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시 친구들이랑 이대에 가서 봤는데 우려와 달리 아무 일도 없더라는... (우리학교에서 왜 못봤는지는 기억이 안 남) 한참뒤에 대학로에서 하는 안치환 콘서트에 간 적이 있는데, 당시 "내가 만일"과 "소금인형"으로 한창 대중적(?) 인기를 얻던 중이었고 관객층도 무진장 다양했었는데.. 앵콜 요청에 가장 부르고 싶은 노래라며 "철의 노동자" 부르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노래할 때 침 무진장 튀더이다 ㅜ.ㅜ)
무려 15년전이고 그때도 즐겨 부르지 않았었는데, 지금 가사를 읽어보니 입속에서 곡조를 흥얼흥얼하게 되네요. 맞는진 모르겠지만. ^^;
90년 <혁명의 투혼>은 지금도 가끔 집회나 문화공연 같은 데서 나오는데, 이 노래는 당시 이후론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왜 그럴까? <혁명의 투혼>도 가사는 관념적이다 못해 섬찟한데... ㅋㅋ
"노힘 영향력 하에 있다는 평판 때문에 정치적 견해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 한계로 많이 작용했나보다"는 좀 잘못된 판단같습니다. 모든 좌파 연구소라는게 사실 나름의 정치적 조류에 따라 목적성을 갖고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게 어찌 한계가 되겠습니까. 연구소를 '연구'소답게 운영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얼마나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정세판단을 잘 할 수 있는 건강함을 계속 갖고 있을 수 있느냐가 문제겠죠. 제가 보기엔 그냥 원래 노힘 내부에 예전에 갈라졌던 정치적 입장이 갈등으로 갈라져 시기적 적합성을 다해 해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노힘의 씽크탱크 역할을 이제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진보전략포럼이 하겠죠. 지금껏 항상 내부에서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 연구소들은 해산되곤 했습니다. 그게 연구소의 생리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