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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9
    이념, 그리고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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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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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그리고 운동.

 

오랜만에 논쟁이 있었다. 이념과 운동, 현재 우리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사실 활동을 접기로 했고, 또 별다른 활동을 하고 있지 않기에 꽤나 가시방석인 자리였으나...

어쨌거나 논쟁에 개입을 했다. 논쟁의 결론에 대해서 절반은 수긍한다.

그러나 뭔가 문제점이 있었다. 결론이 그렇게 나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활동가 이데올로기'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써놓고 나니 참으로 거창한 글이 되었다. 허허, 내가 뭘 안다고 이런 글을 썼노;; -_-;;)

 

 

 

 

 

   이념, 그리고 운동

 

  1. 운동과 이념에 대한 세 가지 태도

 

     오늘 몇 차례 논쟁이 와갔다. 중요하게 내려진 결론 중 하나는, 현재 활동에 있어서 '이념'이라 할만한 것이 부재하고 있고, 따라서 활동을 확장하거나 바꾸는 것에 앞서서 운동의 준거가 될 운동의 이념이 핵심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내가 속한 운동만이 아니라, 현재 모든 좌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요즘 논란이 되는 조직형태도 어디까지나 지향하는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현재의 객체적/주체적 조건을 고려하여 현재 활동에 적절한 형태를 취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위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또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진정 이념이 문제라면, 현재 하고 있는 활동의 '준거'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단위의 사람들을 챙기고, 사업들을 벌이고, 공동투쟁체를 만들고, 지역에서 같이할 단위들을 찾고, 촛불집회를 가고 안가고 등등. 현재의 활동은 어디서 준거를 얻는가? 아주 쉽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 '관성'에서 얻는다고. 따라서 그러한 활동들은 잘못되었다고 결론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2) 그러나 보다 신중한- 그리고 현실적인  판단은, 그러한 활동들 역시 평가의 대상이며 진지하게 어떠한 효과와 어떠한 판단근거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가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보다 보편적이고 쉬운 대답이 있다. 그게 아니라, '대중운동의 양식(혹은 활동)'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실재로서 존재하고 있고, 이것의 방향성을 짓는 것이 '이념'이다. 따라서 우리의 활동은 틀린 것이 아닌데, 다만 이 활동의 방향을 어떻게 수렴하고 잡아가느냐의 이념이 부재할 뿐이다. (나는 이를 '활동가 이데올로기'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1)은 현실변혁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생각이다. 2)는 적절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어차피 활동들은 꾸준히 이뤄져야 하는 것인데, 활동의 방향들을 평가하면서 이념이 활동과 괴리되지 않으면서 새로운 실천들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3)이다.

   3)은 운동을 물신화한다. 즉 어느 운동이나 무조건 따라야하고 옳은 것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데, 이러한 논리에서는 우선 운동을 하고 보자는 것이다. 운동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왜? 운동이 안되니까 운동을 확장하고 잘 꾸리는 것이 무엇보다 최우선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운동을 하는 사람은 -ism으로 끝나는 정치이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대중과 친화성이 있는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념'은 단지 방향정도로 그 중요성이 축소된다. 또한 이념은 활동가들이 각자의 활동을 통해서 담보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활동들에 의해서, 대중들을 만나면서 활동을 배우면서 대중들의 '힘'에 대한 신뢰를 하게 된다. 이념은 누군가의 책에 의해서, 선배 활동가들의 추상적인 언어를 통해서 "제시"된다. 즉  스스로의, 그 운동집단 스스로의 이념이 아니라, 운동을 위한 이념이 되어버린다.  

  

   ( 용어 상의 혼란이 있을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결국 운동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이 하나의 그 운동을 꾸리는 이념이라는 것 아니냐라는 것이다. 맞다. 그것도 이념이다. 그러나 아래의 글을 보면 알겠지만, 그런 것들은 결코 현재 세계에 대한 대안적인 이념이 아니다. 다시 말해 좌파 운동이 아니다. 좌파 운동은 이를 무의식적으로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부재하는 이념을, 운동을 위해 '창조'해낸다. 현실에서는 사회당과 진보신당의 극심한 위상의 부침이 이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회당의 '사회적 공화주의'의 실 내용은 무엇이며, 반反NL 외의 진보신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물론 나는 이 두 당의 구체적인 상황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단일한 집단으로 존재해온 사회당이나,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대안세력으로 부상했던 진보신당조차도 이러한 문제점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다른 좌파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내가 속한 운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2. 정치적 이념의 중요성과 복원

  

   운동에서의 정치적 이념은 단순히 전략이나 방향이 아니다. 오히려 현 세계에 대한 다른 방식의 정치양태, 문화, 이데올로기 그리고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치적 이념은 그 이념이 근거하는 객관적, 정세적인 조건들을 바탕으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점 역시 고려되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이념들에 적합한 정치형태는 정세적으로 출현한다. 수많은 자유주의 혁명가들은 이러한 정치형태를 영국/프랑스 혁명을 보았다. 공산주의자들의 경우 마르크스는 파리꼬뮌에서, 레닌은 러시아의 소비에트에서, 독일의 평의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평의회에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실천들은 단순히 터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이념에 근거한 활동들을 통해 객관적/주체적 조건들을 바탕으로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운동, 즉 실천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운동은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고, 이념은 방향만 알려준다는 것이 '운동을 위한 이념' 이다. 그리고 이는 사실상 대안적인 정치를 질식시킬 것이다. 오히려 2)와 같은 태도를 견지하면서 새로운 정치형태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현 세계에 대한 '다른' 방식이란,  퇴행적인 수도, 진보적인 수도, 또 다른 방식의 현상유지를 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극히 한정적이다. 이러한 '대안의 한정성'을 둘러싼 갈등이 좌파 내부의 논쟁거리가 되어야 한다. 위에서 이 때 이념의 '객관적 조건'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보면 자유주의/민족주의-공산주의/국제주의가 쟁점이 잡힐 것이고, '정세적 조건'을 신자유주의로 보면 반세계화냐 대안세계화냐가 주요한 쟁점으로 잡힐 것이다. 물론 좌파들은 서로 간에 상이한 방식으로 조건들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연대체와 끈끈한 공동투쟁은 바로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그 조건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또한 각 운동단위들은 그들의 이념이 무엇인지, 어떠한 판단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현재 운동의 확장과 새로운 경로들을 모색해보면서 끊임없이 자기비판해야할 것이다. 다만 운동이 안된다고 하여 무비판적으로 활동 잘해서 운동 확장하면 되겠지, 라는 "활동가 이데올로기"보다는 자신들, 우리들 스스로에게 가차없는 비판의 잣대를 통해서 "대안적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서투룬 포스트구조주의/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이 이러한 논의 자체를 파괴하려 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논의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며, 페미니즘의 경우와 같이 여성에 대한 폭력, 가족과 성욕, 그리고 이에 근거한 애정에 근거한 결합형태에 대한 매우 중요한 논점들을 던진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무시되어서는 안되면, 다만 논쟁이 가능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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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1. 본인 : 대학생이고 남성입니다. 맥주를 좋아하고, 최근에는 인민주의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2.운영 계획 :

 

-  많은 이들이 블로그라는 공간은 비록 공개되어 있지만 그 공개는 다수의 익명에게 향하고 있는데, 진보넷처럼 정치적인 공간에서조차 흔히 정념들의 무비판적인 배출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블로그를 오랬동안 사용해보기도 했었습니다.

 

-  그러나 진보넷처럼 정치적인 온라인 공간에서의 불로그를 그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정치(적 담론과 그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희화화와 냉소를 드러내기만 할 뿐이라 생각합니다. 정치란 것이 항상 진중할 수도 없고, 또 현실의 정치란 것은 당연히 추악하고 보기 나쁜 모습들을 많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것 역시 정치의 하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들에 대한 "비판"과 그것에 대한 "거부" 혹은 "희화화"는 완전히 다른 맥락입니다.

 

-  물론 투쟁대상을 결점이 많은 존재, 우스운 존재로 희화화하고, 그럼으로써 기존 정치질서에 대한 전복의 힘과 투쟁의지를 강하게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운동과 투쟁의 대상은 결코 인격화된 지배계급의 '그/녀들'이 아니며, 사회의 구조와 관계 그리고 문화일 따름입니다. 단순히 무찔러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정치적인 행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지배계급의 대중에 대한 기만과 착취를 '변혁'시켜나가는 것이 목표이지 않습니까?

 

-  좌파들이 행하는 정치가 정치적 쟁점을 스스로 은폐시키는, 정치에 대한 인격화, 희화화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정치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시킬 뿐입니다. 더욱이 인민주의(populism)의 정치경향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다음 아고라가 결코 남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회진보연대 게시판의 최근 서평에 관련된 논란이나, 진보신당의 진중권의 "사회주의 찌질이" 발언 역시 결코 남한 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

 

-  제가 너무 이상주의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진보넷이 정념의 배출구가 아니라 이념적, 정치적 쟁점에 대한 논의, 토론, 그리고 상호의 정보교환의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다소 딱딱하겠지만 진지함이 좀 더 많은 블로그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p.s 물론 블로그라는 공간은 엄연히 '사적'인 공간일진데, 사적인 이야기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죠. 저도 가끔 쓸 겁니다. 다만 정치적인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진지해지자는 겁니다^^, 비판도 진지하게, 논의도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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