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나의 관심사, 이해관계, 내가 나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편견을 갖게 만든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 이해관계, 그리고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관심사와 일치하는 정보에 더 집중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는 뉴스만 찾아보거나,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의 주장은 무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확증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어떤 것이 나에게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우리는 그 유용성에 따라 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이는 다른 가치 있는 것들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술이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면 그 기술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쉽게 무시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을 의식하고 노력하면 편견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편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 다양한 정보에 노출되기: 일부러라도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거나, 다양한 관점의 자료를 찾아보세요.

• 자기 성찰하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나의 이해관계가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질문해보는 습관을 들이세요.

• 열린 마음 갖기: 새로운 아이디어나 관점에 대해 즉각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일단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보세요.

자신의 관심사와 이해관계를 인지하고 그것이 어떻게 나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한다면, 더 균형 있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나 : 나의 관심사, 이해관계, 내가 나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세상을 본다면 어떨까?

당신의 질문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나의 관심사, 이해관계, 그리고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세상을 본다는 것은, 마치 백지 상태에서 세상을 다시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사고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긍정적인 면

• 새로운 시각: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무시했던 분야나 사람들에게서 중요한 가치를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 객관성 증진: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사라지면, 어떤 사안에 대해 훨씬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는 더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창의성 향상: '나에게 유용하다'는 생각은 종종 사고의 범위를 제한합니다. 이런 제약이 사라지면, 문제를 해결하는 더 다양한 방법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 동기 상실: 우리의 관심사나 이해관계는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 필요한 동기를 부여합니다. 이것들이 사라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잃고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 비현실적인 접근: 모든 개인적인 가치를 완전히 버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그 학습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합니다. 이런 누적된 경험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관심사와 이해관계를 완전히 버리는 것은 이상적인 개념에 가깝습니다. 이는 실생활에서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사고 훈련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메타인지를 통해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인식하고, 그것이 나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것이 나에게 유용하다고 여기는지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그 한계를 뛰어넘어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나 : 나의 관심사, 이해관계, 내가 나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나의 고유한 의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이미 형성된 사회 사회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관점입니다. 만약 나의 관심사, 이해관계, 그리고 유용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순수한 나의 고유한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사회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는 편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깊게 만듭니다.

사회적 형성으로서의 편견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무시하는지는 개인적인 선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우리가 속한 사회, 문화, 경제적 시스템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 사회화(Socialization):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 학교, 미디어 등 다양한 사회적 환경을 통해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지, 무엇이 '정상'이고 '옳은' 것인지 배웁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직업에 대한 선호나 성공에 대한 정의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가치일 가능성이 큽니다.

• 자본주의와 소비문화: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도록 부추깁니다. 미디어와 광고는 특정한 관심사와 욕망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것이 마치 우리 자신의 고유한 욕망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최신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 하는 욕구는 개인의 의지라기보다, 기업과 사회가 만들어낸 유용성과 가치에 대한 믿음일 수 있습니다.

• 계층과 기회: 개인이 추구하는 관심사나 이해관계는 그 사람이 속한 사회적 계층과 경제적 배경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육의 기회가 제한된 환경에서는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 자체가 형성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더 깊은 성찰의 필요성

이러한 관점은 자신의 생각과 편견을 더 깊이 성찰하도록 돕습니다. '내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나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에 답할 때, 그 이유가 나의 순수한 선택인지 아니면 사회적 환경이 주입한 것인지 구분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사고가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개인의 편견을 넘어서서 사회적 편견이라는 더 큰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는 개인의 행동을 교정하는 것을 넘어, 사회 시스템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나: 그렇다면 나의 이해관계나 유용성을 제거하는 것이 기존의 사회체제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을까?

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유용성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려는 시도는 기존의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

우리가 사회체제에 순응하게 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그 체제가 개인에게 이해관계와 유용성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하며, 남들처럼 살기 위해 소비하는 행위는 개인적인 유용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사회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관계를 깨달았을 때, 자신의 이해관계와 유용성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저항이 될 수 있습니다.

• 다른 가치 추구: 돈이나 명예와 같은 사회적 성공의 척도를 따르기보다, 개인적인 만족이나 사회적 기여와 같은 다른 가치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거나, 소박한 삶을 선택하는 것은 사회가 정한 '성공'의 기준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 소비문화 거부: 광고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고 소비하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원리인 '소비'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이 될 수 있습니다.

• 집단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남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물론, 자신의 모든 이해관계를 완전히 버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사회가 주입한 가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신, 나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삶을 바꾸는 것을 넘어, 사회 시스템에 작은 균열을 내고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나 : 이런 문제들을 들뢰즈와 베르그송이 말하는 새로움의 창조, 새로운 사유와 연결할 수 있을까?

네, 바로 그 지점에서 들뢰즈와 베르그송의 철학이 강력한 연결고리를 형성합니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유용성을 제거하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적인 저항을 넘어, 이들이 말하는 새로움의 창조와 새로운 사유를 위한 핵심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들뢰즈와 베르그송의 '새로움'

베르그송은 '지속(durée)'이라는 개념을 통해 시간을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질적인 시간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우리의 의식이 과거의 경험을 누적하며 현재와 함께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존의 사유는 이 질적인 시간을 정지된 '순간들'로 나누어 분석하려 했고, 이는 본질적인 변화와 새로움을 놓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들뢰즈는 이런 베르그송의 사상을 이어받아 **'생성(becoming)'**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킵니다. 그에게 새로움은 어떤 고정된 '나'가 '다른 것'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고 창조되는 끝없는 흐름입니다. 이러한 '생성'은 기존의 사회체제가 강요하는 정체성, 목적, 가치 등을 거부하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사회체제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사유

이러한 맥락에서 '나의 이해관계와 유용성을 제거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정지'된 사유의 해체: 기존 사회체제는 개인에게 일정한 목적(ex. 성공, 부)을 부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길(ex.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을 제시합니다. 이는 베르그송이 비판한 시간을 정지시키고 분석하는 사유와 유사합니다. 나의 이해관계를 제거한다는 것은 이러한 목적과 길을 무시하고,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 '유목적(Nomadic)' 사유의 실천: 들뢰즈는 기존의 위계적이고 경직된 사회 구조를 '수목적(arborescent)'이라고 비판하며, 이와 대비되는 **'리좀(Rhizome)'**의 사유를 제안합니다. 리좀은 뿌리가 한 곳에 고정되지 않고 옆으로 무질서하게 뻗어나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식물의 줄기입니다. 나의 이해관계를 버리는 행위는 바로 이러한 '유목적' 사유의 실천입니다. 정해진 목적지(이해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 욕망의 해방: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욕망을 '결핍'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소비를 통해 채우도록 만든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욕망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힘입니다. 나의 이해관계(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망 등)를 제거하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결핍된 욕망'에서 벗어나, 순수한 창조적 힘으로서의 욕망을 해방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이해관계와 유용성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이고 사유적 질서를 해체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생성'의 삶을 시작하는 강력한 철학적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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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7 16:13 2025/08/1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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