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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여성주의의 필요조건

데이비드 J. 커헤인의 [남성 여성주의라는 모순어법] 中 에서

 

중요한 점은 남성 여성주의의 모슨을 회피하려고 하거나 단순함을 열망하는 우리 자신에게 굴복하거나 반성차별적 성취에 대해 섣부른 자축을 하기보다는, 남성 여성주의가 갖고 있는 모순과 더불어 책임감있게 사는, 심지어는 그 모순과 함께 발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남성 여성주의의 필요조건은 다음을 포함한다.

첫번째는, 자신을 윤리적으로 복합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로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의지이고, 두번째는  비판에 대한 개방과 지속적인 자아성찰이며 세번째는 활동가들과의 우정과 공동체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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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7月.

4日.

날이 덥다.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결국 순간이든 영원이든 사랑은 지속된다는 거다.

내가 가까이 가고 그가 나에게 다가오는 만큼....

언제나 그렇게 사랑에게로 간다....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닌

차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3日.

며칠째 이러면 안되는 데도 계속 일을 미루다.

오늘 무조건 끝내리라 결심하고도 이렇게 흔들린다.

다독여지지 않는 마음때문일까..?

그것도 아님

팍팍한 삶에서

이렇게라도 딴지를 걸고 싶은 걸까..?

 

이렇다가 모든 것들을 다 잃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될때로 되라는 마음도 있다.

쉬고 싶다.

 

며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냥 앉아서 누워서 ...냥....쉬고 싶다....

 

2日.

일하러 나오는 길에 비를 만났다.

한참을 길거리에 서 있었다.

 

멍하니.

우산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갑자기 나 스스로가 처량해 보였다.

 

아무도 눈치채지 않았지만

난....그냥 이렇게 혼자 서있는 것이

너무 두려웠던 것이다.

 

차라리 아무도 없는 길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않게 서 있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그냥...비 맞고 걸어 갔어야 했을까...?...

 

1日.

정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자꾸 미련둔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은 나 스스로도 시간이 필요할듯....

시간을 비워 둠으로써 무엇이 채워지는 지 기대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비워지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채워질테니.

 

가급적

아프지 않은 것들로 채워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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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가기..

다음주부터 집을 알아볼 요량...

 

가진 돈은 한푼도 없다.

지금 다니는 직장과 주변의 사람들 밖에는

 

우선

전세 2000 에서 2500만원 안에서 집을 알아보려는 중

아파트는 림들테고 단독주택 중 독채를 중심으로 알아보려는 중이다.

 

알아보고 나서는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나머지는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대략적인 계획....

 

이건 완존 계획이 아니라 무대뽀인것 같다....ㅎㅎ

 

집을 구해도 문제는 나머지 살림살이인데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구해봐야 하겠지만

당장은 냉장고랑 세탁기랑 주방도구는 빠른 시일안에 구해야 할듯 싶다.

 

먹는 문제 해결이 우선일테니

주방도구가 우선이겠지..?...ㅎㅎ

뭐...간단하게 먹거리 해결할 정도의 셋팅만 있으면 되겠거니 하는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볍게 살자라는 것...

너무 많이 가지지 않고 언제라도 훌쩍

이 미친 세상을 등질 수 있도록

최대한 가볍게 살아가보자는 생각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운반이 남았군...ㅎㅎ

지금 부터 찬찬이 책들을 분산시켜 놓아야 겠다.

그나마 나에게 남은 거의 유일한 사치인 책들을 한꺼번에 옮기기에는 힘도 들고

누군가 도움도 필요하게 될 터이니

나 혼자서 옮길 수 있도록

여기저기 분산시켜 놓아야 겠다....ㅎㅎ)

 

아자...아자...덥지만

여튼 혼자 살아가는 삶이 이제 막 시작이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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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통제...욕망...

브라이언 프롱어의 [무릎을 꿇고서]..中에서...

 

공간을 영토화하는 것은 특히 남성적인 욕망이다.

이것은 공간을 정복하고 보호하려는 욕망이며 공간 지배의 법칙에 따라 관게를 만들려는 욕망이다.

여기서, 존재의 능력(capacity)은 공간을 통제하려는 의지와, 동일한 공간을 침범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둘러싸여 있다.

맹목적 대상이 된 신경 과민한 욕망은 자신의 공간을 통제할 수 있는 한에서만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한다.

공간에 대한 통제력 상실은 남성성의 죽음을 의미한다.

....남성성은 조금은 부차적인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페니스를 지닌 욕망덩어리가 있고 공간적 요청들을 영토화하는 것에 맞추어 그들이 그런 욕망들을 만들어 내고 전파한다는 사실이다.

남성성은 남근이 지닌 정복하는 힘으로 작은 페니스들을 발기시킨다.

이것이 남성성의 핵심이다.

더 커지고,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의 생각............

공간을 통제하려는 의지와 공간을 침범당할 두려움....

 

이 의지와 두려움이 나의 삶의 기저에 흐르는 두가지 흐름일까 ?
 

의지가 주는 즐거움, 흥분, 생성, 활동들

두려움이 주는 조바심, 짜증, 불안, 공포...?

 

그 무엇으로 표현되든지

결국 나의 남성성은

이러한 의지와 두려움으로 나에게 불편함을 준다.

애써 그러지 않으려해도 자꾸만 나의 시선들이 이런 것들에 맞추어져 버리는 것은

여전이 나는 온당하게 남성성에 대한 고민과 그 극복 방식을

몸으로 익히지 않은 탓이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과실제 나의 감정 혹은 몸의 쓰임이 자구 어긋난다는 것...

 나의 정신이 자꾸만

집착 혹은 조바심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것은

내가 차지한 그리고 차지하고픈 공간이라는 나의 영토에서

스스로 군림하려는 자가 되어버린 나의 야만스러움때문이리라....

 

결국 내어 놓음 혹은 누군가를 나의 주거지에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핵심일것 같다는 생각과

나의 이런 무수한 영토화의 작업에서

잠시라도 내려놓음을 실행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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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일까?

마이클 S. 킴멜의 [누가 남성페미니스트를 두려워하는가]  中에서.....

 

남자가 폐미니즘을 지지하는 최선의 방법과 여성 폐미니스트들이 그런 남자를 환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

나는 우리 자신을 폐미니즘의 진보를 돕는 남자들로 보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명예로운 지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혁명의 중심부나 핵심부는 아니지만 우리는 혁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폐미니즘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저항했던 것처럼 그들의 권력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권력을 부여받았다는 잘못된 인식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폐미니즘의 응원자이자 동맹자이며 보병일 수 있다.

우리는 거부에 대한 두려움과 남성성에 대한 우리 자신의 미련과 다른남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면서 다른 남자들 앞에서도 그렇게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성 평등과 젠더 정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이가 누구인가?

여성인가 ? 남성인가 ? 아니면 우리 모두인가 ?

 

..............나의 생각..........

나는 폐미니스트가 될수 있을까 ?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

인본주의니 하면서 사람을 사랑한다느니 어쩌니가 아니라

여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극도의 자기학대가 아니라

진정 즐거운 폐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내 삶에서 폐미니즘이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일 순 없지 않을까?

 

난 나의 남성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내가 집단으로 체득한 남성으로써의 이익을 버리고

당당히 평등과 젠더의 정의를 삶에서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까..?

 

이렇게 불안하고 불편한 인간인 내가 

과연 그런 풍부한 삶의 조건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나에 대한 의심들만 더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나를 못 믿어워하니....^^;;.....

 

결국 삶에 대한 어떤 결단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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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수잔 보르도의 1998년 학위논문에서 인용....

 

페미니스트 인식론적 가치의 핵심은 '공감'이라 할 수 있다.

제임스 힐먼의 설명대로, 사물에 대한 '공감적' 이해는 대상과의 '융합과 결합'을 통해 가능하다.

힐먼은 인식 대상과 융합하고 결합하려면 "내적 움직임이 명료함을 대체하고 내적 친밀함이 객관성을 대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개인적, 직관적 반응을 긍적적인 지적 가치로 인정해야 하고...강제성이나 지나친 심문 없이 [인식 대상의] 의미의 다양성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

결국 명료함, 객관성, 이성적 효율성 등등은 어쩌면 남성적인 혹은 가부장적인 권력의 속성이 포함된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일상에서 이런 명료함, 객관성 등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가부장적인 남성 사회에 속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런 가치들을 아무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행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도 가부장제가 주는 권력의 이익 혹은 속성에 길들여 졌을 뿐 아니라

스스로 적극적으로 재생성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런 남성적 가치를 버리고 공감적인 여성적 가치로 나 스스로를 재구성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것들이 가능은 할 것인가...?

내가 비록 가부장제 혹은 남성성을 버린다고 해도

이런 명료함, 객관성 등등을 버리고 일들을 진행 할 수는 있는 것일까 ...?

 

결국 이런 것들을 버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의 폐단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공감적인 여성의 가치들을 체득하여

스스로 젠더적 가치로 재구성하는 것

즉 여성이 되는 것이 아닌 성적 구별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나의 생각 조차 혹시 남성이 가진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한 자기 변명은 아닌지....^^;;

아직까지는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다.

 

결국 여성적 가치를 체득하고 싶어한다는 것과

남성성을 모두 버려야 하는 성별 기질로는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생각이다.....

 

좀더 고민하고 공부하다보면

조금은 나은 결과들이 있으려나....??

 

누군가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픈 생각은 들지만

아직은 혼자만의 공부에 집중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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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격.....

뤼스 이리가레....[사랑의 길] 中에서....

 

서로의 차이남이 사라짐으로써 서로 다른 존재들이 다가갈 수 있는 모든 가능성뿐 아니라 다가감이라는 의미까지 모두 가로막게 된다......

 

게다가 가까움은 서로 가까이 다가가는 주체들 간의 움직임이 아니라 어떤 대상을 통해 정의된다.

그리고 이 대상은 복구나 재구성을 할때를 제외하고는 현재나 미래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 과거의 것이다.

 

...말을 하면서

타자에게 말을 하면서도 어떻게  타자를 타자로 놓아둘 것인가의 문제

더 나아가 어떻게 타자가 타자로 존재하고 계속 그렇게 남아 있도록 북돋아 줄것인가.

어떻게 타자가 현성(?)할 수 있게 할것이며

그 근본바탕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면서 그 자리로 이끌 것인가...............

 

.......................나의 생각....................

 

결국 [간격]의 문제 일것이다.

차이남을 기반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행위 자체가 바로 사랑이고 관계이며

이 차이가 사라지지 않도록

누군가에게 예속되고 동일시 혹은 동일화 되지 않으려면

결국 서로간의 간격을 어떻게 유지하면서

순수하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행위로서

지속할 것인가는

내가 그와 가지고 있는 간격의 활력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이 메워지지 않는 간격이

한없는 욕구불만이 아니고

차라리 매일매일의 활력이 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상에서 매워지지 않는 간격을 아프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간격때문에 서로에게 행복해지면서도 서로를 북돋아가는 과정으로

삶을 이끄는 방식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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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톰 디그비의 [서문] 중에서

 

초혼의 파경....

그 기간을 보내면서 나는 내가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나의 내면 깊이 뿌리내린 성차별 의식을 보았다.

의도하지 않은 성차별 역시 여성과 남녀 관계에 아주 큰 해악을 끼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성차별이 남성에게도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알게 되었다.

 

비판을 그만두거나 어줍지 않게 포용하려 드는 일반화를 경계하도록 해야....

 

공간을 독차지하기 보다는 그것을 나누는 성찰적인 성애 활동을 통해

남성이 즐겁게 남성성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남성성의 해체가 남성들이 자유롭게 페미니즘을 하도록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의 생각................................................

 

 결국 의도하지 않은 차별 혹은 폭력 또한

정교하게 행사되는 국가폭력과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당사자들간의 개인적 아픔으로 포장되어버리지만

결국 나의...... 우리의 일상에서의 권력과 폭력은

이렇게 남녀관계를 혹은 일상의 다양한 관계들에게 심각한 해악으로 다가올 것이다.

 

결국

나에게서 남성성을 어떻게 즐거우면서도 건강하게 포기할 수 있을지.....

 

조금은 더 고민해보고

몸에 익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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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6月..

30일

마음을 내려 놓았다.

홀가분하다.

또 다른 아품이 기다린데도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린데도

그냥 타박타박 울지 않고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까지는.......다만 모든 이들에게 미안할 뿐.....

 

 

29일

블러그를 만들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

무엇을 바꾸고 싶은 것일까 ?

잘할 수 있을까 ?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나를 위한 걸음이다.

醉行......술에 취해 걸어보자...저기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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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성과 긴밀성에 대하여...

 

...분리성과 긴밀성

 

분리성과 긴밀성은 개인이 아니라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개인의 관계는 분리되어 있을 수 있다.
개인은 분리하는 태도로 친구나 배우자를 대할 수 있다.
분리된 관계와 긴밀한 관계의 차이는 후자는 공동 프로젝트인 반면 전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공동 프로젝트에서 사람들은 '우리'를 구성한다.
이 '우리'는 전적으로 나의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상대방의 것도 아닌 사회적 주체가 된다.
공동 프로젝트는 공유되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프로젝트의 과정과 계획, 목적과 예상 결과에 대한 이해를 공유한다.
반면에 우리가 분리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한 우리는 공통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할 수는 있지만,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버스 안에 있는 많은 승객들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그 승객들 중 일부는 동일한 정거장을 목적지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거기에 가는 것은 각각에게 분리된 프로젝트다.
그들이 같은 정거장에서 내리거나 똑 같은 집의 초인종을 누른다 해도
그들은 놀라서 "우리가 같은 곳에 왔네요"하고 말할 뿐이다.
그들은 거기에 각자 온 것이다.

 

반면에 친구 여러 명이 소풍을 간다고 해보자.
그들은 같은 버스에 타고 있으며 같은 장소로 가고 있다.
그들은 모두 공동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함께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소풍을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우연히 같은 곳으로 가게 된 승객들은 각자 결정한 것이다.
조우도 혼자 결정했고, 메리도 혼자서 결정했다.
같이 소풍을 가고 있는 그룹도 각자 결정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결정한 후 의견을 모아서 결정을 했을 것이다.
그들이 소풍 가는 데 동의했다면, 그들은 소풍을 가기로 '우리'가 결정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일을 분담한다. 특정한 때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는 명확하다.
우리가 결정한 바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일을 분담할 것이다.
그러나 일의 분담은 유동적아며 논의를 통해서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다.
우리는 그저 각자가 맡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눈과 지식과 의견에 신경쓰면서 일을 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개인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공동 프로젝트의 일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공동 프로젝트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내가 결정했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결정한 것이다.
그 결정은 어느 개인이 아니라 함께 결정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 그룹은 '우리'를 형성한다.

  

분리된 행동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것들 모두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당신의 작업과 나의 작업을 한데 묶어서 한 권의 책을 만든다고 해 보자.
우리는 이 책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작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리되어서 작업을 한다.
물론 이런 경우 대부분 공동의 프로젝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제가 무엇인지 어떤 독자를 겨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기획의 일반적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공통된 이해가 있을 것이다.
우리 각각은 우리의 일을 하기 위해 분리된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관해 최소한의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한 명 이상이 어떤 일을 할때 완전히 분리된 채 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이 될 수 있는 대로 분리해서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함께 하는 부분을 최소한으로 하고
 이 일을 혼자서 한 척하기 위해 이 최소치를 무시한다면 그 일은 모두 개개인의 일이 된다.
 

 

나의 생각...........

 

공동의 작업에서

일의 분담을 결정하고 각자 일을 진행하는 것은

진정한 공동작업이 아닌 것 같다.

 

작업의 전 과정에 함께 하는 것

함께하는 이의 눈과 지식, 의견을 배치하여

나의 작업이 아닌 우리의 작업이 되도록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분리되지 않는 시선을 갖는 것

이것이 공동 작업에서의 가장 핵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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