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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Song

새벽 1시 30분. 배트의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몇가지 소소한 내일의 약속들.

그러나 새벽을 넘어서 아침까지. 결국 오늘 밤도 커피와 커피에 담배와 담배에 의존한채

그렇게 지내야 할것 같다.

 

며칠동안 내 지나간 과거에 붙잡혀 참담하리만큼 불안한 정서에 휩싸인채.

눈을 뜨고 지내는 시간들은 어떤 맥락에도 속해있지 못했다.

 

서울역에서 쓰러져있는 노숙자를 몇번이나 뒤돌아보았다.

가슴이 울컥 쏟아지는 이 물리적 충돌이 쉴새없이 몰아치고

벌써 몇년의 세월이 거듭되었는지.

이미, 아름답고 참한 아가씨와 오랜 연애를 하고 있는 듯한

그 사람일리가 없었다.

 

헤미넴과 고봉, 짖궃게 내렸던 빗방울을 내 몸에 그대로 방치해둔 채

졸음을 참아가며 보았던 before sunset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줄리델피의 어떤 대사일뿐이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의심치 않는다.

나와 헤어진 그들은 함께 추락하는 고통에서 벗어났다.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사소한 연애의 행복 안에서

정상적인 관계의 틀 내에서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래, 그렇다. 오직 내가 이별을 말했기 때문에.

너희들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었다.  

 

관계는 서로의 성숙을 자극하는 일이라고.

자신을 어떤주의자라고 호칭하는 일은 얼마나 가볍고 쉬운일인지.

강단 앞에 앉아, 런던테러와 팔레스타인 학살 수치를 비교하며

미국의 네오콘 정책을 수려한 미사여구를 덧붙여 논리적 보충 설명을한다.

 

내가 내 친구들에게 '사실은, 여성주의자' 라고 속삭이는 일은

얼마나 편리한 일인가.

내 앞에서 '너의 강한 남성성은 그녀들과 틀려. 넌 예외야' 라고

수줍게 친근함을 표현하는 수많은 남자들 앞에서

빙긋히 웃고만 있는 내 자신은 그렇게 다짐한다.

한 발자국, 아니 이 라인 밖으로 살짝 고개만 돌려도

상상할 수 조차 없는 폭력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사랑했던 당신이 정서적인 폭력을 호소하는 순간,

나는 매일, 매 순간 그렇게 무릎을 꿇는다.

서로의 성숙을 돕는 일이, 매일 6번씩 통화하는 그것보다

결단코 우선하는 일이라고, 이것은 내 사랑의 방식.

당신에게 쏟아졌던, 내 미래를 저당잡혀 당신의 미래를

선을 긋고, 원을 만들어 수치화시키는 순간.

나는 그렇게 소멸, 분화, 사라져갔다.

 

지난 7개월동안,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사랑했던 당신이 아니라, 아직도 이 모든 상황을

낭만적 사랑으로 판단하고 있는.

철없이 소녀적 감수성을

버리지 못한 나 자신이라고.

 

삶이 고통이라면, 기어이 그것을 고통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내 이별이 너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줄것이라고.

나와 함께 추락하지 않게 된것을.

누구도, 어떤것도, 수많은 방식도

나는 필요치 않다. 섣부른 위로는 연대가 아니라 자기애. 그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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