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네

일상 2026/08/07 15:29
그제 푸쉬킨의 시집과 예이츠 시집과 김남주 시인이 번역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샀다.
하이네의 거친 시를 읽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언젠가 하이네의 시집을 샀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알라딘에서 확인해보니 이전에 구매한 상품이라는 안내 문구가 뜬다. (알라딘이 좋은 점)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도 세 번째다. 20대에 처음 샀고, 그걸 아마 어떤 후배에게 주었고, 40대 초에 다시 샀는데, 역시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어 결국 또 다시 샀다.
에버노트를 뒤적이다 몇 년 전에 쓴 이 글을 찾았다.

밤부터 하루 종일 비가 온다.
늦가을 늦은 장마처럼 비가 온다.
이런 날은 편한 사람과 삼겹살을 구워 소주라도 마시면 좋을 것 같다.
넓은 창문이 있고 창 밖은 넓은 들판에 아무 풀들이 파랗게 비에 젖어 있고 군데군데 소나무도 몇 그루 서 있고, 소나무들 사이에 제법 큰 바위도 몇 개 있는 그런 들판이면 좋겠다.
이런 곳에 삼겹살을 굽는 술집이 있을 리 없다. 이런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다.
혼자 삼겹살을 굽는 술집에 갈 수는 없고 만만한 박선생님에게 연락을 할까 하다 그만 두었다.

지난달 박선생님과 손님들이 바글바글한 술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하이네 이야기가 나왔다. 50 넘은 남자 둘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떻게 지난 시절 이야기로 흘렀다.
지금 시대는 이전에 비해 없는 게 몇 가지 있다. 그때 대충 이런 이야기를 나눈 듯하다.

나 : 선생님 그런 게 뭐 있을까?
박 : 글쎄 뭐 있을까?
나 : 삼중당 같은 문고판이 없는 것 같아요.
박 : 아 그렇지요.
나 : 옛날에는 학교 가면서 카세트 테잎으로 자주 시낭송을 들었는데, 혹시 기억나십니까?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박 : 거 뭐라 그럽니까? 노트 받침을 비닐로 코팅하는 거?
나 : 아 그게 뭔지 이름은 모르겠는데 목마와 숙녀 그림이 있는 걸 비닐로 코팅해서 가지고 다니고 했지요.
박 : 옛날에는 손바닥 만한 시집도 있어요. 주먹만큼 두껍고.
나 : 맞아요. 그거 주머니에 넣고 다나면서 읽고 했는데. 세계 시선인지, 세계 시집인지.
박 : 기억나는 시가 있습니까?
나 : 하이네 시가 기억이 납니다. "너는 마치 한 떨기 꽃과 같이 그렇게도 아름답구나" 뭐 이런 시였는데.
박 : 아 그거 나도 기억나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였는데.
나 : 요즘은 시를 좀 읽습니까?
박 : 안 읽습니다. 씁니다.
나 : 이야, 무슨 십니까?
박 : 두보의 시를 씁니다. 붓으로. "야래풍우성 화락지다소"
나 : 그 시는 두보가 아닌 듯합니다.
박 : 맞습니다. 맹호연의 십니다.
나 : 그거 한 장 쓰시면 제게 주세요. 책상 위에 붙여 두겠습니다.
박 : 알겠습니다.

그때도 비가 좀 온 것 같다. 나는 하이네를 19~20세기 시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우기다 구글에서 찾아보니 하이네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반 시인이었다.
박선생님과 술 마신 다음날 알라딘에서 하이네 시집을 샀다. 내가 알고 있는 제목을 알 수 없는 그 시는 없었다. 오래 전  쓴 시가 있는데 아마  하이네의 그 시를 생각하면서 썼는지도 모르겠다.


어젯밤 꿈에
표정도 없는 얼굴 하나가
내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렸다

이 시는 미완이다. 더 썼을 텐데 남아 있지 않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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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7 15:29 2026/08/07 15:29

읽고 쓰는 일

일상 2026/07/26 04:54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도 생계를 위한 노동이 되면 좀 달라진다.
나는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 공부를 잘 하는 것과 또 좋아하는 건 많이 다르다. 그래도 공부한 댓가로 먹고 살고 있고 썩 잘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견디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에게 공부는 읽고 쓰는 일이다.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일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읽는 건 재미있고 즐겁지만 쓰는 일은 힘들고 고역이다. 읽고 잘 쓸 수 있어야 연구자로서 직업을 유지하고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 읽는 게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에 자주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생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나는 아마 곧 그런 상황에 처할 공산이 크다.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물론 읽으면서 최소한의 정리를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냥 읽는 재미에 빠져 읽기만 하면 막상 글을 써야 할 순간이 되었을 때 앞서 읽은 것들이 글을 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읽은 것들이 다 나의 지식이 되고 자양분이 되었겠지만 논문은 글을 지어내는 식으로는 쓸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논문의 주제와 관련된 것들을 다시 읽고, 정리하고, 메모한 글들을 끄집어내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사태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공부는 읽고 쓰는 일이라는 걸 자주 잊는다.

칸트는 숭고와 관련하여 상상력의 두 가지 작용을 이야기하는데, 상상력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대상을 순차적으로 포착하고 포착한 부분들을 하나의 통일적 단위로 총괄하는 능력이다. 어떤 것을 본다는 것은 상상력이 순간적이든 연속적이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상을 파악하여 그 대상을 다른 대상과 구분되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상상력은 순차적으로 포착하고 총괄할 수 없는 대상과 직면했을 때 좌절한다. 칸트는 이걸 상상력의 무능력이라고 부르고 상상력은 숭고의 대상과 마주할 때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고 좌절한다.

“포착은 무한히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총괄은 포착이 진행되면 될수록 더욱더 곤란해져서, 곧 그 최대 한도에 도달한다. (...) 왜냐하면 포착이 최초에 포착된 감각적 직관의 부분 표상들이 상상력 안에서 이미 소멸하기 시작하는 데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이 계속 포착을 진행하면, 상상력은 한편에서는 얻는 것만큼 또 한편으로는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괄에는 상상력이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최대가 있는 것이다.”

상상력의 두 작용인 포착과 총괄은 다른 기능이다. 대상을 포착할 때는 무한히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총괄은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한다. 대상을 포착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이전에 포착한 부분들을 잊어버려 대상을 하나의 통일적 단위로 종합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는 것이다. 마치 공부는 무한하게 계속할 수 있지만 공부를 계속할 수록 앞서 공부한 것들을 점점 잊어버려 하나의 주제로 종합할 수 없는 사태를 맞게 되는 것과 같다.

연구자에게 공부가 노동인 이상 어느 순간 멈추고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고 총괄하여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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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6 04:54 2026/07/26 04:54

 

먼저 말하자면 나는 삼성전자초기업노동조합을 지지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자신의 이익이 곧 보편적 이익이라는 생각을 갖기는 어렵다. 노동운동이 사라진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개별 이익집단의 아귀다툼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나는 저 노동조합을 지지하지 않지만 삼성초기업노동조합을 비판이 아니라 혐오하고 비난하는 자들에 대해 똑같이 비난하고 조롱해주었다. 월급쟁이 노동자가 분명할 텐데 노동조합을 없애야 한다는 둥, 파업하면 노동자들을 다 해고해야 한다는 둥 헛소리를 너무 많이 접했다.

한국에는 노동운동이 죽었다. 민주노총부터 노동조합 운동을 자신들의 이기적인 이익 투쟁으로 생각한다. 이념이 없으니 비전이 없고 미래도 없다. 자본가들과 정치 지배자들은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쳐 저들 계급의 이익을 모도하지만 노동자들은 모래보다 못한 존재들이다. 노동자들이 하나의 사회계급으로 형성되지 못한 미개한 자본주의 국가 한국에서 계급투쟁을 기대할 수 있으랴.

계급이 없으니 계급의식도 없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정규직 노동조합이고, 현장(공장) 노동자들의 조직이 아니다. 실제로 화학물질을 만지고 처리하는 노동자들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래도 현실을 좀 파악할 필요가 있어 구글에서 검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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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5 03:15 2026/05/25 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