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 관련

2019/08/15 03:2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141712011&code=960100

[단독]'왕좌의 게임' 조지 R R 마틴 인터뷰···"위대한 이야기는 갈등에서 나온다"

“난 판타지 소설들을 평생 읽어왔다. 로버트 E 하워드의 ‘코난 시리즈’, 톨킨의 <반지의 제왕> 등. 하지만 역사소설과 대중역사(popular history)의 팬이기도 했다. 처음 <왕좌의 게임>을 썼을 때, 두 장르를 잘 섞고 싶었다. <반지의 제왕>은 20세기 위대한 판타지 소설이지만 톨킨은 마법을 무대에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배경에 머물게 했다. 주인공은 직면하는 문제를 마법이 아닌 현실적인 방식으로 해결했다. 그것이 <반지의 제왕>에 큰 힘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그 점을 항상 유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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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5 03:20 2019/08/15 03:20

우리 여기 있오!

2016/09/10 16:40

[책과 삶]“지구를 소개합니다”…우주로 쏘아올린 ‘메시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091941015&code=960205#csidx58df5e8ba73e02baf1d5d8c3229f48e 

 

이 책의 서평을 읽고 나니 언젠가 본 영화가 생각난다. 지구에서 외계로 "우리 여기 있오!" 하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는 늘 있어왔다.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그 의도와 무관하게 신호를 접수할 외계인이 있을까 하는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설령 수십년, 또는 수백년 후 지구의 신호를 접수한 외계 존재가 있다하더라고 그들이 신호가 전달되는 속도만큼 속력을 낼 수 있는 우주선을 가지고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진리라면 수백년, 수십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지구를 침략할 만큼 호전적인 우주인이 문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스티브 호킹은 문명은 스스로를 파괴하기 때문에 영원한 문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는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2012년에 개봉한 <배틀쉽(Battleship)>이라는 영화는 우주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 메시지를 접수한 우주인이 지구로 침략해 온다는 내용이다. 물론 영화의 구성이나 연기나 주제는 천박하고 우습지만 인상적인 장면이 아주 짧게 두 번 나온다.

하나는 우주인의 우주선은 미국 해군 함정이 자신을 공격하려고 무기를 장착하고 공격하려는 의도를 보일 때만
미해군 함정을 공격을 한다는 거다. <우주전쟁>(2005)에서 미리 지구에 숨어있던 화성인들이 어느 날 벌떡 솟구쳐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과 달리 이 우주인들은 미리 공격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철저하게 방어적으로만 공격한다. 그리고 도시로 침입한 무인공격기는 도로와 자동차 등 (기계)문명의 요소가 되는 것들은 공격하지만 사람은 공격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미해군에게 붙잡힌 우주인은 턱밑에 딱딱한 수염을 달고 있다는 것 외에는 인간과 닮았다는 거다. 두 눈과 하나의 코, 하나의 입을 가진 얼굴과 두 팔과 두 다리, 직립보행을 하고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이들이 인간과 동일한 지적 문명을 형성하고 있고 무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보면 인간과 유사한 진화를 거쳤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동안 이 우주인의 회상 장면을 인서트로 보여주는데, 행성에 전쟁이 발생하고 행성의 대기에서 핵폭발과 같은 폭발을 보여준다. 몇 초되지 않는 짧은 장면이지만 이들의 행성에 (지구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핵전쟁과 같은 전쟁이 발생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어쨌든 <배틀쉽(Battleship)>에서 우주인들은 지구를 침략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구에 온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의적으로 지구에 착륙하여 방어막을 전개하고 지구의 군함을 공격하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모선/행성에 연락하기 위해 지구의 시설에 침입하고 장악한다. 이 영화에서 그들이 왜 지구에 왔는가 하는 이유는 모호하고, 또 중요하지도 않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지구를 무단으로 침입했고 이러한 침입자를 막고 지구를 방어하기 위해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용맹하게 싸워 물리친다는 거다. 물론 이런 류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거창한 철학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을 거라고 기대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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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16:40 2016/09/10 16:40

[책] 불가능의 예술

2016/05/29 15:5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272053005&code=960205

불가능의 예술 / 바츨라프 하벨 지음·이택광 옮김

Paul Wilson이라는 사람의 영역을 번역했을 텐데, 체코어 전공자가 번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책과 삶]벨벳혁명 지도자 하벨이 토해 낸 ‘양심의 소리’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인민들은 봉기했다. 이른바 ‘프라하의 봄’이었다. 잠시 체제의 개혁이 진행되는 듯했으나 소비에트 탱크의 침공을 받으면서 자유의 꿈은 사라졌다. 소비에트는 ‘정상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다시금 전체주의를 복원했다. 이 과정에서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은 반체제 작가로 낙인찍혀 요시찰 명단에 올랐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 금지됐고 오히려 나라 밖에서 주목받으며 공연됐다. 그러자 하벨은 극작을 뛰어넘는 정치적 저항에 뛰어든다. 인권 존중을 외치며 1977년 일어났던 ‘77헌장 운동’의 중심에는 하벨이 서 있었다. 물론 그는 투옥됐다. 하지만 저항 의지는 꺾이지 않았으니, 감옥에서 쓴 그의 글들은 지하 출판물의 형태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1989년, 동유럽 공산체제가 무너지던 그 해에 프라하 광장에서 인민들의 시위를 이끌었던 지도자는 하벨이었다. 11월19일 프라하 광장에는 약 20만명의 시위대가 집결했고 이튿날에는 두 배가 넘는 인원이 모였다. 이 대대적 시위는 거의 12월 말까지 이어졌다. 당시 하벨이 보여준 카리스마의 뿌리는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지식인으로서의 양심, 아울러 그의 글에 언제나 담겨 있던 인도주의 정신이었다. 시위대는 하벨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따랐다. 결국 12월28일 당은 일당제 포기를 선언하면서 권력을 내려놨다. 약 40일간 이어진 무혈의 혁명은 그렇게 인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아무도 피를 흘리지 않았기에 이른바 ‘벨벳혁명’으로 불린다.

 

이 책은 벨벳혁명의 지도자 하벨, 탈공산화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1993년 슬로바키아와 분리된 이후 체코의 첫 대통령으로 재신임된 그의 연설문집이다. 대통령 선출 이틀 뒤인 1990년 1월1일의 ‘신년사’부터 1996년 프라하 공연예술 아카데미에서 행한 연설까지 모두 35차례의 연설 원고를 실었다. 한마디로 요약해 그의 정치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육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연설문들은 다른 정치 지도자들처럼 참모들이 대신 써준 것이 아니라, 하벨 스스로 펜으로 꾹꾹 눌러 쓴 육필이다. 정치에 대한 철학적 통찰은 물론이거니와 빼어난 문장에서도 그의 남다른 ‘깊이’를 느끼게 한다.

 

책에 수록된 글들은 자신의 생각을 치장하거나 에둘러 말하지 않는 까닭에 쉽고 곡진하다. 때로는 ‘인간 하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글도 있다. 예컨대 그는 대통령이 된 지 6개월쯤 뒤에 한 연설에서 이렇게 털어놓는다. “마침내 (내가 대통령이 됐다는) 이 모든 일들이 현실감으로 다가오면서 제게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집무실로 들어서자마자 기분이 급격히 우울해졌습니다.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탱했던 모든 생각과 목표, 기술, 희망, 결의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자신감을 잃고 맥이 빠진 것은 물론이고 상상력이 고갈됐다고 느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맡겨진 과업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한번도 제대로 숙고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감정의 심연 어딘가에 두려움이 놓여 있었습니다.”

 

물론 책의 핵심은 ‘실천도덕’으로 불리는 하벨의 정치철학이다. 그에게 정치란 ‘통치의 기술’이 아니라 ‘도덕의 실천’이었다. 그는 이 답답한 현실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적 책임감, 현존하는 것 위의 어떤 것에 대한 더욱 높은 책임감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란 권력의 기술이 아닙니다. 저에게 정치란 주어진 이데올로기나 이념도 아닙니다. 정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행위도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치는 세계를 책임지고자 하는 개인의 도덕에 근거합니다.”

 

혹자는 그의 정치론을 예술가적 이상주의로 일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도덕적 정치철학을 끝까지 실천하며 살았던 하벨에게 정치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심원한 지점을 내다보지 않는 정치는 기득권 나눠먹기, 회유와 협박, 조작과 기만에 물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벨에게 정치란 도덕적 양심에 기반한 “불가능의 예술”이다. “양심은 인간 존재에 잠들어 있는 신이며, 우리는 이 신을 믿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달라야 합니다. 양심이 이성을 능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리는 어느새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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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9 15:56 2016/05/29 15:5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202116005&code=960205

위화 지음·이욱연 옮김 | 문학동네 

꿈도 균형을 잃고 ‘빈익빈 부익부’ 고도 성장 중국은 치료가 필요해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1990년대 후반 중국중앙방송(CCTV)은 어린이날을 맞아 각지의 아이들에게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물었다. 베이징의 한 사내아이는 장난감 비행기가 아닌 ‘진짜’ 보잉 비행기를 받고 싶다고 했다. 시베이(西北) 지방의 여자아이는 ‘흰 운동화를 갖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중국 작가 위화(余華)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한다. “모든 것을 잃어도 꿈만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꿈조차 균형을 잃었다. (…) 같은 시대의 아이들이지만, 한 아이는 오늘날의 유럽에 살고, 다른 아이는 400년 전의 유럽에 사는 것처럼 어리둥절하게 느껴진다.”

 

이런 이야기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불쑥 우리를 찌른다. 우리가 믿고 있는 세상의 모습은 ‘진짜’일까. 작가는 뾰족한 사유를 툭툭 던진다. “어떤 사람들에겐 현실을 주시한다는 것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고 가까스로 아는 것임을 발견했다. <허삼관 매혈기>가 출판되고 2년이 지나서야 허베이(河北)의 에이즈 사건이 언론에 폭로되었다. 내가 쓴 매혈은 중국에서 벌써 반세기 동안 존재했다.”

 

저자는 “모든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에 책임이 있다. 그 사회의 병폐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고 말한다. 자신 또한 ‘한 사람의 환자’라고 자처하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차라리 치료법을 찾는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문학 외에는 관심 없다’는 일부 문학계 사람들의 편협함을 질타하면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다. “오늘을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특히 전혀 모르는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자신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인의 치장에만 여념이 없다. 중국의 아파트들은 끊임없이 인테리어를 바꿔 작가가 사는 곳까지 소음으로 시끄럽다. 크게 보면 중국 전체가 건국 60주년 준비로 톈안먼 광장을 단장하고 ‘위풍당당한’ 열병식 준비로 바쁘다. 그러나 작가에게 “60주년이란 59주년보다 한 해가 늘었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위층의 전기 드릴 소리가 멈추자 비로소 “정상적인 생활”이 돌아올 뿐이다. 중국의 고도성장이란 것도 결국 감춰진 많은 희생 위에 있다는, 그래서 “100위안을 지불하고 10위안을 받는”것이 아니었느냐는 반성도 내놓는다.


서구 사회도 다를 바 없다. 작년에 동료 작가에게 온통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서만 질문하던 노르웨이 기자들은 올해 잔뜩 긴장하고 준비했던 위화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티베트 문제에도 맹목적으로 한쪽 편만 들기보다 역사와 맥락에 대해 더 공부할 것을 주문한다. 미국 노턴 출판사 이사장의 말을 빌려 서구 언론과 대중에 대한 냉소도 던진다. “당신 손가락이 화상을 입었을 때 언론이 보도를 하면 그것은 진짜고, 언론이 보도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지요.”

 

이번 산문집에서 그는 작품의 창작일기에서부터 작가지망생 시절 이야기, 영화와 독서 편력, 미국 프로농구(NBA)를 보러 직접 미국에 건너간 ‘광팬’의 면모까지 소탈하게 털어놓는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 등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가가 내놓은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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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1 20:53 2016/05/21 20:53

좋은 글을 읽고 나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좋은 글이란 이렇게 누군가로 하여금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도록 만드는 것인데, 나는 무얼 쓰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시나브로 지나간다. 벌써 2012년도 20여일 남았다. 이런 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한 해를 보낸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에게 여행은 지금 여기를 떠나 어디 먼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갈 수도 갈 곳도 없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고 시간 낭비가 아닌가. 나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도 없었고 그런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매번 지금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오로지 그런 여행을 관념으로만 실행했을 뿐이다.

내가 여행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최초의 여행은 18살 때 고향에 간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고향을 다녀온지가 중학교 1학년, 아니면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18살 고등학교 2학년 때 고향을 찾아 간 것은 5년만이었던 셈인가. 내가 5년만에 방문한 고향길을 최초의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고향에서 발견한 어떤 이질감 때문일 것이다.

어떤 계기로 고향에 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18살이 되어 찾아간 고향은 원래 내가 간직하고 있었던 그런 고향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태어나 10년을 살았던 바로 그 '우리집'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폐허처럼 무너진 부엌과 오른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쓰러진 낡은 마루. 문도 없이 어두운 동굴처럼 휑하니 뚫려 있는 안방과 작은방을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그 때 어디서 나타난 송아지 한 마리가 부엌을 들락거리며 뛰어 다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내가 살던 집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마을도 마을 뒤쪽에 자리하고 있던 작은 봉우리가 솟은 얕은 산도, 그 산자락에 펼쳐져 있던 작은 밭들과 군데군데 자라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나무들도 이전과 같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고향은 단지 상상에 불과했던 것일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나는 고향 마을을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 같다.

나도 이제는 어디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 눈에 잡히는 풍광에 감탄하고 마치 외부인으로서 그들을 관찰하듯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구경'하고 서둘러 다른 목적지를 향해 떠나면서 지나 온 곳에 대한 기억을 위해 사진을 찍고. 물론 그런 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이란 낯선 사건을 겪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 경향신문 2012. 12. 8)

 

ㆍ여행의 사고(전 3권)

▲윤여일 지음 | 돌베개 | 1권 352쪽, 2권 400쪽, 3권 368쪽 | 1·3권 1만8000원, 2권 2만원

 

왜 여행을 하는가. 누군가는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누군가는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려고,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물건을 사려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사는 작가에게 허락된 특권이기도 해서, 동서 고금의 많은 작가들이 그럴듯한 여행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요즘엔 여행 인구가 늘어나면서 여행작가가 되려는 이도 많아졌고, 여행작가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나 과정도 생겼다.

<여행의 사고>는 여행기이되, 여행기가 아니다. 저자는 멕시코, 과테말라, 인도, 네팔, 중국, 일본의 여러 장소들을 여행했지만 여느 여행기처럼 여행지의 풍광, 음식, 쇼핑장소, 사람 이야기를 쓰진 않는다. 대신 여행자의 윤리, 여행을 통한 내면의 변화, 여행지의 역사와 그에 대해 가져야 할 여행자의 태도를 서술하는 데 대부분의 공을 들인다. 그래서 물 좋고 바람 좋은 곳에 가서도 이 젊은 사회학자는 줄곧 머뭇거린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남의 일상에 파란을 일으키면서, 그 고유 의미를 맥락에서 빼돌리는 행위 아닌가. 누군가에겐 일상의 장소일 텐데, 범죄율이 높다는 경고를 받았다는 이유로 조급하게 겁먹은 채 다니는 것이 옳은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여행에 익숙한 사람에게 이러한 태도는 답답해 보이기도 할 테지만, 치열하고 엄밀한 자기성찰이야말로 지식인이 가져야 마땅한, 그러나 요즘엔 종종 간과되는 특성이다.

동아시아의 사회와 사상을 연구하는 저자 윤여일은 2007년부터 연구실을 벗어나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 중 하드 드라이브를 잃어버린 데다가 한국에서 수리를 맡겨놓은 노트북도 포맷돼 그동안 써왔던 글을 모두 날려버린 경험도 연구실 바깥으로 나와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했다. 그토록 열심히 읽고 썼는데, 파일이 사라지고 나니 무엇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지식을 온전히 육화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에게 여행은 책에서 얻은 지식을 몸에 새겨 넣는 작업이었다.

그는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기존에 지니고 있던 앎으로 구체적인 생활의 장소를 내리누르는 일을 피하고 싶다. 인문학적 취미에 기대어 한 장소를 쉽사리 의미로 포장해 내놓는 일도 경계하고 싶다.(…) 그리하여 그 장소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 방황과 곤혹스러움을 가감 없이 토로하고, 다시 그 어려움을 사고의 소재로 삼고 싶다. 그리하여 정리된 결론보다는 결론에 다다르지 못할지언정 생각이 거쳐간 절차들을 적어보고 싶다.”

사람들은 단정하길 좋아한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확실히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였어” “네팔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여” “중국도 많이 발전했더군” 같은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말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다. 현지 주민도 아닌 바에야, 기껏해야 며칠, 몇 주, 몇 달을 머무는 여행객이 그 지역 문화와 사람의 속사정을 그토록 쉽게 알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중국’을 이야기할 때, 그 넓은 중국 중 대체 어느 지역을 말하는가. 한국만해도 서울의 강북과 강남이 다르고, 강남에서도 동별로 사정이 다르고, 옆집 사람끼리도 생각이 다를 텐데,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사람만을 만난 여행객이 어떻게 여행지에 대해 몇 마디 문장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여행지 고유의 문화 논리를 습득하지 못했을 때 어설픈 나라론 혹은 인간론이 등장한다. 나라론이란 한 나라의 특성을 개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고려 없이 뭉뚱그리는 것이고, 인간론이란 해당 사회의 맥락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람 사는 게 비슷하다”는 식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자의 시선, 여행기의 관점은 ‘판단 중지’에서 시작해야 한다. “많이 느끼되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 모어 사회가 아닌 곳에 애정을 갖는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복잡하고 또 복잡한 인도야말로 여행자의 태도를 판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여행지다. 인도는 오랜 기간 서구 사람들에게 동경 혹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동경과 혐오는 대체로 오해 혹은 성급한 판단의 결과였다. 인도는 종종 ‘목가적 순수함’과 ‘정신적 찬란함’을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때 실제의 인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려는 없다. 심지어 ‘인도학의 대부’라 불린 19세기 독일 학자 막스 뮐러는 한번도 인도에 가보지 않았고 제자들도 인도에 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는 당대의 살아있는 인도는 고매한 정신세계를 상실한 타락한, 가짜 인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샹그릴라도 서구인들의 환상에 의해 복잡한 지위를 얻었다. 드문드문한 정보만을 접한 서양인들에게 동양은 “마술적이고 때로는 숭고하고 가혹하며, 시간은 멈춰 있고 상상적 도피와 집단 환각이 가능한 장소, 이국적이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안기는 곳”이었다.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1933)은 그런 상상력이 집약된 텍스트였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히말라야 쿤룬 산맥 서쪽 끝자락에 불시착한 영국인들이 우연히 계곡 속의 사원 샹그릴라에서 신비한 경험을 한다는 내용의 이 책은 당시 서양인들 사이에 ‘이국적 호기심’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는 샹그릴라를 순수 아리안 혈통의 근원지로 규정하고 7차례나 현지 조사단을 파견했다. “샹그릴라 혹은 샹그릴라로 대변되는 동양은 서양인에게 순수했던 유년기, 때 묻지 않은 삶의 원형질을 의미한다.”

중국 정부가 1997년 샹그릴라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은 더욱 묘해졌다. 윈난 성의 중뎬이 바로 샹그릴라라는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중뎬을 샹그릴라로 개명하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윈난, 쓰촨, 티베트 등지에 500여명의 조사단을 파견한 끝에 ‘발견’한 곳이었다. 그 결과 1995년 한 해 7만명이던 방문객은 2008년 200만명을 넘겼다. 인도, 네팔, 부탄 등 히말라야 인근 나라들도 자국의 어느 한 곳을 샹그릴라라고 명명했다. 한때 중뎬, 이제 샹그릴라가 된 그곳은 소수민족이 관광객을 위해 전통복장 차림으로 거닐고, 호텔 공사가 한창이다. 윤여일은 “이미 가보기도 전에 그 이름 하나로 샹그릴라는 내게 의미 과잉의 장소였다”며 “막상 다녀오고 나서의 내 감상은 너무도 초라하다”고 적었다.

윤여일 역시 자국에서 가지고 있던 환상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의 어떤 이들에게 네팔은 시간을 거스른 듯 색다른 정치적 역정을 보이는 나라다. 2008년 마오주의자들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내전이 종식됐기 때문이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사회주의의 거대한 꿈이 퇴색하고, 중국마저 국가 중심 자본주의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지금 “네팔의 오늘은 지나간 혁명에 대한 어떤 노스탤지어처럼 느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마오주의는 꿈, 혁명 등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정정 불안으로 어수선한 네팔의 사람들에게 마오주의 정권은 그저 ‘하나의 현실’이었다.

여행은 ‘여기 아닌 곳’으로 떠나 ‘나 아닌 사람’을 만나는 일이지만,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홀로 다니는 여행자는 언어가 통하지 않고 낯선 사람들로 가득찬 이국의 어느 곳에서 결국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바깥으로 나와 낯선 사건을 겪다보면 내게 중요했던 사색이나 감정과 다시 대면하곤 한다. 혹은 내가 낯설어지곤 한다.”

그래서 이국의 여행을 통해 한국을 다시 바라볼 수도 있다. 로스앤젤레스를 떠나는 비행기에서 만난 한 섬유공장 사장은 ‘섬유 산업과 함께하는 한인 디아스포라’를 설명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기업은 중국에 공장을 많이 차렸는데, 중국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자 멕시코로 공장을 옮겼다. 멕시코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고, 멕시코 당국이 한국 기업의 가짜 브랜드 옷을 단속하자 이번엔 과테말라로 옮겼다. 그러나 그곳에선 노동자들을 다그치기가 만만치 않아 다시 공장이 동남아시아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영화 <러브레터>의 때묻지 않은 설원을 구경하기 위해 찾은 홋카이도에선 ‘조선의 의미’를 혼란케 하는 이를 만난다. 우연히 들른 강연회에서 알아듣기 힘든 일본어로 질문하는 할아버지를 봤다. 그는 강연회에서 자신을 일본 내 소수민족인 아이누 출신이라고 밝혔고, 호기심에 그를 찾아간 저자에게는 다시 조선인이라고 이야기했다. 알고 보니 일제 시기 강제징용을 당해 홋카이도로 온 한 조선인이 공사장을 탈출해 아이누 마을에 숨었고, 그곳에서 아이누 여인과 결혼해 낳은 자식이 그 할아버지였다. 조선에서 찾아온 본처의 아들들이 아버지를 데려가자 할아버지는 반 조선인, 반 아이누로 남은 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여행을 번역에 비유한다. 100% 번역은 없다. 원문과 번역문 사이에는 언어적·문화적 거리와 번역자의 감각, 지식, 신념이 개입된다. 하지만 번역은 창작도 아니다. 번역은 “원문이라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원문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윤리적 과정”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언어와 문화를 건너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읽어내야 한다. 눈에 띄는 장면 뒤편의 의미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현지의 속살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착각해서도 안된다. 자문화와 타문화 사이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거닐며, 타문화에 대한 해석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이 과정을 통해 자문화에서 굳어진 인식의 틀을 허물기. 그것이 여행작가의 의무가 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저자는 “결혼을 하기에 나는 내 시간에 너무도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가정이 생기면 공부도 멈추고 여행도 끊길까봐 금생에는 없는 일이라고 일단 정해두었다”고 적었다. 지금 이 리뷰가 쓰여지는 순간에도 그는 페루에서 남극까지 3개월에 걸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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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8 17:01 2012/12/08 17:01

"어둠의 왼손"

2012/07/12 20:32

어슐르 르 귄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데서 자신의 소설을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르 귄이 세계를 창조하는 방법은 아주 독특하다. 사람들 사이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듯이 보이는 관계를 통해 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 관계가 하나의 창이라면 우리는 몇 개의 창을 통해 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이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다.

"친구. 달의 주기가 바뀌면 어떤 친구든 연인으로 바뀔 수 있는 곳에서 친구란 대체 무슨 의미일까? 나는 남성으로 한정되어 있으므로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세렘 하스의 친구도 아니고 이 종족 누구의 친구도 아니었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그들 그리고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그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 때가 오면 손만 닿아도 변태를 하는, 마치 요람에서 아이를 바꿔치듯 변하는 그들은 나의 육친도 친구도 아니다. 우리 사이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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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2 20:32 2012/07/12 20:32

ㆍ인간이 먼저(humain d‘abord) / 경향신문, 2012-02-03 20:27:56

바야흐로 프랑스는 선거철이다. 대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섰다. 사상 최초로 신용등급이 강등당한 프랑스로선, 이젠 모두에게 명백해진, 잘못 들어선 길을 서둘러 나오게 해줄 혜안을 가진 선장을 찾는 게 절실하다.

바로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아마존 사이트 정치·사회 분야를 어슬렁거리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정치·사회 분야 3위(종합순위 13위)에 올라있는 책은, 차마 책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좌파전선(Front Gauche·프랑스공산당과 좌파당의 연합)의 대선후보 장 뤽 멜랑숑의 공약집!

단돈 2유로. 95쪽. 저렴한 가격이지만, 선거철에 쏟아지는 홍보물을 쓰레기통에 버리기 바쁜 이 시절에 간 크게도 공약집을 돈 받고 팔고 있는 멜랑숑의 지지율은 고작 7%이다. 녹색당과 더불어 5, 6위를 달린다. 그럼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사회당의 후보 올랑드는? 멜랑숑의 공약집이 지난해 10월 출간된 것과 달리, 올랑드는 지난 주말에야 공약의 골격을 처음 발표했다. 출간된 공약집 따위는 없고, 올랑드의 자서전만 100위 바깥에 간신히 얼굴을 들이민다. 지지율 23%로 2위인 사르코지는? 오로지 사르코지 정부의 무지막지한 실정을 폭로하는 책들만 드글거릴 뿐.

‘물론 가능하다. 인류는 지금까지 수많은 재앙을 극복해 왔다. 우리 앞에 지금 펼쳐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이면에는 신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우린 바로 그 가능성을 포착해야 한다…생태적 재앙, 불평등, 고용 불안정, 빈곤의 폭발, 반복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유린, 연대와 협력에 기반하는 인간관계의 거부. 이 모든 것은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금융자본주의의 독재라는 공통 원인을 토대로 이뤄진 결과들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지배는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허약한 구조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뒤바뀔 수 있는 정치적 결단에 좌우되는 구조이기 때문. 금융자본 지배의 장벽을 넘어선다면, 우리는 신속하게 우리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이 먼저>(재뤼출판사)는 모두가 처해 있는 이 괴로운 시대의 핵심원인을 명쾌하게 진단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넘치는 부, 그러나 한 곳에 치우쳤던 부를 분배하고, 사회적 불안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최저임금 250만원, 모든 기업에 대한 급여 상한제, 공공분야 80만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화, 임대료 상한제, 향후 5년간 연 20만 임대주택 건설. 은행과 금융시장이 점한 무소불위의 위험한 권력을 빼앗아 오는 것도 공약의 중요한 부분이다. 시중은행의 투기 통제, 부자 감세를 위해 설치했던 세금상한제 폐지, 금융천국에서 벌어지는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 통제, 기업의 금융소득에 세금 부과. 전기·가스·원자력·석유 등 환경과 에너지 산업을 국유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한 치의 모순없이 견고하고 아름답게 들어맞는 진단과 대안에 독자들은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이뤄야 할 유토피아를 위한 과제의 목록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르코지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제1 야당 사회당의 후보 올랑드가 지난 주말 선보인 공약들에는 멜랑숑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단박에 뛰어넘는 진보. 그걸 우린 혁명이라 부른다. 멜랑숑은 이 책에서 선거를 통한 시민혁명을 호소한다. 그리고, 이 빛나는 생각들로 이 가벼운 책자를 통해 하나둘씩 사람들을 설득해낸다. 이미 그렇게 혁명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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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8 16:40 2012/07/08 16:40

익숙한 것들에 대한

2012/04/11 16:25

익숙한 것들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너무 익숙해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익숙함이 주는 평온에 늘 안주하기 마련이다. 나는 매번 봄이 오면 꼭 여행을 가야지, 이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면허증과 차가 생긴 후 매년 그런 생각을 했고 4년 정도 그런 생각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또 후회했다. 지난겨울에는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겨울 바다가 보고 싶었다. 홀로 시퍼른 물결 앞에 서서 그 두려운 푸른 바다를 마주보고 싶었다. 언제나 이렇게 나는 나의 뇌가 떠올리는 풍경에 몸서리친다. 나는 마치 붙박힌 바위처럼 고요하게 멈추어버린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기가 두려운 것은 이런 익숙함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나의 세포를 자극하고 심장을 두들긴다. 

언제나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이 오늘과 마찬가지라면 얼마나 불행한 삶인가. 나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불행하다. 나는 그렇게 자신에게 말한다. 행동하라. 일어서라. 손을 뻗어라. 주먹을 쥐고 앞으로 걸어가자. 나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그가 내게 하루 종일 무얼 하느냐고 물어서 대답을 해주었더니, 그는 내게 말했다, 반은 놀리는 듯 반은 가엾다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헬레나, 당신은 잘못 살고 있군요, 그러고 나서 그는 선언했다,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다른 삶을 살겠노라, 삶의 기쁨들을 좀더 누리겠노라 결심해야 할 것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그의 말에 조금도 반대하지 않으며, 언제나 기쁨을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요즘 유행하는 그 모든 우울한 것들이나 울적함 같은 것보다 나를 더 짜증나게 하는 것은 없다고, 그러나 그는 나의 그런 신념의 선언은 아무 의미도 없다, 기쁨의 신봉자들이 대개 제일 음울한 사람들이다, 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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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1 16:25 2012/04/11 16:25

"폭력은 사회적 모순이 논리적으로 표출된 것일 뿐이다." 이 말을 누가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폭력에 대한 이 짧은 명제는 마치 "국가는 경제적 지배계급의 정치적 지배도구이다."라고 말한 레닌의 이 말만큼이나 명료하게 들린다. 학교나 직장, 그리고 여타의 공동체에서 자행되는 물리적 폭력이나 비물리적인 폭력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가장 일반화된 억압이자 일종의 공포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음은 필연적으로 억압적이다.

미국처럼 나라가 부유해도 부가 골고루 돌아가지 않으면 가난함만 못하다
/경향신문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들이닥쳤을 때, 미국 뉴올리언스는 아비규환이었다. 사망자가 최소한 1836명, 실종자는 700명이었다. 인명사고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 뉴올리언스에서는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이룩했던 문명이 사라졌다. 카트리나 이후 수주 동안 약탈, 살인, 방화, 강간, 기아가 이어졌다. 투입된 군대는 사람을 구출하거나 구호품을 전달하는 대신, 약탈자를 찾는 데 집중했다. 그것이 21세기의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미증유의 자연재해 때문이었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2008년 중국의 대지진, 2011년 일본의 대지진도 상상하기 어려운 재난이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엔 문명, 질서, 신뢰가 남아 있었다. 미국은 일본, 중국과 무엇이 달랐을까.

미국은 부유한 나라다. 지난해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8000달러로 세계 7위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살기 좋은 사회는 아니라는 점이 카트리나 때 입증됐다. 아울러 세계은행이 발표한 가장 부유한 50여개 국가 중에서 미국은 정신질환 환자, 기대수명, 신생아 1000명당 사망한 유아수, 비만율, 수학과 읽기 평균 점수 등에서 최악의 수치를 보인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을 연구해온 영국의 역학자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은 유엔개발계획의 인간개발지수가 보여주는 소득 불평등에 주목했다. 상위 20%와 하위 20%를 비교해 소득 불평등의 정도를 나타낸 것이다. 나라 전체가 아무리 부유해도, 그 부가 골고루 돌아가지 않으면 가난함만 못하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미국의 소득 격차는 책에서 제시된 23개의 부국 중 싱가포르에 이어 가장 크다. 일본, 핀란드, 노르웨이 등은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4배에 못 미치는 부를 갖고 있는 반면, 미국은 9배다. 즉 불평등이 문제고, 평등이 답이다.

여전히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게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지는 않다. 경제성장이 인류의 평안과 행복을 보장하는 시기는 지났다. 저마다 다른 경제 발전 단계를 거치고 있는 나라들의 기대수명을 비교해보자. 가난한 국가에서는 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서 기대수명이 빠르게 증가하지만, 중진국 수준에 이르면 증가 속도는 감소한다.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의 수도 마찬가지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 수준에 이르면 수명과 행복의 그래프는 평평해진다. 2만5000달러를 번다고 짧게 사는 것도, 10만달러를 번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부유한 국가에서 건강문제와 사회문제는 국가 평균 소득과 관계가 미약하다(그림1). 그러나 소득 불평등은 관계가 있다. 미국이나 포르투갈처럼 불평등한 사회에서 건강과 사회문제는 나빠진다. 일본과 북유럽 나라처럼 평등하면 문제가 좋아진다(그림2). 미국의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는 “가난은 재화의 양이 적다는 뜻이 아니다.… 가난은 무엇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다. 가난은 사회적 지위며(…) 계급 간의 불쾌한 구별이 되었다”고 말했다. 가난과 불평등 중에 더 나쁜 것은 불평등이다.

불평등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민감할까. 인간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 와중에 자부심이라는 방어기제를 강화시킨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자부심이란 사실 불안정한 자기도취의 다른 이름이다. 과거의 가족, 이웃 중심의 안정적인 공동체가 붕괴하면서 사람들은 익명의 사회 속에 내던져졌다. 오랜 기간에 걸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빠른 시간에 남의 시선을 끌고 자의식을 강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낯선 관계일수록 사회적 지위는 그 사람의 유일한 특징이 되기도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불평등이 심할수록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경쟁도 심해진다.

불평등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들이 있다.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불평등한 포루투갈에서는 10%만이 ‘그렇다’고 답했지만, 평등한 스웨덴에서는 66%였다. 평등한 노르웨이의 카페에서는 테이블과 의자를 거리에 내놓고 그 위에 손님이 따뜻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담요를 올려놓는다. 고객이나 행인이 담요를 훔쳐갈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반면 불평등하고 신뢰 수준이 낮은 미국에서는 카트리나 이후의 뉴올리언스와 같은 혼란이 일어났다. 때로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서 폭염이 발생했을 때, 신뢰도가 낮고 범죄율이 높은 흑인 지역에서는 사망률이 높았다. 사람들이 문을 열어두는 것을 두려워했고, 집을 비우기가 겁나 시에서 설치한 냉방 지역에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흑인 지역만큼 가난하지만 신뢰도가 높은 히스패닉 거주지에선 사망률이 훨씬 낮았다.

그리스인의 평균 수입과 1년 건강 관리 비용은 미국인의 절반 정도다. 그러나 그리스에서 태어난 아기의 기대수명은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보다 1~2년이 길다. 심지어 미국 할렘의 흑인 남성이 65세까지 살 확률은 방글라데시인보다 더 낮았다. 불평등은 낮은 기대수명, 높은 유아 사망률, 작은 키, 저체중 출산, 에이즈, 우울증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불평등하고 사회 신뢰 수준과 통합 정도가 낮은 사회에 사는 젊은 남녀는 평등한 사회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에게 닥친 난관에 맞선다. 10대 소녀는 임신을 한다. 15~19세 여성 1000명당 출산한 자녀수는 미국이 50여명, 일본과 북유럽 국가들은 10명 미만이다. 사회에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단이 없는 10대 여성은 엄마가 됨으로써 성인의 사회관계망에 가입하려 한다. 이는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타당한 전략이다. 배우자나 다른 어떤 사람, 자원에 의지할 수 없으면 일찍 어른이 돼 자녀를 많이 갖는 게 유리하다. 그 아이들 중 최소 몇 명은 살아남기 때문이다. 반면 배우자나 가족이 도와줄 거라고 믿으면 소수의 자녀를 적당한 시기에 가진 뒤 그에게 관심을 쏟는다.

10대 소년은 폭력을 쓴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의사인 제임스 길리건은 폭력 행위란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참을 수 없고 저항할 수도 없는 수치심과 모욕감을 피하거나 제거해 이를 정반대 감정인 자신감으로 대치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지위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박탈당한 남성이 자신의 마지막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 평등한 사회에 사는 남자는 무례한 대우를 받아도 좋은 교육, 좋은 직장, 가족, 미래의 가능성으로 이를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불평등한 사회에 사는 사람은 이런 보호 장치 없이 폭력에 호소한다.

불평등을 완화하면 가난한 사람들만 이득을 얻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불평등은 사회 전반에 퍼지는 ‘공해 물질’이다. 미국인의 기대수명이 일본인보다 4.5년 짧은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빨리 죽기 때문이 아니다. 비교적 잘사는 미국 백인들의 사망률도 다른 선진국 사람들보다 높다. 평등한 스웨덴과 불평등한 영국의 직업별 사망률을 비교하면, 비숙련 육체 노동자부터 전문 직업인까지 모든 부문에서 스웨덴이 낮았다. 영국 시인 존 던은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라고 말했다. 불평등은 부자와 빈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저자들은 생물학, 인류학, 역사학의 근거를 들어 인간에겐 평등의 본능이 있다고 말한다. 근대 이후 불평등이 보편적이라는 인식이 퍼졌지만, 인간의 역사를 훑어보면 오히려 현재의 불평등한 사회가 예외라는 것이다. 인간 두뇌의 거울 신경세포는 다른 이의 특정 움직임을 관찰할 때 활동한다. 거울 신경세포의 존재가 밝혀짐으로써 인간이 서로에게 공감하는 능력, 영화 속에서 누군가 고통받는 장면을 볼 때 움찔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은 그 생물학적 근원부터 사회적 존재다.

평등한 사회를 위해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의지다. 기업 최고위층에게 과도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고, 일터로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 마틴 루터 킹은 “도덕적 세계의 활은 매우 길지만 이는 결국 정의를 향해 굽는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전면에 등장하자, 강한 정의감을 가진 사람들은 ‘밀실 평등주의자’가 됐다. 저자들은 “이제는 평등주의자들이 공공 영역으로 돌아올 때”라고 말한다.

원제인 ‘The Spirit Level’은 건설 현장에서 바닥의 수평도를 측량하는 도구인 수준측량기를 의미한다. 바닥이 기울어지면 건물이 무너지듯이, 불평등 정도가 심하면 사회가 망가진다. 2009년 영국에서 처음 나온 이 책은 당시 보수당 당수이자 현재 영국 총리인 데이비드 캐머런과 그와 정치적으로 반대편인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밴드로부터 동시에 추천받았다. 지금 평등은 좌파의 표어가 아니라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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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8 20:36 2012/02/18 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