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렛

# 1

현재 근무하는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유일한' 사회 선생이며, 여타 공고에서처럼 사회 과목이 입시와 상관없는 '기타' 과목이라는 사실이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내 마음'대로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사회'라는 교과서 속에 들어 있는 10개의 단원 중 3개의 단원을 집중적으로 하고 나머지 단원에 대해서는 진도만 '빼고' 있다. 특히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단원은 '경제'와 관련된 것이다. 나는 수업을 할 때 나의 노력 및 능력 부족과 학생들의 동기 유발을 위해 뉴스나 동영상 자료를 많이 이용하는 편인데, 예를 들자면 비로 인해 농수산물 물가가 상승한 것과 관련한 뉴스 영상을 통해 물가와 인플레이션의 개념 등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번주의 수업 주제는 '무역'인데 마침 페루와 FTA가 체결 되면서 좋은 학습 자료가 생겨버렸다.  문제는 무역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페어트레이드'를 함께 다루고 싶어 2009년에 방송한 커피 관련 뉴스 후 편집 영상과 지식채널e의 커피 한잔 이라는 동영상을 이용해 주의를 환기하고 페어트레이드에 대해 소개하려 했는데, 영상만 보고 아이들이 누워버린다. '이거 책에 없는 거잖아요.'라는 말만 남기고. 에휴. 너희들 피곤한 것이야 알지만 교과서 속 세상이 전부도 진리도 아니란다.

# 2

곤파스로 인해 학교도 피해가 크다. 우선 가건물이었던 급식실 지붕이 날라가버렸고 정원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혔다. 무엇보다 문제는 전기가 나가버렸다는 것인데 발빠른 대처로 우선 컴퓨터 연결은 되었지만 냉장고와 정수기 전원이 여전히 들어오지 않고 있다. 때문에 나의 하루 일과를 망쳐버렸다. 나는 출근을 하면 자리에 앉기 전에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들고 컴퓨터 전원을 켜고 어제 퇴근 후 들어온 업무 연락 메세지를 확인한 후 인터넷에서 주요 뉴스들을 검색한다. 그런데 오늘은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런이런. 아침부터 물이 나오는 교무실을 찾아 머그컵을 들고 전전하고 있다. 그런데 오전에는 대부분의 교무실에서 정수기가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이게 뭐람. 점심식사 후에 겨우겨우 7층에 있는 교무실에 물이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득달같이 달려가 물을 떠서 나오면서 문득 내가 마약 중독자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책에선가 커피의 각성 효과가 '항상 깨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현대인들의 생각과 맞아들어 점점 커피에 빠져들게 되는 거라는 내용을 읽은 적도 있다만(차는 휴식의 의미를 줘서 현대인들에게 맞지 않다나..) 지금 나의 상태는 각성도 휴식도 아니라 중독의 상태이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종일 몽롱한 상태에서 보내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좀비처럼 물을 구하러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참 나도 불쌍한 사람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