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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광장> 中- 아카시아가 있는 그림

                                                                      

아카시아

우거진 언덕을

우리는 단둘이

늘 걸어가곤 했다

푸른 싹이

향긋한 버러지처럼

움터나오는 철에

벗은 오히려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멋있는 서막이

바로 눈앞에

다가 있는 성싶어

아카시아 새싹 같은 말이여

응?

 

아무도 나빠할 리 없는

꽃 피는 철이 되더니

벗은 또 멋지게 꽃잎을

코끝에 대면서

말한 것이다

아 참 삶은 멋있어

아카시아 꽃내음처럼

기막혀

 

이리하여

하늘이

저렇게 높아가는

이 무렵

 

벗은 이윽이

가지에 눈을 주며 말하는 거다

삶은 섬뜩한 것이야

이 아카시아 가지처럼

단단해

 

그래도 나는

아주 아무렇지 않은 낯빛으로

천천히 한 대 피워물면

그도 하릴없이

담배를 꺼내물고

 

아카시아

우거진 언덕을

우리는 또 말없이

걸어가는 것이었다

 

 

중학생 아이 독후감 숙제를 내주다 다시 집어든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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