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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되나? 좋은 점이 있나?

생활이 되나? 좋은 점이 있나?


생활은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다. 돈이 안 된다고 해서 생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자동차를 사거나 유지하기 위한 돈이 젼혀 필요하지 않다. 교통비도 들지 않는다. 운동 부족을 고민하면서 운동기구를 사고 헬스클럽을 다닐 돈도 필요하지 않다. 적절한 운동과 안장 위의 명상은 잔병과 번뇌를 잠재우며 병원갈 일을 만들지 않는다. 여가 시간에 이런저런 놀이 거리를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 자전거 메신저라는 일은 일차적으로 노동이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 이동이기도 하고, 운동이기도 하고, 치료이기도 하고, 놀이이기도 한 것이다.
또 비용 지출 없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이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경제적 이점을 준다. 같은 물건을 사도 멀지만 싸게 파는 곳에 직접 가서 살 수가 있다. 돌아다니다가 노량진시장에 가면 수산물을 사고, 경동시장에 가면 야채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용산에 들러 전자제품을 사는 식이다. 이런 쇼핑 방식은 자동차를 끌고 대형마트를 가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몇 배는 즐겁다. 집에 잠깐 돌아와서 가장 싸고 맛있고 좋은 밥을 해먹고 다시 나갈 수도 있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싸고 맛있는 식당을 금방 찾아가서 먹을 수도 있다. 옷이 필요한 경우에는 서울 곳곳에서 만나는 중고 옷가게들을 둘러보곤 한다. 책은 오며가며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본다. 그밖에도 도시에는 의외로 가난하면서도 우아하게 살 수 있는 기회들이 종종 있는데, 자전거는 그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집도 자전거를 닮은 열린 집에서 살고 있다. 누구나 와서 서로 만나고 함께 살 수 있는 집. 남산 아래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http://house.jinbo.net)이다. 이 곳은 내가 머무는 집이기도 하고 메신저 사무실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식당도 술집도 극장도 콘서트도 학교나 학원도 거의 가지 않지만 부족함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할 수 없는 일이 별로 없다. 서울을 여행하는 자전거 여행자라면 누구나 환영한다. (사실 자전거를 안 타고 와도 환영하긴 한다.) 자전거 메신저를 너무 하고 싶은데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이라면 함께 살아도 좋다. 뉴욕의 메신저들도 서로 모여 살면서 도심의 비싼 집세 부담을 나누고, 새로 메신저 일을 시작하러 뉴욕에 오는 사람에게 기꺼이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하면서 함께 살고 있다.
밀폐되어 있는 잠자는 곳과 일하는 곳, 그리고 이 두 개의 점 사이의 장애물을 없애버리는 자동차라는 또 하나의 밀폐된 점 말고는 아무런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공간을 원하기 때문에 그 점을 더 넓고 크고 비싼 것으로 바꾸려 애쓴다. 하지만 점은 아무리 크고 비싸봐야 점이다. 반면 자전거는 점에 집착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한없이 열려진 채로 세상을 달린다. 자전거는 점과 점을 잇는 선으로서의 길 위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꿈틀대고 있는지, 길과 길의 마주침과 펼쳐짐으로 만들어지는 면으로서의 세상이 얼마나 드넓은지, 그 세상 위에 무수한 생명들이 어우러져 집과 마을과 도시와 자연을 이루며 사는 공간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가르쳐준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집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텐트 문만 열면 우리에게 행복한 잠과 꿈을 선물해준 숲, 들, 공터, 공원, 밭, 강, 바다, 마을과 도시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텐트가 좁다는 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처음 만나는 우리에게 각자 자기 집의 마당과 부엌과 하나뿐인 방과 창고와 집 열쇠를 내주고 먹을 것과 마실 것, 즐거운 대화를 선물해준 사람들도 있는데, 집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밖에도 다른 장점들이 많이 있다. 무엇보다 다소 늦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불러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좋은 사람들이다. 일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운이고 기쁨이다. 일이 없을 때는 아무데나 앉아서 책을 보거나 자기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친구들을 잠깐씩 만나러 가기에도 좋다. 시작하는데 있어서 투자비용이 거의 필요 없다. 경력이나 숙련도도 필요 없다. 그런 건 타다보면 느는 거니까. 혼자 일할 때는 어렵지만,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쉬고 싶을 때 쉬는 것도 자유로울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전거라고 호의적으로 봐 줄 때마다 기쁘기 한량없다. 날씨 좋은 날에 아름다운 길을 달릴 때면, 이렇게 즐거운 일을 하면서 돈을 받아도 되나 싶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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