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돌민

[펌] 인지과학 서론 [1]

[6/23] 만만한 출판기획 일부분 발제문입니다.

[20120623_만만한 출판기획 일부분 발제문.hwp (10.52 KB) 다운받기]

 

------

 

출판하라 세미나 ∥ 20120623 ∥ 돌민
이홍,『만만한 출판기획』,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8


1. 기획출판, 왜 사고뭉치가 되어가는가?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이다. 책을 쓰는 것도 사람이고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기획출판이 올바fms 길을 가려면 사람에게 필요한 가치와 진실이 무엇인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티켓 파워를 가진 이미지’를 만드는 게 기획이 아니다.”

 

 운동권이 된 것은 “전태일 평전”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겨울 전철 좌석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다 주르륵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태일은 얼마나 다리가 아팠을까요? 자신의 차비를 털어, 점심을 굶는 직장 동료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거리의 집까지 걸어가면 말입니다.
 운동에 삶을 건 것은 ‘정면돌파’ 때문이었습니다. “맑스주의 운동 부흥의 불씨가 민중회의 운동 속에 담겨 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희망을 지키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사람입니다. 책을 쓰는 것도 사람이고 만드는 것도 사람입니다.
 맑스가 좋아했던 말이 “모든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2.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세 가지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지금 당장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꺼내놓고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해보자. 이것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답을 찾지 못해도 좋다. 바보들은 고민하지 않는다. 바보가 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스럽다.”

 

 얼마 전 고(故) 신효순 심미선 씨 10주기에 갔다가, 어느 국회의원이 진보를 주제로 연설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반성했습니다. 매향리대책위원회 활동, 고 신효순 심미선 씨 장갑차 압사 사건, 그리고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운동을 하는 동안 내가 저 국회의원보다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그 순간, 그 국회의원이 진보라는 단어를 말하려는 그 순간, 30여 초 정도였지만 스피커가 나갔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 출판하라 세미나 검색 자료들입니다.

저작권법의 탄생

출처 : http://theology.co.kr/wwwb/CrazyWWWBoard.cgi?db=koreabank&mode=read&num=374&page=5&ftype=6&fval=&backdepth=1

 

[founders.pdf (152.28 KB) 다운받기]

 

------

 

저작권을 둘러싼 쟁점들 : copyright? copywrong

출처 : http://www.kccs.or.kr/news/25932

 

2009년 동계 문화사회아카데미 강의록 입니다

저작권을 둘러싼 쟁점들 : Copyright? copywrong!



자료집 차례



제1강자료1 구텐베르크 신화 : 창작자의 권리와 집합지성
       자료2지식생태계에 꽃핀 생각의 나무: '지식공유보다 저작권이' 우위에 있을까?
                                 / 신승철(홍익대 강사)------------------------------------------------ 1


제2강 저작권의 역사적 형성
                                  / 민호(문화사회연구소 간사)---------------------------------------- 19


제3강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권 문제
                                / 오병일(정보공유연대IPleft 운영위원)-------------------------------- 49


제4강대안은 수없이 많다 : 해커 공동체에서 정보공유 문화까지
                                / 조동원(미디어 활동가, 연구자)-------------------------------------- 65

 

[자료집 - 저작권을둘러싼쟁점들.pdf (2.00 MB) 다운받기]

 

------

 

올리브 올리버를 아십니까?

출처 :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25.html

 

 

고려대·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들, 대학 도서관 전면 개방운동 벌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병으로 앓아눕는다. 부모는 아이의 병이 지독한 희귀병이며 아직까지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불치병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부모는 절망하지 않는다.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아들의 병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 미친 듯이 읽고, 수소문하고, 실험을 한 끝에 마침내 치료약을 발명한다. 의학 지식이 없던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위대한 치료약을 발명해낸, 이 영화 <로렌조 오일>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대학의 본래적 공공성을 위하여”

 

 

 
 
» 사진/ 바코드 인식기로 학내와 학외를 구분해 자신들만의 배타적 공간으로 독점하는 대학도서관을 개방하자는 운동이 한창이다. 사진은 고려대 중앙도서관 입구.

 

 
 
 
그러나 이 실화는, 상당한 양의 장서를 모아놓은 도서관을 어느 지역에서라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이 갖춰진 사회에서나 실현 가능한 얘기다. 대한민국이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주요 지역과 지방마다 한개 이상씩 있는 대학 도서관을 일반 시민들도 이용할 수만 있다면 그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다. 그러나 ‘거대한 고시원’처럼 운용되고 있는 대학 도서관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로렌조 오일>의 얘기는 다시 먼 나라 얘기가 된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고려대와 이화여대 재학생들과 졸업생 일부가 대학 재학생과 학교 당국에 의해 폐쇄적으로 독점돼 있는 대학 도서관을 지역 주민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하자는 운동을 벌여 눈길을 끌고 있다. 고려대 ‘올리브’(OLIB: Open Library의 줄임말) 운동과 이화여대 ‘올리버’(OLIBER: Open Library with Her) 운동이 그것이다.


올리브 프로젝트에는 고려대 자치모임들인 ‘불한당’, ‘생활도서관’, ‘장애인권위원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대학이 독점적으로 확보해왔던 지식과 정보를 사회에 환원해야 하며, 이 일환으로 대학 도서관의 완고한 장벽을 철폐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자격조건을 두지 말고 모든 이들에게 도서관 전면 개방 △이용 시민들에게 자료 개방과 함께 대출 제도도 마련 △충분한 열람공간 확보 △장애인 이용정책 획기적 개선 등을 꼽고 있다.

올리브 프로젝트는 지난 5월31일 오후 고려대 학생회관 생활도서관에서 ‘대학도서관 개방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이민준(21·경제3)씨는 이 운동이 자칫 대학의 여유공간을 일반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시혜적인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 운동은 이제까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했던 대학의 본래적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라며 “고급 정보와 지식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시민들에게 정보를 환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를 통해 대학의 교직원뿐 아니라 학내의 비정규직 노동자에서부터 여성, 장애인, 성적 소수자, 노동자 등 사회적·문화적 소수자를 비롯해 수많은 지역 주민들까지 대학 도서관을 함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공성의 회복이라는 목표와 관련해 이들은 대학 도서관이 대학 구성원들의 돈과 노력만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즉, 국가가 국립대학은 물론 사립대학 도서관에도 매년 상당한 액수(고려대의 경우 10억원 안팎)를 지원하고, 대학 전체에도 막대한 국가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대학이 지닌 공익적 기능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대학 도서관에 집적된 엄청난 양의 지식은 특수한 계층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도록 돼 있어 사회적 불평등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 사진/ 열람식 위주로 운용되는 대학도서관은 독서실이나 고시원 기능만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왼쪽). 5월31일 고려대의 대학도서관 개방 간담회 모습.
 
 
 

 

재학생들 반대에 부닥쳐

 

이들은 또 대학 도서관의 개방이 공교육 정상화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임윤희(30·졸업생)씨는 “대학 도서관을 중심으로 평생교육이 이뤄지면 도서관에 쌓이는 최신의 정보와 지식을 지속적으로 습득할 수 있어 진정한 의미의 자기교육이 가능하게 된다”며 “캐나다 도서관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지역사회에 밀착해 새로운 정보와 문화를 일상적으로 창출하는 구실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확보하는 것도 이 운동의 주요한 목표다. 고려대 도서관의 경우 장애인 학생의 열람석을 왜소하게 구분해놓는 등 장애인의 도서관 이용이 외면당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화여대의 올리버 운동은 ‘지역여성과 함께하는 대학 도서관 만들기’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정보접근권에서 소외되고 있는 여성의 문제가 작게는 개인의 자아실현에서 시작해 넓게는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져 여성의 주변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김하나(22·철학4)씨는 “대학 도서관이 특별히 여성에게 개방되어야 하는 이유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며 “이화여대 도서관을 한국 최초의 여성도서관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들은 특히 전업주부 등 지역 여성들이 대학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간이 탁아소나 기저귀대, 수유공간 등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두 대학의 선도적 운동에 대해 송덕여고 이덕주(36·전교조 학교도서관 분과) 교사는 “우리나라 도서관의 경우 대학 도서관처럼 소수 엘리트를 위한 서비스가 비교적 잘돼 있는 반면, 시민들의 정보접근은 무척 불편한 것이 현실”이라며 “대학 구성원들에게 도서관의 본뜻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이들 운동은 무척 소중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올리브·올리버 운동은 내부 대학 구성원들, 특히 재학생들의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우리 공부할 자리도 부족한데 무슨 개방이냐”는 다소 감정적인 반응이 그것이다. 고시 공부나 학과 시험에 대비한 독서실로 운용되는 현재의 대학도서관 시스템으로 보면 재학생들의 이같은 볼멘소리는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올리브·올리버 운동 주체들은 “열람실의 확충과 개방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기보다는 동시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한다.

어쨌든 “우물은 더 많은 사람들이 퍼내어 쓸 때 더 많아지고 깨끗해지듯이 대학도서관에 모여 있는 지식과 정보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때 질적 수준도 높아지고 그 총량도 확대될 수 있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의 메아리를 확보할지 지켜볼 일이다.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관련기사
 
 
 
 
대학 도서관 개방은 대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 임금 노동과 자본

[4/28]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조정환 엮음, 갈무리, 2012)과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갈무리, 2011)를 읽고

[20120428_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과 캘리번과 마녀를 읽고.hwp (14.99 KB) 다운받기]

 

------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조정환 엮음, 갈무리, 2012)과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갈무리, 2011)를 읽고
dolmin98@hanmail.net 돌민


1.

 

 이 글은 다중지성의 정원 성/자본주의/정치 세미나팀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갈무리, 2011) 세미나의 마지막 시간 “캘리번과 마녀” 서평 공유용으로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조정환 엮음, 갈무리, 2012)과 “캘리번과 마녀”에 대한 노트를 하게 되었다. 양해를 부탁한다.

 

2.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을 읽고

 

 참고로, 2012년 4월 14일 토요일 오후에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열린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 출간 기념 강연회 원자력과 인지자본주의 강연 스케치로 시작해 보자. 이날 강연회 강연자로 나선 엮은이 조정환은 앞으로의 문제가 1 반핵운동과 노동운동, 2 후쿠시마현 주민들의 태도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1의 문제는 1′ 반핵운동과 고용안정의 문제이고 2의 문제는 2′ 반핵 운동이 방사능의 위험성을 계속 강조하는 반면에 주민들이 그렇게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냐며 오히려 방사능이 안 해롭다고 주장하는 문제이다.
 이렇게 강연을 시작한 조정환은 강연의 중간을 1 3·11 이후의 원자력 즉 사고로서의 후쿠시마, 2 무기로서의 원자력, 3 산업으로서의 원자력으로 그런데 이 3가지 측면을 하나로 해서 채웠다.
 먼저 원자력을 개관했는데, 그 개관에서 이른바 1954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비판이 날카로웠다. 평화적이라는 말이 원자력의 비평화적 이용과 평화적 이용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비평화적 이용과 다른, 문제가 없는 것이라는 인상을 풍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날카로움은 3·11 이후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사고 수습 과정에서 자위대의 위상을 재고하여 국민국가 재강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에서도 이어졌다. 이에 더하여 원자력 자체가 통제적임을 잊지 말자고 주장했다. 원자력 발전소는 그 자체가 군사시설에 준하는 보안 시설인 것은 물론 원자력 내부에서부터 외부에서까지 노동자가 자기 경험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감시 체제를 처음부터 수반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지자본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이라며 후쿠시마와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통찰을 선보였다. 사용되든 사용되지 않았든 핵은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라며 공포를 통한 지배의 문제를 제기했다. 발전소에 대한 감시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천연자원과 대비하며 인지자본주의 시대 유도에너지로서의 원자력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끝으로 순수에너지 차원에서 제기되는 주류 반핵 운동의 대안 에너지 논의 그것만으로는 에너지와 통제로서의 원자력의 의미를 놓칠 수가 있다는 비판으로 조정환은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후 이날 강연은 질의 응답으로 이어졌는데, 이 질의 응답도 내가 보기엔 크게 보아 원자력과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2011년 혁명, 후쿠시마, 그리고 인지자본주에 대한 질의 응답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난 후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의 미덕이라고 생각된 점은 긴장이다. 책 표지의 제목 아래 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에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
 죽음의 바람인가 사랑의 바람인가
 재앙의 바람인가 혁명의 바람인가
 지역의 바람인가 지구의 바람인가”

 

3. “캘리번과 마녀”를 읽고

 

 끝으로, 캘리번과 마녀의 의미에 대해서 지은이인 실비아 페데리치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일부를 인용한다.

 “약 30년에 걸쳐 완성된 『캘리번과 마녀』는 원래 여성해방 운동에,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운동을 촉발시킨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에 저항하는 투쟁에 기여하려는 차원에서 착안되었습니다. 원래 이 책의 목적은 역사적 분석을 근거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전근대적, 전자본주의적 세계의 유산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성차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적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재구성된 자본주의적 구성물임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 여성주의 정치의 맥락에서 이 같은 주장이 중요했던 이유는 가부장제가 ‘전통’의 산물이라는 주장의 논리적 대응쌍이 맑스레닌주의 이론이었기 때문입니다. 맑스레닌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은 사회적 귄력을 갖는 것은 여성들이 ‘가정주부’로서 자본주의적 관계 외부에서 노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맑스레닌주의의 정치적 귀결은 임노동을 통한 해방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여성주의자들에게, 특히 1972년 내가 가담했던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운동>Wages For Housework Movement에서 이런 주장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성해방 운동이 전략적으로 공장일자리 확보를 요구해야 한다는 가정에 반대했습니다. 당시 전세계 노동자들은 바로 이 공장일자리를 거부하며 맞서 싸우고 있었으니까요. 또한 우리는 유럽과 북미의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전쟁 때문에 완전히 무너져버린 전업주부의 상象을 재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노동조직에서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는 과거의 유물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남성들에게 종속된 것은 정통맑스주의자들이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따라 주장하듯 ‘사회적 필요생산’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관점에 반대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논문, 소책자, 전단지 등을 통해,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가부장적 통치의 형태 및, 기교가 질적으로 완전히 바뀌었고, 여성들의 가내부불노동은 결코 전자본주의적 잔재가 아니며 역사적으로 노동력을 생산 및 재생산하는 노동으로서 다른 모든 형태의 생산의 기둥이었음을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도한 자본주의에서 여성들이 남성에게 종속된 것은 “여성노동”의 “비생산적인” 본성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는 조건 속에 있기 때문이며, 남성의 지배는 임금이 남성들에게 부여한 권력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생산적인 노동’이라는 맑스주의적 개념에 대한 비판과, 노동력의 생산에서 가사노동이 수행하는 긴요한 기능에 대한 인식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운동> 캠페인을 만들어 낸 이론적, 실천적 뼈대 속에 이미 완전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 자신을 비롯하여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셀마 제임스, 레오폴디나 포루투나티 등 많은 이들이 1970년대 내내 이 지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관계가 노동의 위계를 구조화하고, 권력을 노동계급의 특정 부문으로 위임하며, 재생산 노동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권력을 노동계급의 특정 부문으로 위임하며, 재생산 노동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착취의 영역을 감추고 자연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 관계들, 그 중에서도 특히 새로운 성적 분업이 구축되는 물질적·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었습니다. 이 공백을 채우는 데 맑스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본』 세 권 모두가 마치 삶의 재생산이 의존하고 있는 일상적인 활동들일 자본주의적 계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이,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구입한 상품을 그저 소비함으로써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다는 듯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백’을 채우고 누락된 ‘여성’의 역사와 ‘이행기’의 재생산 문제를 다루는 것이 『캘리번과 마녀』의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시초축적에 대한 맑스의 설명을 부연하는 부록으로 작성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등장과 자본주의적 관계의 특수한 본성을 아주 독특한, 그러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관점, 즉 생명과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재고해 보기 위한 시도입니다. 이 때문에 『캘리번과 마녀』는 ‘대’大유럽 마녀사냥과 핵가족의 등장,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규제하기 위한 16세기와 17세기의 법안을 새롭게 조명하는 한편,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신체 및 노동에 대한 기계화와 복잡한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기계론적 철학Mechanical Philosophy의 발달과 아메리카의 정복 및 식민화, 최초의 국제분업의 등장, 가격혁명 이후 유럽 도농민 都農民들의 빈곤화를 고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및 여성의 역사에 대한 이 책의 기여는, 일반적으로 학제적 경계로 구분된 사회적·정치적·철학적 성과들을 모아서 지금까지 서술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는 점,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내가 보기에는 그 중요도가 자본주의 이행기로만 국한되지 않는 이론적 관점을 발전시켰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진보성 신화를 해체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는 노동력의 꾸준한 확장과 노동비용 절감에 몰두하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을 비롯해서 그 노동이 생산해낸 주체들과 그들의 노동을 천대해야만 한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여성의 신체와 재생산능력을 통제함으로써 자궁의 노동력 생산의 기계로 기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폭력과 야만적인 힘뿐만 아니라 임금관계의 메커니즘을 통해 조직된 새로운 위계질서와 불평들을 성, 인종, 연령을 따라 도입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에서 ‘임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적 노동축적과 노동파괴간의 불가분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세미나] 다중지성의 정원 2012년 2분학기 세미나에 초대합니다.

5_1.gif 5_2.gif 5_3.gif 8_4.gif 7_5.gif 5_6.gif 5_7.gif 5_8.gif 5_9.gif 5_10.gif 5_11.gif 5_12.gif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5] 등산같은 교육공부에 초대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다중지성의 정원 다중 교육학 세미나팀입니다. 좋은 교사, 좋은 교육 과정, 좋은 학교 건물이 있어야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와 감옥은 교사-간수, 교육 과정-교정 과정, 학교 건물-교도소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다중 교육학 세미나는 배움의 해방을 위한 교육학을 정초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세미나는 2~3시간 동안, 요약 발제 후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다중 교육학 세미나에서 읽을 교재는 생각과 말(비고츠키, 살림터, 2011)입니다. 세미나 회비는 월 2만 원입니다. 2만 원을 내시면 다중 교육학 세미나뿐만 아니라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세미나, 생명과 혁명 세미나, 미학/시학 세미나, 불어 번역 세미나, 성/자본주의/정치 세미나, 영어 강독 세미나, 인지와 자본 읽기 세미나 등 다중지성의 연구정원에서 진행되는 세미나에 개수에 관계없이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세미나 시간은 목요일 오후 7시 30분입니다. 장소는 서울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과 2호선 홍대입구역 중간 성지빌딩입니다.

 

자세한 문의는 다중의 교육학 세미나 게시판(waam.net/xe/pedagogy)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중지성의 정원 약도

 


다중지성의 정원 찾아오시는 길

 

1.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 2번 출구 ― 홍대입구역 방면 약 150M 전진 ― 우리은행에서 좌회전 후 40M 전진하면 오른편에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 횡단보도를 건너 Coffee and A 골목으로 들어감 - 30M 전진하면 오른편 위쪽에 은색 바탕의 다중지성의 정원 간판이 있습니다.

 

2.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1번 출구 ― 합정역 방면 약 250M 전진 ― (구) 청기와 주유소를 지나 20M 전진하면 오른편에 경남예식장이 있습니다 - 경남예식장과 현대자동차 대리점 사이 골목으로 들어감 ― Befurco에서 좌회전 후 20M 전진하면 왼편 위쪽에 은색 바탕의 다중지성의 정원 간판이 있습니다.

 

3. 버스(경남예식장 정차) : 파랑(간선) 271, 570, 602, 603, 604 초록(지선) 5712, 5714, 6712, 7012, 7016, 7711, 7716 빨강(광역) 1100, 1200, 921 검정(공항) 602

 

4. 마을버스(경남예식장 또는 우리은행 정차) : 마포구 05, 06, 09, 15, 1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1] 인지와 자본 읽기 세미나에 초대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다중지성의 정원 『인지와 자본』(조정환 외, 갈무리, 2011) 읽기 세미나팀입니다. 인지, 주체-화, 자율성, 장치의 측면에서 본 생명과 자본 『인지와 자본』을 읽고 토론합니다. 세미나 진행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 참가자가 조금씩 발제를 맡아 발제 부분에 나온 개념, 인명, 논리를 꼼꼼하게 공부해 옵니다. 세미나 시간에는 텍스트를 강독하면서 서로 모르는 부분들을 질문하고 토론을 합니다.

 세미나 시간은 일요일 오후 6시입니다. 장소는 서울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과 2호선 홍대입구역 중간 성지빌딩입니다.

 

 세미나 회비는 월 2만 원입니다. 2만 원을 내시면 『인지와 자본』 읽기 세미나뿐만 아니라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세미나, 생명과 혁명 세미나, 미학/시학 세미나, 다중 교육학 세미나, 불어 번역 세미나, 성/자본주의/정치 세미나, 영어 강독 세미나 등 다중지성의 연구정원에서 진행되는 세미나에 개수에 관계없이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문의는 다중지성의 연구정원 인지와 자본 읽기 세미나 게시판(waam.net/xe/seminar_r)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중지성의 정원 약도

 

다중지성의 정원 찾아오시는 길

 

1.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 2번 출구 ― 홍대입구역 방면 약 150M 전진 ― 우리은행에서 좌회전 후 40M 전진하면 오른편에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 횡단보도를 건너 Coffee and A 골목으로 들어감 - 30M 전진하면 오른편 위쪽에 은색 바탕의 다중지성의 정원 간판이 있습니다.

2.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1번 출구 ― 합정역 방면 약 250M 전진 ― (구) 청기와 주유소를 지나 20M 전진하면 오른편에 경남예식장이 있습니다 - 경남예식장과 현대자동차 대리점 사이 골목으로 들어감 ― Befurco에서 좌회전 후 20M 전진하면 왼편 위쪽에 은색 바탕의 다중지성의 정원 간판이 있습니다.

3. 버스(경남예식장 정차) : 파랑(간선) 271, 570, 602, 603, 604 초록(지선) 5712, 5714, 6712, 7012, 7016, 7711, 7716 빨강(광역) 1100, 1200, 921 검정(공항) 602

4. 마을버스(경남예식장 또는 우리은행 정차) : 마포구 05, 06, 09, 15, 1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23] 나의 교육 신조 등 발제문입니다.

[20120223_나의 교육 신조 등 발제문.hwp (12.42 KB) 다운받기]

 

------

 

20120203 다중 교육학 세미나 - 부록 나의 교육 신조, 존 듀이 생애와 사상 3부 존 듀이 사상 발제문

dolmin98@hanmail.net - 돌민

 

1.

 

"1. 탐구의 이론으로서의 논리학에 대한 논의의 서론은 (우리가 지금까지 종종 보았듯이) 맑스의 「서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여기서 듀이의 『탐구의 이론으로서의 논리학』John Dewey, Logica, teoria dell'indagine, tr. it. Einaudi, Torino 1949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앨런 라이언의 책 『존 듀이』Alan Ryan, John Dewey, Harvard University Press, Harvard 2001는 미국 경험주의 논리학의 선들이 맑스주의 논리학의 선들과 얼마나 교차할 수 있는지를 해명합니다. 로돌포 몬돌로Rodolfo Mondolfo의 사유 및 씨드니 훅Sidney Hook의 사유가 다시 현재성을 띠게 됩니다. 여기서는 실제로 실천의 중심성이 인식론적·정치적 요소로 간주됩니다. 나아가 이 강의에서 우리는 또 언어·수사학·대화·발명 사이의 관계를 강조했는데, 그것들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두 가지 차원 - 한편에서는 공통된 이름에 관한 스피노자의 논리와 다른 한편에서는 탈근대적 논리에서의 공통된 이름의 재발견 - 에서 다시 교직되는 방식을 강조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된 『카이로스, 알마, 비너스, 다중』을 보십시오.)

2. 논리적 장치로서의 탐구.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우리가 여기 연구의 논리를 구성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줄곧 객체의 구성(이것이 탐구입니다)에서 출발하여 객체의 구성에 대한 대화적 해명(이것이 공동연구입니다)을 거쳐 구성적 주체의 정의에 이르는 사유 과정을 발전시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일종의 객체로서부터 주체로의 회귀가 있는 것입니다. 혁명적 논리의 진행은 - 라이언이 (그의 『존 듀이』에서) 단순화하자면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혁명적 자유주의로부터 뉴딜로의 이행을 잘 설명했듯이 - 언제나 그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변경을 가하면, 이 ‘객체로부터 주체로의 회귀’는 모든 혁명적 경험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앞선 강의에서 우리는 어떻게 주체의 논리가 발전의 인과성과 불연속성 사이에서 살아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사건의 논리를 짚어내는 것이 우리 논의의 핵심적 지점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공통된 이름’(개념)이 언제나 동일성과 차이 사이에서 요동하지만 특이성과 공통적인 것 사이에서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진실이라면, 이로부터 주체가 주체성의 생산 과정에서 특정한 시간성과 공간성의 산물로 주어진다는 귀결이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통적인 것의 생산에서 (즉 협동을 통해서) 주체의 형성을 봄과 동시에, 순전한 논리적 차원은 탐구를 완성하기에 불충분함을 강조합니다. 협동은 그 자체로 적대를 설명하지는 않으며, 따라서 적대의 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안또니오 네그리, 『다중과 제국』, 갈무리, 2011, 245~246쪽)

 

발제자의 존 듀이(John Dewey)에 대한 고민은 위에 인용한 글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존 듀이의 『탐구의 이론으로서의 논리학』이라는 책은 어떤 내용일까? 앨런 라이언(Alan Ryan)이 그의 책 『존 듀이』에서 미국 경험주의 논리학의 선들이 맑스주의 논리학의 선들과 얼마나 교차할 수 있는지를 해명했다는데 그 내용은 무엇일까? 발제자의 능력이 부족해서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에 이어지는 발제 내용도 인용한 글의 언저리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2.

 

“그런데 실용주의 사상사에 있어 존 듀이는 남북전쟁, 산업혁명, 제1차 세계대전, 세계 경제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의 1세기에 걸친 긴 생애를 살아가며 그 시기를 이른바 바삐 움직인 진보적 문화인이었다. 그는 전반적으로 넓고 다양한 정치문제, 사회문제에 흥미를 가지고 깊이 관여하였다. 제임스가 교육을 개인 능력을 충분히 개발하는 것을 목적이라 생각한 것에 더욱 한 반 앞서, 듀이는 교육을 인간 사회 최고의 기능, 인간 제도의 문제로서 고찰하였다. 나아가 자신의 교육상의 실험을 행하여, 교육조합·PAT·대학교수연합 등을 직접 이끌며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 실질화를 의도하였다. 실용주의라는 미국 정신의 자각형태는 퍼스의 논리주의에서 제임스의 도덕주의를 거쳐 듀이의 교육주의로 발전, 이행한 것이다.”(「존 듀이 생애와 사상」, 존 듀이, 『민주주의와 교육/철학의 개조』, 동서문화사, 2008, 602쪽)

 

바로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존 듀이는 민주주의자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자인 존 듀이는 다음과 같이 학교를 정의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 즉, 학교는 다른 무엇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회적 기관이다. 교육이 사회적 과정인만큼, 학교는 당연히 사회생활의 한 형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학교는 아동으로 하여금 인류가 물려받은 자원을 공유하고 자기 자신의 힘을 사회적 목적에 사용하도록 양육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모든 사회기관들이 집결된 곳이다.”(존 듀이, 「나의 교육 신조」, 『민주주의와 교육』, 교육과학사, 2007, 514쪽)

 

민주주의와 학교는 어떤 관계일까? 또는 민주주의자와 교육은 어떤 관계일까라고 해도 될까? 민주주의자는 사회적 기관으로서의 학교를 아동으로 하여금 사회화하게 하는 데 효율적인 사회기관이라고 할까?

발제자의 민주주의와 학교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존 듀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가 고민된다. 다만 여기서는 또 하나의 단서만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다.

 

3.

 

“듀이는 1930년에 존 애덤스와 윌리엄 P. 몬터규에 의해 뉴욕에서 출판된 <<현대 미국의 철학>>이라는 책에 ‘절대주의에서 실험주의로’라는 글을 실었다. 이것은 듀이가 70세에 컬럼비아 대학 현역 교수를 그만두는 즈음해서 버몬트 대학 입학 이래 자신의 사상적 발전과 성장의 흔적을 회상한 것으로, 그의 정신 발전에 영향을 미친 여러 인물과 그 사상에 대한 전부이다. 그것은 듀이라는 한 천재적인 철학자의 생애로 구체화되었다. 미국 철학사의 소묘라고 해도 좋다.”(「존 듀이 생애와 사상」, 존 듀이, 『민주주의와 교육/철학의 개조』, 동서문화사, 2008, 581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