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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나무 닭백숙과 시골밥상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 계곡의 노루목 산장

- 엄나무 닭백숙과 시골밥상




늘 떠나고 싶었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지랖 넓게 나부랭이 떨다가

도저히 능력 없음을 한탄할 때마다

떠나고 싶었습니다.


떠나도, 떠나도... 또 떠나고 싶어집니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아

그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쓰러질 때 마다

떠나고 싶습니다. 떠나면 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길나서고 보면

자꾸만 자꾸만 뒤돌아보게 됩니다.

어느 길목에서는 되돌아갈 곳이 정해집니다.

잠자리도 먹거리도 산천도 사람들도 어색하고

익숙했던 것들이 생각납니다.


길 위는 늘 진행형입니다.

머물러지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 또 나서야 할 것만 같습니다.

떠나고 싶었던 도시에서의 삶이 이러했는데,

길 위에서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딜 가면 편하게 누울 수 있을지...

그래서, 다시 되돌아갈 곳을 생각하게 됩니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서 머무르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2001년에 우연히 알게 된 곳인데, 지금도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 강추(?)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KBS 방송국 TV 프로그램(내 마음의 영상 포엠)까지 추천하여 TV 영상으로 그것도 2번씩이나 나오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영월입니다. 영월의 서강을 지나 김삿갓 계곡에 들어서면 노루목 산장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2001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울사람 2명, 강원도 춘천사람 1명, 원주사람 1명, 영월사람 1명 이렇게 5명이 동해안 여행을 하고 크리스마스이브 날 이곳 김삿갓 계곡에 들어왔습니다. 강원도 영월은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좋은 사람들과 같이 가는 곳이기도 하고 동행인들도 이곳 산장의 군불 때는 방과 닭백숙, 할머님이 손수 해주시는 아침식사 등이 편하고 좋다기에 ‘그저 좋겠지’라는 맘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동해를 거쳐 삼척의 환선동굴을 보고 폐광지역이 되어버린 사북, 태백을 지나 이곳 강원도 영월로 들어왔습니다. 오후 늦게 들어와 어둑어둑해지는 계곡을 보면서 꽤 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 밤 지친 몸뚱이 뜨듯하게 지질 수 있다는 군불 때는 방에 자리를 틀었습니다. 엄나무 닭백숙과 동동주를 기다리면서 짐을 풀었습니다. 방안은 앞선 손님들이 왔다간 흔적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상위의 남아있는 음식찌꺼기, 코끝을 핥고 지나가는 동동주 향기, 미처 다 날아가지 못한 담배 끝자락 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영월에 사는 동행인 왈, 이곳은 아는 사람만 온다며 영월에서는 꽤 입소문난 곳이라 하였습니다.


그날 밤 먹었던 닭백숙! (원주 동행인 말에 따르면) 백혈병도 낫게 했다는 그 좋다는 엄나무로 국물을 낸 닭백숙이었습니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직접 기르신 시골 닭이었습니다. 한 시간 이상 압력밥솥에서 푹 고아 국물과 닭고기가 먼저 나오고 그 뒤 닭죽이 나왔습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칭찬하는 동행인들의 이야기에 별 생각 없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장난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시원한 닭백숙 국물이라니!!!! 정말 좋았습니다. 익숙한 향기는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몸에서 받아주는 그 맛이라니!! 정말이지 백혈병도 낫게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 것 같은 엄나무 닭백숙과 시원한 동동주와 할머니께서 손수 장만하신 고추장아찌로 한 해 동안의 회한과 못 다한 인생살이들에 대해 이런저런 야기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수다 떨다가 동동주가 떨어지면 할아버지, 할머니 주무신다는 핑계로 냉장고에 있는 맥주와 소주 내다가 먹었고 또 이야기하다가 새벽녘께 잠들었습니다. 따뜻해져오는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면서 군불 때는 할아버지 기침소리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 들으며 한쪽 눈이 떠졌습니다. 머리도 움직여졌습니다. 군불 때는 방에 잠을 자서 그런지 몸이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축축 처지지도 않았습니다. 몇 번 뒤척이다가 곧바로 일어났고 밖으로 나가기위해 문을 연 순간! 그 순간! 세상은 온통 흰색이었습니다. 새하얀 색!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눈 위를 마구 뛰어다녔습니다. 아무도 발자욱 찍지 않은 곳, 아무런 흔적이 없는 눈 위를 혼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방안에서 아직도 자고 있는 동행인들에게 일어나라고 마구 외쳤습니다. 너무 좋다고, 얼른 일어나서 보라고!! 김삿갓 무덤이 있는 곳에 올라가서 계곡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눈 속에 있는 이 계곡이 넘 좋았습니다. 눈물나게 시리... 넘... 좋았습니다.

그렇게 마구 감동받고 뛰어다니다가 내려와 아침상을 마주하였습니다. 어...라...이...게...뭐...야! 청국장, 보리쌀이 섞인 밥, 김치, 어제 저녁 맛있게 먹었던 고추장아찌, 계란 후라이, 그리고 어제 저녁 먹다가 남은 엄나무 닭백숙 국물 등등 그저 그런 시골밥상이 마루에 나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상에 앉았습니다. 청국장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는 순간! 결국, 그날 아침은 두 그릇 먹었습니다. 옛날 초등학교 시절, 시골에 놀러 갔을 때 할머니께서 해주신 바로 그 맛이 생각났습니다. 계란 후라이도 유정란으로 하신 거라고 하였습니다. 한 시간 이상 아침밥 먹고 밥상은 손님 5명이 이러 저리 치웠습니다. 빈 그릇 부엌으로 가져가고 부엌에서는 설거지하고 밥상치우고 마룻바닥도 닦았습니다.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불편하신 몸으로 손님 뒤치다꺼리 하시는 할머니를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뭉개려 했는데, 동행인들이 너무 앞장서 일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아침밥상으로 치우기는 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을 많이 생각합니다. 봄에도 가보고 가을에도 가봤습니다. 여름에만 못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여름에 놀러오세요. 물도 많고 참 좋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2년 전 3월 초봄에 들렀는데, 예전보다 더 손님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연세도 많으셔서 여간 고생이 아닐 것 같았는데, 자제분들이 주말에는 와서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엄나무 닭백숙하시고 청국장 뜨시고 고추장아찌 직접 담그시는지 궁금합니다.


** 김삿갓 계곡은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하며,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3도 접경지역으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려오고 있습니다. 또한 김삿갓 유적지내에 흐르는 '곡동천'은 여름철에는 유리알처럼 맑고 풍부한 수량이 기암괴석 사이로 넘쳐 흐르고 가을에는 형언각색 단풍으로 인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로운 곳입니다. 이처럼 산자수려한 고산준령 풍운속에 청운의 푸른 꿈을 접고 해학과 재치와 풍류로 한 세상을 살다간 조선 후기 방랑시인이자 천재시인인 김삿갓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난고 김병연 묘소와 주거지가 있습니다. (강원도 영월군 홈페이지 김삿갓계곡 홍보문안 중 일부)


** 노루목산장과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이 없어서 어쩌지요. 찍기는 했지만, 사진기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다 날아간 것 같습니다. 쓸만한 거라곤 2001년 겨울 크리스마스때 찍은 사진 한 장 남아있네요. 지송.... 꿩 대신 닭이라고 강원도 영월군에서 제공하는 자료 사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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