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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노조, 모든 대형마트 노동자들과 함께할 날 꿈꿔요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5/04/23 15:30
  • 수정일
    2015/04/23 15:32
  • 글쓴이
    nixcool
  • 응답 RSS

 

홈플러스노조, 모든 대형마트 노동자들과 함께할 날 꿈꿔요

김기완 홈플러스 노동조합 위원장 인터뷰

  • 인터뷰, 정리 김유미 오늘보다편집실 기획국장
  • 만난사람 김기완 홈플러스노동조합 위원장
 
 
대형마트는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공간이 되었지만 막상 그곳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의 대형마트는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빅3’ 체제다. 이 ‘빅3’가 전국 500여 개 대형마트 매장 중 80퍼센트 이상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 홈플러스는 유일한 외국계 회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월마트나 까르푸는 한국 대형마트 시장 장악에 실패했는데 홈플러스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셈이다.

사실 홈플러스의 처음 시작은 삼성물산이 테스코(영국 기업인 테스코는 월마트, 까르푸와 함께 세계 3대 마트다)와 5:5 합작을 통해 만든 회사이다. 그런데 이후에 모든 지분이 테스코 쪽으로 넘어갔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김기완 위원장은 “아직도 국내엔 삼성이 관계있는 회사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영국 회사에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삼성물산이 처음 시작을 했기 때문에 회사의 경영진이나 고위 임원들은 99퍼센트 삼성 출신이고 기업 문화나 분위기가 삼성과 비슷한 군대식이다. 김기완 위원장에 따르면 “돈을 경쟁업체보다 더 주고 죽도록 부려먹는 게 삼성인데 여긴[홈플러스] 돈도 많이 안 주면서 죽도록 부려먹는 거만 똑같”은 회사다.
 

다양하고 복잡한 고용관계

하나의 홈플러스 매장에는 보통 800명에서 1000명 정도의 노동자가 일을 한다. 그중 5퍼센트만 정규직이고, 20퍼센트가 홈플러스 직접고용 비정규직(무기계약직, 단기계약직)이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처음에는 아르바이트 및 단기 계약을 통해 입사하고, 2년 후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시스템이다. 

“무기계약직이 되기 전 2년 동안 제가 계약서를 다섯 번 갱신했어요. 처음에 한 달, 그 다음에 3개월, 6개월, 6개월, 이런 식으로요. 불만이 있거나 통제가 잘 안 되는 사람 걸러내는 장치죠. 노동자들이 내 계약 기간이 끝나가면 엄청 불안해하고, 상사가 부당한 요구를 해도 안 들어줄 수 없어요.”

나머지 75퍼센트는 협력업체 직원으로 다양한 계약 형태로 일하고 있다. “우리가 마트에 가면 동원, 농심, CJ 이런 옷을 입고 시식하거나 상품을 진열하는 분들이 다 그 회사에서 파견된 분들이에요. 주차, 카트, 보안, 환경 업무는 이미 예전에 도급화가 되어 있고요. 다음으로 입점업체가 있는데 여기서 일하는 분들도 자기가 소사장인 경우, 프랜차이즈 업체의 점주, 아르바이트생까지 다양한 경우가 있죠.”

한 회사 안에 정규직,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등이 있는 것이 당연한 시대지만, 그런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어마어마하게 다양하고 복잡한 고용조건의 노동자들이 있는 셈이다. 2013년 3월에 만들어진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우선 25퍼센트에 해당하는 홈플러스 직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전략을 택했다. 
 

대형마트를 움직이는 사람들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어떤 근무 환경 속에서 일을 할까? 홈플러스 영등포점 물류코너에서 일했던 김기완 위원장은 대부분의 마트 노동자들이 오픈조와 마감조로 나뉘어 교대 근무를 한다고 말했다. “제가 일했던 부서는 오픈조 아침 6시 출근, 마감조 오후 2시 반 출근해서 11시 퇴근했거든요. 이 스케줄이 일주일이나 한 달 단위가 아니고 막 뒤섞여 있어요. 일주일 안에도 오픈, 오픈, 쉬고, 마감, 마감, 이런 식으로. 재수 없으면 오늘 마감을 했는데 내일 오픈이다, 이러면 집에를 못가고 매장에서 잔다거나 근처 찜질방에서 잠깐 잔다거나 그러기도 하고요. 공장이나 이런 곳과 다르게 뒤죽박죽이다 보니까 생활 리듬이 깨져요. 같이 일하는 젊은 친구들한테 쉬는 날 뭐 하냐 그러면 ‘자야죠’ 그래요.”

교대조가 제멋대로일 뿐만 아니라 연장 근무도 많았다. 노동자들은 마치 ‘법이 없는 것처럼’ 연장수당을 전혀 받지 못한 채로 연장을 뛰었다. 명절 전이나 재고조사 기간에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무거운 물건도 많고, 거대한 매장 안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니다보면 다치는 일도 많았지만 병가를 쓰지 못해 연차를 쓰거나 퇴사를 해야 했다. 

노동시간과 강도 못지않게 홈플러스 노동자들을 괴롭게 했던 것은 관리자와 고객들의 폭언, 인격적인 모욕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무전기로 업무 지시를 하는 정규직 관리자들은 대다수가 막말을 쏟아냈고, “이 새끼, 저 새끼” 정도는 예사인 분위기였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직원들에게 욕을 퍼붓는 고객들이 많지만, 일선에 있는 노동자들은 무조건 그 요구를 들어주거나 문제가 생기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 스트레스도 심했다. 
 

비밀리에 노조를 준비하다

어떤 이의나 불만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를 뚫고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은 철저한 준비의 결과물이었다. “동료 몇이랑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학교는 공부 잘하면 장땡인데 회사는 일하는 곳이잖아요. 무조건 일을 잘해야 먹어주니까, 일을 제일 잘하는 사람 중에서 평판이 좋고, 이런 사람들부터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김기완 위원장과 동료들은 산악회, 영화, 야구 등 회사의 각종 동아리를 통해 계산대, 진열, 판매 등 다른 부서의 노동자들까지 만나며 관계를 넓혀 갔다.

추석 직전의 ‘태업’은 노동자들이 집단행동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류에 14명 있다가 명절 앞두고 갑자기 10명으로 줄었어요. 사람이 당연히 더 와야 되는데 회사는 안 뽑아준다고 하고.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이번 추석에 죽었다. 나 그만둬야겠다’고 하는데 그만두지 말라고 술 먹으며 한 달 내내 설득을 해가지고 ‘티 안 나게 태업을 하자’고 했어요. 운동장만한 물류 입고장이 있는데 여기가 물류로 가득 찰 때까지 일이 밀린 거죠. 그렇게 태업을 보름쯤 하니 진짜 엉망이 됐어요. 그러니까 회사에 비상이 걸려서 점장, 부점장들이 와서 같이 현장에서 일하고, 다음 명절부터는 말 안 해도 필요한 인원이 쭉 뽑히게 됐죠.”

물류 직원들은 이 경험을 통해 ‘우리가 뭉치면 바뀌는구나. 말로 해선 안 되는구나’를 느꼈다. 비밀리에 이 얘기를 전해들은 타 부서 노동자들 사이에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굳은 마음을 확인한 10명 남짓의 사람이 노조 설립 6개월 전에 북한산에 모였다. 김기완 위원장은 이 날의 약속을 ‘북한산 결의’라고 불렀다. “잘릴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누군가는 말을 해야 부당한 게 바뀔 테니 한 번 해 보자. 눈물을 흘리면서 같이 결의를 하고, 사람을 찾아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조직을 시작한 거죠.”

매장 내 3000개에 달하는 CCTV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이들은 매장 안에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매장에서 떨어진 식당이나 찻집에서 의논을 하는 ‘007작전’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3월, ‘홈플러스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한다. 노동조합은 설립과 함께 지난 몇 달 동안 연장 근무를 했는데 회사가 수당을 주지 않았다는 기록을 모아 법원에 소송을 하고, 무급 연장, 부당한 노동지시, 감정노동 해결을 ‘3대 요구’로 내세우며 홈플러스의 변화를 촉구했다. 
 

전국에 흩어진 노동자들의 호응

영등포점에서 시작한 홈플러스 노동조합의 최대 고민은 전국 100개가 넘는 매장의 홈플러스 노동자들을 만나는 문제였다. 개인적인 인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고민 끝에 스마트폰으로 접속해서 쉽게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평소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이 카카오톡 단체 그룹이나 메시지로 빠르게 소통하는 것을 눈여겨봤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스마트폰을 통해 며칠만에 300명이 가입한 것이다.

김기완 위원장은 초기에 빠른 조직 확대가 가능했던 이유가 세 가지라고 말한다. “첫째, 노동조합이 있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폭발 직전에 있었다고 봐요. 워낙 불합리한 일들이 많으니 왜 우리 회사는 노조가 없지? 이런 요구들이 끓어 넘치고 있었어요. 두 번째는 노동조합이 내건 무급 연장, 부당 행위, 감정 노동이란 문제가 현장 요구와 정확히 맞아 떨어진 거죠. 너무나 하고 싶었던 얘기를 노조가 하니까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을 시작하는구나’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거죠. 마지막으로는 노동자가 너무 많으니까, 직영 노동자만 (전국에) 2만 명이거든요. 어느 집단에 가더라도 100명 중에 한두 명은 정의감이 있는 분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이런 분들이 앞의 두 이유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가입하신 거다. 이렇게 봅니다.”
 

생애 첫 투쟁

마지못해 교섭에 나온 회사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노동조합의 요구 중 어떤 것도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김기완 위원장은 “교섭 경과를 알리는 최소한의 게시판을 설치하라는 데에도 ‘왜 만들어야 되냐. 카톡방 있지 않냐,’ 불합리한 업무지시 문제에 대해선 ‘노조가 일부 일을 전체 일처럼 침소봉대한다’는 식이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교섭만으로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투쟁을 하려고 보니 막막했다. 이때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13개 지부가 세워지고 1000여 명의 조합원이 있는 상태였지만 지부장과 임원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아직 비공개 상태였고 파업이라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합리적으로 이야기하면 회사가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태도도 이해가 안 가고 당황스러운 거죠.”

노동조합 위원장이 내놓은 공식적인 쟁의지침 1호는 “크리스마스이브 날 전 조합원이 등벽보를 부착하고 일한다”는 것이었다. “회사의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비밀 조합원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날인 거죠. ‘언니 나는 못 한다’며 울고 다 난리 났어요. 그래도 서로서로 다독이면서, 마음 모아서 뭐라도 해야 바뀐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이 되면서 투쟁에 나서게 된 거죠. 회사는 깜짝 놀랐어요. 조합원이 1000명이란 걸 믿지 않았는데 진짜 1000명이 등벽보를 붙이고 일한 거예요. 고객들도 이색적인 장면이니까 많이 물어보고 격려해 주셨어요.”
 

파업과 극적인 타결

12월 31일 부산과 울산 조합원들이 첫 파업을 했다. “하던 일을 놓고 일자리를 벗어난다는 거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는데, 서로를 믿고 하게 된 거죠. 모이자마자 서로 얼굴을 보고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고, 매장 안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그랬죠.”

파업을 하면 큰 일이 날 줄 알았는데 합법적인 쟁의행위다 보니 다음날 출근해도 아무 일이 없었다. 파업이 당연한 우리 권리 중 하나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했는데도 회사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1월 9일에 모두 다 총파업을 하고 본사 앞에 1000명이 모이자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단체버스 계약하고, 집회 준비도 다 하고, 버스에서 먹을 떡 맞추고, 서울 춥다니까 외투 사고, 남편한테 얘기하고, 집집마다 난리가 났을 거잖아요? 근데 그날 새벽 1시에 극적으로 타결이 됐어요.”

12월 24일부터 1월 9일까지, 실제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쟁의 기간은 2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기완 위원장은 “우리 조합원들에게는 2개월이나 2년 같았다”고 말한다. 

“[홈플러스가 창립된 후] 14년 동안 한 마디도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살았는데, 우리 당연한 권리 우리가 찾자고,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너무나 행복해하면서 그렇게 했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서로가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시간들이었어요.”
 

초기 투쟁의 전략

노조를 탈퇴하라는 회유와 협박, 파업에 이은 집단해고, 손배가압류, 장기투쟁 등이 하도 일상적인 시대를 살다보니 홈플러스 노조의 첫 파업과 승리의 경험이 이례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2만여 명에 달하는 전체 홈플러스 직영 노동자 중 단협 체결 당시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의 비율이 5퍼센트(100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의아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우선 홈플러스가 노조를 탄압하기 어려운 객관적인 조건이 있었다. “당시 이마트의 불법적인 사찰, 노조 탄압 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때였어요. 때문에 유통업계 전반의 부담, 여론에 대한 부담이 회사 측에 분명히 있었죠.”

또한 노조 설립과 동시에 사회적 정당성을 얻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교섭기간 중 추석 명절이 있었는데, 그때 홈플러스 노조는 ‘추석연휴 불법행위 감시단’을 꾸려 언론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명절에 관행적으로 있던 상품권 및 상품 강매, 불법적 연장근무, 연장수당 미지급을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단체협약의 요구들도 법을 지키고 회사의 규정을 지키라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었다. 김기완 위원장은 “힘이 부족하고 노동조합 초기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이런 선택을 한 측면이 있죠. 적은 힘으로 싸워서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꾸자고 제안을 드렸어요”라고 말했다. 현장에 높은 공감대가 있고, 당연히 지켜야 하는 규정들에 근거한 요구가 사회적 쟁점이 되었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개선하겠으니 언론에 좀 알리지 말아 달라’는 포지션밖에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마트 조직화가 필요해

현재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107개 매장 중 43개 매장에 지부를 세웠으며, 지속적으로 확장을 위한 모색을 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는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주력해 왔지만 앞으로는 홈플러스 말단 정규직들이 겪는 임금 및 노동조건 문제들도 교섭 과정에서 주요하게 다룰 생각이라 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마트, 롯데마트 등 다른 대형마트에도 노동조합이 만들어져야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나아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빅3가 경쟁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홈플러스만 두드러진 변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거든요. 서로 다른 회사를 핑계를 대면서 안 바꾸기 때문에. 그래서 마트 노동자들 전체가 연대해서 싸울 수 있는 마트 노조를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2014년 7월부터 10월 말까지 이어진 임금 투쟁을 하며 조합원들은 ‘마트 노동자들의 단결 없이 임금 인상은 어렵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홈플러스 혼자 박 터지게 싸운다고 안 되더라고요. 우리 교섭 과정에서 다른 두 마트의 기준시급이 나왔는데 그 이상은 절대 못 준다는 거예요. 자본은 이미 담합을 하고 교섭에 임하는데, 마트 노조를 만들어 다 같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조합원들과 공유했죠.”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함께할 틀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소속 산별노조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함께 ‘마트노조’를 준비 중이다. 마트노조는 서비스연맹 내의 소산별 노동조합 같은 형식이 될 것이다. 이 전략은 전체 마트 노동자의 75퍼센트에 달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의 노조 가입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협력업체 분들도 노동조합을 하고 싶어 하세요. 불법 연장, 부당한 업무지시 거부 등의 문제가 해결되면 같이 영향을 받으니 노조 활동을 환영하시고, 조건이 된다면 같이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이처럼 요구가 있는데도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가입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이 분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책임지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처지가 어떠냐면, A마트에서 일하다 말단 관리직이 ‘이 분 마음에 안 드네’ 하고 계약이 된 업체에 전화를 한 통 해요. 그럼 이 분은 B마트로 발령이 나요. A가 홈플러스고 B가 롯데마트다 하면 여긴 노조가 있는데, 저긴 없잖아요. 홈플러스 노조가 이 사람을 책임질 수가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전체 마트를 관장할 수 있는 틀, 그리고 이 분의 고용과 활동을 책임질 수 있는 노동조합의 기반과 힘이 있어야 되는 거죠.”
 

 

더 큰 단결을 위해

출범 2년을 맞은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혼자만 잘 사는 길은 없다. 더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끊임없는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기업별 노조가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활동하는 데에서 오는 장점, 한 회사의 동료라는 소속감, 이런 것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러나 이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같은 직종,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봐요. 가장 어려운 건 자기 벽을 스스로 허무는 거죠. 어쨌든 경쟁업체 노동자들인데 동료라고 생각해볼 계기가 없죠. 그런데 지금 노조 활동을 하면서 홈플러스 조합원들은 이마트든 롯데마트든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다 동료라 생각하고, 우리 동네에 다른 마트 지부가 생기면 너무 기뻐하고, 그런 마음이거든요. 같은 노동자란 걸 체험적으로 겪어가고 계시다고 봐요. 인식도 그렇지만 공동의제를 모으고 공동행동을 하고, 자본이 그 공동의 요구에 반응하도록 강제하는 과정은, 쉽지 않은 과정이겠죠. 준비할 게 많이 있죠.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겪겠지만 이걸 해야만 바뀐다는 신념 같은 무언가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
 

 출처 : http://todayboda.net/article/6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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