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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루마니아 영화 두 편

올해 영화제에서는 말레이시아 영화 <판촉>에서 시작하여 프랑스 영화 <착한소녀>까지 열 몇 편을 보았다. 10월 3일부터 4일 하루 빼고 6일간 오후 또는 저녁마다 영화관을 찾은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주로 아시아 영화들을 보고 "월드시네마"로 묶인 영화들은 보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 영화들도 본다.  

 

이번에 본 것 중에는 영화제에서 따로 코너를 만든 루마니아 영화도 두 편 들어 있다. 그 중 하나는 <기묘한 피크닉>. 
감독은 사람 사이의 하찮은 관계로 이어지는 비루한 삶을 조롱하는가 하면, 연민의 시선으로 보았다가, 아직 남아있는 정치적인 공포를 드러냈다가, 농담도 걸었다가,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시종일관 카메라를 들고 찍은 영화는 끊임없이 흔들려서 보는 사람의 눈을 매우 피곤하게 한다. 계속 그러다 보면 객석에 가만 앉아 구경하는 사람이 멱살까지는 아니더라도 머리카락이라도 잡혀서 흔들림을 당하는 느낌 같은 걸 받는데, 감독은 끊임 없이 흔들리는 사람들(굳이 루마니아 사람들만의 것은 아닐 테다)  일상의 모습을 "굳이 들여다 보고 또 굳이 보여줘야 하는" 자신의 일이 어떨 땐 짜증스럽고 그걸 관객들도 알아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 매력적인 영화.
물론 매력의 90%는 조금 과장해서 창녀 역을 맡은 여배우로부터 온 것이다.



 

다른 한편 <플라워 브리지>는 루마니아가 아니라 그 이웃나라 몰도바공화국에 사는 어떤 농부네 집을 찍은 다큐였다. 영화는 엄마를 전화로만 만날 수 있는 세 아이와 농부(아이들은 다른 나라에 일하러 간 엄마를 몇 년째 볼 수 없다)가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착해서 픽션인가 싶을 때면 그 아버지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농사 걱정 등을 이야기한다. 몇 개월동안 이런 식으로 만든 다큐를 교육방송 페스티벌 같은 데에서 몇 번 본 것도 같다.
이 영화를 보고 기분이 좋았었는데 그 이유는? 몰도바공화국의 따뜻한 시골풍경? 삶이란 대부분의 곳에서 언제나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안도감?
엄마가 빨리 돌아와 함께 살기를.

그러고 보니 엄마를 떠나 아빠와 살아가는 아이는 파키스탄 영화 <접경지방의 람찬드>에서도 보았다. 인도와의 국경분쟁 와중에서 5년간 그 아이를 키운 것은 어처구니 없게도 감옥이었다. 아버지가 함께 있었지만 그 아이는 깊은 내상을 가진 닳을대로 닳아버린 청년으로 자랄 수 밖에 없다. 홀로 남은 엄마의 삶이 외롭고 고달프기는 말할 나위도 없고. 
결국 흙으로 된 아주 작은 초가집들이 모인, 궁핍하지만 인정많은  고향 마을로 돌아온 청년의 삶이 거기서 다시 계속되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는 아마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평생을 감옥 속에서처럼 살 것이고 악몽 속에서 살 것이다. 세련된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파키스탄 사람들, 분쟁지역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새삼 읽을 수 있는 영화.
비록 이미 신전도 다 허물어져 어둡지만, 누구를 탓하지도 못하고 작은 향을 피워 올리는 그들에게 저녁 노을같은 신의 손길이 가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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