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전략조직화와 대리주의, 산별지향이 만들어낸 실천지형

겨울철쭉님의 [반성, 전략조직화에 대한, 어쩌면 다소 더 근본적인] 에 관련된 글.

6월11일날 구로1단지 사거리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 남부지구협, 금속노조, IT산업노조가 함께하는 전략조직화 선전전에 결합하였었습니다. 다른 조직이 또 있었고 6~7명의 분들이 참여하셨던 거 같습니다.

뒤풀이 식사자리에서 당일 조직대상으로 하는 IT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야근에 대한 문제의식"이 빠져있다. 다른 내용으로 들어가 있다라고 지적하였었습니다.

또한 당일 선전지에서 나와있던 내용을 짚으며 '민주노총에 가입하라는 내용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스스로 종사자들이 조직화하겠다면 민주노총이 돕겠다'라는 문구가 잘 나왔다.라고 말하였었습니다.

겨울철쯕님이 그날 그자리에 동석하셨는지, 어느분이셨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원 글에서 말하는 부분, '전략조직화'에 대한 문제의식, '산별지향이 만들어낸 실천지형'의 문제점에 공감합니다.

2.
겨울철쭉님의 글은
 전략조직화는 대리주의에 함몰된 사업방식이다.라는 대단히 정확한 지적에 선 상근 실천가의 문제의식입니다.

 조직을 하기 위해서는 조직자의 관점이 아니라 조직된 조직노동자의 관점이 아니라 예비조합원의 관점에 서는 것이 출발점이어야합니다.
 예비조합원의 근저에 깔린 의식, 어떤 의식이 지배하고 있는가, 예비조합원의 의식흐름을 이해해야합니다.
 사회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사회생활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사람은 '단체'에 대한 인식이 평이합니다. 교회나 회사가 '단체'의 일상적인 모습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형태의 모습은 이해할 수가 없더라입니다.

무언가를 자신들의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이 모여 집단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형태가 '자신들의 단체'일 수 있으리라는 인식이 형성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입니다.

따라서 그 지점을 타격하고!, 예비조합원으로 하여금 체득하는 방식으로서의 접근! 그것을 잡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http://blog.jinbo.net/rudnf/?pid=128

반성, 전략조직화에 대한, 어쩌면 다소 더 근본적인
2007년 06월 17일 22:57

또 몇개의 비정규조직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또 몇명의 조합원이 탈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며칠만에 다시 불면증이 찾아와서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불과 얼마전까지 내가 직접 담당해왔거나 총괄해왔던 사업장들이다.
.
.
.
더구나 이것들은 일종의..데자뷰, 어쩌면 나에게 진정한 문제는 그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던 문제들이었다는 점..
그러나 답을 알지 못하는.
.
.
.
그래서, 무엇이 문제였을까?
투쟁의 전망?, 어떤 조합원의 말처럼 노조가 해준것이 없어서?
혹은 또 다른 무엇?
무엇보다.. 그것은 대리주의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비정규직노동자를 조직하면서, 그들 스스로의 투쟁이 아니라 마치 노조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그렇기 때문에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라고 권유해왔던 경로말이다.

'전략조직화' 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특히 공공부문에서는 사업장 외부에서 조직화 사업을 (산별노조에 가입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했던 것이 최근의 과정이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조직화 경로에 대한 분석에 입각한 것이었다. 공공서비스부문에 있어서는 외부접근의 용이함, 외부적인 사용자에 대한 압박의 필요성-효율성 등에 주목하면서 외부에서 활동가에 의한 현장 조직화 전략을 채택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드러나는 것은.. 사업장 외부로부터의 조직화가 갖는 한계, 대리주의의 한계.

무엇보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한다는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측면이 전략조직화,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점차 약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략조직화사업의 경우에, 노조로의 조직화를 우선하다보니, 일단 노조에 가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에게는 경향적으로 노조에 가입하면 해결된다는 식의, 말하자면 '대리주의'가 발동한다. (물론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복귀한다.)

또 한편으로 산별노조라는 것은 어떤가. 우리는 산별적인 운영이라는 것을.. 마치 단위사업장의 문제를 산별집행부(그것이 지역본부든 업종본부든 노조 중앙이든)에서 해결해주는 것이라는 방식으로 생각했다. 산별노조의 의미라는 것이 관료기구(의 담당자)가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그것은 사업장을 넘어서는 연대와 단결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정작 실제 투쟁에서는 사업장의 투쟁을 대리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또 사실, 눈에 보이는 어려운 사업장에 대해서 활동가가 할 수 있는게 또 무엇이 있겠는가? 방치? 그럴 수는 없는 것도 우리가 처한 솔직한 조건이다.)

산별노조에 대해서, 우리가 주장해왔던 것을 현장에서는, 실천으로 부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에 처한 활동가의 선의와, 책임감에 대해서 어떻게 비난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가입의 조건─결의와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대안인가.. 나는 그것이 필수적으로 강조되어야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전 조건인 그것으로 미래의 일을 담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노조(혹은 그것이 아닌 어떤 조직형태라도)로 단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고 확장되어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주체적인 결의.. 분노를 조직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한다. 어떠어떠한 문제를 노조에 가입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방식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공동의 분노로 단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
  
다만, 한두명씩 흩어져있는 노동자들의 경우에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여전이 어려운 점이 있다.(학 교비정규직이나 보육노동자들이나..) 이런 작업장 조건에 있어서는 집단적 단결을 통한 자발적 투쟁이라는 모델은 별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업장 안에서 개별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을 집단적으로 해결하고자하는 요구가 발전한다. 이런 경우에는 오래된 모델이라고 하더라도, 어쩌면 그것이 지역적 단결을 당장은 지연시키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직업별노조 형태를 취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문제는, 결국 노동자들, 주체들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특히, 활동가들의 대리주의가 발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형성되기 때문에 더욱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자들이 가장 용이하게 단결할 수 있는 최적의 형태, 그러나 대리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단결하고 투쟁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혹은 우리가 희망의 끈을 여전히 잡고 있는 노조가 그러한 것으로 전화되도록, 대안을 만들어내고 조직할 수 있을까..

문제들에는 어쩌면 답이 없거나, 내가 답하고 행동할 수 없다는 것.. 그러한 것 전체가 문제다.
[강조는 인용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