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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10
    어떤 정치인의 죽음에 대한 거친 잡생각
    국제건달

어떤 정치인의 죽음에 대한 거친 잡생각

이른바 민주화의 큰 별이 졌고 모란공원묘지에 묻혔다. 묘지에 묻혀있던 어떤 혼령(들)은 벌떡 일어나지 않을까? 이제 21세기가 되니까 모란묘지의 혼령들 사이에도 계급적대와 계급투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교활한 제도언론의 기회주의는 역겹다. 살아있을 때, 그가 운동가였을 때, 그토록 씹고 물어댔던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은 채, 민주화의 대부라는 헌사를 일말의 거리낌없이 바친다. 값싼 가식적 헌사는 과거의 범죄와 등가교환된다. 다수의 침묵 속에...
 
정치인 개인에 대해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도적 활동가였던 청년기에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정치인으로서 그에겐 사회주의는 없었다. 민주화의 대부라는 거창한 헌사에도 불구하고 그가 실제로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은 무엇인가?
 
운동세력을 제도권으로 몰아넣은 댓가로 얻는 국회의원 자리와 장관직은 개인에게 영광이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고문의 트라우마와 삶의 고통에 허덕이는 그의 옛 동지들이나 그가 팔아먹었던 민초들에게 지금의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 있는가?
 
지금은 죽음 앞에 관대한 가식적 제도언론이 묻어 두려는 진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다. 그의 말년은 불행했다. 막강한 정치경력과 화려한 운동경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김대중의 후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선경선에서 노무현에게 참패한 것이 그렇고, 지난번 총선에서 PD운동권에서 극우 뉴라이트로 변신한 모리배에게 전라도 표밭에서 패배한 것도 그렇다.
 
80년대 그가 겪은 고문의 후유증이 평생 그를 따라 다녔을 것이다. 또 64세의 죽음이 이른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제도언론의 교활한 이중 플레이는 이름없이 고통 속에 숨진 이들을 두 번 죽이고, 그들이 절대선으로 부르짖는 민주주의를 게임과 말장난으로 전락시킨다.
 
그는 대중정치인으로서, 또 개인으로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용서했다. 인간으로서 착한 일이고 도량이 넓은 대인배다운 짓일게다. 그러나 일제청산과 군부독재청산에서 이중의 실패로 고통받는 한국사회에서, 탄압과 고문의 문제가 과연 개인들 간의 보복이냐 용서의 문제로 끝날 것인가? 그는 독재정권의 주구를 인간적으로 용서해도, 적어도 역사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포용은 개인의 권리이지만,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월권이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것은 그가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그의 고백은 없었다. 한국사회는 자서전이 없는 사회다. 진실된 고백이 없는 사회이다. 남의 찬사로 치장되는 죽음이었을 뿐,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진솔한 고백으로 마무리되는 아름다운 죽음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찝찝하다.
 
개인적으로, 1984년경 유화국면에서 20대초반 대학중퇴 빵잡이로서 민청련의 지도자였던 그와 그의 동지들을 경외감(?)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다. 몇 달후 현장으로 떠난 다음 그를 다시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 이후 개인적 연 때문에 그의 행적을 놓치지 않았다. 1987년 비판적 지지로의 선회에서 실망한 이후 그에 대한 어떤 정치적 기대는 개인적으로 없었다.
 

객관적인 그의 성취와 성공, 실패와 오류에 대한 평가를 회피한 채, 추모와 찬사 일변도로 그의 죽음을 덮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자, 인간에 대한 경멸이다. 그가 한 때 교양했던 민중들이나 프롤레타리아가 그의 말년에, 또는 그의 저승길에 어떤 자리라도 있었을까? 경제위기와 한파 속에 없는 것들만 불쌍한 X같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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