며 자신의 이윤을 확대하는 모습이지만 이윤율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활황-호황-공황-불황의 순환이 길어질수록 누적되는 모순이 강렬한 모습을 가진다. 자본주의가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파급효과는 하나의 국가에서보다 세계적으로 그 모습을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부르주아들에게는 공포의 한계를 체험하게 한다. 1930년대의 대공황,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동반한 공황이 모습에서, 현 시기의 공황에서 누적된 모순의 갈등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저항을, 부르주아에게는 총을 쥐게 만들어내고 있다.


떨어지는 이윤율의 핵심은 생산수단의 확충으로 인한 자본의 축적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장의 현재성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도표상의 기록으로 남는다. 이윤율 하락을 공황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의 핵심은 이윤율하락은 기업의 투자를 줄였고 이로 인하여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을 만들어내었다. 여기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게 되는 이유는 독점자본들의 독점이윤을 확대하고자, 초과 이윤을 만들고자 물가인상을 이용하며 화폐가치를 떨어뜨린다. 높은 실업률은 상대적 과잉인구의 탄생을 의미하며 자본주의적 착취하는데서 생기는 불균형이다. 자본의 축적은 더욱더 심화되는데 늘어나는 인구에 대하여 수요는 줄어드는 불균형에서 나타난다. 상대적으로 남아도는 노동인구의 증가는 80년대 자동화기기의 활용으로 노동력의 이동이 전통산업부분에서 서비스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초과이윤을 확보하고자 기업들의 생산시설의 이전은 더욱 이러한 부분을 가속화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유기적구성의 고도화로 고정자본 비율의 계속적인 증가는 자본의 투자를 소규모에서 대규모로 변화를 주며 고정자본의 화폐자본으로의 전환되는 회전기간을 늘려나간다. 전통적인 산업부분들에서는 생산의 근대화 자체가 초기단계부터 신기술에 거액의 투자를 필요하며, 낡은 기술을 새로운 기술로 대체하는 과정은 당연히 비교적 장기간이 걸린다. 또한 현대과학기술혁명은 기존에 있던 생산기술을 급속하게 낙후시켜버리고, 보다 근대적인 또는 미래지향적인 모델에게 자리는 양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선진 기업들 및 독점자본들은 총생산투자액의 상당부분을 산업의 확대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자본의 갱신과 확충에 투여한다. 공황이란 이윤율이 저하가 되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공황이 발생하여 자본의 축적이 진행되어지면서 이윤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생산시설 부분에서 고정자본이 화폐자본으로 늦어지는 전환은 개별기업들의 생산수단의 감가상각 하는 부분 즉 고정자본의 소모된 부분을 화폐로 전환 된 일정액과 이윤의 일부를 유보금으로 만들어 투기적 사업으로 만들어 최대의 이윤을 확보하기 위한 이자의 형태를 제공받고자 하지만 과하면 독이 된다. 이윤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경쟁자들 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추가 이윤을 얻고자하는 개별적자본가들은 투기적 방법으로 탈출구를 찾아내기도 한다. 독점기업들은 회득되어진 이윤을 더 끌어 모으기 위하여 금융상품 및 파생상품의 수요자다 되어 세계를 투기의 광풍으로 몰아간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상황에서 600조 달러에 달하는 가공자본의 의미는 그러한 예다. 과잉저축은 호황기에 기업들의 살찌우는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2) 과잉생산이 원인?


생산의 과잉이란 자본의 과잉축적으로 인하여 사회의 소비력보다 높은 생산을 이루어내어 상품이 다 팔리지 않고 남아서 자본으로 회수가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윤을 확대하고자 하는 자본가계급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 상품 속에 있는 이윤을 만든다. 이윤이라는 결과물을 손에 넣을 때만이 안심할 것이다. 개별적자본가는 시장이 소비 시킬 수 있는 만큼의 상품을 생산하지만 더 많은 이윤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부르주아들의 협동심은 시장의 무정부성을 만들어 필요이상의 상품을 진열장에 가득 채운다. 교환이 가능한 화폐 소지자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킬 능력이 되지만 화폐를 소지하지 못한 무산계급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존을 이어 간다.


“현재의 세계 경제공황은 근본적으로 과잉생산상태에 처해 있는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자본주의의 과잉생산 상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발생해왔던 것이었지만, 이러한 상태는 극복되지 못하고 만성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과잉상태의 생산설비, 상품 등이 대거 정리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재정적자와 부채를 통한 민간소비 확대라는 형태로 미봉되었을 뿐이다.”(오바마의 뉴딜? 해방43호)


자본주의사회의 발전능력은 부르주아들의 이윤추구를 위한 생산수단의 끊임없는 개발과 발전에 힘입어 역동성을 가짐과 동시에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다. 상품의 생산성은 최고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며 한쪽에선 남아돌아 페기처분을 하고 한쪽에선 부족해서 아우성이다. 상품은 교환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사용의 의미를 지닌다. 공황은 상품이 이윤의 얼굴로 성형수술이 되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있음으로 인하여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재생산과정의 붕괴가 일어남을 말하는 것이다.


과잉생산을 강조하는 이유는 통제를 하기위한 기초 이데올로기이다. 통제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의미가 아니라 과잉생산을 막기만 하면 경제는 붕괴되지 않고, 즉 자본주의경제의 공황을 가지고 있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경제기초의 인식이다. 스탈린주의의 관료체제에서 나타나는 인식의 핵심이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의미를 국유화라는 의미로 단순하게 만들어 경제 질서의 발전을 관료들의 통제로, 노동대중과 민중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여 질서를 꾸려나갔다. “주요한 자본주의나라들을 경제적으로 능가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앞으로 나가려는 열성적이고 굴하지 않는 열망과, 희생할 각오와, 자본의 매우 상당한 양의 우리의 사회주의 공업의 최고도의 확대를 위한 투자를 요구한다.” (스탈린선집2중에서) 누구를 위한 열망이며 무엇을 위한 희생을 강요해야만 했는가! 과거 소비에트 연방은 과잉생산은 벗어났지만 과소생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관료방식의 통제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며, 사회주의적 가치체계를 정립하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져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이루어 내지 못했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국유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화는 말 그대로 사회적인 소유를 의미하며, 사회적의 소유는 일하는 자들의 관리감독으로 유지발전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노동자자주관리 및 통제방식을 적용하게 된다.  


공황은 자본주의순환 체계의 하나이며, 순환 고리가 길어지면 길수록 모순의 힘은 축적이 되며 파괴력은 커진다. 하나의 경제체제가 세계경제로 이루어진 현실에서 물갈이가 일어나지 못하면 그동안에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고인 물을 정화해주는 역할을 하는 순환의 하나인 공황은 사회적 통제만을 강요하는 과잉생산의 의미로써 바라볼 땐 국가자본주의체제이던 전시체제이던 관료중심의 체제이던 관계없이 생산의 통제를 최대의 과제로 삼는 사회의 체계를 선호하기 만들어 나가게 한다.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자본주의 공황을 없애는 길이며 모순을 사라지게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노동자 자본가간의 모순이다.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계급과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은 몸뚱이 밖에 없어 자신을 팔아야만 하는 계급간의 모순이다. 이들 간의 모순이 생산과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주며 자본주의를 발전시켜나가는 원동력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하나의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가 없다.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는 그러한 계급간의 모습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생존방식이다. 생산과 소비는 하나의 모순이며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다. 양면이 하나로 될 때 그것이 모순의 의미를 갖는다.


자본주의모순을 극복하고 사회주의사회로 갈려고 하는 이유는 잘 먹고 잘살기 위함이다. 어느 누구 하나가 부족함을 가지지 않고 서로가 노력한 만큼의 혜택이 주어지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함이다. 과잉생산의 의미는 소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과잉생산은 과소소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사회적 생산은 사회적 소비를 전제로 한다. 소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생산은 중단된다. 소비를 위한 생산, 생산에 의한 소비 이것은 하나로 형성이 되며 서로가 하나가 되어 모순을 이루고 있다. 모순은 하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립물이 존재할 때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구매와 판매사이의 분열에 존재하며, 이는 상품과 화폐간의 모순이다. 판매되는 상품과 구매해야하는 구매력간의 차이는 계급적인 역관계를 나타내는 주요한 지표중의 하나이며, 대중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부르주아들은 임금인상 및 각종혜택에 힘을 쓰면서 자신의 품안에 가두고자 할 것이며, 그 반대에는 채찍으로 피와 땀을 쥐어 짤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수요를 규제하는 것은 “첫 번째로는 총 잉여가치와 임금의 관계이고 둘째로는 잉여가치가 갈라지는 서로 다른 부분들(이윤, 이자, 지대, 세금등)의 관계이다”(자본론 3권) 첫 번째의 경우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가 나타난다. 


사회의 소비력과 생산력은 그 한계가 존재하는데, 그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부르주아들에게는 시장의 확대가 필수적이며,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가야만하는 것이 끊임없이 생산되어지는 상품의 판매하기 위함이며 최대이윤을 얻기 위한 노력이다. 노동자들에게 계속적인 착취와 그들이 소비해만 하는 상품을 만들어가는 부르주아들간의 노력은 자본주의 모순이 어떻게 표현되는 것인지 인식되어진다.


왜 공황의 원인을 하나라고 판단하는가? 그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대립물이라는 변증법에 인식을 하지 않고 그동안의 습관적인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데 기인한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다는 습관으로 원인을 찾아내고자하기 때문에 하나가 두 개가 되는 모순적인 이 진리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들과의 모순적인 대립관계야 말로 시장을 확대하고, 줄어들게 하는 원인이며 그것이 현상적인 형태로 보여 지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소비자로써의 모습과 생산자로써의 모습이 하나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적인 모습을 보지 않고 서로 대립되는 모습으로 보고 있어 생산과 소비를, 판매와 소비를 별개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알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를 놓고 치열한 공방만 주고받을 뿐이다. 무엇인 문제인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지 않은가! 두 가지를 다 먹으면 더 낳지 않은가!


모든 산업의 순환은 생산의 확장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 원인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새로운 시장의 개척, 새로운 기술의 채용, 인구증가에 의한 수요확대, 새로운 생산부분의 설립, 전쟁 및 재건 등등으로 나타난다. 수요가 증대하면 생산부분에서 초과이윤 및 이윤의 확대로 생산시설을 확장하게 되고, 따라서 이 부분에 생산수단을 공급하는 부분들에 대한 수요를 증가 시킨다.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은 공황이라는 경제순환을 만들어 내면서 불황 호황 활황 그리고 다시 공황으로 진행 된다. 자본주의의 위기의 근원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생산수단의 사적수단 소유로 인한 소득의 개인적 취득에서 나타난다. 생산된 상품이 소득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분배의 균형이 무너져 생산의 상대적 과잉상태에 이루는 것을 상대적 과잉생산공황이라고 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문제는 언제나 과잉생산에서만이 문제가 아니다. 50~60년대의 세계적 발전의 불균형은 제국주의 국가들 즉 선진 자본주의국가 및 독점자본들의 초과이윤을 확보하기 위하여 석유 및 원료의 저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강요한 관계로 이들 상품의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만들었다. 70년대 초의 과소생산으로 에너지 원료의 위기가 있었으며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현상을 만들어 공황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공황은 과소생산으로 인해서 나타날 수도 있고 과잉생산으로 인해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공황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의 경우에 몰입하면 또 하나의 기회주의 사고방식으로 경직이 된다.


공황은 재생산구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재생산구조는 생산 분배 교환 소비의 통일로 나타난다. 여기서 하나가 어긋나면 공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모두가 통일적인 유기체로 유지될 때만이 공황의 의미는 퇴색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단순 재생산의 경우에도 공황이 발생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공황은 매우 급격한 소비의 확대나 과잉생산 또는 과소생산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는 과잉생산의 해소를 위해서는 수출을, 과소생산의 위기에서는 수입을 선택하여 시장의 확대로서 자신의 위기를 넘어가고자 하지만 모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세계시장으로 전가하여 더욱 더 격화된 세계적인 공황을 유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적 재생산형태가 일단 폐지되면 다음과 같은 사실만이 문제로 남는다. 즉, 고정자본(여기서는 소비수단의 생산에 기능하는 고정자본만 고찰한다.) 중 수명을 다해 현물로 보충되어야 할 부분의 크기가 해가 바뀜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사실이이 그것이다. 어느 해에 이 부분이 아주 크다면(사람의 사망률의 경우처럼 평균사망률을 초과한다면), 그 다음 해에는 틀림없이 그 만큼 작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비수단의 연간 생산에 필요한 원료 · 반제품 ․ 보조 재료의 양이 - 기타의 사정이 동일하다면 -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생산수단의 총생산은 한 경우에는 늘어나야하고 다른 경우에는 줄어들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변동은 끊임없는 상대적 과잉생산에 의해서만이 극복할 수 있다. 즉 한편에서는 고정자본이 직접 필요한 것보다 어느 정도 더 많이 생산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이점이 특히 중요한데) 직접적인 수요를 초과하는 원료 등의 재고에 의해(이것은 특히 생활수단의 경우 그러하다)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과잉생산은 사회가 그 자체의 재생산의 물질적 수단들을 통제할 때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는 과잉생산은 하나의 무정부적 요소다.······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의 생산에서의 불일치는 경제학자들이 공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즐겨 드는 논리의 하나이다. 고정자본이 그저 유지되는 경우에도 그러한 불일치는 생길 수 있으며 또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러한 불일치는 이상적인 정상적 생산을 전제하는 경우에도, 이미 기능을 놀고 있는 사회적 자본의 단순재생산의 경우에도 생길 수 있으며 또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은 그들에게(부르주아경제학자들)는 새로운 것이다.”(자본론∏)


과잉생산은 무정부적 요소의 하나 일뿐이다. 통제가 되지 않는 무정부적인 요소를 통제하고자 한다면 무엇으로 가능한가? 기업의 생산성을 통제한다면 무정부적인 모습이 사라질 것인가? 물론 자본주의내의 무정부적인 요소가 통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개별자본가들이 이윤의 확대를 위한 전쟁을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내에서 무정부적인 요소는 과잉생산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 또한 무정부적이며 충동적인 모습을 가진다. 그것에 대한 통제는 생산의 과잉에 대한 통제로 해결이 가능한가? 노동자통제는 기업들에 대한 통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자 통제는 사회적인 통제가 그 핵심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며 그것이야 말로 권력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산과 소비에 대한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 이것이 스탈린주의와 개량주의의 경계선에서 추후에 흔들림 없이 전진해 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핵심은 노동자통제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노동자국가의 핵심은 경제와 정치가 하나가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자 한다면 권력기관과 통제기관이 하나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일하는 곳이 권력기관이고 사회의 중심으로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권력으로. 노동자 투쟁위원회, 파업위원회 등등의 모습이 권력의 맹아로써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 사회적인 통제는 무엇을 하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3. 그러면 무엇으로 ………


공황의 원인을 이윤율 저하의 경향적 법칙과 과잉 생산 론을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들은 한결같이 현 시점에서 투쟁의 쟁점을 특히 쌍용자동차를 중점으로 했을 때 국유화 및 노동자통제를 주장한다. 그 내용의 핵심은 자본주의 내에서 국유화를 받아들였을 때 대안으로서 제기하는 노동자통제의 의미는 상실하게 된다. 왜 그럴까? 사회주의를 이야기하지만 과도강령(이행기강령)의 투쟁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의 내용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위기중의 하나인 공황이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 나타나듯이 이윤율이 떨어지지 않게 또는 떨어지는 이윤율만큼 정부의 지원을 받을 경우와 관료들의 통제를 받아 국가내의 생산물에 대한 생산의 규제를 할 경우에 국가내의 경제는 위기기 없어지는 것으로 나타나며, 위기가 없는 경제로 안정화된다. 쌍용자동차 문제에서도 그렇게 나타난다. 국유화후 과잉생산을 줄이기 위하여 회사의 정리절차를 밟을 수 있고 이미 투여된 생산시설을 다른 기업 즉 삼성자동차나 또 다른 해외기업들에게 판매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윤율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인수 합병이다.


독점자본주의사회에서 대규모 자본의 집적은 회사의 하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과의 신용거래가 존재한다. 금융거래는 회사의 자본을 집중하는데 유리하며 회사를 거대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또한 자유경쟁시대의 종언을 한 후 독점자본주의사회에선 국가의 역할이 상당히 주요하게 자리를 잡는다. 국가는 보조수단이 아니라 부르주아들의 중재자로써 자리를 자리매김을 하며 전쟁과 같은 국책사업을 확장하면서 부르주아들의 이해와 요구를 때로는 자본주의사회의 유지를 위하여 부르주아들을 통제를 한다. 전시경제체제나 국가자본주의 속에서 생산의 통제를 하듯이.  


과잉생산과 이윤율이 저하의 경향적 법칙의 핵심은 투자의 저하를 의미하며, 그러한 부분을 막고자 한다면 국유화 및 노동자통제를 주장하는 것으로 요약이 된다.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 과잉생산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생산에 대한 통제를 통하여 노동계급이 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자 한다. 기업에 대한 통제력만을 주장한다는 것은 노동자자주관리의 의미이상은 아니다. 본인은 전술적인 핵심으로써 노동자통제를 4년 전부터 주장해 왔다. 그러나 현재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노동자통제는 핵심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내에서 - 그것이 가지는 내용의 핵심은 물론 노동자국가 건설의 일환이라고 주장하지만 - 국유화 그리고 노동자통제. 자본주의 내에서의 노동자통제는 존재할 수 없고 권력의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사회에 대한 통제, 기업에 대한 통제, 국가에 대한 통제는 하나가 되며 경제와 정치의 핵심인 생산과 분배를 이루어 낼 수 있다. 쌍용자동차에 대한 강령적인 투쟁을 이끌어내려고 한다면 노동자통제의 내용으로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자주관리로 제시하는 것이 맞다. 기업에 대한 관리, 영업비밀 철폐를 위한 단계, 노동대중의 기업경영에 대한 교육, 소유권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화에 대한 인식으로의 전환할 수 있는 계기는 권력의 맹아로 나타나는 통제위원회가 아니며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이 주인임을 자본주의 내에서 보여줄 수 있는 또한 사회주의사회로 가는 하나의 다리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간다.


노동자통제는 현실에 존재하지 못하고 하나의 관념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추구해야하는 목표로써 제시되고 있는 반면 노동자자주관리는 현실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잊었는가! 노동자자통제가 전략적 목표면 전술적인 목표로써 대중의 투쟁이 하나의 물결로 이루어지게 하지만, 전략과 전술은 현실에 맞는 내용으로 갖추는 것은 강령의 힘이며 그 강령의 내용엔 반듯이 노동자자주관리가 들어간다. 기업에 대해서 노동자 통제를 전술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은 전술의 기본도 모르거나 스탈린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이어져 왔던 습관적인 형태로 대중에게 권력의 형태, 형식을 보여주고 그러한 방식으로 설계하듯이 따라오면 된다고 하는 것으로 모험주의적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올 수 있게 만들고 따라오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주체적 역량이 미비한 것으로 자기반성을 하면 된다. 좀 더 그럴싸한 그림으로 대중에게 보여주고 그림의 추상적 의미를 이해도 못하는 대중에게 따라오라고 한다면 스탈린식의 관료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한시기를 흐르는 상황에서 대중의 투쟁의 쟁점은 정치투쟁으로 모아진다. 정치투쟁은 권력투쟁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선 아직도 대중들은 자본주의철폐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안주하고 있다. 나오는 길도 모르지만 껍질을 벗는 두려움 또한 커다랗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 시기 대중의 투쟁의 중점은 노동자통제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혁명적상황은 아니며 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통제위원회를 건설하기 위해선, 현 시기에 공장 및 사업체내에 하나의 권력적인 맹아가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노동대중의 실천적인 교육이 필요하며, 권력으로 나가기위하여 국가권력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를 아는 계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자주관리 운동은 강령의 중심인 권력으로 가는 하나의 다리 역할을 만들어 간다. 하나의 사업체에서 특히 여러 하청업체를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거대한 사업체의 군에서 원청업체가 노동자자주관리가 가지는 힘은 어느 지방 도시의 교통업체들이 시행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며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자본주의 틀 내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보여 질 수 있다.


4 글을 마치면서.


국유화 방식, 종업원지주제도 형식(2), 생산자협동조합형식(3) 등등으로 소유형식에 대한 타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지만 어떠한 방식도 자본주의의 소유형식에 대한 타격을 주지 못하고 그 틀 내에 안주시키며 자본주의체제를 안정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노동자통제는 권력의 의미로 제시해야하며 스탈린이 노동자통제라는 말을 지워버리려고 노력했음을 잊으면 안 된다. 노동자통제는 스탈린의 관료주의에 총구를 겨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통제는 혁명적인 상황에서 권력에 대한 의미로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설 것이다.


더운 여름에 불을 더 활짝 피우며 올라가는 대중들의 혁명의 길에 오로지 규제와 탄압만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반동부르주아정권을 퇴출시키고자 한다면 길거리의 부랑자처럼 바람에 휩싸여 굴러다니는 낙옆마냥 대중의 꽁무니만을 찾아다니는 민노당, 진보연대 그리고 민주당의 모습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본가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들과는 단호히 절연의 의지를 심어주어야 한다. 민의의 정당이라는 국회는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고, 국민이 뽑은 행정부의 수반은 노동대중 및 권력과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서민들에게는 언제나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다.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다면 노동계급은 분연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공장을 점거하여, 생산시설을 장악하여, 세상의 주역이 나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쌍용자동차의 노동계급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해야 만이 부르주아정권 및 자본가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투쟁의 고삐를 쥐고 흔들고자한다면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투쟁의 흐름을 이끌어 가야한다. 총파업의 힘은 강하나 노조관료들의 이익에 푹 빠져 대중을 외면하고 있고,  눈앞의 개량에 자신의 목소리만을 외치고 있다. 계획은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자본가계급에 대한 엄포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고자 대중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하는 모습일 뿐이다.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민주노총 및 노동조합은 개조되어야한다.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로 바뀌어야한다.


현 시기는 혁명으로 가는 길에 서있다. 빠르게 갈 수 있고 느리게 갈 수 있고, 바르게 갈 수 있고 그릇된 길로 갈 수 있다. 대중은 부르주아정권의 힘에 자신의 생존권을 사수하고자 발버둥치고 있다.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생존권투쟁이 내용적으로 분리되어 있어 서로가 서로에 대한 고립이 이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만들 조직도 없는 조건에서 무엇으로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 갈 것인가? 어떻게 해야 반동의 칼날을 휘두르는 부르주아정권의 폭력 앞에서 우리의 생존과 미래를 보호하여 나갈 수 있는가? 길은 하나다 혁명적 강령과 사회주의강령으로 행동하는 사회주의정치조직의 건설이 우리의 미래에 있다.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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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점자본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실현된 잉여가치를 자신의 독과점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유보금을 형성하여 더 많은 이윤을 만들고자 금융 산업 투자 또는 투기한다. 주로 주식투자 부동산투자 등은 고전적인 방식이며,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불러일으켰던 모기지에 대한 투자로부터 금융파생상품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시켰다. 펀드를 통한 석유 및 곡물가격의 인상 및 세계유동자본의 가격의 조정을 취하여 막대한 차익을 실현 시켰다. 그러한 차익의 실현은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의 유혹을 뿌리치게 만들어 금융시장을 확대하고 뻥튀기하는 역할로 나타난다. 이번 공황의 발생으로 몰락하기 시작한 독점자본들의 경우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의 재투자보다는 이미 발생한 잉여가치를 나누어 먹는 금융에 더 많은 유령자산으로 투자를 만들어 내어 자신의 몰락을 가져 왔다.    


(2) 종업원지주제도의 주목적은 소유참여나 성과참여로써 근로의욕을 높이고, 노사관계의 안정을 꾀하는 데 있다. 즉 노동자에게 떡고물을 더 받고자 한다면 조용히 일만하라는 의미다. 주식의 특성상 종업원지주제도는 노동계급이 다수의 주식을 보유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주식의 지배자적인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소유형식에 어떠한 타격도 주지 못한다.

(3) 생산자 협동조합의 정의

첫째, 사업의 목적이 영리에 있지 않고 경제적 약자 간의 상호부조에 있다. 둘째, 임의(任意)로 설립되며 조합원의 가입·탈퇴가 자유로워야 한다. 셋째, 조합원은 출자액(出資額)의 다소에 관계없이 일인일표(一人一票)의 평등한 의결권(議決權)을 가진다. 넷째, 잉여금을 조합원에게 분배함에 있어서는 출자액의 다소에 의하지 않고 조합사업의 이용분량에 따라서 실시한다는 것 등이다.


협동조합의 특징은 자본구성체(資本構成體)가 아니고 인적 구성체(人的構成體)이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적 운영을 의도하는 데 있다. 이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조합의 운영은 실비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생산자 협동조합에서 추진하는일


첫째, 조합원의 생산물을 협동하여 판매하는 판매조합이 있는데, 이에는 단순히 출하·판매만을 하는 것과 간단한 가공을 하여 출하 판매하는 가공판매조합이 있다.


둘째 조합원의 사업에 필요한 물자를 협동하여 구입하기 위한 구매조합이 있다.


셋째 이용조합(利用組合)인데, 여기서 이용조합이란 조합원이 단독으로서는 갖추지 못하거나 단독사용이 비경제적인 시설을 공동으로 설치하여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넷째 신용협동조합인데, 이는 조합원을 위한 금융 사업만을 한다.


다섯째 조합원이 협동하여 생산 활동을 하는 생산적 조합(生産的組合)인데, 기업조합은 이 같은 생산조합을 기도(企圖)하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협동조합에는 단일 기능만을 하는 단일조합이 있으며, 각종 기능, 즉 구매·판매·가공 등 복합적인 기능을 하는 것도 있다. 다시 말하여 협동의 범위·정도가 낮은 것은 단일협동의 정도에 머물러 있고, 정도가 높은 것은 다각적인 협동기능으로 발전하는데, 한국의 농업협동조합은 신용·구매·소비 등의 복합적인 넓은 범위에서 기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자활지원단체로는 ‘사회적 협동조합 전국연합(Consorzio Nazionale della Cooperazione Sociale Gino Matarelli 줄여서 CGM)’ 스웨덴의 JKV (‘잼트랜드 협동조합(J mtland Kooperativ Utveckling)), 영국 전역에 설립된 ‘지역협동조합 개발기구(CDAs)’ 국내에선 기업체의 형식으로 부산우유가 있다.


출처 : 두산동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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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3 09:42 2009/08/0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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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미디어  | 2010/04/14 15:17
[신간소개]-김수행 교수의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국부론>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두리미디어입니다.

청소년 교양 시리즈 출판의 새로운 저변을 확산시키고 있는 두리미디어에서 이번에 마르크스 경제학의 최고 권위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전 서울대 교수) 님이 쓰신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과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을 출간했습니다!

김수행 교수님의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은 국내 최초로 <자본론>을 완역한지 20여 년 만에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중화를 위한 초석으로 기획됐습니다.

<국부론> 역시 완역한 바 있는 김수행 교수는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을 통해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경제학의 고전’을 올바로 전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습니다.

<청소년을 위한…>이란 주제를 잡고 있지만, <자본론>과 <국부론> 원전의 정확한 개념과 이해를 얻고자 하는 성인 독자들에게도 관심 있을 저작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새로운 경제학과 미래 사회의 대안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국부론>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