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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리 샤콘느 g단조

 

어느날, 현실과 꿈의 세계 정확히 그 중간에 서서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정신착란을 문득 'fact'로 믿어버렸을 때

나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어떻게 아버지가 살아있어. 어떻해야 해.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지옥같은 아침이 반복되고 지금 내 두 어깨 위에 놓여진 천금같은 쇳뭉치들을 도저히 견딜 수 없큼 숨이 가빠와. 누가 날 좀 구해줬으면 좋겠어. '

 

호흡이 제대로 멈춰지는 순간

나는 눈을 떴다. 

눈을 감고도 엄마 몰래 숨겨놓은 디스플러스의 위치까지 찾아낼 수 있는

그 익숙하고 익숙한 방 한가운데서

아주 짧은 시간동안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어떤 위치로 어떤 자세로 앉아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리고 아버지.

노원역 3번출구에 위치한 그 병원 지하에 처박혀

존나 역겨운 그 인간들에게 백만스물두번씩이나 피가 역류할때까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 슬픈척, 가련한척 연기를 해야 했던 그날이

벌써 3년이나 지난다는 것을 순차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벌써 3년. 그래 벌써 3년.  

그 시간의 무게를 깨달은 순간

정신착란을 겪었던 그 아침, 내가 내뱉어야 했던 그 안도의 뜨거운 숨결.

그래, 너무 뜨거워. 뜨거워서 멈출 수가 없어.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만이 비로서 강자가 될 수 있음을

영리한 사람들은 뼈속까지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이 고통이 외화되는 순간 너무 뜨거워져 모두를 다치게 할 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심장의 스물두번째 박동 속에

나조차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덮어버려 

그 반동의 힘으로 나는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 나는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강박적으로 주문을 걸때,

그럴때 나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내 뜨거운 숨을 내뱉는 순간

왜 너만 피해자인척 하냐고, 반문했을 때

내 마음속 깊이 퍼져나오던 그 희열

그렇다. 고통은 절대로 연대할 수 없는 가장 강한 자아.

내 애인들조차 1시간이면 잊어버리는 그 고통의 연대성은 정말 수치스러운 것이다.    

 

23살, 내 머리를 뒤흔들며

그래, 난 니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야라고 고함을 지르던

그에게 느낀 공포.

나쁜년.어떻게 사랑이 변해?

 

육체적인 기억만이

그때 쏟아냈던 아. 도저히 멈춰지지 않았던 피자국들이

내 머리속으로 스며들어

마취도 없이 서걱서걱 파열음을 내며

내 안으로 진입했던 그 길죽한 아픔들이

왜 말을 해도, 왜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도 왜 어떻게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거지.

 

오늘도 지나가는 50대의 남자가 수평 에스컬레이터에서

보란듯이 내 손을 만지고 지나갔을때

내가 느끼는 이 소름끼치는 공포를 왜 따뜻하게.....

왜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다리를 벌리고 무감각한 그 의사 앞에서 있어야 했던

그날들의 기억들이 내게 육체적인 감각으로 환기되고 있음을.

왜 왜 도대체 왜.

 

고통은, 정말 숨쉬기 조차 싫은 고통은 도저히 말해낼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을 무기로 내 심장과 가슴으로 겨누고

내 폭주하는 뇌선회로에 긴급상황이라는 적색신호만이 그렇게 점멸하면서

그래. 내게 있어 당신들은 내 아버지와 한치도 다르지 않는 괴물이야.

 

사랑이 좋아? 내가 좋아?

나는 내 가족한테 가해자라는 소리를 듣고도

새로운 애인을 만들어 희희낙락. 내 천박한 웃음소리는

당신들의 심장을 정조준하고 당신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완벽한 가해자.

 

오래전 친구가 온 몸에 난도질을 당하고 핏투성이의 몸으로

내 앞에 섰을 때,

악몽은 비로서 시작되었다.

너는 얼마나 그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지 아니?

니가 단지 귀찮아 하는  그사람의 고통의 깊이감이란 말이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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