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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되세기는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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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명절이다.

 

민우회에서는 평등명절캠페인을 시작하고. 방송에서는 주부들의 명절 증후군을 이야기하고.

서울역과 고속도로는 미어터지고.

누군가는 연휴 첫날 쏟아지는 비를 보고 "게으른 며느리들 한테 좋은 핑게군"하기도 하고.

 

명절이 되면, 음식을 해놓고 자식을 기다리는 시골 부모님의 영상이 텔레비젼에서 흐르고,

그 영상과 오버랩되어 외국여행을 떠나는 싹아지없는 자식들의 영상이 흐르고.

그 원죄는 자식을 부모에게 보내지 않는 이기적인 며느리가 갖게 된다

 

원래 명절의 의미가 뭐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명절은 가족의 의미와 거리감을 다시금 되세기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런 상식적인 코스말고 다른것도 있다.

 

명절이 주는 압박으로 원치않는 방문을 하는 출가한 가족들을 위해

미리 장을 봐야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그날 하루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자식들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 다른 쪽도 있다.

 

그런 가족들이 모여 치루는 명절의 분위기는 어떤가?

서로 건들지 않아야 하는 부분을 고민하고, 적당히 화기 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그리고 저녁이면, 다끝났다..하는 맘으로 치우고 잠자리에 드는..

 

물론 보고싶어 죽겠어서 찾아가고. 또 그리움을 나누는 즐거운 집도 있겠지만.

속찍히 다 까놓고 얘기하면 얼마나 될런지는 모르겠다.

 

이 모든 불편한 관계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나타난다.

이 모든 불편한 관계가 가족은 이러해야 한다라는 사회의 암묵적 규정에 의해 나타난다.

 

우리는 타인이 주는 조그마한 친절을 만나도 깊이 감사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지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일단 그 대상이 가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며,

그 친절은 당연한 일이 되고, 그 당연한 일의 기대는 모두다 다르기에 불화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다.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처럼. 기대는 버리고, 예의는 갖추는 관계.

그런 예의속에서 우리가 다시 가족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주어진 가족은 한이불 덥고 자고 먹었을 어린시절 잠깐이었던것 같다.

이후엔 원하는 관계성만큼 노력하고 만들어가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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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8 11:03 2005/09/1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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