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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9/29
    Yoon Hee
    Yoon Hee
  2. 2005/09/28
    vhs 테잎 보내야 할곳.
    Yoon Hee
  3. 2005/09/24
    일정
    Yoon Hee
  4. 2005/09/06
    비탈리 샤콘느 g단조
    Yoon Hee

Yoon Hee

미안해요. 고맙습니다. 미안해요. 한번만 도와주세요.

 

누나 이름은 알 필요가 없다는

아역배우 한명이, 오디션을 마치고

내게 180도 고개를 숙여 깊숙히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기획사에서 건네준 대본을 꽉쥐고 있는 10살, 초등학교 4학년

지환이와 환희는

누나라는 호칭에 영 실망한 듯 보였다.

 

사무실 한 구석에 마치 사장처럼 앉아

10살짜리 꼬마들을 심사해야 했던 나는

 

있잖아. 누나..가 말이야..학교 숙제로 단편영화를 하나 찍으려고 하는데..

 

얼굴은 달아오르고 더듬거리는 내 얼굴을 바라보는 지환이는

누나 이름은...이라는  그 뒷문장을 냉큼 잘라버리고

 

'괜찮습니다.'

 

7개월동안 꼬박꼬박 부어온 적금통장 두개를 깨고

미안하다는 말을 항시 서두로 달아야 하는

이 시간들이 처음있는 일인것처럼.

그렇다. 여전히도 이 과정은 나에게 있어 견뎌내야 하는.. 

생존해야 하는.. 

 

부평에서, 정말로 상영되어야 할 인천 부평에서

그 초라한 노동자들과의 약속.

배트와 그리고 진보넷 일도, 다 쉽게 지연하면서, 아니 

내 스스로 수동적인 포기상태를 기어이 선언했을때.   

나는 생각했다.

 

이 모든것을 버리고 온몸으로 부딪치는것은 위험해.

 

강해지고 강해지며 강할 수밖에.

무감하고 무심하며 느끼지 않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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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hs 테잎 보내야 할곳.

 

안녕하세요

전화로 인사드렸던 충주작은영화제 추진위원   유효숙입니다.

충주중앙중학교 교사입니다.

작년 4월 송환을 중심으로 첫회 영화제를 열면서 시작한 작은영화제가 이번 11월 23,24양일간 4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1,2,3회 영화제기획안을 첨부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기획안을 보시면 저희 영화제의 성격을 잘 알수 있으실겁니다.

 

작품은 전화로 말씀드렸듯이 상영일자인 11월23일 혹은 24일 이전 9월이나 10월중에 VHS테잎으로 미리 받아서 시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확한 상영료와 입금계좌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충주작은영화제 추진위원 유효숙드림(010-2447-9849)

주소: 충북 충주시 교현2동 충주중앙중학교 교무실 380-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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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내방역 반포방향으로 가서   동국한병병원. 월요일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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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리 샤콘느 g단조

 

어느날, 현실과 꿈의 세계 정확히 그 중간에 서서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정신착란을 문득 'fact'로 믿어버렸을 때

나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어떻게 아버지가 살아있어. 어떻해야 해.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지옥같은 아침이 반복되고 지금 내 두 어깨 위에 놓여진 천금같은 쇳뭉치들을 도저히 견딜 수 없큼 숨이 가빠와. 누가 날 좀 구해줬으면 좋겠어. '

 

호흡이 제대로 멈춰지는 순간

나는 눈을 떴다. 

눈을 감고도 엄마 몰래 숨겨놓은 디스플러스의 위치까지 찾아낼 수 있는

그 익숙하고 익숙한 방 한가운데서

아주 짧은 시간동안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어떤 위치로 어떤 자세로 앉아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리고 아버지.

노원역 3번출구에 위치한 그 병원 지하에 처박혀

존나 역겨운 그 인간들에게 백만스물두번씩이나 피가 역류할때까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 슬픈척, 가련한척 연기를 해야 했던 그날이

벌써 3년이나 지난다는 것을 순차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벌써 3년. 그래 벌써 3년.  

그 시간의 무게를 깨달은 순간

정신착란을 겪었던 그 아침, 내가 내뱉어야 했던 그 안도의 뜨거운 숨결.

그래, 너무 뜨거워. 뜨거워서 멈출 수가 없어.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만이 비로서 강자가 될 수 있음을

영리한 사람들은 뼈속까지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이 고통이 외화되는 순간 너무 뜨거워져 모두를 다치게 할 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심장의 스물두번째 박동 속에

나조차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덮어버려 

그 반동의 힘으로 나는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 나는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강박적으로 주문을 걸때,

그럴때 나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내 뜨거운 숨을 내뱉는 순간

왜 너만 피해자인척 하냐고, 반문했을 때

내 마음속 깊이 퍼져나오던 그 희열

그렇다. 고통은 절대로 연대할 수 없는 가장 강한 자아.

내 애인들조차 1시간이면 잊어버리는 그 고통의 연대성은 정말 수치스러운 것이다.    

 

23살, 내 머리를 뒤흔들며

그래, 난 니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야라고 고함을 지르던

그에게 느낀 공포.

나쁜년.어떻게 사랑이 변해?

 

육체적인 기억만이

그때 쏟아냈던 아. 도저히 멈춰지지 않았던 피자국들이

내 머리속으로 스며들어

마취도 없이 서걱서걱 파열음을 내며

내 안으로 진입했던 그 길죽한 아픔들이

왜 말을 해도, 왜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도 왜 어떻게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거지.

 

오늘도 지나가는 50대의 남자가 수평 에스컬레이터에서

보란듯이 내 손을 만지고 지나갔을때

내가 느끼는 이 소름끼치는 공포를 왜 따뜻하게.....

왜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다리를 벌리고 무감각한 그 의사 앞에서 있어야 했던

그날들의 기억들이 내게 육체적인 감각으로 환기되고 있음을.

왜 왜 도대체 왜.

 

고통은, 정말 숨쉬기 조차 싫은 고통은 도저히 말해낼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을 무기로 내 심장과 가슴으로 겨누고

내 폭주하는 뇌선회로에 긴급상황이라는 적색신호만이 그렇게 점멸하면서

그래. 내게 있어 당신들은 내 아버지와 한치도 다르지 않는 괴물이야.

 

사랑이 좋아? 내가 좋아?

나는 내 가족한테 가해자라는 소리를 듣고도

새로운 애인을 만들어 희희낙락. 내 천박한 웃음소리는

당신들의 심장을 정조준하고 당신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완벽한 가해자.

 

오래전 친구가 온 몸에 난도질을 당하고 핏투성이의 몸으로

내 앞에 섰을 때,

악몽은 비로서 시작되었다.

너는 얼마나 그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지 아니?

니가 단지 귀찮아 하는  그사람의 고통의 깊이감이란 말이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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