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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추상과 구체의 변증법: 제2장 (4)」 『총명한 유물론』 제3집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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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추상[개념]과 실천
실천, 즉 사회적 인간의 감각적 대상적 활동은, 그 근거 위에서 감성적 인상을 능동적으로 변형시키는 인간 인식 능력의 전체 복합 기제가 출현하고 발전하는, 보편적 전제이자 조건이었으며 여전히 그러하다. 출현하였고, 더욱이 고도의 수준으로 발전하였기에, 논리적 활동의 형식의 체계(범주)는 실천 그 자체에 대해 강한 반작용을 가한다. 이 기초 위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은 이론적 사유의 추상물에 대한 경험적 추상물의 관계 문제를 해결한다.
직접적인 관조에 공개된 현상 속에서 대상은 대부분 그것이 본질에 있어 개념으로 표현되는 바와 상당히 다르다. 만약 양자가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면, 현상에 대한 특수한 이론적 분석으로서 과학은 전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은, 이러저러한 ‘일반적 특성’이 직접적인 관조가 취급하는 현상 속에서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단순한 언급이, 개념의 추상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비중 있는 논거로 기능할 수 없는 이유이다. 장 자크 루소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서 사슬로 묶인 채 있다”는 그의 역사적 테제를 정식화했을 당시, 정말로 대다수 사람은 사실상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슬에 묶인 채” 삶을 보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그 테제는 당시에는 경험적인 일반적 사태를 참조함으로써는 증명될 수 없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계몽주의의 철학적 개념은 진리였고, 그 반대자의 것은 그렇지 않았다.
직접적 관조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추상은 언제 어디에서나 그 순간에 존재하는 사람 간의 그리고 자연에 대한 사람의 실천적 관계의 관점에서 세계의 현상을 반영한다. 자연은 상상적인, 이른바 ‘수동적으로 관조적인’ 주체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의 망 속에 짜여 있는, 즉 세계에 대해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대상적 관계 속에 서 있는 존재인, 생생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규정된 개인에 의해 관조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대상의 사회-역사적 성질이 개인의 눈에는 그것의 자연적 성질과 매우 자주 융합되면서도, 대상·인간 그 자신의 일시적 성질이 대상의 바로 그 본질에 결착된 영원한 성질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정확한 이유이다. 따라서 이러한 물신주의적-자연주의적 환상(상품 물신성은 단지 하나의 예일 뿐이다)과 그것을 표현하는 추상은, 그러므로 관조 속에 주어진 대상에 대한 단순한 지시에 의해서는 반박될 수 없다. 부르주아(‘시민’) 사회의 개인에게, 관조 속에서 주어진 대상은 표면적으로는 정확히 그에게 보이는 방식 그대로이다. 이 환상과 추상은 부르주아 사회의 한 개인의 의식 속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관조하는 사회-경제적 관계의 현실 자체 속에서도 형성된다. 그것이 마르크스가 ‘시민적’, 즉 부르주아적 사회가 주조한 개인의 관조적 관점은 현실을 그것의 진정한 빛 안에서 보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고 지적했던 이유였다.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은,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포이어바흐의 것을 포함한 모든 낡은 유물론의 관점이었다), 대상은 관조 속에서도 역시, 물신주의적 환상의 안개에 휩싸인 채 나타난다. 생생한 관조 속에서 개인은 언제나 능동적이다; 대상을 실제의 사실 그대로 보게 해준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수동적 관조’는 낡은 철학의 공상의 영역에 속한다. 실제의 생생한 관조 속에서 대상은 언제나 현존하는 실천의 견지에서 주어진다.
그것은 물론 대상이 실천과의 어떠한 연관의 외부에서, 마르크스 전 유물론자들이 믿었던 것처럼 ‘순수하게 무관심한 방식으로’ 파악되면서, 이론적 사유 안에서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로는] 정반대이다. 여기서의 차이는 이론적 사유의 추상물이 생생한 관조의 추상물보다 덜 직접적인 방식으로 실천과 연결되어 있다는 데에 있지만,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그 연결은 더욱 깊고 포괄적으로 된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실제 행동하는 구성원의 머리에서 나온 경험적 추상은 마르크스에 의해서 실천 자체의 관점으로부터 비판된다. 그러나 실천은 여기서 그것의 전체적인 실재적 범위 안에서 그리고,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서, 특정한 전망 속에서 취해진다.
부르주아적 의식의 경험적 추상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마르크스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그는 부르주아 사회의 관조적 개인의 관점을 취한다면, 대상은 정말로 정확히 그것이 그에게 보이는 방식으로 보일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개인의 경험적 의식의 추상에 대한 비판은 그 관점─그가 대상에 대해 사고하는 그 입장에의 비판에서, 그리고 그 관점의 협소함을 폭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상을 그것의 전체적인 실제적 내용 속에서 이해하는 보다 넓은 시각은, 마르크스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향해 정신적으로 뻗은 그것의 필연적인 전망 속에서 취해진 실천의 관점과 일치한다. 현존하는 (부르주아적) 실천의 좁은 지평을 돌파하면서, 대상에 대한 이론적 견해는 (포이어바흐에게 보였던 것처럼) 실천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의 주어진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형태와만 단절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상에 대한 이론적 견해는 그것의 실재적 의미 속에서, 그것의 혁명적이고 혁명화하는 의미 속에서 실천과 일치하며, 따라서 이러한 실천을 실현하는 계급의 관점과 일치한다.
마르크스의 인식론은 실천에 대한 추상의 관계에 대해 이러한 해석과 관련되어 있다. 실천에 대한 그 관점은, 레닌이 지적했듯이, 인식론의 출발점이다. 다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혁명적 실천의 전체적 범위와 전망 속에 있는 혁명적 실천의 실제적인 입장이지, 부르주아 이데올로그의 희망 섞인 이야기를 반복하는 수정주의자들이 중상적으로 단언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편협한 실용주의적 관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이 해석은 또한 개념에 관한 마르크스와 레닌의 견해, 특히 현상의 직접적으로 관찰 가능한 ‘일반적 특징’에 대한 단순 부합은 아직 개념의 진리성에 대한 척도가 아니라는 그의 명제와 연결되어 있다. 항구적으로 되풀이되거나 일반적인 것으로 관찰되었던 대상의 저 특징이 실천적 변화의 결과로 완전히 사라지고, 관조가 취급한 현상 속에서 예외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이 대상의 본질 표현임이 판명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우리 의식 외부에 있는 상황에 대한 우리의 파악이 옳은지 그른지(즉, 우리의 파악이 대상에 조응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관념을 실제 상황, 사실 속의 일반적인 것과 비교하면서 대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요소가 대상에, 즉 그것의 구체적 성격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지 아닌지를 정의하는 것은 다른 척도를 요구할 것이다. 그 척도는 아무리 철저하고 세심할지라도 수동적인 관조라기보다는, 대상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실천이다.
개념의 진리성은 사실의 경험적인 일반적 특징과 그것의 규정을 비교함으로써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적 실재의 실천적 변형을 포함하는 더 복잡하고 매개된 방식으로 증명된다. 실천은 개념을 검증하는 최종 심급이다. 개념의 대상에 대한 조응은 인간이 자신이 형성한 개념에 조응하는 대상을 발견하거나, 재현하거나, 혹은 창조하는 데 성공할 때에만 온전하게 증명된다.
개념이, 관조가 취급하고 관념 속에서 표현될 수 있는 추상적인 일반적 특징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한, 개념은 주어진 순간에 주어진 특징을 소유하고 있는(혹은 소유하지 않은) 관조 가능한 모든 개별적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확증될 수도, 반박될 수도 없다. 마르크스는 대상이 현상적 형태에서는 본질 속에서─개념에 의해 표현되는─나타나는 바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이론을 반박할 수 있다고 믿었던 속류 경제학자가 실행한 이론화 방식을 조롱할 때만큼 결코 경멸적이었던 적이 없다. “ … 속류 경제학자는 사물 사이의 본질적인 상호연관의 폭로에 직면했음에도, 겉으로 보기에는 대상이 다르다며 자랑스럽게 진술할 때 자신이 대단한 발견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는 외관에 집착하면서 이를 궁극적인 것이라며 뽐낸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과학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인가?”1
개념 속에 표현된 대상의 본질은 다른 대상과의 상호작용이라는 구체적 체계 내에, 즉 그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그것이 그것인 바가 되는 객관적 조건의 체계 내에 놓여 있다. 개별적으로 따로 취해진 각 대상은 현실적으로 주어져 있는 일반적 특징의 형태로서가 아니라, 오직 상호작용하는 대상의 어떤 구체적 체계의 한 요소로서만 자기 자신의 본질을 잠재적으로 포함한다. 이 본질은 현실 속에서(따라서 관조 속에서도 역시) 직접적으로 관찰 가능한 일반적인 것으로서 대상 내에 실현되지 않으며, 만약 그것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의 운동, 변화, 그리고 발전의 과정에서만 일어난다.
이 지점에서 의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가장 중요한 범주인 프롤레타리아 개념의 역사를 고찰함으로써 잘 예증될 수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혁명적인 계급으로서,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자로서 이해했을 때, 개별 프롤레타리아와 프롤레타리아 각각의 특정한 층위에 내재하는 추상적으로 일반적인 특질을 고찰함으로써 이 개념을 획득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개별적 대표자를 비교함으로써, 즉 비변증법적 논리가 권유하는 류의 추상화를 통해 19세기 중반에 행해질 수 있었던 형식적 추상은, 프롤레타리아를 기껏해야 절망적인 굶주린 반란만을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억압받고 수동적으로 고통받는 빈곤에 찌든 계급으로 특징지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이 개념은 그 당시의 무수한 연구 속에서, 마르크스·엥겔스의 동시대인의 박애주의적 저술 속에서, 그리고 공상적 사회주의자의 저작 속에서 통용되던 것이었다. 이 추상은 경험적으로 일반적인 것에 대한 정확한 반영이었다. 하지만 오직 마르크스와 엥겔스만이 경험적 사실의 이론적 표현, 즉 그 내적 본질이 개념 속에 표현된 ‘즉자적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인 바의─아직 ‘대자적’이지 않았던, 즉 단순한 경험적 추상 혹은 관념 속에 직접적으로 반영된 경험적 실재인 바의 파악을 획득했다.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의 실재적인 객관적 본질을 표현하는 이 결론, 이 개념은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을 발생시킨 사회적 조건의 전체 체계를 그 근저로부터 파괴하도록 소명(召命) 받은 가장 혁명적인 계급으로서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조건의 전체 총체성을 연구함으로써 획득되었다. 프롤레타리아의 개념은, 그것에 대한 경험적인 일반적 관념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여기서 형식적 추상이 아니라 그것의 객관적 역할과 그 역할의 발전 경향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는, 프롤레타리아 발전의 객관적 조건에 대한 이론적 표현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이해된 프롤레타리아 개념의 진리성은 모든 프롤레타리아에게 경험적으로 공통된 특징과 그것을 비교함으로써 증명될 수 없었다. 이러한 특징은 오히려 박애주의자와 유토피아주의자 사이에 통용되던 추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개념의 진리성은 프롤레타리아가 ‘즉자적 계급’에서 ‘대자적 계급’으로 실재적으로 이행함으로써 표현되었다. 프롤레타리아는, 용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자기 자신의 개념’과의 조응을 향해, 즉 프롤레타리아 형성의 객관적 조건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로서 존재하는 사회적 조건의 전체 구체적 총체성을 분석한 기초 위에서 마르크스주의 고전에서 이해된 저 개념을 향해 발전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고 경쟁에 의해 분열된, 억압받고 짓밟힌 노동자 대중이기를 그치고, 그것은 자신의 세계사적 사명─사적 소유 및 일반적인 노동 분업의 계급 형태의 혁명적 폐지─을 실현하는 단일한 계급이 된다.
동일한 실천이, 개별적인 각 프롤레타리아에게 직접적인 경험적 경험 속에서 공통적이었던 특성을 상당히 정확하게 반영했던 저 ‘올바른 관념’을 반박했다. 유물론적 변증법의 이러한 가장 근본적인 요구를 고려하는 것이 사회발전의 모든 과학적 개념을 이해하는 기초를 형성해야 한다는 점이 특히 강조되어야 한다.
이론의 출발점으로서의 실천의 관점을 무시하는 것(혹은 의식적으로 왜곡하는 것)은, 국제 노동운동에 그토록 많은 해악을 끼치는 수정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조류의 기초로서 제국주의 시대에 기능한다. 우익 기회주의자의 정책은 전 세계 노동자의 혁명적 실천의 세계사적 발전 경로를 이해하지 못한 점에 의해 언제나 특징지어졌다.
과학적 공산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세계의 실천적 변형을 안내했던 1917년 10월 혁명 이전에도 이미, 기회주의자 카를 카우츠키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경로를 저버리고 세계 제국주의 세력에 적응하는 경로를 택했다. 그는 ‘초제국주의’라는 추상적 가설을 전제하는 것과 같은 작은 일로부터 시작했다. 국제 노동운동 내의 이러한 질병의 위험을 상당히 정확하게 진단했던 레닌의 예견이 여기서 온전하게 드러나고 있다. 카우츠키의 추상적인 이론적 구성은 언뜻 보기에 전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인 명제로부터 진행되었다. 20세기에 자본주의는 자본의 남작을 하나의 단일한 슈퍼 트러스트로 결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카우츠키는 주장했다. 카우츠키의 견해에 따르면, 고립된 국가에서 자본의 투쟁과 경쟁은 이 제국주의적 슈퍼 트러스트 내에서 소멸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제국주의의 세계 체제는 하나의 통합된 사회화된 경제가 될 것이며, 그것은 사회주의가 되기 위해 단지 형식적으로 ‘국유화’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혁명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필요치 않으며, 단지 사회 전체를 위하여 마지막 소유주로부터 그것의 사적 재산을 박탈하는 형식적인 법적 승인만이 필요할 뿐이다.
이로부터 카우츠키가 이미 그 당시에 국제 노동운동에 권유했던 정책이 도출된다. 즉 제국주의가 자기 자신의 수단에 의해 세계 경제를 사회화할 때까지 기다리고, 이 기획을 방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돕는 것이다. 레닌은 이 해로운 이론과 정책의 가장 깊은 뿌리를 정확하게 지목했다: 그것은 이론적 사유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실천의 실제적 발전으로부터 분리시킨 것, 그리고 추상적 추론이었다.
레닌은 세계 자본주의 발전의 초제국주의적 단계가 추상적 성찰 속에서는 충분히 구상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한 단계는 상상될 수 있다. 하지만 실천적으로 이것은 기회주의자가 되는 것, 즉 미래의 절박하지 않은 문제을 꿈꾸기 위해 현재의 절박한 문제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론적으로 이것은 실제의 발전에 의해 지도되기를 거부하는 것, 그러한 꿈을 위해 자의적으로 실제의 발전을 저버리는 것을 의미한다.”2
만약 그것이 단지 ‘꿈’의 문제였다면, 그것을 충분히 무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에서의 꿈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실천적인 정치적 강령이 된다는 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론은 그것의 본성과 사회생활에서의 거대한 역할로 인해, 일반적인 실천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특정한 형태의 실천으로부터만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그것은 즉각 다른 종류의 실천에 의해 유용된다. 이론은 주인 없이 오래 남아있기에는 너무나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카우츠키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이어가면서 레닌은 하나의 결론을 내렸는데, 이는 추후 사건의 경과에서 문자 그대로의 정확성으로 입증되었는데, 이는 정확히 레닌이 세계를 변혁하는 수백만 근로대중의 실제적인 혁명적 실천을 언제나 이론적 구성의 최고 척도(highest criterion of theoretical constructions)로 간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세기 자본주의의; 편집자] 발전 경향이 예외 없이 모든 기업과 예외 없이 모든 국가를 흡수하는 단일한 세계 트러스트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발전은 그러한 상황에서, 그러한 속도로, 그리고 단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 민족적 등등의 그러한 모순, 충돌, 그리고 격변을 통하여 진행되기에, 단일한 세계 트러스트가 실현되기 전에, 국가적 금융 자본의 ‘초제국주의적’인 세계적 통합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파열할 것이며 자본주의는 그것의 정반대의 것으로 변형될 것이다.”3
레닌의 이론적 사유를 카우츠키의 추상적 추론과 구별 짓는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의 구체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카우츠키의 이론적 구성은 제국주의의 실천, 그것의 힘과 대표자, 그리고 이 실천이 취하게 될 경로를 고려한다. 하지만 카우츠키는 피압박 대중의 실천적 활동과 투쟁과 같은 ‘작은 일’을 완전히 무시한다. 그의 [이론적] 구성은 그것을 도외시하고 있다.
레닌은 제국주의가 카우츠키가 논했던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사실, 즉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이 실로 세계 경제의 제국주의적 ‘사회화’라는 추상적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 추상적 도식에 맞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근본 원리인 노동계급의 혁명적 실천이라는 관점을 단호하게 대립시켰다. 이 예는 오직 이 관점만이 제국주의 하의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견해와 일치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또 다른 점 역시 명백해진다: 카우츠키의 추상적 관점은 필연적으로 변증법의 거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자신의 추상적인 이론적 도식의 이름으로 그는 계급투쟁의 점증하는 첨예성을 보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계급적 대립의 점증하는 첨예성은 바로 세계 경제의 자본주의적 ‘사회화’가 취하는 구체적 형태 그 자체이다. 카우츠키에게 있어 이 ‘사회화’는 계급 모순의 순전한 진화론적 화해 과정으로 나타난다.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변증법은 인류의 ‘더 높은’ 초계급적 목표라는 이름 아래 대립물의 화해라는 전형적인 헤겔적 이념을 위해 폐기된다.
결국 카우츠키의 추상적 도식은 그것의 이론적 내용에 있어 전적으로 거짓인 구상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옹호로, 그리고 현존하는 사회주의에 적대적인 입장으로 이어진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이 추상적이고 스콜라적인 비혁명적인 개념은 카우츠키가 이론과 정치 모두에서 필연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완전한 배신에 도달하게 된 가교였음이 증명되었다.
동일한 문제에 대한 레닌의 구체적인 이론적 분석은 전적으로 다르다. 그것의 출발점은 노동계급의, 즉 대중의 혁명적 실천이라는 관점이다. 이 원리는 실제 과정의 모순과 긴장 속에 있는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변증법을 직접적으로 비춘다. 그것은 또한 레닌의 이론적 예견이 2년 뒤에 문자 그대로의 정확성으로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1917년에 세계 제국주의는 그것의 가장 약한 고리에서 파열되었으며, 그 이후의 전체 역사는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고리들이 점점 더 붕괴하는 형태를 취했다.
역사의 변증법은 제국주의 체제의 약한 고리를 대체하면서 새로운 경제적·정치적 체제의 고리, 즉 사회주의 국가 공동체 고리가 출현하고 나날이 힘을 얻는 그러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 세계가 변혁되는 방식이며, 변증법의 위대한 거장인 레닌의 구체적인 이론적 예견과 정확히 일치하는 방식이다.
사회발전의 법칙을 과학적인 방식으로 도출하고 그것에 대한 이론적 개념을 전개하려고 노력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를 위한 교훈이 바로 여기에 있다.
번역: 노준엽 | 집행위원
2026년 3월 2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