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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사람들이 집에 와서 내가 한 밥먹고 와인이랑 맥주랑 들고 온 것 다 마시고, 수다떨고 돌아갔다. 나는 아홉명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나 빼고 아홉명이었던거고, 막상 다른 동료들이 폴란드에서 새로 온 포닥언니랑 중국 학교에 갔던 포닥이 추가되서 무려 열 한명, 나 빼고. 태어나서 열 두명이 먹을 밥은 오늘 처음 해봤다. 밥 물 맞추는데 조마조마했지만 밥은 잘 되었고, 잡채도 생각보다 간이 잘 맞았다.
함께 밥을 먹는 행위가 인류학적이나 사회학적으로도 인간의 사회생활 중에 하나이긴할텐데, 영국 출신이거나 유럽 다른나라에서 온 동료들이나 나와 같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나 모두 객지생활하기는 마찬가지인지 모르지만 먹고죽자계를 한번씩 집에서 집밥 먹는걸로 하는건 잘한 것 같다.
나를 버티게하는 것, 나를 살아가는데 힘 안들이게 하는 것, 그것은 지구 밖의 우주가 아니라, 비록 나는 그것을 동경 할 수는 있겠지만, 나를 사는 줄도 모르게 살게 하는 것, 그것은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고맙다. 오래오래 기억해두자. 오월, 토요일 밤의 집을 꽉 채웠던 온기를 그리고 마당에서 담배 꼬라물고 밤하늘 올려다보며 킥킥거렸던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처음 보는 사람이랑 밥먹고 수다 떠는것, 자꾸 하니까 그런지, 이것도 할 말하네? 음. 나이 들어서 그런건가?!
딱히 주말과 주중 생활이 다를 것이 없는 비루한 원생에게도 때로 주말이 남다를 때가 있다. 이번 주말 내내 만사 작파하고 침대에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놀았다. 알라딘에 전자책 뷰어가 있길래 들여다보다가 마침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석유의 진실',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홍세화 편), '기자 편집된 진실을 말하다', 그리고 '지식의 권유' 가 눈에 띄길래 내려받았다. 홍세화의 책파일은 1700원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파일의 가격도 출판된 시기가 오래된 것일수록 다소 낮아지는 듯했다. 오랜만에 한글책을 읽는 희열을 느끼기도 전에 전자책 뷰어의 기능이 너무 형편 없어서 책을 보다가 엄한 판데기를 집어던지기 않기 위해 인내가 필요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제 체육관에서 뮤직비디오 두개를 보고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뛸 수가 없었다. 하나는 Katty Perry 의 Part of me 이고 다른 하나는 Swedish mafia house 의 Greyhoud 이다. 그레이하운드를 보면서는 이런 세상이 오기 전에 이쁘고 정갈한 할머니고 뭐고간에 죽기로 결심했다. Katty 의 뮤직비디오는 인간에게 실연의 배신이 도대체 얼마나 깊었으면 저렇게 무서운 상상을 육화시킬 수 있는지 소름이 돋았다.
어젯밤에 남한 영화 '댄싱퀸'을 보았다. 이것에 대해 밤늦게 뭔가 쓰려고 꼼지락거리다가 그만 두었다. 아니, 쓰긴 했는데 비공개로 남겨두었다. 영화가 남기려 애를 쓴 중년불패, 라든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 라는 이런 달착지근한 선동질이 과연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과 뭐가 다르겠냐. 영화보는 동안 한바탕 웃고 울었으니 족하다.
자신에게 꼭 맞는 빤스를 입었을 때처럼, 몸의 부자연스러움이 사라진 후 오는 정서의 안정감,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 빤스로 귀결을 했다. 내가 입은 내 몸에 맞는 빤스는 내가 좋을 뿐 결코 밖으로 꺼내 보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싫은 것 혹은 불편한 것도 그러할 것이라고. 정 못 입고 있겠으면 벗어 던지고 노빤스로 살아야 하겠지만, 그런데 노빤스로 살 수 없는게 이 시대를 사는 인간의 형편 아닌가, 그렇게 교육을 받아 버렸으니까. 딱하다.
빤스던 밥이던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인간의 삶은 척박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미 이 세계가 그렇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다시말해, 생존이 삶의 버팀목이 아니라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 세계에 사는 인간에게 꿈을 포기하지마세요, 접시를 깨고 집 밖으로 나오세요 라는 선동질, 그게 옳은 것일까?! 접시깨고 집 밖으로 꿈을 찾아 나가면 키우던 소는 누가 키우나?
국가가 아니면 사회가 대형 농장을 마련해주기라도 할 셈인가? 이런 시스템이 바로 미친소를 만들어내는거 아닌가 싶기도하다. 아무도 책임 안지면 미친소가 먼저 나오는거지, 미친소먹고 병에 걸리는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그런 프레임을 어쩌면 영화 댄싱퀸 감독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무능력한 인권 변호사 남편은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시장으로, 아내는 접시를 깨고 무대로 뛰어 오르는 인간으로 육화 시킨 거 아닐까. 암튼 댄싱퀸은 뭔가 더 코믹했어야했는데 코믹하려다 급진지해진 통에 망했다. 이 시나리오를 장진이 만들었으면 기가 막히게 따먹었을텐데, 장진이 공부 좀 하면 좀 좋을텐데 말이다. 암튼 주말 끝.
아, 장진이 근래 퀴즈왕 이라는 영화를 만들어냈던데 무지 진지하다. 그래서 엄청 웃기다. 웃고나면 기분 나뻐지는게 좀 흠이긴하다. 개인적으로는 장진이 주는 웃음의 포인트를 좋아한다. 장진이 공부를 하다 말아서 안타깝지만, 뭐 그것도 그 사람 깜냥이려니 한다. 공부라는게 제도권 교육을 말하는게 아니라 세계를 통찰하는 내공일텐데 좀 더 가다듬었더라면 박찬욱 따위보다 더 훌륭한 부조리 영화감독이 남한에서도 하나 나올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그런데 공부 안하고도 지 멋대로 본대로 잘 만들어내는 재주가 더 탁월한걸테니까, 정제되고 반질반질한게 반드시 탁월한 것만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하나는 댄싱 퀸 이고 하나는 퀴즈 왕이고만. 아무튼 댄싱퀸이나 퀴즈왕, 두 영화 모두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적적하실때들 보시라.
"마르크스는 경제와 문화 사이의 인과적 관계를 폭로했다. 우리에게서 중요한 것은 표현이란 실마리이다. 문화가 어떻게 경제에서 기원하는가가 아니라 문화 속에서 경제가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설명해야만한다. 달리 말하면 쟁점이 되는 것은 경제 과정을 지각할 수 있는 원-현상(Ur-phenomenon) 으로 파악하려고 시도하는데 있다. 이 원-현상으로부터 아케이드에서 벌어지는 모든 삶 (따라서 19세기에 벌어지는 모든 삶)에 대한 설명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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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기원을 찾는 일은 우리가 핑계김에 저지르기 쉬운 흔한 해법 중 하나인데, 이걸 하지말라니 '다소' 낭패스럽군.
어젯밤에 이런저런 잡일을 하다가 창 밖으로 날이 훤히 새는 걸 보고 잠깐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가 꿈을 꾸고 킥킥거리는 내 웃음소리에 깼다. 엄마 꿈을 꾸었다. 엄마가 뭐라뭐라는데 웃겨서 킥킥거리고 웃다가 초방정스럽게 깨고 말았다. 4월 중순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춥기도하고 비바람까지 몰아쳤지만, 아침에 내가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를 듣고 깼다는게 우습다는 생각에 종일 킥킥거리고 다녔다. 엄마를 닮았더라면 정갈하고 예쁜 할므니가 될 확률이 더 높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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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분하고 나니,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어렵고, 또 그래서 의미있는 작업일 것 같군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