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우삼이 만든다고 했을 때 부터 격렬하게 의심했어야 했다.
하지만 소재가 삼국진데, 어떡하란 말인가.
어쨌든 예상대로 실망만 잔뜩 하고 이 글을 쓰고 자빠져 있는 중이다.
1. 과도한 각색
물론 내가 지금까지 섭렵한 삼국지가 진수가 쓴 정사와 다소 거리가 먼, 주로 삼국지 연의에 기초한 것들이라 무엇이 진짜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는 나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1) 뜬금없이 장판파 전투에 등장한 관우
원래 관우는 백성들을 이끌고 퇴각하는 유비 일당 보다 앞서 강하의 유기에게 구원요청을 하러 간 상태라 이 유명한 전장에서는 그의 무공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오우삼은 과감하게 관우를 기용한다. 무엇보다도 삼국지 하면, 유비-관우-장비의 트리오를 연상케 되므로, 영화 흥행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2) 장판교에서의 장비의 활약상은 어디로
삼국지가 매력적인 이유는 영웅적 인물들의 신비로운 면모들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삼국지는 동양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관운장이나 제갈공명 등을 신으로 모시는 제단이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 신화 속 영웅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장비이고, 그의 신화적 영웅성이 완연하게 만개하는 대목이 바로 장판교에서의 일기토일 진대, 오우삼은 그 장면을 삭제해버렸다. 장비는 5천도 안 되는 잔여병력을 모아서 장판교 뒷 편의 숲 속에 숨겨놓은 다음, 병사들의 무기에 장식을 해서 무척 많은 병력이 매복해 있는 것처럼 위장한다. 몇 십만을 이끌고 유비군을 초토화시키려고 추격한 조조군은 장판교 반대편에 홀로 말 타고 있는 장비를 마주하고 멈칫한다. 두 명의 장수가 장비와 대적하기 위해 장판교를 건너오지만, 장비의 추상과 같은 함성으로 인해 다리를 채 건너오지도 못하고 심장마비 따위로 물에 빠져 죽었다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조조는 100리(주로 내가 읽은 소설에서 한 부대가 전군퇴각을 하면, 주로 100리 씩 달아나는데)를 달아났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짓밟혀 죽는다. 어쨌든 장비는 조조가 도망가는 꼴을 보고 좋아하면서 다리를 부수는데, 망가진 다리를 보고 조조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후에 장비는 장판교를 부순 일로 공명에게서 사소한 야단을 맞는다.
3) 적벽대전은 위나라와 오나라의 대접전
이지 결코 유비군이 이 전투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지 않다. 물론 공명의 활약으로 오나라가 참전하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유비, 관우, 장비가 전투에 참전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후에 연환계에 속고 화공에 대패한 조조군의 잔여병력을 매복하고 있다가 뒤에서 쳐서 약간의 공적을 올렸을 따름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주는 장면을 어떻게 영상화할 것인지 심히 걱정스러우나,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고, 단지 분노가 뱃속에서부터 치밀 따름이다.
4) 손권은 나약하지 않았다.
그의 인물상을 묘사한 장면은 지극히 신비롭다. 눈은 파랗고, 수염은 붉은 강동 호랑이족의 차남 손권. 하지만 영화 속 손권은 아버지와 형님의 그늘에 갇혀 어쩔 줄 몰라하는 하룻강아지로 묘사된다. 오나라의 손씨 가문을 특히 좋아하는 삼국지 팬들이 타오르는 분노에 어쩔 줄 몰라할 대목임에 틀림없다.
5) 오나라의 중신들은 모지리들이 아니었다.
주전파와 투항파의 대결양상으로 그려지는 공명의 세 치 혀 대목도 다소 실망스럽다. 물론 공명에 도전하였다가 떡실신 당하는, 영웅도가 낮은 신하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장소, 장굉을 비롯한 쟁쟁한 문인들이 오나라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들이 본디 주장한 바는, 첫째 헌제의 승인 하에 승상으로 취임한(물론 조조의 전횡으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조조, 그래서 헌제의 군대로서 출정한 한나라군과 굳이 격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고, 둘째, 직접적으로 대치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평화적인 해결방법이 있다는 것이었으며, 셋째, 그 내용은 주로 승상으로서의 조조의 권위를 인정하여 주자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볼 때 어느 정도 그 당시 약소세력이 생존할 수 있는 수단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지속할 수만 있다면 불의하고, 타락적인 선택은 아닌 것이다. 반대로 주유, 황개를 비롯한 주전파는 겉으로는 한나라의 역적 조조에 대항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볼 때 그 속내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변방의 중급 세력으로 묻혀왔던 자신들의 존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주유, 그는 누구인가! 물론 그가 승전욕에 미쳐버린 모지리는 아니지만, 천하의 하나 밖에 없는 천재로 자타의 공인을 받아온 그는 조조가 걸어오는 일생일대의 대전을 회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만큼 자신이 일인자라는 사실을 입증할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 인간적인 욕망으로 가득찬 주유의 모습만큼 매력적인 것이 또 있겠는가. 그가 아, 왜 하늘은 주유를 낳고, 동시에 제갈량을 존재하게 하였단 말인가, 하며 절규할 때, 어찌 이 찌질하지 않고 위대하였던 살리에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6) 주유는 맹장이 아닌 지장
영화에서 주유가 조운을 구한다. 어이쿠.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본 지 꽤 지나서 가물가물하지만, 내 기억에 양조위(주유 역)는 공중제비인가, 회오리 격법인가로 조운을 해하려는 적장을 제거한다. 이미 포위한 적들을 굳이 장군 한 명 한 명이 일일이 투입되어 무리한 전투를 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살상욕에 미쳐서 홀홀단신으로 적들에게 매달리는 주유의 꼴도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
7) 장판파 전투로 돌아와서
이 영화가 정말 어처구니 없는 것은 장군들이, 그것도 말도 안 타고, 지 혼자서 적진으로 뛰어 들어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쌈박질을 마다하지 않는 일인데, 최초 관우의 등장씬은 아마도 관우가 조조군에 나포되었을 때, 유비가 누군가의 휘하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조로부터 하사받은 적토마를 타고 달아나는 과정에서 이를 추격한 조조가 그와 다시 만난 장면을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조조는 관우를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선물을 그에게 전달하는데, 관우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승상이 하사하는 선물을 자신의 청룡언월도로 받아간다. 조조의 부하장수들이 이에 격분하지만, 조조는 대범한 태도를 취하며 부하장수들을 달래길, 관우의 저 태도는 한 명의 장수로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조조는 자신의 눈 앞에 청룡언월도를 날린 관우를 고스란히 살려보내주면서, 이에 격분하는 부하장수들에게 관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다면 진즉 그리 하였을 것이라고 답한다. 영화에서 이 장면을 보면, 관우와 조조는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묘사된다. 더군다나 관우와 상당한 친분을 교류하고 있었던 장요가 관우를 향해서 무례하게 질타하는 대목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것들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걸 기억하기 위해 이 영화를 다시 볼 마음은 없다. 어쨌든,
2. 전투장면 묘사의 미숙함?
내 생각에 언월도나 장팔사모와 같은 무기들의 용도는 적을 찌르는데 있다기 보다 주로 베는 데 있지 않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적병들에게 둘러싸인 한 명의 뛰어난 장수가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면, 한 명씩 일일이 찌르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적을 동시에, 한 방으로 베어서 없애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베는 장면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찌르기에 치중되어 있으며, 무기를 휘두른다고 하더라도 주로 치명상을 주는 방식이 아닌 어느 정도 강력한 타격을 주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재차 던지고 자빠져 있는데, 왜 그러는가. 장비는 자신의 사랑스런 무기인 장팔사모를 어따가 버려놓고선 럭비선수마냥 온 몸으로 적들을 밀치고 자빠져 있다. 심지어 그는 말과 충돌해서 말 두 마리를 동시에 떡실신시키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장비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한 방에 말 위에 올라있는 적장을 한 합 만에 베어버리는 신화적 영웅이다. 영화 초반 대부분의 전투는 조운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데, 조운이 적병들 몇 명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부상이나 입을 모자란 놈이란 말인가. 그것도 찌르기만 하다가 말이다.
내 생각에 오우삼은 삼국지를 제대로 읽지 않았던가, 삼국지를 읽으면서 영웅본색을 떠올렸음에 틀림없다. 일리아드를 읽으면서 007을 떠올린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예술가들의 광기는 그 출처와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젠장.
3. 신화적 묘사들의 삭제
삼국지를 읽으면서 영웅본색을 떠올렸으니, 더 이상 신화적 장면들이 중요하지 않은 법이다. 제갈량과 주유가 거문곤가 가야금인가를 연주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 그 위대하고 매력적인, 천재들의 대화를 그토록 코믹하게 묘사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시의 천재들은 모두 르네상스맨들이었다. 온갖 병법과 고문서에 통달하였으며, 사상적 깊이와 폭도 자유자재로 심원하고 광대하였으며, 특히 모두들 예술적 재능으로 똘똘 뭉친, 특히 음악적 재능이 화려하였던 인물들이었다. 거기에다가 어느 정도의 무예를 겸비한 인물이 바로 주유. 천재들의 연주라 천재가 아닌 나에겐 그저 코믹하게 여겨진 것 뿐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두 천재의 음악적 대화를 일반인이 납득할 수 있도록 묘사하는 작업이 바로 오우삼이 해야했던 일이다. 그는 이 일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오우삼의 이 설익은 묘사에 열광하고나 있지 않을까.
처음 영화를 막 보고 나서는 하 서너개 정도 더 이야기할 꺼리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 까먹었다. 그건 아마도 놈놈놈과 다크 나이트에 대한 열망 때문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