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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생협, 21세기의 소명은 무엇인가?

생활을 서로 돕는다는 의미의 생활협동조합은 너무 오래된 것이기도 하고, 또 너무 새로운 것이기도 하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가는 길은 협동하지 않는 길이고, 서로 도와서는 안 된다는 길로 가고 있다. 만약 절반 이상의 한국인이 한미 FTA를 통한 국내 정책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길이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이 시대를 지배하는 철학이라면, 그 철학의 가장 기본은 서로 도우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시장만이 우리를 살릴 것이다'라는 이 철학은 21세기에 사람들에게, 적어도 절반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복음처럼 보이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생협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경제활동 방식은 '옛 것'에 속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협동은 옛날의 일은 아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한국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더더군다나 옛날의 일은 아니다.

100% 시장만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있을까?

사람들이 사는 이 사회가 그런 적은 없었고, 어떤 식으로든 시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새로운 사상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들이 사라지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은 시기는 없다.

 

연구자들에 따라서 한국 자본주의를 '양떼 자본주의'라고 부르기도 하고, 지금의 현상을 '삶의 자본주의화' 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식 용어대로 하면 고객주의(clientism)라고 부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사람의 모든 삶이 시장을 통해서 작동하고 움직이는 사회로 만들어나가는 변화는 지금부터 생겨나는 일이다.  마치 목동이 양의 털과 고기 그리고 젖은 물론이고 목장 자체를 관광상품으로 바꾸는 것처럼 한국인의 일상은 점차적으로 시장에 지배받는 관계로 바뀌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월마트와 보험회사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데,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은 마케팅이지만, 그 본질은 모든 것을 자본적 관계로 바꾸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할인매장과 보험회사가 아니라 정부와 청와대가 이러한 변화를 지금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고객'이라고 불리면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고객이 되기 위해서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자신이 가진 것 + 알파'이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삶의 평온함이란 존재할 수 없다.  고객보다는 형제와 자매가 더 뿌듯할 것 같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상품관계 속의 고객이라는 이름에서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이제 마지막 남은 인간적 관계 즉 대면관계와 비상품적 관계를 지킬수 있는 곳은 생협 외에는 없어 보인다.  이미 대형교회를 시작으로 종교적 영역도 '비지니스'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아니, 도대체 한미 FTA 타결에 종교단체들이 왜 찬성성명서를 낼 필요가 있는가? 이미 종교도 비지니스의 영역이기 때문이 아닌가?

 

다행히 우리에게는 30만 생협조합원이 있고, 외국의 사례를 보면 이 숫자는 아마도 늘어날 것이다.

일본, 스웨덴, 미국, 그 어느 사례를 보더라도 생협이 튼튼하게 자리 잡은 지역이 사람들 살기에 편한 지역이 되어있다.  역으로 시장 관계가 극도로 높아진 지역일수록 사람들의 정신적 보건이 황폐하고, 시민들이 느끼는 삶의 불안감은 높아진다.  게다가 선진국일수록 지역생태계를 지키는 사람들이 생협의 조합원이 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사회가 인간적인 측면에서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이 생협조합원이라면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은 자명하다.  최소한 먹거리의 영역에서 호혜가 작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의료와 교육만이라도 생협이 해결 할 수 있다면?'  이런 즐거운 상상이 가능한 것은 생협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생협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것이다.  그리고 그 소명은 즐거운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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