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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좌파운동의 몇가지 딜레마에 대하여

 

물론 좌파란 개념 자체가 다의적이어서 항상 혼동과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체제에 투항하거나 포섭된 개량주의를 제외한 비제도적·탈제도적·혁명적 좌파로 의미로 한정하여 말한다면, 좌파운동은 이른바 소수파운동 또는 비주류운동이었다. 대부분의 좌파운동은 소수파운동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좌파가 다수파가 되는 혁명적 상황이 존재했다. 볼셰비키는 러시아어로 다수파라는 의미였지만, 사실 1917년 10월혁명 직전까지 거의 항상 소수파였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사회민주주의 주류파로부터 혁명적 좌파를 분리 정립하여 이른바 맑스의 공산주의 개념을 복원한 공산주의운동을 창출했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가 무정부주의와 유토피아적 공상적 사회주의로부터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정립했다면, 레닌은 맑스주의의 적자를 자처한 사민주의로부터 공산주의를 분리 또는 복원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레닌의 공산주의가 스탈린에 의해 왜곡되자, 이에 대항하는 좌파들이 트로츠키주의, 좌익공산주의(또는 평의회 공산주의)로 새로운 분리정립을 통해 혁명적 좌파의 재결집을 시도했지만, 결국 거의 모두 공산주의내 소수파운동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이것이 레닌 사후 공산주의내 소수파운동의 딜레마였다.


그러나 문제는 공산주의운동 역시 노동자계급운동 내에서 사민주의에 맞서서 다수파로 정립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공산당이 2차대전시 저항운동을 통해 좌파내 또는 노동운동내 다수파로 정립하는 데 성공했고, 소련의 영향력 하에 동유럽과 북한에서 인민민주의정권이 성립했지만,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원형과는 거리가 먼 인민혁명의 형태를 취했고, 중국혁명을 필두로 쿠바혁명과 니카라과혁명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노동자계급운동을 장악하지 못한 공산주의운동, 이것 역시 또 하나의 딜레마였다.


냉전시기 이른바 적대적 체제의 평화공존 테제 하에서 주류 공산주의운동은 제도화의 길을 걸었고, 그 귀결점은 유로코뮤니즘, 즉 공산주의운동 제도화의 완성이었다. 가장 극적인 예가 바로 소련붕괴 이후, 한때 2백만당원을 자랑했던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사민주의적 민주좌파당(PDS, 나중에 민주좌파[DS]로 개칭)의 변신이다. 민주좌파는 이 변신과 함께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에 거침없이 가입하였다. 1970년대 중반 전투적 신좌파에 대한 적대감을 견지하면서, 반동적 기민당(DC)과의 "역사적 타협"을 통한 정부참여를 추진했던 과거의 역사를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1968혁명을 통해 제도화된 주류 공산주의운동으로부터 새로운 혁명적 좌파의 구축을 꿈꾸었던 신좌파 역시 소수파운동에 머물렀고, 제도화된 공산주의운동을 뛰어넘지 못했다. 부패한 부르주아 사회체제의 타도와 해체를 위해 무장투쟁도 서슴지 않았지만, 소수파운동의 한계를 넘지 못하였다. 68년혁명의 충격과 그 진폭을 고려하면 소수파운동으로서나마 생존한 경우도 또다시 소수에 속하는 역설적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런 좌파운동 역사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서, 구조화된 소수파운동의 역사적 딜레마에 대한 구체적 실천적 전략을 도출하지 못하는 한, 소수파 좌파운동은 변혁을 꿈꾸는 몽상가들 또는 낭만주의자들의 집단에 불과하다. "한 타스의 강령보다 한걸음의 운동의 전진이 중요하다"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맑스의 테제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좌파운동이 소수파운동의 한계를 넘어 계급대중에게 대안의 희망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좌파는 21세기를 사는 20세기 좌파일 뿐이며, 그들의 운동은 지성과 정력의 소모적 낭비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의 힘> 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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