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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라이더_자전거, 도시에서 즐겁게 타기

왜 아름다운 것은 둥근가.

 

자전거를 타고 행복해지는 것은 자전거 때문이 아니다. 사이클링은 고도의 정신적, 육체적 활동이 필요한 운동이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사람은 바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하늘에 툭 터져 있기 때문에, 어떤 날씨든 느낄 수가 있다. 이 드러남은 두려움과 어려움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바로 기쁨의 원천이다. 그로 인해서 자전거의 주행이 다채롭고 강렬한 경험이 되는 것이다. 일상의 주행마저 추억이 된다. 여행이 길어지더라도 자전거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여행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나의 친구들, 그것은 오롯한 삶이다.

... 한밤 응접실 벽에 조용히 기대고 있는 자전거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숨쉬고 있다.

자전거가 좋다. 자동차 안에서 보내기에 삶은 너무 소중하다.

 

 

1. 프랑켄슈타인 몬스터

 

(59쪽) ... 줄리어스 시저는 제일 분주한 시간에 바퀴 달린 교통수단이 로마 중심가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시킨 바 있다. 지금이나 그때나 그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많은 공간을 독차지하는 탈것으로 인한 공간의 부족, 그것이 이유였다.

 

(61쪽) .....그런 도시의 지역에서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거의 모든 시간에 다양한 이유로 걸어서 드나든다고 한다. 이렇게 들고 나가니 이웃과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얼굴과 얼굴이 대면하는 접촉이 생긴다. 제이콥스에 따르면, 겉으로는 사소하게 보이는 사회적 접촉이 안전하고 활기찬 도시를 만드는 초석이다.

 

(63쪽)... 자동차화된 대도시, 차에 지배당하는 사회에서 당연히 라이더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한계에 몰려 있다. 때때로 라이더는 욕을 먹어야 하는 타인처럼 느껴진다.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이 나라가 딛고 선 많은 원칙들, 몇 개만 들자면 상식과 자립, 땅과의 밀착성 등에 대한 찬사인 반면에, 그것은 또한 많은 면에서 현시대 미국문화에 대한 모멸이다.

 

 

2. 도시의 노면에는 무엇이 있나

 

(72쪽) ... 거리에 팬 구멍, 갈라진 곳, 맨홀, 너울이, 도랑, 심지어 움푹 파인 곳에 부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철로, 점박이 요철, 올록볼록이, 로드킬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도시와 시골 도로의 길바닥에는 수많은 구멍이 나 있다. 갈라진 곳이나 울퉁불퉁한 곳은 현실이다. 손상이 정상이다...

 

(84쪽) .. 도시의 어떤 평범한 지역이라도 토핑만 올바르게 알려주면 얼마든지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경험이 많은 라이더들은 거의 모두 모래가 깔린 도로에서 넘어진 적이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시멘트가 젖으면 마른 것보다 두 배는 더 미끄럽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배우기도 한다.

도로의 토핑은  대부분 약간만 주의하면 아주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간단히 긴장을 풀고 이들 문제의 지역을 타고 넘으면 된다. 단 회전을 하거나 브레이크를 잡지 말고.

 

 

3. 도시에서 자전거 즐기기

 

(93쪽)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관점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간단히 분류하자면 "첫째, 차도에서 자동차를 몰아내자. 둘째, 차도에서 자동차와 똑같이 행동하자. 셋째, 차도만으로는 안 되고 자전거 전용도로도 많이 만들어 편하게 타자." 첫째는 환경주의들의 주장이며, 둘째는 자전거를 차량으로 인정해 달라는 "차량주의자 Vehicularist" 노선이며, 셋째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부족한 현실에서는 차도며 인도며 자전거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으면 어디든 괜찮다는 중도 노선이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한겨레 신문 2006. 11.3일자 인용.)

 

(94쪽) 차량주의 노선 또는 도심주행의 원칙이 가진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그 노선이 복잡하고 위치마다 다른, 혼잡한 도심에서는 적절한 설명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패한 증거는 노련한 라이더들, 심지어 차량주의 교의를 열렬히 찬성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일상적인 주행에서 이를 일관되게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들 목적에 부합하면 이 노선을 지키고 부합하지 못하면 따르지 않는다. 방향만 맞으면 뒷골목 자전거길을 이용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또한 일단 멈춤도 무시하고 빨간불을 파란불처럼 이용하며, 교통정체와 교차로에서 멈춘 차들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렇다면 차량주의자가 아니다. 그것이 오늘날 도시에서 자전거 타기의 현실이다. 라이더가 갑자기 모든 상황에서 차량주의 노선을 지키기 시작한다면, 수십 년 동안 자기들을 위해서 만든 특권과 사실상의 법률을 버린다면,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는 이점은 깡그리 없어지게 된다.

 

(96쪽) 차량주의 노선에 따라 뒷길을 포기하고 자동차 흐름속에 과감히 자기위치를 점한 전례가 있지만, 융통성은 우리들 몫일 것이다. 우리는 가장 안전하고 용이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스트레스가 제일 적은 대안을 찾을 것이다. 우리 모든 권리를 행사해서 아무리 분주한 도심도 주행하며, 우리의 권리와 실력으로 한적한 도로와 뒷길도 이용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곳을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원칙과 규율을 가장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 도시생활의 혼란에 적응할 것이다. 우리는 저항이 제일 적은 길을 찾을 것이며, 교통의 흐름을 강조하기보다 우리가 교통의 흐름이 되고 그것이 우리가 되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재미를 찾고 무사히 집에 닿을 것이다.

 

(99쪽) 자동차 대 자전거 사고는 두 명의 당사자가 필요하다.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과 약이 오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 어느 모로 보나 서툰 짓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 둘이 사고를 내는 것이다. ... 당신의 운명을 경찰, 도시계획자, 보행자 또는 의사에게 맡기지 마라. 당신의 운명을 별이나 운에 두지 마라. 당신의 운명을 결코 운전자에게 맡기지 마라.

 

(105쪽) 루트 선택은 안전만큼이나 혼잡과 스트레스 최소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서, 단순히 교통량만 고려하기보다는 차선 분쟁과 회전, 교차 분쟁이 적은 곳을 찾아야 한다. 교통 집중도가 낮은 도로를 찾아라. 필자가 지금 막 만들어낸 공식용어처럼 들리는 교통 집중도란 교통량, 속도, 회전, 교차빈도, 차선 너비가 함수인 일종의 흥분도를 말한다..

 

(111쪽) 자전거는 차일까 차가 아닐까? 달구지가 우마차에 해당하듯이 자전거도 법률상으로는 차에 해당한다. 그러므로법률상으로는 자전차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휠체어나 유모차는 차가 아니다. 오토바이중에 125cc 이상은 이륜자동차, 미만은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하듯이 도로교통법 제2조 제16호 가목 4번에 자전거는 '차'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일반 도로에서든 차도에서든 일반 자동차처럼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보행자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역주)

 

(115쪽) 라이더는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에서 통행해야만 한다. 이 법률의 목적은 라이더의 안전을 증가시켜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교통흐름을 촉진하는 데, 즉 교통을 방해하지 말라는 데 있다. 빠른 차량 속에서 느린 차량을 속아내는 데 있는 것이다....

 

(118쪽) 협조와 타협이란 라이더가 조금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운전자가 조금 왼쪽으로 움직여서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다. .....(중략) 가능하면 차선을 공유하라. 그렇게 할 때 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아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씨티라이더_자전거, 도시에서 즐겁게 타기> 로버트 허스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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