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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레즈비언되기!

 

 레즈비언 노인들을 돕기 위한 자선 파티가 47번가의 China Club에서 열렸다. 차이나 클럽은 90년대 잘 나가던 클럽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그런 모양이다. 3 30분에서 8 30분까지 계획된 이 파티는 미국의 노인 LGBT들을 위한 단체인 SAGE(Services and Advocacy for Gay, Lesbian, Bisexual and Transgender Elders)에서 주관한 것이다. 입장료는 회원은 20$, 비회원은 25$인데, 코트 체크 비용에 음료는 따로 지불해야 한다. 또 복권 당첨 행사도 하였는데, 엉겁결에 10개나 산 나는 하나도 당첨되지 못했다.

 할머니 레즈비언이라니. 예전에서 데미 무어 나오는 레즈비언 옴니버스 영화에서 할머니 레즈비언 관련된 단편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지만 두 할머니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한 명이 죽어버리고, 한 명은 레즈비언 파트너라는 사실 때문에 졸지에 집에서 쫓겨난다는 그때 볼 때는 무지 슬퍼서 눈물이 막 나던 패배주의적인 영화였다- 도대체 현실 속에서 그 모양새가 안 떠올랐다. 만약 내가 늙는다면, 물론 늙겠지만, 그렇다면 나도 할머니 레즈비언이 되는 것일 텐데, 도대체 할머니 레즈비언이라니.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상상이 되지를 않았다.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희망없음의 증거이기도 하다. 앞으로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처럼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빌리지 보이스에서 이 파티에 관한 뉴스를 본 순간 매우 흥미롭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성애자 20대 여성은 과연 할머니가 된 자기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일일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며느리를 구박하고, 손자 손녀를 거느리는 그런 할머니를 과연 상상할까? 나는 과연 어떤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것일까?

 폴카 풍의 음악에 할머니들이 네 줄로 나란히 서서 춤추고 있으면 어쩌는가 하는 나의 걱정과 다르게 스테이지는 80,90년대 히트 넘버의 비트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자원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었지만 스테이즈는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처럼 보이는 아주머니와 나를 포함해서 한 두서너 명의 젊은 아가씨들이 홀을 꽉 채우고 있었다. 모두들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가방을 맡기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이건 정말 믿지 못할 광경이다. 나는 한국에서 단 한번도 40살이 넘은 레즈비언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백 여명에 가까운 아줌마, 할머니 레즈비언들이 정말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싱글인 사람들은 가슴에 빨간 스티커를 붙이고, 서로에게 춤을 청하고, 말 그대로 서로들 부비 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바지에 작업복 티셔츠를 입은 부두 노동자 스타일의 부치 할머니, 긴 머리에 꽃을 꼽고 나온 히피 풍 할머니, 턱시도에 스카프를 멋지게 늘어뜨린 백발의 부치 할머니, 셔츠 깃을 잔뜩 세운 아주머니, 탱크탑을 입고 말 그대로 가슴을 흔드는 중년의 부인, 탱고를 멋들어지게 추는 히스패닉 언니들까지. 정말! 믿지 못할 만큼! 놀라운! 순간!    

 나는 웃음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하기도 하지만 역시나 생긴 데로 살아가게 마련이며 그것은 분명! 언제나!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 홍대에서 주말마다 클럽을 꽉 채우는 한국의 젊은 레즈비언 언니들도 아마 여전히 미국의 할머니들처럼 여전히 춤출 것이다. 어디서 춤출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은 천천히 소멸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의 즐거운 인생은 이어나갈 것이다. 내가 아주 조금밖에 경험하지 못한 한국의 20대 레즈비언 중심의 커뮤니티는 사실 언제나 30대 이후의 삶에 대한 의심을 저버리지 못했다. 혼자 사는 여자는 대출도 못 받는 한국 사회에서 남편이나 애들 없이 중년의 나날들을 상상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어떤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과 관계없이 우리 삶의 방식이 쉽사리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결혼한 레즈비언을 둘러싼 불륜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TG같은 사이트에 넘쳐 나지만, 해즈비언이 되기를 두려워하기 이전에, 나는 우리 종족이 쉽사리 멸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로 했다.

 물론 사는 게 쉽지가 않다. 지금 조명을 한껏 받으며 엉덩이를 흔드는 저 아저씨 부치는 너무나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안다. 미국 사회에서 아저씨 부치로 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다양한 인종들로 넘쳐나는 이 도시만큼 까탈스럽고 못돼먹은 도시도 없을 뿐 더러, 더욱이 나이든 아저씨 부치에게 많은 백인, 흑인, 히스패닉 등등의 남자들이 예의를 갖추지 않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살아가서 중년이 되고, 할머니가 된다. 레즈비언인 채로 말이다.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말이다, 모두가 남자와 결혼해 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말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데는 당연히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다. SAGE같은 단체들은 말 그대로 지역 사회를 조직하고, 혼자 늙어가는 레즈비언, 게이 노인들에게 일종의 부양 서비스를 제공한다.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바로 여기서부터 온다.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동성애자가 혼자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적들의 목적이라면, 우리는 혼자되지 않음으로써 이 싸움을 해나가야 한다. 한국의 수많은 레즈비언 아줌마, 할머니들이 춤추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혼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서 혼자 쓸쓸히 죽어 갈까 봐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서 레즈비언들이 보통의 동네 아줌마들처럼 계도 조직하고, 보험도 들고, 관광도 다니면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바로 나의 상정된 불행한 미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에게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찾아내고, 모이고, 서로를 돕는 것. 나는 아직도 과연 어떻게 레즈비언 친구들을 만들 수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아주 천천히 혼자 늙어가고 혼자 죽어가지 않을 방법을 찾아나갈 예정이다. 적어도 내 결혼식에 사람들로부터 부조는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장례식은 단단히 한 몫 챙기고야 말겠다. 그것이 지금 나의 소망이다.

 나의 춤 솜씨는 할머니들만도 못할 만큼 매우 형편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말이다. 춤은 계속되어야 한다.

 

*SAGE (Services and Advocacy for Gay, Lesbian and Transgender Elders)

 

 미국에서 동생애자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단체이며 뉴욕을 거점으로 한다. 50세 이상의 동성애자 노인들에게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친목 도모, 가계 보조, 의료 서비스, 음식 지원, 법적 조언 등의 도움을 제공한다.  가정 방문을 통한 돌봄 및 상담 서비스 역시 제공하고 있으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나 불안과 관련된 상담도 한다. 특히나 동성애자로서 의료 서비스에서 차별을 당하거나 에이즈로 인한 지원이 필요한 경우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동성애자 노인들이 노년기를 편안하고 존중 받으면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동성애자 노인들에 대한 국가적인 인식을 바꾸는 데에 노력하고 있다.

 

주소; 305 seventh Avenue, 16th floor, New York, NY 10001.

전화; 212-741-2247

팩스; 212-366-1947

웹사이트; www.sageusa.org, infor@sageu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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