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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소감2

 

박김영희 '장애여성 공감' 대표님은 휠체어까지 합쳐져 있는 몸을 가지고 계신다.

전에 수동휠체어 몸일 때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었다. 전동휠체어 몸이 됐을 때는 스스로 이동할 수 있었다. 테크놀러지.... 사람의 가치와 정체성이 테크놀러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현하고 있는 분이다...

 

1995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안에 있던 '빗장을 여는 사람들'에서부터 박김영희 선생은 활동을 시작했다.... 한해 두해... 북경여성대회, 동아시아 여성포럼, 제1회 여성장애인대회, 워싱턴 장애여성포럼....등을 거치면서, 장애인으로서 그보다도 여성으로서... 그래서 '장애여성'으로서 자신을 정립해오기까지가 오늘에야 우리 일곱이 이렇게 어렵사리 만나는 것처럼 크고작은 빗장들이 즐비허게 채워져 있던 그 길을 헤쳐왔다.

 

 

1. 빗장들은 그 속에도 있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빗장을 여는 사람들'에서의 활동은 박대표에게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공간으로서, 그리고 장애인이자 여성이라는 생각을 벼려내게 할 수 있는 모멘트를 준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에 함께 할 수 있었고, 수동휠체어라서 움직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참석하자고 대릴러오고는 했던 것을 아마도 박대표는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 '빗장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장애인 수기모음도 같이 내고, 여러 장애/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고, 장애/여성에 대한 문제의식도 날카롭게 벼릴 수 있었고, 장애/여성으로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도 크게 인식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안에서의 '장애/여성' 박김영희 선생은 주로 이런 일을 했다고 한다.

- 장애인 행사에 '장애/여성'으로서 참가해 주는 거.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거.

- 공부도 별로 안해서 연구나 뭐 그딴 건 할 수가 없고... 장애인 행사 때, 사람들에게 참석하라고 전화하는 거.

 

그리고 거기에서, 그렇게 활동하는 가운데서,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서 있는 생각들을 누가 지배하고 있는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연하게 알게 되었다...

 

 

2.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96년 10월에 제1회 여성장애인 대회를 서울 남부 종합복지관에서 열었을 때, 전화를 세번이나 하면서 나중에는 결국 대회에 참석한 한 장애/여성이, 그날 '박영희씨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찾아와 만나니까, 그분 왈,

 

"당신같은 사람이 운동을 해요?.....공부를 많이 했어요?" 하더란다.

휠체어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중증 장애인에다가, 수동휠체어 몸 시절이었다....

 

할 수 있는게 없었더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전화하고, 여기저기 장애인 대회에 불려다니고, 참석하고....

무슨 발언을 해도 남자 장애인들을 보조하는 거로밖에는 듣지 않고....

 

이러면서, 여성장애인이 말하는 거, 스스로 행동하는 거,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 '빗장을 여는 사람들'이 독립해야 할 필요성이 날로날로 커져갔다.

 

"우리에게는 우리 스스로 말하고 행동할 우리들의 시간이 필요하다...."

"독자적 조직이 필요하다....."

 

 

3. "여기서는 장애여성 목소리가 스스로 나올 수 없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는 '빗장을 여는 사람들' 담당자를 97년에 해고했다. 연구소 일보다 빗장일에 너무 많이 신경을 쓴다는 이유였단다. '여기서는 장애여성 목소리가 스스로 나올 수 없다'는 생각에 확신을 준 사건이었다....

 

이 일에 반대 항의하고 철회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한일장애인 교류대회' 장으로 달려가, 부당해고를 철회하라고 요구해서 싸인을 받아내고, '빗장' 운영위원 9명 전원이 연구소를 탈퇴했다....

그리고 고덕동에 공간을 얻어 독립했다.... 

 

장애인 운동에서도 운동권 일반과 마찬가지로 몰성적 그럼으로써 남성중심적 사고와 논리가 그대로 통용되고 있는 것 같다. '장애인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혹은 '장애인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은 누락되고 하위배치되는 것 말이다. 그럼으로써 가부장제의 남성중심사회의 근간을 타고 여성차별과 배제 그리고 여성을 영원한 식민지로서 지배하고자 하는 지배권력적 탐욕과 비민주가 횡행하는 판 말이다.

 

남성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그 판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거기에 여성들이 꼼짝없이 순응해야 한다면 그게 무신 운동인가?

 

'빗장을 여는 사람들' 9명이 독립하고, 98년 2월에 장애여성 '공감'을 창립한 것에 나는(벌써 10년 가까이나 지난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한다.

 

 

4. 왜 장애인으로서, 왜 여성으로서...

 

9명이 매주 1회 세미나를 했다. 왜 장애인으로서, 장애 몸을 가지고, 그것도 여성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

 

- 몸에 대하여,

- 비장애중심의 힘에 의한 운동에 대하여,

- 우리(장애/여성)이 할 수 있는 운동은?

 

수많은 고민거리들 앞에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길을 찾아나갔다.

 

'비장애 중심의 힘에 의한 운동'을 얘기하실 때, 나는 '비장애/힘 중심 운동' 속에서 장애인에게, 그리고 '남성중심 운동' 속에서 여성에게 가해자였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의 운동은, 근본적으로 새로 만들어져야 하는 게 맞다는 것이 이렇게 절실할 수가 없다....

 

'장애/여성'으로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우리들을 이렇게 각성시킨다.... 그녀는 벌써 이렇게 나를 조직하고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를 촉구하고 있다...

 

 

5. "우리의 경험이 힘이 되는 운동을 하자...."

 

- 글을 쓰는 작업을 하자

- 우리의 경험이 힘이 되는 운동을 하자

- 그리고, 우리 이외의 다른 소수자들 얘기를 듣고 같이 하자

 

우리가 말하는 운동을 하자.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우리는 장애인이고 여성이다.

 

장애여성들에게는, 착하다... 밝다.... 천사 같다... 소녀같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많은 억압인지 모를 것이다....

장애여성은 착한 척 해야 생존할 수 있다....

착하고, 순수하고, 남자에게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 여성/장애인

이런 굴레들이 장애여성을 짓누르고 있다....

 

공감은 장애여성이 처한 현실들, 사회의 장애여성 차별문제와 몰인식에 맞서고 있다. 장애인 화장실 성별구분 문제에서부터, 장애인 시설에서의 단골메뉴인 성폭력 문제, 장애여성의 임신출산에 대한 문제, 장애/여성의 독립 문제...... 장애여성의 성문제.....

 

내가 보기에... 각자가 스스로를 잘 알고, 스스로를 거부하지 않고 인정하고 아끼고 사랑할 때, 그녀들은 서로 자기가 서 있는 자리와 함께 서 있을 자리를 확보한다.... 빗장을 연 사람들의 모습.... 바로 해방된 사람들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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