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에게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저장된다. 베르그송은 우리의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뇌는 단지 중앙전화교환국과 같다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 뇌는 단지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현대의 뇌과학자들이 말하는 것보다 베르그송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물론 우리 지각의 결과인 기억이 뇌의 일부에 저장된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지만 기억이 반드시 '뇌'에 '모두'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십수 년 동안 한국과 국외에서 소위 SF의 가장 핫한 소재는 "마인드 업로딩"이다. 이때 뇌를 스캔하여 컴퓨터(또는 다른 장치)에 업로드되는 것은 기억이다. 뇌를 완전히 스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컴퓨터는 연산장치이기 때문에 OS의 형식이든 (연산할 수 있는) 파일 형식이어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논쟁은 소설에서 제외된다. 그냥 뇌를 스캔하고 컴퓨터에 업로드 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또 다른 문제는 뇌를 스캔하여 업로드되는 것이 기억인가 아니면 정신 또는 마음인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우리 뇌의 작용이 전자기적 신호체계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뇌의 전자기적 작용을 외부 장치에 연결하여 스캔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 스캔되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과 정신 또는 마음은 같은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소설이나 영화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베르그송의 주장을 따라 이야기하면 뇌를 스캔하여 기억을 완전히 업로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키7>은 베르그송의 지속과 기억을 설명하기에 좋은 방편이 되는 텍스트다. <미키7>은 2022년 번역되어 출판된 에드워드 에슈턴이라는 작가의 SF 소설이다. 이 소설은 봉준호 감독이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예고편이 이미 공개되었는데 봉준호는 이 소설을 그냥 우스운 코메디 영화로 만든 모양이다. 소설의 내용은 “미키”라는 이름을 가진 남성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행성을 떠나기 위해 익스펜더블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익스펜더블은 개척지 행성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 중 사망하게 되면 사망 전 신체와 기억을 다시 재생하여 복제인간으로 재탄생하여 임무를 계속 수행하게 된다. 소설의 제목 “미키7”은 말 그대로 오리지날 미키부터 계속 재생을 반복하여 일곱 번째 재생된 미키를 부르는 명칭이다. 일곱 번째 재생된 미키와 오리지날 미키가 동일한 사람인가는 중요한 문제지만 실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논쟁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사실 이미 프로이트 이후 인간은 자기 동일성을 가진 그런 근대적 인간이 아니다. 행성을 떠나기 위해 익스펜더블이 되기로 자원한 미키와 현재의 미키7은 연속성을 가진다. 물론 아주 짧은 기억의 틈새가 있다. 미키는 임무에 나서지 전 기억을 업로드하는데, 이 업로드 시점과 사망 시점 사이에 단절이 있는 셈이다. 그래도 동료들은 미키의 정체성을 인정한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미키의 존재와 정체성이 지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오히려 미키의 신체와 정체성이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미키의 기억이 지속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미키1의 기억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을 것이고 미키가 계속 반복해서 재생될 때마다 이전 미키의 기억이 덧붙여졌을 것이다. 앞으로 다시 재생될 수많은 미키는 미키의 기억에서 태어나고 미키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베르그송에게 지속은 의식의 흐름이고, 지속한다는 것은 곧 외부의 운동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르그송에게 지속한다는 것(의식한다는 것)은 곧 기억한다는 것을 말한다. 베르그송의 지속은 시간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간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 속에 존재하며 또 시간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시간과 함께 지속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속은 다른 수많은 존재들의 지속과 동시적이면서 비동시적이다. 우리의 지속은 다른 모든 존재들의 지속과 마찬가지고 불균질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고 또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다. 미키의 지속도 마찬가지다. 미키는 하나이지만 미키는 재생될 때마다 매번 다른 누군가와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된다. 미키7이 미키8과 만났을 때 미키는 이전까지의 다른 미키들과 달리 미키라는 지속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자신을 자각한다. 시스템 어딘가(메모리겠지)에 저장된 기억으로서 미키는 여러 미키들에게는 현재지만 막 재생된 미키에게는 과거다. 새로운 미키는 과거의 미키로부터 태어난다. 기억으로서의 미키는 잠재적인 것이고 다시 태어난 미키는 미키의 기억이 실현된 존재다. |
6월 24일 왼쪽 눈을, 26일 오른쪽 눈을 수술했다. 24일 왼쪽 눈은 동공을 확대하는 안약을 몇 번 넣고 레이저 시술을 했다. 안구의 망막에 레이저를 쏘아 신경을 망막 내벽에 붙이는 시술이고 한다. 26일은 오른쪽 눈에 마취를 하고 망막에서 떨어져 나온 안구의 신경을 내벽에 다시 붙이는 수술을 했다. 수술은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했고 통증도 없었다. 오히려 의사가 수술 전에 망막 박리는 네 명 중 한 명은 여러 번 재수술을 하기도 한다는 말을 몇 번 했는데 이 말이 신체의 통증보다 더 무서웠다. 특히 한 번 더 재수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다. 수술 후 한 달 동안 열 번 정도 정밀 검사를 하고, 한 달이 더 지난 후에는 2주에 한 번 검사를 했다. 현재는 두 달이 지났는데 3주에 한 번 검사를 한다. (수술비보다 검사비 총액이 더 많다.) 의사의 검사 결과를 듣고 나는 의사에게 "제 상태가 나아지고 있나요?" 하고 물으면 의사는 신경이 아직 잘 붙은 것은 아니다, 신경이 붙지 않으면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제 수술한지 두 달이 조금 지났으니 어느 정도 신경이 잘 회복되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여전히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시력차가 크고, 오른쪽 눈으로 보면 사물은 홀쭉하고 약간 찌그러져 보인다. 이런 증상을 변시증이라고 한다. 사물이 왜곡되어 보이는 증상이다. 매일 일어나면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 사물과 글자를 본다. 방문이나 거울을 보면 좌측 세로 면의 한 부분이 일정한 간격으로 움푹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핸드폰이나 책을 펼치고 글자를 보면 배가 아파 웅크린 사람처럼 가운데 부분부터 찌그러져 보인다. 아직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촛점이 맞지 않아 모니터로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기가 힘들다. 수술 후 한 달 정도는 모니터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안경 오른쪽 렌즈에 휴지를 두껍게 겹쳐 오른쪽 눈을 가리고 봤다. 책을 읽을 때도 두 눈을 뜨고 읽는 것보다는 낫지만 금방 피곤하고 머리가 아팠다. 시신경과 뇌의 관계는 몸의 다른 부위와 달리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의사에게 언제 시력이 돌아오는가, 글자가 찌그러져 보이는 증상이 언제쯤이면 정상으로 보이는가 물으면 의사는 (애매하게) 당분간은 책을 읽지 말라고 한다. 방학 두 달을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논문도 읽지 못하고 쓰던 논문도 계속 쓸 수가 없었다. 대학 비정규직 교수인 강사에게 글을 읽지 말라는 건 직업을 때려치우고 그냥 집에서 놀아라는 소리와 같다. 이전에는 몸에 조금 이상이 느껴져도 무시했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요즘은 몸에 약간만 이상한 기운을 느껴도 긴장이 된다. 큰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