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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정상화 지침 강제 적용하려 악랄한 노조 탄압 서슴치 않아

가짜정상화 지침 강제 적용하려 악랄한 노조 탄압 서슴치 않아

-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등 국립대병원에 연초부터 노조탄압 확산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서울도시철도공사,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이 2014년 임금인상 노사합의가 안되고 해를 넘겼다. ‘공공기관 방만 경영 이행 계획’실행 노사합의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정부지침 수용해야만 2014년 임금인상이 가능하다며 2014년 임금 단체교섭 의제도 아닌 사안 수용을 강요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거부로 별 진전 없이 시간만 끌다가 ‘12월 31일 년 내 실행 정부방침’이 발표된 후 곧바로 노조탈퇴 종용하여 노조대표권 박탈한 후 취업규칙 변경 강제 서명 조직하여 교육부와 기획재정부, 청와대에 실적 보고 하였다. 또한 정부는 ‘방만경영 이행 계획은 해를 넘기더라도 실행해야 2015년 3.8% 임금인상 가능하다’는 지침을 발표하였고, 사용자들은 곧바로 단체협약 일방해지 통보하고 전면적인 노동조합 탄압의 칼을 빼들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8월말 2014년 임금인상 노사합의 하였다. 경북대병원은 ‘진짜 방만 경영 주범인 제3병원 건립 반대’와 ‘인력충원 통해 지역거점국립대병원 역할 강화’를 위해 지난 11월 27일부터 전면파업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공공기관 방만 경영의 진짜 원인은 소위 ‘관피아’ ‘정피아’ 가 무리한 정부 정책의 실행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이고 이것 때문에 국제적 망신까지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실행 기관 실적’에만 집착하고 있다. 급기야 년내 실행되지 않는 책임을 전적으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악랄한 노조파괴 작전을 꺼내 실행하고 있다. 발전노조, 쌍용자동차, 구미KEC노조, 철도노조 등에서 이미 시행한 민주노조 파괴 작전을 이제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노동조합에 적용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은 의료민영화·영리화 반대 파업 투쟁을 단행하여 온 나라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던 노동조합이다. 이런 노동조합 탄압으로 ‘공공기관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국민들은 없다. 정부 정책 실정의 책임을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공공부문의 영리화·민영화에 최대 걸림돌인 민주노조를 이틈에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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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간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이런 공간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해는 져서 하늘을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이고

반달은 반듯하게 떠서 어둑해지는 산자락 지키고

바람은 말라버린 나뭇가지와 이파리 사정없이 흔들면서 숲의 소리 일으킨다

 

바삐 걷는 발길 멈추게 하여

숲의 정기 느끼게 하고

등 뒤 밀어 주면서

또 걷게 한다

 

청주시노인전문병원분회 싸움이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조합원들이 어떻게 정리할지 걱정이 되었는데, ‘위탁해지’싸움을 전면화 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이 긴 터널을 200일 넘게 지나왔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다시 맞이하는 상황인데...

해는 지고 달은 뜨고 몸도 마음도 지쳤는데 길은 끝나는 줄 알았지만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

악마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자본이라는 악마와 마주하고 있는 한 생존이 절대절명의 과제다. 생존을 위한 길 위에서 악마와의 타협은 악마화 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길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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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민영화반대 100만 서명운동

모두의 마음이 모인 의료민영화반대 100만 서명운동은 여론의 징표

 

“의료민영화반대 100만 서명운동에 가스지부 본사지회는 참여 하셨는지요?”

“본사지회차원에서 서명을 조직하지 않은 것 같은데...지역에서는 하는 것 같습니다. 서명운동 하겠습니다.”

 

1주일쯤 지나서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저는 가스지부 본사지회 조합원입니다. 제가 사는 성남지역 200여명 주민들이 의료민영화 반대 서명을 했습니다. 서명용지를 의료민영화 범국민운동본부에 직접 전달하고 싶습니다.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조직국장님 연락처는 지부 사무실에 확인하여 알았습니다”

 

또 1주일이 지났다.

노조연맹 중앙집행위 회의 참여하신 가스지부장님으로부터 두툼한 노란색 봉투를 전달 받았다. 의료민영화반대 서명용지였다. 가스지부 본사지회, 경기지회, 인천지회, 대구경북지회 등에서 참여한 서명이었다. 서명자가 무려 1900명이 넘었다. 어떤 조합원은 서명용지를 들고 다니면서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서 서명을 받아 왔다고 한다. 의료연대소속 1조합원 10명 서명운동 조직지침을 가스지부 조합원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료민영화반대 100만 서명운동은 2월(?)부터 시작하여 5월 29일까지 40만명이 넘게 참여하였다. 이중 공공운수노조연맹에서 조직한 서명자는 약 11만명 정도이다. 사회보험지부에서 9만명이상 조직하였고, 의료연대본부가 약 1만명, 노조연맹 소속 조합원 1만명이 참여하였다. 이 서명운동에 참여한 조합원과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어떤 청년은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의료까지 민영화되면 이 나라를 떠나야 된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 촉구 서명을 거부하신 어떤 어르신께서는 “의료민영화반대 서명은 해야 한다”며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서명용지에 기록하셨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고등학생은 “고생 많으셔요. 파이팅”을 외쳤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로 공표를 연기한 병원부대사업 시행규칙과 자회사 운영 가이드라인 정책을 곧 발표할 것이다. 6.4 지방선거가 끝났으니깐...

혹자는 이번에 발표할 정책이 실행되면 의료민영화정책이 완성되는 것인가를 물어본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100만 서명운동 의미를 물어본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할 정책은 의료민영화·상업화·영리화의 단초이다. 정부는 국민건강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재벌들의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정책을 제도화한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건강보험제도의 보장성 축소,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변경하여 보험료 인상, 민간의료보험시장 확대, 가뜩이나 부족한 공공의료를 더욱 더 축소 등등 정책이 전면화 된다. 박근혜정부와 재벌의 이런 태도 앞에 의료민영화반대 100만 서명은 의료민영화 정책에 대한 국민여론의 징표가 된다. 의료민영화반대 100만 서명은 ‘의료민영화 바퀴’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나타낸다.

 

서명운동만으로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중단 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10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의료민영화 정책의 문제점을 박근혜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은 충분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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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고민_(2)

왜, 여기 있지?

무얼하고픈가? 무엇을 할 수 있을만큼의 열정이 있는가? 어디로 가려고 하나?

 

하고픈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큰 차이다.

마음으로야 이것도 저것도 온갖 것들이 머리를 뒤 흔든다.

하지만,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더라. 뭘 하려면 이것도 저것도 부족한 것이 먼저보인다.

한다면, 하겠다면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필요한 조건은 어느정도 있어야 하기에 이것저것 밑밥을 뿌리는 심정으로 지낸다.

 

그러다가 세월 다 간다.

 

정작 하고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래저래 필요하다고 하니깐 한다. 대표자들을 믿고 간부들을 믿고 옆 동료를 믿고 그저 간다.

 

이게 노동운동 경력 26년차의 모습이다.

왜 여기 있나?

매일매일 연거푸 반복되는 사무실 공간,  하루평균 10시간이상 노동을 함에도 무엇하나 남는게 없다.

잘 가고 있는건가? 이렇게 하면 조합원, 간부들의 고민에 조금이나마 다가가나? 창과 방패가 될 수 있을까?

노동자 계급의 눈으로 좀 더 세상을 보게 될까? (에라이!!!!! 내가 노동자 계급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데, 간부들, 조합원들에게 기대하는 건가?그렇지 나보다 훌륭한 조합원과 간부가 있지... 그들을 믿어볼까?)

 

직장인....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모두의 행복한 꿈을 같이 만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모두의 꿈은 사라지고... 앙상하고 노쇄한 늙은 활동가만 남아... 존재의 가벼움에 살떨려가면서... 또는 나의 존재를 무시하는 조직과 관계에 치떨려하면서... 매 순간 소외의 흔적에 고통받고 살고 있는.... 나...여기 있더라....(그리고... 다른 이에게 똑 같이 복수하고 살고 있더라...)

 

안개속 이다.  

계속 돌리기만 하는 큐빅이다. 색깔은 온통 섞여서 도무지 맞춰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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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다시 고민_(1)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기는 하다.

새로운 분야를 접하고 조심스럽게 하나씩 하나씩 배워간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인 것 같다.

그러나, 힘든 것도 있다. 혼자서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이 사업에 대한 기대는 높으나 무엇을 핵심사업으로 진행해야 할지가 잡히지 않는다. 이것저것 다 해야 될 것 같고 현장에서 제기하는 것은 노조연맹이 해야된다는 압박감이 가장 큰 부담이다. 많이 답답하다. 물론, 이러한 모습들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야겠지...

 

흐음.... 이건 직장업무와 연관된 이야기들인데... 흐음...이것이 나의 일상이고 생활이다.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가장 많이 들어있다. 업무와 관련된 이런저런 생각하면서 결국에 조직의 한계와 나 개인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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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때부터 친구들과 같이 사회운동, 변혁운동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운동'이 너무 좋았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이해해주고 그 상처를 사회관계로 해석하고 이 상처의 원인을 알려주었다. 그 상황이 인간적이었고 고전책속에 있는 마르크스와 레닌, 사회주의자들이 따뜻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리고, 난 '운동을 실천하는 모습'이 '삶'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운동가' '활동가' '변혁을 꿈꾸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선택했다. 노동운동, 사회운동을 직업으로 선택했다. 이 운동속에서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게 20년을 훌쩍 넘겨 26년째가 되었다.

 

26년이란 세월은 판단하고 선택한 삶이었다. 26년동안 힘든일도 있었다.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서 훌쩍 훌쩍 울면서 걸었다. 걷다가 그 길에 푹썩 주저앉은 적도 있다. 한번은 너무 힘들어 2년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내 인생의 오아시스였다. 큰 힘이었다.

 

다시 노동운동판에 접어들고서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제는 의지와 열정의 부족함만이 아니라 체력과 두뇌회전, 사람관계, 판단 등에 대한 회의가 덧붙여지고 있다. 이럴때마다 나이를 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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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네

이럭저럭 또 한달이 간다.

 

그리고, 겨울도 간다.

 

겨울은 치마끝자락에 걸려있다.

 

봄은 눈썹에 달려있나?

 

또다시 보내고 맞이하는 이 시절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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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저장 문서]이광호국장과 소주 한 병

참 미안합니다!

 

정말 뭐라고 말도 못하겠고 얼굴을 들수도 없읍니다.

 

활동가라고 노동운동한다고 뻐기도 다닐줄은 알았지, 옆 동료에 대해 따뜻한 시선하나도 제대로 못 보냈읍니다.

 

잘 가세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커다란 눈망울에 환한 웃음 가득 품고서 친구들과 많은 얘기 나누세요.

 

 

 

 

금요일 아침 출근길에 온 문자하나!

 

아침10시 회의에 곧바로 들어오겠다며, 김포까지 문상하다가 새벽에 집에 들어감으로 늦어진다는 내용이었다.

 

근데, 택시지부 이광호 조직국장 투신하여 자살하였고 그 영안실에 문상갔다는 것이었다.

 

'아~~~ 이광호국장 ... 누구지,,,아~~~ 공해투 상근하신 그 동지?'

 

사무실에 도착하니 먼저 출근한 사무처 간부들이 이래저래 얘기를 한다.  생각한 그 분이 맞았다.  왜? 죽어?

 

새벽에 문상갔다온 식구들에게서 확인된 건 평소 우울증이 있었고 그날도 부인과 아이들이 같이 있었다고 한다.

 

부인과 말다툼도 없었단다. '아이들 잘 부탁한다'는 것만 남기고 집에서 투신 자살했다고 한다.

 

문득, 박상윤동지가 생각났다. 또, 자살하는 활동가가 있다니...

 

공해투 상근자로 2009년 2010년에 주로 봐 온것 같다. 평소 말도 없고, 혼자서 책상에 앉아 있거나, 공해투 식구

 

들과 회의하면서 웃는 모습을 몇차례 스쳐지나면서 봤네

 

그리고, 민주버스본부 전북지회 투쟁때 공공운수노조 준비위 집중투쟁을 마치고 얼은 몸 좀 녹이고 허기진 배도

 

채운 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전북고속 놔 두고 서울로 돌아가는 발길을 못내 아쉬워하며 소주 마시며  이래저래

 

얘기하던 모습. 그때 처음 이광호 동지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커다란 존재를 느꼈다.

 

하지만, 우린 그때 이광호 동지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계속되는 바람에 짜증이 좀 나기는 했다. 피곤한 몸으로 서

 

울 돌아오는 버스였는데 다들 그냥 쉬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눈망울, 건장한 체구,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 그리고 주위를 살피는 듯한 분위기....

 

이것이 이광호 동지에 대한 기억이다. 이것뿐이었다. 

 

너무하지 않나?  너무한 것 같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지 않아서 부대끼면서 동료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것 같다.

 

하다못해 쓴 소주 한잔, 막걸리 한잔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왜 못했지?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었던 환경도 있지만, 택시업종 해고자 문제는 접근하는 것이 두려웠다.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감이 안왔다. 그리고, 얘기하면 계속 논의해야 하고 책임이 커질 것 같아서였다.

 

또하나, 그동지 사는  방식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무엇하나 집중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데, 왜 여기 있지? 왜 이

 

사무실에 올까? 공해투 위원장과 뜻이 잘 맞나? 아닌 것 같은데.... 공해투 위원장 믿고 뭘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광호 동지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애써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8시경 사무처 식구들과 같이 김포우리병원에 있는 빈소 문상을 갔다. 우여곡절 끝에 7명이 빈소를 찾

 

았고 연장자라꼬 향피우고 술 한잔 치고 절하고... 그리고 빈소를 지키는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과도 절하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만 하고 빈소를 나와 소주 한잔을 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택시지부, 공해

 

투 식구들이 있었다.

 

밥상을 받고 소주를 달라해 연거푸 계속 마셨다.

 

이광호 동지, 당신이 투신 자살해서 죽고나서 여기와서 겨우 소주한잔 먹네요. 참... 이게 뭐야!

 

어느덧 소주 한잔이 소주 한병이 되었다. 그리고, 이상한 문상객이 옆에서 치근대는 바람에 모두 장례식장을 빠져

 

나왔다. 주차장에는 흰 눈이 뽀얗게 싸여있다. 사람들이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자꾸 문상하려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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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9

금요일 과메기와 숭어회 파티를 거나하게 한 다음날.

 

오후 3시부터 재능 1500일 투쟁이 있고 오후 5시에 FTA집회 있고, 다시 밤늦게 재능 1500일 투쟁이 있는 날.

 

새벽까지 이어진 파티와 과음, 벗들과의 만남을 핑계로 결국, 오후 3시부터 참석하지 못하고 청계광장에 있는 FTA집회로 곧장 직행했음.

 

이제 막 시작한 듯한 집회장에서 아는 사람들도 없고 혼자서 어슬렁어슬렁거리다가 혹시나 싶어 재능집회장으로 향하면서 문자를 날림. 곧바로 온 답신은 '이제 곧 마치니 FTA집회장에서 기다리라'는 말씀.

 

40여분이나 지난 뒤 재능농성장 대오가 합류하고 이래저래 사람들이 모여 대오를 형성했음.

 

해 떨어진 뒤 건물과 건물 사이 청계광장은 꽤나 쌀쌀했음. 앉기도 그렇고 해서 뒷쪽에 서서 집회참석 동료들과 이러저런 얘기로 시간 때우고 있었음. 꽤나 긴 시간동안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오늘 난 왜 이집회 나왔을까?'라는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가 다시 다가와 정수리 주위를 맴돌다가 다시 사라짐. 몇차례 반복하다가 심지어는 '차라리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뚜렷한 일정과 목표가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됨.

 

아~~~ 그렇지. 오늘 이 거리로 나온 것은 재능지부 1500일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였음.

 

6:40분경 FTA를 마치고 보신각으로 이동. 보신각에서 재능투쟁 시작 집회를 간단하게 한 뒤 종로를 지나 종로5가에서 혜화로타리에 있는 재능본사앞까지 인도로 행진. 꽤 긴 행진거리구먼. 쩝쩝...

 

8시부터 재능본부사앞 투쟁을 예고하고 있고  또 그곳에서 저녁식사까지 한다는 것. 밥차가 있다고 함.

 

오후 늦게 먹은 짱뚱어탕으로 추위를 이기고 있었는데, 혜화로타리까지 걸어가면서 추위와 시간과 싸워서 이겨서 오는자만이 저녁식사를 먹을 수 있고 그 덕으로 투쟁도 가능하다라는 지침을 동의해야 하나 거부해야 하나에 한참동안 갈등과 번민과 심지어 고뇌까지 있었음.

 

아~~~~

꼭 오라고 아침까지 문자보낸 김혜진동지와 

1500일동안 이래저래 상처받고 이제는 자신에게 화살을 돌려 몸과 마음을 옥죄고 있을 유명자 지부장님과 재능 식구들의 얼굴이 아른거림. 

 

아!! 고민

'그래도 오늘은 재능집회에 참석하려고 왔는데 있어야지'라는 마음을 다잡고 인도 행진을 시작하는 대오속으로 합류함

 

7시 20분경 시작한 듯함.

토요일이고 또 종로여서 인도가 많이 복잡했음.

그러나, 정작 복잡한 이유는 집회대오도 아니고 토요일 종로거리로 나온 시민들도 아니었음.

경찰이었음.

 

"깃발은 내리고 가시기 바랍니다. 깃발을 그대로 든 채 인도로 행진하는 것은 불법집회입니다"

"야! 저리로 가!!  야! 이리로 와!"

"아악^^^~~! 왜 이래요. 밀지마세요. 그냥 가게 내려두세요. 경찰이 시민들 행보 방해하고 있읍니다. 아악^^^~~"

"깃발내리세요. 깃발내려요"

 

이렇게 가다가 섯다가 경찰과 대치하였다가  다시, 몇걸음 움직이다가...

신호등 만나서 기다리다가 또 걷다가

"대오 끊어지지 않게 빨리 좀 걸어주세요. 신호등 때문에 대오가 끊어질 수 있읍니다. 좀 빨리 걸어주세요"

 

또 다시 스~~~톱~~~~~

 

"시민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불법집회를 하고 있읍니다. 삼삼오오로 인도를 걸어야지 무리지어 그것도 깃발까지 들고 행진하는 것은 집시법 위반입니다."

 

" 에이 시팔!  집시법 공부해야 겠다. 어디가 불법인지, 어떻게 하면 집시법 위반이 아닌지..."

 

" 공부해도 소용없어. 집회와 관련된 것은 경찰 생각하기 나름이야. 법에는 없는 것들이야"

 

결국, 재능본사앞 투쟁을 더 이상 늦지 않기 위해서 깃발을 내림.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움직임. 종로4가에서 원남동으로 꺾어서 이화로타리에서 혜화로타리로 이동함. 이때가 8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음.

 

다리도 후들거리고, 어제 과음한 후유증이 온 몸을 감싸고, 마음은 또다시 이런저런 생각들이 일어남.

 

' 재능투쟁 끝까지 있어야 하는데'

'아 ~ 더 이상은 못 걷겠다. 가서 밥먹을때 누구랑 같이 먹지. 아는 사람들은 몇몇있지만, 그네들과 같이 썩여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있기는 싫은데...'

 

8시 40분경 혜화전철역을 지날 때 대오에서 벗어남.

주린 배와 천근같은 다리 핑계를 대면서 지하철 역사 계단을 내려오면서  끝까지 1500일 투쟁을 함께 못했다는 미안함이 몸과 마음을 덮어버림.

 

또 다시 '다음에는 꼭 참석해서 끝까지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짧은 재능 투쟁 참가 소회를 가짐.

 

재능을 비롯한 모든 투쟁하시는 동지들!

동지들은 촛불입니다. 제 몸과 살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입니다.

동지들이 있기에 관성에 젖은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동지들은 몸과 살을 태우면서 우리네 정신을 밝힙니다.

정신줄 놓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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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이 마지막

 

매일 매일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살고 싶다.

 

참 많이 부족하다.

뭘 더 배워야할지 모르겠다. 여기서는……

 

많이도 봤다

많이도 겪었다

많이도 싸웠다

아무것도 없다

 

더 이상 여기 있다가는 민폐만 될 것 같다.

하고픈 얘기도 있고 부탁도 있지만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같이 몸으로 부대끼고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으면

도움이 안 된다.

더 이상 필요를 못 느낀다.

 

차오르지 못하고 삵이 되는 하현달

그래도 실낱같은 꼬리 붙잡고

온 몸으로 바람 맞으며

온 몸으로 흔들리는 내 인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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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 아침이네요.

 

4/28(화)  09:18  문자

 

좋은 아침이어요

 

좋은 봄날이네요

 

넘 좋아 눈물이 나네요

 

老眼 때문인지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요

 

좋은 봄날 아침에

 

문득 !.....

 

넘 멀리온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네요

 

더욱 눈물이 납니다.

 

참 좋은 봄날 아침이네요

 

이 햇살 맘껏 즐기는 하루되세요

 

 

 

-> 밤 근무 마치고 환한 햇살 받으며 집에 감.

 

    눈부시고 싫다.

 

    그래도 친구의 안부는 좋아!  (09:25)

 

 

-> 좋은 햇살 싱그러운 나뭇잎과 꽃, 자연은 역시 위대하다.

 

     그곳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고 일하는데    좋은 하루되고

 

     메이데이 이후 5일 어린이날까지

 

     햇살, 신록과 함께 푹 쉬는 계획 잡아 봐!  (09:26)

 

 

-> 그래! 좋은 날이다!

 

     넘 좋아서 서러운 날도 있지!

 

     노안도 이젠 한 몫할 때도 있고.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갈땐 어쩌지..... (10:12)

 

 

-> 노안 얘기를 들으니  나이듬이 또 실감나여.

 

     요즘은  무너진 임플란트 재건사업으로  돈도 아깝고 우울한데

 

     오늘은 니 말대로 봄햇살보면서

 

      맘이 좀 바뀌었음 좋겠다.

 

      항상 운치있는 친구 덕에 일인시위가 덜 지루할 것 같어 (11:05)

 

 

-> 현장 내려가기 이틀 전이라

 

     이리저리 인수인계 한다고 정신없다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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