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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억의 밤> 을 기억해

남한 현대사에서 민주화운동은 '대다난' 사건이다. 그런데 내가 마뜩치 않은 건, 민주화운동은 당시 엘리트들과 함께 하이라이트된다는 것. 그들의 희생을 모르쇠하자는 게 아니라 그와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하는 건 늘 정치적인 영웅에 가려지는 우리의 일상이다. 뭔가 석연치 않은 게 있어서 그런지 자꾸만 영화 <기억의 밤> 이 떠나지 않는다. 주변에 한국영화를 본 사람도 없고 특히 기억의 밤을 본 사람을 찾기 어려워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영화 봤는지, 어땠는지 물어봤다가 영화 후졌다는 소리만.. 

 

감독은 왜 범인의 기억을 1997년에서 찾으려고 했을까. 우연일까. 영화 개봉과 20년이라는 시간차를 만들려다보니 그랬을까. 글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확신이 몇 개 있는데, 영화에서 굳이 1997년 뉴스 한 장면, 기억할 만 뉴스를 보여주는 것도 시간 배경을 설득하는 데 중요한 장치니까 뉴스 따위 무시해도 된다 치자. 그런데 , 후반에 주인공 진석(강하늘)이 돈을 구하기 위해 장기매매를 하러 간 곳에서 매매업자의 입을 통해 '나라가 망했다잖아!" 라는 대사를 들려준다. 최면에서 깨어난 주인공의 시간이 2017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또 등장하는 텔레비젼 뉴스,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국빈 대접을 받는다는 장면에서 나는 이 장면에서 정말 어이 없어서, 빵 터졌다. 나라는 20년 동안 또 다시 눈부시다 못해 다이나믹한 변화와 함께 급기야 '미국'에 가서 대통령이 국빈 대접을 받게 되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통은? 1997년 이후 뭐 달라진 거 있어? 여전히 아비귀환 속에서 각자도생만이 해법이라는데.

 

<기억의 밤>이 좀 완성도에서 떨어지는 것도 없지 않지만, 20년 전 그 사건은 우리에게 끝나지 않은, 챕터 넘길 때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닐지. 어쩌면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 보고 싶지 않은 것 일수도 있겠다.

 

덧.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친구들은 너는 (아니, 니네 집은) IMF 랑 상관 없었잖냐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이다. 울 아브지는 98년에 이미 60세를 넘기신, 사업쟁이였고 정년을 맞기 무섭게 현장에서 은퇴 후 노년까지 빵빵하게 잘 챙겨두셨었다. 하지만 가깝게는 친구들, 멀게는 매일 쏟아지는 무서운 뉴스들- 자살, 일가족 동반 자살- 등과 같은 뉴스를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소심한) 나에게는 IMF 는 무서운 일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먼저 죽이고 자신도 죽었다는 뉴스, 그것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그랬다는 설명까지. 심지어 텔레비젼에서 국민 금모으기 운동까지! 이런 거, 국사 책에서 보던 건데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게, 모두가 흥청망청하고 모든 게 풍요로워 모두가 부자, 하다못해 신도시 개발 후 땅부자들 마저 넘치던 90년대 끝자락에 보란듯이(?) 기다리고 있던 가정 파탄과 사람들의 몰락. 무서웠다. 부모님들이 들려주던 5-60년대의 가난의 시대가 돌아오는건 지, 가끔은 김정일이 쳐 들어오려나, 그런 망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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