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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반통일 악법인가?

[PoS 펌]국가보안법은 반통일 악법인가?

*** 최근 국가보안법의 정가의 쟁점이 되고 있는데, PoS라는 분의 글이 진보누리에 등록되어 있어서 가져왔다. 일독하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국가보안법은 반통일 악법인가?



1. '빌미'라는 단어


  분명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북한으로부터의 상존하는 위협 때문에 남한 민중의 민주적 권리는 제약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들이나 그러한 목적의 법과 제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사회 내에서 북의 위험 때문에 민중의 정치적 권리가 제약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제도들이 듣는 평판은 그다지 좋은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주장이나 제도들은 오래 전부터 '북한의 위험'에 대한 사실관계의 문제 이전에 그 동기와 목적의 '진정성' 자체를 의심받아 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북한의 위험을 이유로 민주적 권리를 제약하는 법과 제도 들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일반적인 평가는 무엇일까? 아마도 '과거 독재정권들이 남북한 대치상태를 빌미로 삼아 억압적, 비민주적 제도와 정책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여기서 키워드는 다름아니라 바로 '빌미'라는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현대 한국인들,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은 '빌미'라는 단어를 상대의 행동에 대해 그 동기나 목적이 불순하다고 여길 때 사용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는 '냉전적 민중통제'에 대한 이러한 대중적인 불신이 없었다면 어쩌면 한국의 반공군사독재는 휴전선 '이북'의 맞수와 함께 지금까지도 장수를 누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2. '적대적 상호의존'의 기원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이 상대로부터의 위협을 이유로 억압적, 비민주적인 정치체제를 구축해 왔던 역사를 흔히 '적대적 상호의존'이라고 불러왔다. 이러한 '적대적 상호의존'의 과정을 통해 자리잡은 강압적인 민중통제 질서는 '국가간 폭력의 내부화', 혹은 '냉전의 내부화 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저항을 외부세력의 '비정규전'으로 몰아버릴 수 있는 냉전적 민중통제는 남북한의 지배세력 모두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정치수단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국전쟁 후 50년 이상 남북한 양국 내부에서 사회 전체가 준 전시상태, 병영적 상태로 치달은 것을 냉전의 영향 속에서 남북한 양국이 서로에 대해 가하는 현실적 위협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분명 냉전적 민중통제의 성립과 유지는 남북한 지배세력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였다.

  그러나 어떤 사회적 상황을 일방의 '의도'로 환원해서 설명하는 것은 결국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결국은 일종의 '음모이론'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역사상 '음모이론'의 고객이 제대로 된 '좌파'였던 일은 별로 없다. 즉, 남북한의 정권이 군사-정치적 대치상태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어왔다는 '적대적 상호 의존론'의 정치적 효용은 '햇볕정책'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으로 끝나듯 말이다.

따라서 이른바 '적대적 상호의존관계'라고 일컫어졌던, 남북한 양국에서의 남북대치상태를 '빌미로' 벌어진 병영적 민중통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배집단이 그러한 의도를 지녔다는 것 뿐 아니라, 그러한 폭력적 억압적인 민중통제가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가능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럼 일단은 내가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대한민국에서 남북대치상태가 민중통제의 '빌미'로 어떻게 활용되어왔는가를 간직한 역사유산을 꼽으라면 아직까지도 법전의 한 구석을 지키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들 수 있다.

  '냉전시대의 억압적 유산'의 대표격으로 간주되는 국가보안법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체제적 비판이나 저항은 근본적으로 '북한의 공작'이거나 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세계에서 한국사회 내부에서 어떤 진지한 체제적 비판이나 저항이 발생할 가능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는 대중에게 학살과 공포의 기억으로 남은 '한국전쟁'을 정치적 담론으로 영속화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가간의 전면전에서 철저하게 객체화된 존재로 동원과 학살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한반도 민중의 경험 속에서 한국전쟁은 '체제와 이념의 문제'가 민중의 자발적 행동에 의한 사회적 투쟁이 아니라 국가간 무력 대결의 문제로 치환되어 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보법으로 대표되는 냉전적 민중통제가 실제로 성립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한국전쟁을 거치며 좌익세력과 자율적 민중조직의 '물리적 절멸'에서, 즉 자본에 대한 일체의 대항세력이 물리적으로 말살됨을 통해 확립된 일방적인 정치, 사회적 세력관계로부터 출발한다. 이 말살의 기억이 한국사회에서 국보법으로 대표되는 냉전적 민중통제, 국가간 폭력의 내부화의 알파요 오메가, 그 성립의 조건이며 동시에 목표이다. 즉, 냉전적 민중통제의 본질은 다름 아니라 자본에게는 축복이요, 노동자 민중에게는 저주인 한국전쟁을 통해 확립된 일방적 세력관계를 영속화시키기 위한 제도적, 담론적 실천에 있다.


3. 유령의 시대


  체제 내적인 모순을 국가간의 대결로, 하나의 '전쟁행위'로서 대중의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체제에 대한 비판, 저항 세력 또한 과거의 기억, 전쟁의 두려운 기억 속에 갇힌 '과거의 유령'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유령이 되려면 우선 죽어야 하는 것이다. 즉 대중의 동시대의 현실 속에 그 살아있는 실재가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이를테면 한때 서유럽의 많은 공산주의 정당들은 모스크바의 노선을 맹신하던 스탈린주의 정당들이었다. 하지만, '소련'을 진짜 대안으로 여기는가와는 다소 독립적으로 현실의 이해에 의해 상당수의 대중은 그 '스탈린주의 공산당'을 지지했다. 또한 반대로 자국의 대중에게 스탈린주의적 전망이 대안으로 잘 받아 들여 지지 않는다는 인식은 결국 공산당들 자체에게 이를테면 '유로코뮤니즘'으로의 변화 등등을 발생시켰다. 이런 동시대적 상호작용 속에서 누군가 '공산당'이라는 것과 '간첩'이라는 것을 동일시하는 주장을 했다면 웃음거리 밖에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즉, 한국 사회를 사는 대중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적의 공작원'이라는 '유령'을 재생산하는 국보법식의 논리는 대중과 상호 작용하는 체제적 비판 세력이 부재하는 상황에서만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유령'의 일반적 기능이 그러하듯, 그것은 끊임없이 반추되는 악몽으로서 전쟁의 공포를 통해 대중의 정치적 고립을 지속시키려는 시도이다. 그런데 '오늘 이후로 좌익은 모두 간첩'이라는 주장이 현실의 힘을 지니려면 대중에게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좌익이라는 사람들은 죽거나 월북한 사람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다. '70년대 반공드라마의 한 토막처럼, 월북했다고 알고 있는 친구나 친척이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경우를 빼고 '좌익인사'를 대면할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나 '반체제=간첩'의 등식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4. 어떻게 우리는 국가보안법을 잊어버렸는가?


  하지만 오늘날 국가보안법은 반쯤 사문화된 법률이다. 법 집행이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대중은 그 법을 별로 두려워하지도, 정당한 것이라고도 여기지 않는다. 국보법이 이런 반신불수 상태가 된 것은 별로 최근의 일도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이나 '6.15 공동선언' 같은 건 기대조차도 하지 않던 시점부터 국보법은 대중에게 잊혀졌다. 국보법은 그 전성기에는 '막걸리 보안법'이나 '남산으로 끌려간다'가 일상적인 농담이 될 정도로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존재였다. 대체 그동안 '통일'이라도 되 버린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남북한 정상이 악수라도 한 번 하고 사진이라도 한 장 찍는 수준의 남북관계 변화는 대중이 국보법을 까먹어버린 한참 후에야 벌어진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국보법이 대중의 망각 속의 존재가 되어가기 시작한 시점을 사실 기억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주욱 진행된 과정인 것이다.

  국가보안법, 그 법을 만들어낸 '반공군사독재'의 핵심논리는 다름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치적, 사회적 저항, 특히 자본의 지배력에 대한 저항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군사독재는 자신이 결정적 위기에 처한 '87년에 - 광주항쟁을 간첩들이 사주한 폭동이라 매도했던 - 북한이라던가 간첩이라던가 하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100만의 시위와 그보다 더 충격적인 300만의 파업을 차마 '간첩이 사주'한 것이라 주장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사주'로 백주대낮에 전국적 시위와 파업이 벌어지고, 그것이 자신들의 정권연장 구상을 위협할 정도라면, 날이면 날마다 '안보'와 '북의 위협'을 떠들어온 군사정권 그 자신들이야말로 '간첩'이 아니면 '바보' 그 둘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6월 항쟁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의 표출이 되었고 7,8월 노동자 대투쟁은 소외된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가 된 것이다. 물론 그 후로도 최루탄과 곤봉세례는 계속되었고, '조직사건'에 따른 '국보법 위반' 구속자도 계속 존재했지만, 더 이상은 막걸리 보안법과 같은 정치-사상적 탄압에 대한 내면화된 공포가 사고의 준칙으로 대중을 지배할 수는 없었다.


5. "Size Does Matters"


  내적인 모순을 남북한의 국가 간 대치로 떠넘기는 국가보안법적 논리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내적인 모순이 대중적 저항 속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순간 무력해졌던 것이다. 이미 지난 80년대 후반이래 우리가 경험해온 역사적 현실로서 이 과정의 핵심은 '양의 축적'에 있었다. 일정한 임계질량을 넘는 핵분열 물질의 축적이 원자폭탄 제조의 핵심이듯 말이다. 물론 필요한 것은 '임계질량 이상의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지 아무거나 모은다고 핵분열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민주적 제 권리'와 '생존권'이라는, 대중의 구체적 '생활의 필요'에서 출발하는 저항의 양이 '임계치'를 넘을 때 비로서 국보법적 논리는 자기 스스로의 허구의 무게로 붕괴된다. 국보법으로 대표되는 냉전적 민중통제에 대한 여러 해석들, 여러 접근들이 분명 존재했지만, 결국 민중의 구체적인 삶의 필요, 구체적인 권리가 걸린 정치적 행동만이 '국가보안법적 논리'를 무력화 할 - 단지 '비판의 무기'가 아니라 - '무기의 비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뒤집어 말해서 남북한 관계 그 자체는 물론, 남북한 관계의 상황에 대한 '해석'의 칼자루까지 기본적으로 남북한 양국의 국가권력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 스스로가 자신의 정치적 행동이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절박한 필요에서 출발한다는 확신만이, '간첩의 사주'나 '적국의 비정규전'을 우스개 소리로 전락시킬 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절대로 북의 공작원일 가능성이 전무한) 순도 100%의 대한민국 국민이며, 다른 어떤 것이 개입할 필요도 없는, 피부로 체감하는 자기 삶의 비인간적 현실에 대해 대항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대중에게 '공작'을 운운하는 순간 지배집단의 주장들은 총체적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치적 자각의 경험들의 총량을 지속적으로 축적할 수 있었느냐가 이 과정의 성패를 가늠했다고 생각한다. (이 경험과 자각의 지리한 시초 축적의 과정에는 당연히 '80년대 진보세력이 존재한다.) 그 총량의 지속적, 상황적 축적이 임계점을 돌파해서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의 문제가 철저하게 '국내문제화' 되었을 때 냉전적 민중통제는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한 것이다.

  나의 주장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한가지 자문을 해 보라. 지금 민주노동당에 이른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 과정에서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대체 어떻게 해결되었던가? 만일 당신이 '통일운동'의 객관적인 정치적 효과를 과장하는 '주사-NL'류의 입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노동자운동이나 진보정치운동에 그 '통일운동'이 별다른 효과를 낸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뭔가 좀 황당스런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즉, 이 질문에 대한 가능한 답변은 아마도 '그냥'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을 '주적'으로 삼은 노동자운동이나 진보정치운동은 적어도 '87년 이후로는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라는 걸 그다지 심각한 고민의 대상으로 삼지 조차 않았기 때문이다. 옛 노래가사처럼 그저 '깨어지고 부서져도 다시 일어나'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걷다 보니 '적들의 목전에' 다가서 있던 것 아닌가?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의 유령을 굳이 붙잡고 싸울 이유도 없었고, 그다지 싸운 적조차 드물다. 그럼에도, 아니 도리어 그 때문에 우리는 그 냉전의 유령에게서 거의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6. 거울속의 유령


  대한민국의 (또한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노동자·민중에게 국보법과 같은 냉전적 민중통제 논리의 핵심은 '나라를 지키는 것'도, '통일을 가로막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국보법과 같은 냉전적 민중통제는 한국전쟁이 남북한의 지배세력에게 내려준 축복을 영속화 시켜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자율성을 박탈하는데 핵심이 있는 존재로 다가올 뿐이다.

내부의 저항을 '간첩과 다름없는 것'으로 둔갑시키는 냉전적 민중통제의 논리는 실제의 간첩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대한민국의 자국민을 상대로 할 뿐이다. 국보법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주장은 그 나라를 자국민에게서, 자국 민중의 가능한 민주적 결정에서 지킨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대체 그 나라가 어느 나라를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정치적 재갈을 물려 지켜지는 나라는 적어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일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이 위험스런 적이냐, 함께 할 동반자냐, 심지어 따라 배울 모범이냐를 논하기 이전에 대한민국 민중의 경제적, 정치적 제 권리는 그딴 외교적 문제와는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 정답일 수밖에 없다. 북한을 논하고, 남북관계를 논하고, 무슨 통일을 언제 어떻게, 아니 할건지, 말 건지 자체까지도 모두 그 다음의 문제, 특히 대한민국의 진보세력을 자처하는 이들로서는 대한민국 노동자, 민중의 이해에 따라 평가할 여러 문제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국가보안법은 그저 다른 누구도 아닌 대한민국 민중의 입에 부당하게 채워져 있는 반민주적, 반인권적인 정치적 재갈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이 '반통일 악법' 이라던가 '통일운동이 잘되어야 민주화가 된다'는 식으로 대한민국 민중의 민주적 기본권을 남북관계의 상태와 연루시키는 발상은 그 충심과 무관하게 사실은 국가보안법식 논리의 거울상에 불과하다. 민중의 정치적, 경제적 권리의 정도가 남북한 긴장의 종속변수라는 냉전적 유령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단지 '무시'의 대상일 뿐이다. 마르크스가 말했듯,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신의 존재 유무를 논하는 것은 여전히 신학적인 논쟁에 불과한 것이다. '유령'을 퇴치하느냐 아니면 그 한을 풀어주어 승천시켜 주느냐를 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정체가 뒷산에 고구마를 숨겨둔 만득이네 어머님인 걸 확인하면 족한 것이다.


7. '조선로동당' vs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


  때문에 나는 '80-90년대 '공안사건'중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은 다름아니라 '남한사회주의 노동자 동맹' 즉, '사노맹 사건'과 '국제사회주의자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는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참 싫어했었다. 그들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공안사건'으로서 그들이 관련된 사건의 의미를 평가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임을 먼저 밝혀둔다.)

  '사노맹 사건'은 분명 전형적인 '80년대 이후 운동권 조직사건'에 해당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무기 혹은 사형이 언도된 공안사건은 많았다. 그러나 통혁당, 인혁당, 남민전등 이전의 중대 공안사건들의 주역들이 본질적으로 극히 제한된 범위의 활동에 국한된 '비밀결사'에 가까웠다면, '사노맹'은 그리 '인기'있는 세력은 되지 못했어도, 어쨌거나 노동운동, 학생운동등 대중운동, 사회운동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던 '80년 이후 운동조직'의 대표적인 세력 중 하나였다. 그리고 80년대 이후의 운동조직들이 걸었던 행보가 그러했듯, '최대규모'의 조직사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노선을 따르던 운동세력들을 역사의 뒤편으로 보낸 것은 탄압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선 전환을 통해서였다. 그 핵심인물이던 백태웅, 박노해씨는 지금 모두들 잘 지내고 있지만, 혹시 그들의 죄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는지?

  그들의 죄목은 '이적단체 구성죄'가 아니었다. 그들의 죄목은 '반 국가단체 구성'이었고, '반 국가단체의 수괴'였다. 그것이 국보법의 논리상 무엇을 뜻하는지 여러분은 잘 아실 것이다. 즉 적어도 법률적으로 백태웅, 박노해씨는 김정일과 동급이다. 하지만 안기부의 기소내용에서 조차 '사노맹'은 '6.25이후 최대의 자생적 사회주의 혁명세력'으로 기록되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누가 반잠수정 타고 와서 사주하지 않아도, 그저 한국사회에 발붙인 자생적 활동만으로 '반 국가단체'의 레벨에 등극하는 세력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 법원이 인정 한 것이다.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전략'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국가보안법적 세계관은 말짱 헛소리가 된 것이다.

  그 얼마 전에 발생했던 '국제사회주의자 사건'은 다른 의미에서 국가보안법적 논리의 자기 파탄을 과시한 소극이었다. 즉 사건이 발생한 당시, 오로지 '북한 탓'으로 점철된 국가보안법을 가지고서는 '북한 역시 노동자계급을 착취하는 국가자본주의 사회'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이적단체'로 조차 규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이 '이적단체'의 '영예'를 얻게 되는 것은 국가보안법이 좀더 논리적으로 무질서하게 부분 수정된 후 다른 사건을 통해서였다. 분명한 사실은 '북한정권 역시 노동자 계급의 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이적단체'로 규정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은 '그래 난 사실은 그냥 사상탄압, 인권탄압 법이다, 어쩔 테냐'는 논리적 자포자기 상태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의 정치적 저항, 특히 자본에 대항하는 움직임을 '북한 탓'으로 돌릴 수 없다면 국가보안법은 법조항의 존치 여부 이전에 정치적으로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말하건 '노동해방'이란 단어를 보면서 그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찬양, 고무'하는 문구라고 여길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문구는 무슨 정치단체도 아니고 노동조합의 깃발마다 들어있었다. 그 때 이미 '국가보안법 체제'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당한'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의 대단한 진전 따위는 꿈에도 등장하지 않던 시절에 말이다. 그리고 북풍이 불던 남풍이 불던, 그런 일에 별로 개의치 않고 이어진, 인간다운 삶은 자본의 권력에 저항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는 단순 명료한 사실에 대한 자각이 (당명만 봐도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없어 보이는) 민주노동당을 원내에 진입시키기에 이른 것 아니겠는가?


8. '독재자와 부자를 지키는 법'


  며칠 전 KBS의 TV 토론에서 노회찬 의원은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하다 국보법 위반으로 잡혀가고 보니 그저 독재자와 부자를 위한 법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경험담을 술회 하셨다. 옳은 말이다, 정답이다. 정말로 국보법과 일체의 냉전적 민중통제는 결국 '독재자와 부자들을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방송시간 대부분을 잡아먹었던 '북한 뭐 길래'라는 끝도 없는 논란은, 심지어 다음 날 아침 똑같은 한나라당 의원과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의 토론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북한이 어쩌고'라는 논란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완전하게 무의미한 악무한의 반복을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북한만큼 아무렇게나 자기 편한 대로 말하기 좋은 대상이 또 어디 있겠는가? 원하는 만큼 악마를 만들던, 쓸데없이 미화하든 북한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제대로 된 응답이 돌아올 수 없는 순수한 외부로 남아있으니까 말이다.

  국보법 옹호론자들의 목소리에서 굳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대충 두어가지 정도뿐이다.

  첫 번째로, 박정희 정권의 '한국적 민주주의'의 잔상이 어른거리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나라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송두율 교수 뺨치는 내재적 접근법에 의하면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길은 '우리는 요런 걸 민주주의라 부른다'고 선언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공식적으로 왕정이나 신정을 주장하는 극히 일부국가를 제외하면 지구상은 민주주의 국가가 가득 차 있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북한을 비난 할 근거조차도 설자리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는 결국 발언자 자신의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을 반영해줄 뿐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특수주의, 예외주의는 있을 수 없다.

두 번째로, 소위 '사상전'을 운운하는 발언이다. 재미있게도 사상전이라는 단어를 역시 사용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은 북한정부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절대로 사상의 문제를 '전쟁기술'로 다루지 않는다. 사상의 문제를 전쟁기술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절차와 원칙이 함축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주장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표결하는 것으로 사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체제이다. 사상의 문제에 대해 대중의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존중하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토론 이외의 어떤 수단의 사용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즉 강제력이나 조작적 기술에 의해 사상의 문제를 다루는 것, 즉 '사상전'과 같은 발언이야말로 민주적 질서에 대한 도전행위이다.

  남북한 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국보법은 북한을 상대로 적용되는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보법으로 고생을 할 수 있는 것은 북한사람도, 미국사람도 아닌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뿐이다. 국보법의 존재이유를 무엇이라 주장하건 결국 그 법 적용의 결과는 대한민국 국민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일 뿐이다. 그 실제 작용 속에서 국보법은 완전하게 대한민국의 국내 문제, 대한민국 국민의 민주적 권리와 인권의 문제에서 조금도 벗어나 본 일이 없다.

따라서 국보법 문제에 대해 해줄 말은 북한이 적이거나 말거나, 남북한 관계가 봄날이던 겨울날이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민은 민주공화국의 국민답게 살수 있어야 한다는 것 뿐이다. 이는 북한이 무엇을 어쩌는가, 남북한 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다 수십, 수백 배 중요한 문제이다. 대체 북한 탓을 왜하는가? 북한에 유사한 법 조항이 있어서 어쨌다는 것인가? 그렇게 북한을 따라 하고 싶다는 건가? 민주공화국이라고 간판 걸었으면 그냥 멀쩡한 민주주의를 하자, 제발.


P.S)

  국가보안법 논란에서 남북한 관계의 '실상'을 따지는 것은, 지극히 보조적인 논쟁 기술(상대방 주장의 사실관계를 논란에 붙여 신뢰성을 낮추려는)에 불과하거나, 도리어 문제를 지속적인 해결할 수 없는 무익한 논란에 몰아넣는 근거가 된다.

  아무리 민족주의적 수사를 퍼부어도 남북한 관계의 핵심은 결국 국가와 국가의 관계이다. 국가간 관계의 양상은 일차적으로 정부에, 정치권력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실관계에 대한 논란이 존재해도 실제 정책은 결국 '정책결정권자'의 판단에 달린 문제 아닌가? 싸우기도 전에 칼자루를 상대에게 쥐어주면 결과는 자명한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민중은 언제나 '심증은 있으되 물증은 없는'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국보법식의, 남북한 관계에 대한 판단과 국내의 민주주의의 문제를 연결짓는 발상은, 남북한 관계의 객관적 상황자체 뿐 아니라 상황에 대한 해석까지도, 즉 대체 객관적인 실제 상황이 무엇이냐는 문제에 대해서까지도 남북한의 국가권력이 기본적인 우위를 지닌다는 것에 의해 힘을 얻는다. 결국 해법은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대중적 압력으로 정부가 태도를 바꾸게 하거나, 선거 등으로 정치권력의 구성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런데 '남북관계의 현 상황에서 국보법은 꼭 필요하다'는 정부나 정치세력의 주장을 대중의 힘으로 꺾을 정도라면 사실은 대중이 그러한 냉전적 민중통제의 논리를 이미 불신하는 상태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국보법 논란 등에서 마주치는 좀더 근원적인 문제는 공존보다 통일을 우위에 두는 사고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국보법과 같은 냉전적 민중통제의 논리는 무엇보다 자국이 '분단국'이라는, 그것도 정부라고 인정할 수 없는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나 '외세와 그 앞잡이'가 국토의 일부를 강점한 위기상태라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처럼 남북한이 서로를 엄연히 국제법상의 별개의 주권국가이고 오직 자국민의 판단에 따라 앞날을 선택할 불가침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애써 부인하는, 그래서 남북한 두 국가의 정상적인 관계에 기반한 안정적인 공존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심지어는 그런 장기적, 안정적인 공존상태를 있어서는 안될 것으로 간주하는 논리가 단지 국보법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것이다. 즉, 그러한 공존에 대한 거부는 '통일'을 국가적 지상과제로 삼는 논리의 기저에도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연 북한이 반국가단체가 아니고, 남한이 '미제의 괴뢰'가 아니어서 남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간 관계를 도모하고 장기간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될 때도 과연 '통일'이 그렇게 항상 시급하고 절실한 '꿈에서도 소원'으로 남아 줄지는 의문이다. 물론 북한이 '반국가단체'로 규정되는 것에 국보법의 '공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북한이 반국가단체가 아니라면 남북한을 통일하자는 이야기와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영토여야 한다는 주장'사이에 '국제법상' 어떤 차이가 있게 될지 좀 궁금하다.

  대한민국 민중에게, 아니 남북한 민중에게 '냉전과 분단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남북한 정상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흐뭇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남북한의 국가간 관계와 민중의 민주적 권리, 인간적 존엄을 연동시키는 준-전시적 민중통제를 해체하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그저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곧 민중이 고통받아야하고 평화도 공존도 불가능하다고 말하려면 나치스의 '생활권 이론'이라도 신봉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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