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
- 쓴 책, 옮긴 책
- The Dispossessed
최근 미 정부의 부채 한도를 늘리려는 오바마의 발목을 공화당이 물고 늘어지면서 '채무지불 불이행 선언'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참고 - 최대 강국 미국, 디폴트에 빠지면? )
이런 상황에 대해, 평소' 자본론'을 쉽게 풀이한 강의로 유명한 데이빗 하비 교수가 올린 글이 있어서 번역해봤습니다.
자본주의를 끝장내기 위한 투표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재생산되는가? 이는 17세기 이래로 정치경제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문제이다. 그동안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가지 단순한 모형들이 제시되었다. 그 모형 중 어느 것도 이 문제를 완전히 풀지는 못했지만, 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심각하고 절망스러운 골칫거리가 가득한 이 시기에 바로 이 연구를 진행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칼 맑스가 남긴 저작들로부터 뛰어난 모형을 추출해낼 수도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치적 견해를 혐오스러워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처한 위험한 상황에 대한 그의 통찰을 모른 체 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맑스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자본가들은 어느 정도의 돈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들은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구입하고, 이 두 가지를 적절한 기술과 함께 사용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하루를 마칠 때가 되면 본래 투자한 돈에 (흔히 이익이라고 부르는)잉여를 더한 가격으로 이 상품을 내다 판다.
이 과정이 중단될 가능성은 여러 곳에 산재해있다. (충분하지 못한 노동이나 생산수단, 잘못된 기술 등) 더욱 흥미를 끄는 수수께끼는, 하루를 마칠 때 추가적인 유효수요(욕구와 지불할 돈)는 어디에서 발생해서 이익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가이다.
맑스가 살던 시대에는 오랜 봉건 계급으로부터의 잔여수요가 풍부했고, 그게 충분하지 않더라도 중국이나 남미와 같은 비자본주의 국가들과의 무역(혹은 약탈)을 통해 추가적인 유효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그들은 금은이 풍부했다.) 맑스는 금생산자(우리 시대에는 연방준비은행)가 추가 유효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긴 했지만 곧 폐기했다. 이런 경우를 빼버리고 나면 추가 유효수요의 미스터리는 더 어려워진다.
맑스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자본가과 노동자 두 계급으로만 이루어진 자본주의 사회의 모형을 만들었다. 노동자에게는 여분의 돈이 없으므로,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은 자본가들이 하루가 시작될 때 이 과정을 시작하기 위한 돈을 투자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루를 마칠 때 상품을 팔아먹는데 필요한 수요도 공급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맑스의 이야기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매우 기묘해 보이는 경제 체계이다.
이 주장은 몇 가지 형태로 변형되었다. 예를 들어, 토마스 맬서스는 자본가 계급을 생산 자본가와 지주 귀족, (자신과 같은) 목사, (군주정을 포함하여) 부패한 정부 관리로 나누었는데, 사회에 대한 이들의 위대하고 고결한 임무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소비하는 것이다. 후에 (맬서스의 숭배자인) 케인즈는 만일 노동자들이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우익은 이 제안을 변형해서 탐욕스러운 노조원들이 그걸 불가능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만들 거라고 주장했다.)
그건 그렇고, 맑스의 간단한 모형에 집중해보자. 어떻게 자본가들은 소비하면서 동시에, 생산을 위해 노동을 투여한 이유인 잉여에 대한 값을 지불할까? 잉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소비될 수 있는데, 자본가들의 개인적인 소비와 더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더 많은 생산수단을 구매하는 방식의 [자본] 확대를 위한 투자이다. 이는 끊임없는 성장과 자본의 축적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내일의 확대를 위한 수요로 어제 만들어낸 잉여 생산물을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시간상의 문제가 있다. 다음날의 확대로 인한 이익은 그 날이 마칠 때까지는 돈의 형태로 실현되지 않는다. 그 돈이 필요한 때는 잉여를 사서 생산할 수 있는 어제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내일의 잉여 생산의 확대를 보증으로 대출을 받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사각형 원을 만든 것이다.(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물론 미래에 확대가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고 부채를 지불할 수 없게 되면 공황이 온다. 맑스는 자본주의란 거대한 투기 체제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자본과 부의 축적은 끊임없는 부채의 축적과 확대에 결정적으로 기대어 있다. 자본의 축적과 부채의 축적이라는 이 두 가지 변수는 사실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함께 움직이며(가서 자료를 찾아보라), 서로 먹여주고 지지해주는 관계다. 최근 보아왔듯이, 이들의 협조 관계가 깨지면 공황이 발생한다. 그리스 국가채무로 인한 공황은 사실 금융 체계의 공황이며, 이는 재투자를 통한 잉여 확대를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결론이 따라온다. 부채의 확대를 막는 투표로 자본주의를 끝장낼 수 있다! (보는 사람의 정치적 관점에 따라) 운이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는데, 코크 형제들[미국의 대표적인 재벌로서 한국의 이건희 같은 존재]과 공화당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맑스는 항상 반란적인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끝내리라 희망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동자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실패해왔던 그 지점에서 코크 형제들과 공화당이 성공할 지도 모르겠다. 맑스는 이 사실에 그리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맑스가 기쁘게 적었듯이, 개별 자본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행동이 종종 총자본의 영속성을 위협하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화당이 이 성스러운 임무에 그리 오래 집착할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의 기록을 보면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는 방탕하게 부채를 늘렸다. (채니 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은 우리에게 재정 적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쳐줬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는 이 성스러운 공화당원들이 그들이 표면상으로는 지지해 마지않는 그 체계에 상당한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다. 맑스는 남겼던 다음 글처럼 말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신비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원본 출처 - The Vote to end Capitalism(http://davidharvey.org/2011/07/the-vote-to-end-capitalism/)
-------------------------
간단히 정리하자면, 한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돈이란 자본가가 본래 가지고 있던 자본 밖에 없었는데, 추가된 ‘잉여’를 소비할 수 있는 돈은 어디서 나오느냐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본은 스스로 잉여를 소비하기 위해서 미래의 자본 확대를 보증으로 부채를 끌어와 그 수요를 충당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이 삐끗하면 자본주의는 공황에 빠진다. 즉, 자본 확대가 멈추거나, 부채를 늘일 수 없게 되면 자본주의는 끝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공화당이 현재 부채를 늘이려는 민주당의 발목을 잡으면서 미국 자본주의 자체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부채를 빌리지 못하게 하는 것 만으로도 자본주의를 끝장낼 수도 있다. 신난다.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IMF를 벗어나기 위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필요한 부채를 자본가들이나 국가가 아닌, 개인들의 카드 대금으로 넘겨서 해결했죠. 98년 이래 높아만가는 자살율은 바로 그 부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놈들을, 그런 정권을 '진보'라며 좋댑니다. 환장하겠습니다.

남양주시에서는 팔당의 유기농사터를 쓸어버리며 '세계유기농대회'를 연다. 웬만한 낯짝으로는 이들의 유머감각을 따라갈 수가 없다.
- [기사] 남양주시, 세계유기농대회 이후 팔당 유기농단지 철거
- [기사] 팔당 유기능 파괴 항의, 세계유기농대회 불참 선언
사랑하는 사람과 더 즐겁게 살려고, 5월말 서울 밖으로 이사했습니다. 이사하며 바뀐 점 몇 가지..
- 전세가가 몇 백, 몇 천씩 치솟아 오르는 시점이었는데, 서울에 살던 집보다 약간 싼 전세를 얻었음에도 집은 오히려 훨씬 더 커졌습니다.
- 10년 동안 서울, 토론토, 대전, 다시 서울까지 따라다니던 알레르기 두 가지가 이사한지 일주일도 되지않아 사라졌습니다. 알레르기성 비염과 콜린성 알레르기가 한꺼번에 사라진 겁니다. 거의 10년만에 처음으로 항히스타민제를 끊었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그러다 이번 주 월요일에 서울에 잠시 일이 있어서 갔더니 아침부터 콧물 줄줄 흐르고, 콜린성 알레르기는 그 뒤로도 이틀이나 가더군요. 이제 다시 괜찮아졌습니다. 서울, 참 사람 살 곳 못 됩니다.)
- 올빼미형 인간에서 아침형 인간으로 자동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까 참 좋습니다. 하루가 무척 길어졌습니다. 하루가 너무 길어진 것 같아 낮에 졸음이 쏟아지면 저희는 그냥 잡니다. 그리고 해지기 전에 다시 일어나 다른 하루를 또 살기도 합니다. 물론 낮에 아무리 많이 자도 밤에 또 잡니다. 좋습니다.
- 워낙 바람이 잘 통하고 시원해서 여름에 에어컨과 선풍기가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초여름 같다는 요즘도, 낮 온도가 30도로 올라간대도 저희는 창문 열어놓으면 춥습니다.
- 시시각각 산으로 달려가는 산만대왕에 집중력 지속시간 제로에 가까워지는 상황을 깨고자 먼저 트위터부터 깼습니다. 인터넷 줄이고 쓸데없는 데 신경 끊으니,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 거의 매일 짝꿍이랑 손 잡고 두어 시간씩 산책을 합니다. 주변에 널린 게 숲길입니다. 세상 부러운 게 없습니다.
- 이제 미술을 배울 예정입니다. 집에서 가까운 아트센터에서 아주 저렴하게 가르쳐주는 수업이 있어서 등록했지요. 토요일 오전은 미술 배우는 시간입니다. 다음주부터 배우러 갑니다. 물론 둘이서 같이 갑니다.
- 다시 담배를 끊어볼 예정입니다. 내일 보건소 금연클리닉 갑니다.
- 싼 DIY 평상을 두 개 사서 조립했습니다. 두 개를 붙이면 평상으로 쓸 수 있고, 분리하면 벤치로 사용가능합니다. 어릴 때처럼 여름에 평상에 누워 자보고 싶었던, 제 로망이 드뎌 실현되었습니다.
- 다음주부터 집 텃밭에서 각종 채소들을 기를 예정입니다. 이제 웬만한 야채는 저희 집에서 키워 먹을 겁니다.
- 명상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역시 좋습니다.
- 일주일에 하루씩, 전자/정보 단식을 할 예정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전자제품과 온갖 정보(컴퓨터, 인터넷, 핸드폰, 책, 라디오 등 모조리) 끊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놀까 합니다.
-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집회 등에 참석하려던 올 초의 계획이 조금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2주일에 한 번은 가려고 노력중입니다. 사회단체 등에 대한 지원 활동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하려고 합니다.
- 적게 벌고 최대한 안 쓸 예정입니다. 남는 게 시간이고, 좋은 게 공기고, 사방이 조용합니다. 이제 빚졌던 책과 글도 쓰고 번역도 열심히 해볼 예정입니다.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또 생각나면 보태겠습니다.
어제 이집트 활동가들의 전술을 담은 유인물이 올라왔길래 우리도 참조할 점이 있을 것 같아 번역해 올립니다. 영어로 번역된 원 자료가 유인물의 일부(1, 2, 3, 4, 10, 12, 13, 22, 26 페이지)만을 담고 있어서 이 부분만 옮깁니다. 전문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 유인물의 출처는 "The Atlantic -Egyption Activists' Action Plan : Translated" 입니다.

영리하게 시위하는 방법
중요한 자료와 전술
이 자료는 이메일과 인쇄, 복사로만 배포하세요!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감시받고 있습니다.
경찰이나 보안대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이집트 민중의 요구사항
1.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과 내각의 몰락
2. 긴급 조치(Emergency Law) 중지
3. 자유
4. 정의
5. 충심으로 이집트 민중에 이익이 되는 '비군부' 새 정부 구성.
6. 이집트의 모든 자원에 대한 건설적인 운영.

시민 불복종 운동의 전략적 목표
1. 주요 정부 건물을 점거하라.
2. 경찰과 군대를 이집트 민중의 편으로 끌어들어라.
3. 혁명의 대오에서 우리의 형제 자매를 보호하라.

실행 단계
1. 보안대에서 멀리 떨어진 주택가에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모아라.
2. 민중의 자유와 이집트의 명예에 대한 구호를 외쳐라. (긍적적인 구호들로)
3. 다른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하라. (긍적적인 언어를 사용하라)
4. 가능한 최대한 큰 집단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중심가로 나가라.
5. 긍정적인 구호를 외치며 주요 정부 건물을 향해 나아가서 그 건물들을 점거하라.

필요한 옷과 시위용품
- 후드가 달린 스웨터나 가죽 잠바 : 최루탄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할 때 유용
- 냄비 뚜껑 : 보안대의 구타나 고무총알을 막을 때 방패로 사용.
- 신발 : 달리기나 움직임이 편한 신발.
- 스프레이 페인트 : 정부 기관이 우리를 공격할 때, 헬멧의 눈보호대나 무장 트럭의 앞유리에 뿌려 시선을 차단하면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
- 장미 : 우리가 가능한 평화적으로 참가하려 한다는 걸 보여주는 용도.
- 스카프 : 최루탄으로부터 입과 폐를 보호.
- 보안경 : 철물점이나 페인트 가게에서 구입 가능.

시위용품 사용 방법
1. 방패와 스프레이 페인트
이집트인이여, 물러서지 말라!
경찰봉을 (냄비뚜껑) 방패로 막으면서 경찰의 얼굴을 향해 스프레이를 뿌려라.

시위용품 사용 방법
2. 스프레이 페인트의 다른 사용 방법 : 무장트럭의 유리창과 감시카메라에 살포.
3. 젖은 수건을 자동차 배기구에 쑤셔넣으면 차를 멈추게 할 수 있다.
4. 무장 트럭의 바퀴 아래에 액체 비누가 담긴 비닐 봉투를 던지면 차가 움직이려 할 때 무게 중심을 흐트려놓을 수 있다.

표지판의 사용 사례
경찰과 민중들은 함께 압제자에 맞서고 있다!
이집트 만세!

이 자료의 배포 방법
1. 트위터나 페이스북, 그 외 다른 웹사이트도 사용하지 말 것. 모두 다 내무부에서 감시하고 있음.
2. 이메일을 이용해 배포하거나, 자기 사무실이나 가게가 있을 경우에는 인쇄, 복사를 통해 배포할 것.
3. 동료 시민들을 배신하지 말고, 경찰에 협력하는 자들에게는 절대로 이 자료가 넘어가지 않도록 할 것.
자, 이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세요!
이집트 만세!
* 첨부 - 트위터에 올리지 말라고 했는데 왜 올리냐는 분이 계셔서...
트위터로 배포하지 말라는 것은 배포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외신의 원문 기사 자체가 이집트 활동가들의 구체적인 전술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사항만 일부분 올린 것이라, 자료가 공개되더라도 이집트 시위대가 전술을 구사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문 기사에서는 활동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번역자의 이름이나 트위터 주소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The Dispossessed님의 [<추노>, 쿠데타냐 혁명이냐] 에 관련된 글.
사회적 재현물로서 모든 예술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맑스의 말처럼, 그 재현방식은 대체로 그 사회 지배계급의 정치를 따른다. 즉, 그들은 대체로 지배계급의 존재를 위협할 사회구조를 건드리지 않는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전개되는 갈등 중 많은 부분이 그 사회의 계급 모순에 원인을 두고 있음에도, 대체로 그 해결방식은 개인적인 해소로 머물고 만다. 사회 구조는 드라마 외부에 존재하는 배경일 뿐이며, 자연적인 운명이고 인간 존재의 굴레일 뿐이다.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재현 예술은 이로써 다시 사회의 이데올로그가가 되어 현 체제를 강화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신데렐라식 계급상승이다. 또 그 중 일부는 계급적인 분노를 개인적 복수로 해소하기도 하고, '시혜적 자선'을 통해 해소되기도 한다. 그러한 갈등의 해소에서 관객은 도피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애초에 갈등을 만들었던 사회적 모순은 그대로 남는다. 관객은 사회구조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는 운명으로 이해하고, 자신들만의 카타르시스를 찾아 떠나게 된다.

그런데 추노는 좀 달랐다. 추노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극안으로 끌어들였다. 드라마가 전개되는 동안 계급 모순은 배경이 아니라 누구보다 중요한 주인공이었다. 드라마 주요인물들 간의 모든 갈등은 모두 사회적 모순으로 인한 갈등이었고, 그 모순에 대한 접근 방식은 철저히 계급적이었다. 모든 등장인물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했으며, 그 안에서 자신이 속한 계급적 관점에 따라 해결책을 찾았다.
주요 인물들의 행보는 앞서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업복은 특별했다. 본래 드라마를 잘 보지 않으니 자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업복은 한국의 드라마 사상 피지배 계급의 계급의식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며, 이를 실천하고자 했던 인물이 아닌가 한다.
첫회에서 도망다니기 바빴던 노망 노비였던 업복은 노비당의 활동을 통해 현재 자신의 처지가 추노나 양반 개인 때문에 벌어진 불행이 아니라 계급 모순으로 인한 착취와 억압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계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양반을 상놈으로 내리고 상놈이 양반으로 올라가는 계급 전복이 아니라, 계급 해소일 것이라고 판단한다. 게다가 그는 "우리가 좋은 양반 만나서 이만큼이나 먹고 사는 거다"라고 주장하는 동료 노비까지도 보듬어 안는다. 마지막 회에서 그는 역사를 이야기 하며 궁궐로 쳐들어간다. 그는 배신한 개혁파와 민중을 우롱하던 '지도자', 그리고 권력의 상징인 좌의정을 사살한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양반 계급에 복종하던 동료 노비를 자각시키고, 그의 꿈은 총을 든 초복에게로 이어진다. 덕분에 난 추노를 해피엔딩으로 기억할 것이다.
업복의 궁궐 진입 씬은 한국에서 지금까지 봤던 드라마 중 최고의 장면이었다.
지난 주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을 재미읽게 읽고 난 후, 요즘 그 책에 나온 원자료들을 찾아보는 재미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수조의 우화'나 '아인슈타인의 세계 경제공황에 대한 견해'가 나왔던 그 당시, 조선에서는 '공황'을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해서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생각보다 꽤 많은 글이 있더군요. 그 중 1924년 2월 1일 <개벽> 44호에 실렸던 '산업의 발전과 무산 게급의 해방'이라는 글을 퍼왔습니다.
이 글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익만을 위해 생산하는 자본주의의 문제 때문에 공황이 발생했으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산계급의 해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일제시대 당시 가장 영향력있던 잡지였던 <개벽>의 논설 내용을 통해 식민지 조선인의 계급의식이 어떤 수준이었는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글 말미에는 '무산쟈회 즉 로동자로 보면 맛찬가지다. 조선자본가의 착취권(搾取權)의 일부가 일본자본가에게 옴겨간 것 뿐이다.'라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는 노동자에게는 조선의 자본가든, 일본의 자본가든 착취받기는 마찬가지란 의미로서, 허울뿐인 '독립'이 아니라 무산계급의 해방을 우선시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어떤 자료에는 이 글이 당시 일제의 검열로 전문을 압수당했다는 기록도 있던데, 그 때문인지 필자는 BSL로만 표기되어 있고, 본문 내에도 XXX자로 지워진 부분이 보입니다. 뭐 그래도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아 퍼왔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당시의 글 중 읽어볼만한 자료들을 퍼오도록 하겠습니다. 출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입니다.
----------------------------------------
산업의 발전과 무산게급의 해방
필자 - BSL生
「사회주의니, 공산제도니, 하야도 우선 물건이 만히 잇고야 할 일이 아닌가」, 「아무리 논아먹고 논아 쓸 생각이 잇슨들 업는 물건이야 엇지 논아먹고 논아 쓸까,」 「그럼으로 몬저 산업을 발뎐(發展)식혀야 한다」하는 말을 우리는 만히 듯는다.
참으로 올흔 말이다! 그리하야, 그들은, 아무리 논아먹고 논아쓸 생각이 잇고 또 그러한 법을 맨든다 하드라도 물건이 업거나 물건이 적으면 무엇을 논아 쓰고 무엇을 논아 먹으리오. 그럼으로 우선 먹을 것을 만히 만들고 입을 것을 만히 만들고 쓰고 살 것을 만히 만들어야 하겟다. 다시 말하면 몬저 쌀(米)과 천과 집을 만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 더 다시 말하면 모든 생산업(生産業)을 몬저 발뎐식혀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으로 츄상(推想)하면 조선에서 소위 사회주의쟈라는 사람들일수룩 더구나 산업발뎐에 노력(努力)하여야 되겟다고 할 것이다!
얼풋 생각하면 과연 그럴 것 갓다. 그리하기에 남이야 엇더케 보든지 자긔(自己)로는 사회주의쟈로 자처(自處)하고 또 자처할 뿐만 아니라 자긔입으로 사회주의쟈라고 광고하지 아니할 만한 태도를 가진 「신사」들 가운데도 소위 산업의 발뎐을 운운하는쟈-적지 안타.
그러나 좀 더 실디(實地)형편을 생각하면 그러한 생각은 너무도 사실과 다른 것을 깨다를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사회주의나 공산제도의 일면(一面)되는 분배(分配)제도만 보고 그 일면인-오히려 전면(全面)인 생산(生産)졔도를 보지 못한 말이며 현대사회(現代社會)의 생산제도를 리해(理解)하지 못한 말이오. 또한 조선의 경제상태(經濟狀態)를 모르는 사람의 말이다.
공산제도 사회에서 각 사람이 평등(平等)하게 분배소비(分配消費)할 것은 물론이나 이 소비를 위하야 생산을 도모할 것은 뭇지 안하도 알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오직 생산이오 생산업은 아니다. 이 관게를 자세히 하자면 현대생산제도를 한번 볼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제도(資本主義經濟制度)아래에서는 생산은 모다 개인자본가(個人資本家)의 게 산(計算)으로 하는 까닭에 엇던 생산이던지 그 경영하는 주인에게 리익이 되지 아니면 그만두는 고로 그것은 곳 영리(營利)를 목뎍하는 생산업이오 소비(消費)를 목뎍하는 생산은 아니다.
우리가 진졍하게 생각하는 생산은 우리의 의식쥬(衣食住)를 우리가 밋츨슈 잇는데까지 만히 만드는 생산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 우선 농사(農事)로 말하야도 이 사회에 잇서서는 제일 조흔 종자(種子)를 택하고 어들 수 잇는 조흔 거름(肥料)을 만히 주고 어들 수 잇는 편리한 농구(農具)를 쓰고 힘자라는데까지 기음매고 풀을 처서 한섬이라도 지어야 할 것이오. 천(織物)이라든가 긔타 모든 공댱졔작품(工場製作品)도 제일 조흔 긔게(機械)로 짧은 시간에 만흔 물건을 만드러야 할것이오 집으로 말하야도 이 사회에서 될 만한데까지는 위생뎍(衛生的)이오 편리한 집을 만히 만드러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오늘날 생산은 영리만을 목뎍(目的)하고 하는고로 아무리 각 사람에게 필요(必要)한 물건 즉 쌀과 천과 집이라도 리익이 업스면 아니맨드는 것이다.
그 대신 리익 만흔 일이면 엇더한 일이던지 다-하는 것은 사람고기 장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능히 알 일이어니와 가튼 생산뎍이라고 할 만한 일에도 부자사람들만이 쓸 사치품(奢侈品)이 뎜두(店頭)에 번쩍거리는 것을 보고 각 사람의 필요한 물건이 풍족(豊足)함으로 그러한 여러 사람에게는 그다지 필요치도 아니한 물건까지 맨들 생산력의 여유가 잇다고는 누구든지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것은 길에 방황하는 거지들을 보고 행낭 안에서 불불 떨고 주으리는 모양을 보는 우리들인 까닭이다.
또한 우리가 소위 경졔공황(經濟恐慌)이란 것을 경험할 때에 더욱 명백히 그간 소식을 알슈가 잇다. 경졔공황이란 것은 생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더 생산하기를 무서워하고 생산품을 매매하는 상업쟈(商業者)가 매매하기를 무서워하고 은행(銀行) 긔타 대금업쟈(貸金業者)가 돈주기를 무서워 하야 일어나는 현상인데 처음에는 몃 공쟝 혹은 몃 상뎜의 지불뎡지(支拂停止)로 브터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공쟝에서는 팔닐세음 대이고 물건을 작고 맨들고 상뎜에서는 팔닐세음 대이고 작고 사두엇으나 그 물건이 팔니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돈이 들어오지 못하면 각 거래처(去來處)에 지불할 슈 업게된다. 그러면 그 거래처 마다 또한 거래처가 잇서서 련쇄뎍(連鎖的)으로 이어서 지불 뎡지가 된다. 그래서 공쟝에서는 생산을 중지하거나 혹은 줄니고 따러서 일하는 로동쟈는 한꺼번에 슈백 명 슈천 명이 내쫏겨서 길에 방황하며 각 회샤에서는 샤원을 줄니고 은행은 돈 바들 줄만 알고 주지는 아니하며 일반사람들은 보기만해도 눈이 띄두던 돈이 말나셔 돈돈하고 돌아단이게 된다. 이것이 과연 무슨 까닭인가. 소위 학쟈들은 그 원인을 차쟈저 생산과다(生産過多)라는 것을 발견(發見)하얏다. 자세히 말하면 자본가가 생산을 슈요에 맛지 못하게 너무 만히한 까닭으로 그것이 팔니지 안어서 소위 경제공황이 일러난다고 함이다. 이러케 경제게에 공황이 일어날 때마다 삭젼을 떼우는 로동자와 회샤 상뎜원도 만켓지만은 손해보는 자본가도 적지 아니하다. (이럿케 손해를 보면서도 이것을 막지 못하고 대략 십년일차(十年一次)식 당하는 것은 생산뎍의 경졔졔도에 대한 반항(反抗)으로 자본가의 몰락(沒落)을 경고하는 조종(吊鍾)임을 자인(自誊)함이어니와)
그러면 생산이 너무 만타함은 과연 각 사람의 욕망(慾望)을 채우고도 남엇다 함인가? 아니다. 우리는 도리혀 공황난 뒤에는 일할 자리도 업서서 여간 먹든 밥그릇도 빼앗기고 굶어 돌아가는 판이 아닌가. 그 소위 생산과다라 함은 영업뎍으로 생산이 과다하엿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배가 주리고 옷을 버서도 돈을 주지 아니면 가지지 못하는 생산품이 만타는 말이다. 그럼으로 공황이란 낫분 헌상이 니러나는 원인은 실상 영리생산이라는 졔도에 잇는 것이다.
그래서 이졔도 아래서는 생산은 인위뎍(人爲的)으로 줄어진다. 즉 생산력의 여유가 잇서도 리익이 업스면 생산력을 줄닌다. 이 생산력을 잇는대로 발휘식히랴면 암만해도 이 졔도를 즉 영리생산업졔도를 곳치지 아니면 안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 잇서서 공산주의를 연구함은 실로 생산증식을 연구함이오. 다만 분배문뎨로 불평(不平)만을 브르짓기 위하야 하는 작란꺼리가 아니다. 공산제도 샤회에서는 리익은 누구누구의 금전상(金錢上)문데가 아니오 한 공동생활톄(其同生活體)안에 물건이 만흐면 그것이 각 사람의 리익이다. 그럼으로 줄리기는 고사하고 늘닐슈 잇는데 까지 늘닐 것이다. 만흐면 만흘수록 모든 사람은 풍족히 살고 싸이면 싸일수록 모든 사람의 로동을 덜 것이다. 더군다나 샤회주의가 모든 사람의 물질뎍(物質的) 요족(饒足)평등이 최후(最後)의 목뎍이 아니오 그것은 오히려 각 사람으로 하여곰 각자의 긔능(技能)을 발휘함에 평등한 긔회(機會)를 주고 각 사람으로 하여곰 각자의 끗업는 정신뎍 쾌락(精神的 快樂)을 엇게 하야 사람으로 사람다운 생활을 하게 하는데 대한 근본뎍 수단(根本的 手段)으로 삼는 한(限)에 잇서서 생산문데는 즁대한 의미(意味)를 가지게 된다.
그럼으로 그때에는 생산은 품질(品秩)과 슈량(數量)을 다시 말하면 사회성원(社會成員)의 필요를 표준(標準)하야하는 참으로의 생산이오. 오늘날과 가티 개인의 리익을 표준하는 생산업은 근졀(根絶)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공황도 업서지고 공황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여러 가지 페해(弊害)와 곤란도 업서질 것이다.
사실이 이와 갓함으로 문뎨는 조선에서도 모든 생산의 기본(基本)이 영리생산에 잇는가 업는가하는 것이오 아직 생산력이 발뎐할 여디가 만히 잇고 업는 것은 문뎨가 아니다. 그것은 우에 말한 바에 의지하야 생산이 꽤 발달한 나라도 아직 여디가 잇는 생산력을 오히려 일부러 줄니는 줄을 아는 까닭이다.
조선은 현대생산업의 중심(中心)인 긔게공업이 발달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산을 더 발뎐식히면 될 수 잇다는 조건(條件)이 아니오. 오히려 이상태로는 도저히 더 생산을 늘닐슈 업다는 증거(證據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도 역시 현대뎍 영리생산이 경졔상 기본을 지엿다는 것을 증명함이다. 보라. 우리는 수년이래로 얼마나 산업의 발뎐을 부르지즈며 또한 얼마나 회샤공댱의 창셜(創設)을 데창(提唱)하엿는고. 그리하야 조선사람의 손으로 된 공댱도 더러 생겻섯다. 그러나 이때까지 보암즉한 성적(成績)을 나타내지 못하고 상금산업이니 물산이니 토산이니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고? 그것은 조선사람이 열성이 업서 그러는 것도 아니오 리익을 몰나서 그러는 것도 아니오 오직 조선의 생산도 영리생산인 까닭이다. 만일 그럿치 안타면 웨 일어낫던 공댱이 쓰러지는 디경에 니르고 집집이 하던 가내수공업(家內手工業)이 점점 업서저 갈 것인고. 모다 리익을 유일한 표준으로 하는고로 슈지(收支)가 맛지 아니면 그만두는 까닭이 아닌가. 그럼으로 조선의 공업이 발뎐하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뎍 영리생산의 와중(渦中)에서 소위 자유경쟁(自由競爭)으로 인한 대자본가의 압박(壓迫)에 소자본가가 머리를 들지 못하거나 혹은 몰락하야 가는 까닭이오 족음도 자본주의뎍 생산방법이 넓이 펴지지 아닌 까닭은 아니다. 그것은 자본가뎍 영리생산의 기초될 조건이 조선에도 점점 명백히 들어나는 것을 보면 알 것이다.
그 긔초 조건은 무엇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첫재 생산수단(生産手段) 즉 토디나 공댱긔게나 원료품등(原料品等)과 가티 다시 생산함에 필요한 물질과 로동자 즉 소작인이나 직공(職工)들가튼 직졉 생산에 노력하는 사람들이 분리(分離)됨이오 둘재는 이 분리된 로동자가 끗업시 생산수단을 독점(獨占)한 사람에게 착취(搾取)를 당함이다.
우리가 만일 각 사람이 자긔의 생산수단으로 자긔가 로동하야 직접 소비하던지 혹은 업는 것을 서로 밧구어만 쓴다하면 그 가운데 아모 영리관게가 업슬 것이다. 또 적은 것을 주고 만흔 것을 밧지 아니면 그 사이에 아무 영리관게도 업슬 것이다. 그럼으로 영리생산은 생산수단을 독졈한 자본가가 일면에 잇고 자긔의 몸을 움직여서 남의 일을 하여줄 힘밧게 가지지 못한 로동자가 한편에 잇지 안으면 안된다. 그것은 적은 보슈를 주고 만흔 로동을 식히지 아니면 리익이란 것이 나올대가 업는 까닭이다.
물론 이 두 게급(階級)의 관게는 공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더욱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이 뎡도의 차이(差異)뿐이오 실질(實質)에 잇서서는 꼭 가틀 것이다. 그럼으로 전인구(全人口)의 10분의 7이상을 차지한 소작인 (직접 농업생산에 노력하면서 착취를 당하는)과 10분의 1도 못되는 다수(생산수단만 가지고 착취하는)를 가진 조선의 경제상태는 더 말할 것도 업시 자본가뎍 영리생산 우에 잇다고 한다.
또한 조선이 일본의 령토인 사실을 사실로 하야 생각하면 조선은 슬여도 자본가뎍 생산국이 아니될 수가 업다. 일본의 엇던 디방이 공업의 발달이 못되얏다고 자본가뎍 일본과 분리하야 볼 수 잇는가. 조선을 항상 독립한 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 정신은 가상하나 사실을 사실대로 관찰하야 무엇을 연구판단 함에는 아모 리익이 업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그릇된 결론으로 적어도 아모 소용업는 노력을 만히 할 것 만은 손해이다. 사실은 어데 까지던지 사실로 보지 안으면 안된다.
조선은 일본의 디방 농촌과 다름업는 까닭에 일본의 농촌에서 행하는 자본주의뎍 행사는 다-그대로 시행된다. 디주가 소작인을 착취하는 외에 농가의 부업이란 부업은 점점 업서지고 농가의 쳥년은 점점 공댱디로 몰녀가고 후하던 인심은 야박하야지고 보도듯도 못하던 물건은 작고 사쓰게된다. 그러고 토디는 해마다 대디주에게로 모여간다. 은행 긔타 대금업쟈가 밋쳔 업는 사람에게는 돈한푼 통용해 주지 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농촌과 다른 것이 한아가 잇다. 거긔서는 거의 자긔 한민족 사이의 관게이나 조선은 조선민족밧게 일본사람과의 관게가 더하야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은 공댱을 좀 멀게 일본에 두고 따라서 들어오는 물건이 일본으로부터 오게되고 청년의 가는 공댱디가 일본도회요 착취하는 자본가가 조선디주만이 아니라 일본자본가까지를 더한 것이 다른 바이다. 그러나 무산쟈회 즉 로동자로 보면 맛찬가지다. 조선자본가의 착취권(搾取權)의 일부가 일본자본가에게 옴겨간 것 뿐이다.
그럼으로 조선민족의 거의 전례되는 무산자로 첫머리에 쓴 말따위를 들으면 일본자본가가 닥치는 리익을 조선자본가가 회복하자는 츙셩된 마음으로 나오는 것 가티 밧게 아니들닌다.
만일 그럿타고 하면 털뎌하게 독립운동을 하여야 할 것이다. 독립한 뒤에 소위 보호무역정책(保護貿易政策)을 쓰면 산업을 한손에 거더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텰뎌하게 독립운동을 할지라도 일본의 XXX업시는 꿈에도 될상 십지 아님을 생각하면 그네들일도 한심하다.
요컨대 생산이 뜻대로 발뎐치 못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의 생산졔도가 영리를 표준함에 잇는 것인즉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의 생산을 발뎐식히기 위하야서도 생산력의 발뎐을 방해하는 장애물(障碍物)인 자본주의뎍 사회졔도를 고칠 필요가 잇음은 길게 말할 여디도 업는 바이다. 그러니까 새사회(新社會)의 건설(建設)이 필요하다함은 소비의 평등을 위하야서 라기보다 생산력의 발뎐을 위하야서이다. 참으로 민중(民衆)의 복리(福利)를 생각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다-반드시 사실을 사실대로 볼려고 할 것이오 사실을 사실대로 본다고 하면 계급(階級)의 대립(對立)과 착취의 관게를 간과(看過)할 수가 업슬 것이다. 그런즉 만일 뜻잇는자-라 하면 누구던지 다-불합리(不合理)한 현대사회제도에 XX하는 XX에 XX하는 것이 올치 아니할가?
그럼으로 사람이 혹 나다려 뭇기를 너는 무엇을 하려 하느냐? 하면 나는 첫재 합리(合理)와 불합리(不合理)에 대하야 더욱 연구하고 둘재 가튼 게급에게 넓이 알니고 셋재 갓한 게급과 힘을 합하고 단결하야 모든 불합리의 근본이 되는 내외를 물론하고 자본주의덕 XX에 XX하는 XX의한 XX이 되려고 한다고 대답하려고 한다.
무산자인 대중(大衆)의 광명(光明)은 해방(解放)은 오직 XX업는 사회의 실현(實現)으로라야만 가능(可能)한 것이오 그것은 또한 XXXXXXXXXX 목뎍을 달할 수가 잇는 것이다. 물산의 요족도 생활의 안락(安樂)도 다-그 뒤에 잇슴을 기억하라!
트위터에서 누군가의 짧은 글에서 차베스 정책 운운하며 베네수엘라의 혁명까지도 통째로 씨니컬하게 씹히는 걸 보면서, 얼마 전 봤던 영화 <인빅터스>가 생각냈다. 차베스가 뻘짓 하는 것 때문에 왜 민중들의 혁명까지 매도되야 하는 걸까? 그들은 왜 '대통령'이, 혹은 '지도자'가 혁명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좋은 '권력자', 착한 '지배자'를 기다리는 건가?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인빅터스>는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준 '쉽지 않은' 영화였다. ANC는 투쟁시기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막상 정권을 잡은 후에는 만델라의 주도하에 계급적 평등보다 '국민 통합'을 남아공의 1차적 과제로 선택한다. 만델라의 그 어려운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영화는 남아공의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델라의 시선으로 따라갔다. 영화는 만델라의 선택에 공감하고, 그 결과에 박수를 보내달라 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게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불편했다.
'스포츠' 하면 우민화 정책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 상황에 놓인 만델라를 그런 도식으로 쉽게 비판할 수는 없었다. 누가 만델라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내가 만델라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계속 생각했다. 그게 저 영화가 원하는 바였다. 하지만 나는 대통령이 아니다. 영화는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라고 말하지만, 나는 대통령이 아니다. 내가 만델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만일 남아공의 민중이었다면, ANC 활동가였더라면, 혹은 코사투 활동가라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마도 만델라의 선택을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그와 함께 하지 못 했을 것이다. 가슴이 아파도,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흑인의 손'으로 세운 정권이라도, 그토록 존경해왔던 만델라라도 그 상황에서는 비판을 할 수밖에 없다. 다시 '꼴통 좌파' 소리를 들을 지언정, "스포츠를 이용한 감상적인 국가주의는 남아공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감출 수는 있어도, 결국 민중 운동에 장애물이 될 것이며, 절대 다수의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는 흑인들이 바로 그 정책의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처럼 남아공 노동자들은 ANC 정권과 불화했다.
국민 통합에 치중하며, '국가 경제'를 위해 급속히 우경화했던 만델라의 정책은 오늘날 남아공의 상황을 통해 그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만델라와 그를 이은 ANC 정권들은 '국가 경제를 살릴 대안'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이며, 노동조합인 코사투와 갈등했다. 그들은 산업을 민영화시켰고, 노동환경을 백인 정권 때보다도 더 악화시켰다. 모두 다 국가 경제와 국민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
그 결과, 인종차별 정책이 법적으로 파기된지 15년이 지금, 남아공 흑인들의 삶은 그 전보다도 더 비참해졌다. GNP는 약 1만불로 올랐지만, 빈부격차는 심해졌으며, 실업률(백인 5%, 흑인 40%)과 치안 부재 상태는 세계 최악을 달리고 있다. 94년 65세까지 올랐던 남아공의 평균 수명은 만델라 정권이 등장하자마자 급강하하기 시작하여 이제 49세까지 떨어졌으며, 범죄율은 만델라 정권 이전보다 89%나 높아졌다. 수백 년 동안 흑인 정권을 기다렸던 바로 그 흑인들이 만델라 정권이 만든 '평등한 신자유주의 나라'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종차별의 본질은 바로 계급 착취를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과거 ANC는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었지만, 정권을 잡은 만델라와 ANC는 계급 문제를 무시한 채 온정적인 통합 정책에 올인했고, 그 결과는 그 전보다도 더 가혹한 인종 계급 차별을 생산해냈다.
그래서 난 만델라의 선택에 공감할 수 없다. 그 눈물겨운 승리와 화합에 박수를 보낼 수 없다. 난 저 영화가 싫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민중들이 '혁명 속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중앙권력화와 관료화, 우경화에 맞서는 싸움을 끊임없이 전개하고 있다. ANC 정권과 불화하는 민중의 눈으로 남아공을 바라봐야 한다. 이제 ANC 정권과 자본에 맞서 싸우는 남아공 민중들의 모습이 담긴 영화를 보고 싶다.
남아공의 인종 문제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것도 영화 덕분이었다. 90년대 초반 극장에서 영화 <사라피나(Sarafina)>를 봤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인종차별정책'을 주입하는 학교의 교실에 화염병을 투척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학생들이 만델라의 석방을 간절히 기원하며 자유를 노래하는 모습은 당시 나까지 가슴을 뛰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짠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때는 '지도자'가 필요했었나보다. 하긴 그때까지만 해도 '전위정당'이란 걸 꿈꾸던 때였다. 흘.. (그래도 노래는 지금 들어도 좋다.)

Freedom is Coming Tomorrow!!
(97년에 남아공 활동가를 만나서 이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소웨토 지역에서 벌어졌던 일을 들었다. 지속된 학살로 최대 2천여명까지 죽었다고 이야기하길래, 우리나라도 80년대 광주에서 2천여명이 죽었다고 이야기 해줬더니, 그게 얼마 동안 일어난 일이냐고 그가 물었다. 그래서 약 일주일간 일어난 일이라고 했더니, 그 활동가는 무척 놀라면서 "일주일 동안 2천명이나 죽였단 말야? 소웨토는 20년간 죽은 게 다 합쳐서 2천명이야! 남아공 백인 정부보다 너희 군부독재가 더 무섭다. 흐....)
남아공을 다룬 영화로는 2006년에 나온 < Catch the Fire >도 기억에 남는다. 소심한 민중이 ANC의 투사가 되고, 만델라 정권이 들어선 후 자신을 탄압하던 백인 경찰을 용서하는 부분까지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과거 ANC가 얼마나 급진적인 좌파 무장 조직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관련 글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레닌인가?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간다.
옛날 생각도 나고, 오랜만에 '난 왜 그만 뒀더라...'도 다시 떠올려보고...
그만 둔 이유와 사연이야 많았지만,
지금이야 다 옛날 일들인 거고,
간단히 정리하면 "더 이상 다닐 이유"가 없었다.
결심을 내린 그 날부터 그냥 안 갔다.
대체적 반응은 "일냈냐?", "드디어 잘린 거냐"는 질문이었고,
또 몇몇은 그게 뭐 대단한 결심이라도 되는 냥,
무슨 일 하려 그만 두었냐고 조심스럽게 묻기도 했었는데,
무엇을 하기 위한 적극적 자퇴는 아니었고,
더 이상 다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어느 날 부터 안 간 것 뿐이었다.
그래서 "잘릴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벌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자퇴"라고 농담을 하곤 했었다.
선배들은 "마, 그냥 졸업장은 따라"고 충고를 늘어놓기도 했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어떻게 이유도 없이 그냥 다니냔 말이지.
(흠.. 하긴 사는 건 별 이유 없이 그냥 계속 살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부모님들에게는 더 이상 다니지 않겠다고 간단히 '통보'했는데,
아마도 당시 부모님들이 나한테 꼬치꼬치 이유를 묻지 않은 것은
집안에서 오랫동안 찍혔던 '지랄 같은 성격' 탓도 있겠지만,
깝치고 다니더니 드디어 뭔가 사단이 났나보다고 지레 짐작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솔직히 막막 하더라.
그래서 한참 집에 쳐박혀 살았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쫒아다녔는데,
2-3년 가까이 10여 가지가 넘는 온갖 허드레 잡일은 다 해봤던 것 같다.
당시 친구에게 내가 무슨 일들을 했었는지 주루륵 나열하자
그 버라이어티 함에 놀라워하던 친구의 반응은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때 당시 도대체 내가 뭔 일을 했었는지는 이상하게 기억이 잘 안 난다.
두어 군데에는 '취직'도 했다가 더러운 성질 머리로 때려 치운 기억은 난다.
전반적으로 별로 안 좋은 기억이었나보다.
당시는 그냥 막막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 지, 내가 앞으로 뭐가 될 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이 사회에 적응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사는 데 한두 번 불편하긴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더럽고 꼴시러운 상황을 보기도 했다.
졸업장을 따지 않아서 생긴 후회도 딱 한 번 있었다.
엄청 하고 싶은 공부 있었고 기회가 생겼는데,
그 놈의 졸업장이 없어서 포기해야 했던 때였다.
하지만 그거 때문에 다시 돌아가 졸업장을 따야하는 지는... 글쎄다...
그때 그만 두지 않았어도 지금까지의 삶보다 그다지 명랑상쾌발랄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는 않다.
돌아보면 대체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지랄 같은 게 삶인데,
그 때 그만두지 않았으면 더 지저분해졌을 것 같다.
잘 그만 뒀다.
그만 둘 당시에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대학은 몰라도 물리학은 다시 공부해보고 싶다는 미련도 있었지만,
이제는 미적분도 못하는 쇠대가리인지라 그것도 글렀다.
아참.. 근데 자퇴를 해도 '학력 꼬리표'는 종종 따라다니더라.
나야 뭐 서울지역 기타대 자퇴생 꼬리표가 붙어있지만,
아마 이 친구에게는 고대 자퇴생이라는 꼬리표가 붙겠지?
거참 자퇴 후에도 종종 따라 붙는 그 꼬리표 그거 참 지랄이다.
그 친구에게도 결코 편치 않은 꼬리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 친구가 잘 해나가리라 믿고 싶다.
진심으로 이 친구의 건투를 빈다.
이 친구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대학이란 걸 그만 뒀다고 해서 삶이 더 지랄같아 지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오랜만에 술도 땡긴다.
기회가 된다면,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다만.....
내가 그 친구를 알겠나.
그 친구가 날 알겠나.... 그렇지. 뭐.
이 글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1934년에 발표한 것으로서, 1930년대 일어난 대공황에 대해 (온건한) 계획 경제가 해결책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왜 사회주의인가?'라는 글을 통해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옹호했다는 거야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미 1930년대에도 계획 경제를 주장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서 올렸던 수조의 우화와 마찬가지로 공황의 원인과 해결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글이라 간단히 번역해봤습니다.
제가 원본으로 참고한 글은 인터넷에서 찾은 Einstein on the Economic Crisis 인데, 아인슈타인의 글을 모은 책 < Ideas and Opinions >와 비교해 보면 한두 단어 정도 차이가 있더군요. 그 중 하나는 주석으로 표시했습니다. 녹색의 [ ]에 들어있는 부분은 번역자가 추가한 부분입니다. 언제나처럼 오타, 오역 지적 환영입니다.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
----------------------------------------
세계 경제 공황에 대한 견해(Thoughts on the world economic crisis)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경제학에 대해서는 한낱 비전문가에 지나지 않는 제가, 현재 펼쳐지고 있는 심각한 경제 문제의 본질에 관한 의견을 밝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제출하는 주장들이 쓸모없이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의견이 아니며, 계급이나 국가적인 편견 없이, 인류에 대한 선의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가장 조화롭고 가능한 계획을 열망하는, 독립적이고 거짓 없는 한 인간의 의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래에 쓴 내용에서, 제가 어떤 사안을 명확히 잘 알고 있거나, 말하고 있는 바를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비쳐진다면, 그것은 단지 표현상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하려고 취한 방식일 뿐입니다. 대단히 복잡하게 전개되는 현실의 문제들에 대한, 저의 다소 단순한 구상을 오류가 없다고 확신하거나, 부당한 자신감에 젖어서 쓴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볼 때, 이번 공황은 생산 방식의 급격한 진보라는 완전히 새로운 조건 위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과거에 일어났던 공황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전 세계에 있는 인간 노동의 일부만으로도 삶에 필요한 소비 상품의 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자유방임 경제 체제1 하에서는 실업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이 글에서 별도로 검토하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만으로 노동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다른 조건이 모두 같은 상태에서, 두 개의 공장이 똑같은 종류의 상품을 만든다면, 더 적은 노동자를 고용한 공장이 더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개별 노동자들에게 인간의 체력이 허락되는 한 최대한 긴 시간 동안 가혹하게 일을 시키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로 인해, 오늘날의 [발달한] 생산 방식과 더불어, 불가피하게 노동 가능한 노동자 중에서 일부만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일부의 노동자에게 부당한 요구가 가해지는 반면, 나머지 노동자들은 자동적으로 생산과정에서 추방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판매와 이익의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기업들이 파산하면, 실업률은 더 높아지고, 산업 관계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며, 이와 더불어 이를 조정할 은행에 대한 대중의 협조도 감소시키게 됩니다. 결국 은행은 갑작스러운 예금 인출로 지급 불능상태가 되고, 산업이라는 수레바퀴는 완전히 정지하고 맙니다.
이제 살펴보겠지만, 공황이 일어나는 데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1) 과잉 생산
우리는 실질적인 과잉 생산과 외견상의 과잉 생산을 구분해야 합니다. 실질적인 과잉 생산이란 수요를 넘어선 과도한 생산을 의미합니다. 좀 미심쩍기는 하지만, 이는 현재 미국에서의 자동차와 밀의 경우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과잉 생산’이라는 단어를 이용해서 의미하는 바는, 소비자가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이 부족함에도, 하나 이상의 특정한 상품이 기존의 상황에서 판매될 수 있는 양 보다 많이 생산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저는 그런 상태를 외견상의 과잉 생산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경우는 수요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런 외견상의 과잉 생산이 바로 공황입니다. 그러므로 ‘과잉 생산’은 뒤에 이어질 설명들과 마찬가지로 공황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 합니다. 따라서 공황이 과잉생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단지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패전국의 전쟁] 배상금
빚을 지고 있는 국가와 그 국가의 산업은 과도하게 가해진 배상 지불 의무 때문에 투매로 내몰리고 있으며, 이는 채권국에도 크나큰 손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높은 관세 장벽으로 보호 받고 있는 미국에서 공황의 출현했다는 사실은, 배상금이 세계 공황의 주요한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상 때문에 채무국의 금이 부족해졌다는 것은 기껏해야 이 지불을 중단하기 위한 주장을 뒷받침할 뿐입니다. 이는 국제 공황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합니다.
(3) 새로운 관세 장벽의 등장, 비생산적인 군사력 부담의 증가, 잠재적인 전쟁 위험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
이 모든 것은 유럽이 안고 있는 문제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미국에는 실질적인 영향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공황은 이러한 사실들이 공황의 주요한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의 이탈.
이는 국제 무역에 충격을 주었지만, 미국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므로, 공황의 주요한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5) 전쟁 이후 낮은 계급의 경제적 상승
이 일이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났다면, 과잉 공급이 아니라 상품의 부족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제가 보기에 핵심적이지 않은 주장들을 더 나열해서 독자들을 짜증스럽게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제 생각에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의 주요한 원인인, 바로 그 기술적 진보가, 지금 그 자체만으로도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노동의 상당 부분을 경감시켜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술의 진보가 공황을 낳았다는 사실 때문에, 진지하게 기술적인 개선을 막아보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명백히 터무니없는 짓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우리가 처한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서, 보다 실용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든 대중의 상품 구매력이 특정한 최소값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할 수만 있다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런 산업 순환의 중단은 다시 발생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대담한 방식은 공동체가 소비 상품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완전한 계획 경제 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현재 러시아가 시도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이 거대한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많은 것들이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그 결과를 예상해보는 것은 외람된 짓이 될 것입니다. 개별 기업에게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진 체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런 체계 하에서도 경제적으로 상품을 생산할 수 있을까? 이 체계가 지금껏 유지해온, 우리와 같은 ‘서구인들’은 아무도 참여하고 싶지 않도록 만드는, 공포정치 없이도 자체적으로 잘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그렇게 엄격하고 중앙집권적인 체계가 유익한 진보를 보호하지 않거나, 적대적인 경향을 띄지는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의심이 객관적인 판단의 형성을 가로막는 편견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목표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는 현재 존재하는 전통이나 습관들을 존중하는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생산의 측면에서도 산업의 통제권을 대중의 손으로 갑작스럽게 넘겨주는 게 유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기업도, 산업 그 자체가 기업 연합의 형태로 사라지지 않는 한, 활동적인 영역으로 남아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인 자유도 두 가지 점에서는 제한되어져야 합니다. 실업을 체계적으로 없앨 수 있도록, 산업 각 분야의 주당 노동시간이 법적으로 축소되어야만 합니다. 동시에 최저 임금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확정되어서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생산력 증가와 같은 속도로 맞춰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체계에서 생산자들이 만든 조직에 의해 산업이 독점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면, 새로운 자본이 출현할 수 있도록 하고, 생산과 소비가 인위적으로 억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에서 반드시 국가가 가격을 통제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유로운 기업에 대한 너무 심한 제한 없이도 생산과 소비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동시에 폭넓은 의미에서의 임금 소득자들에게 생산 수단(땅, 기계)의 소유자들이 가하는 과도한 폭정을 중단시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원문 : Einstein on the Economic Crisis
번역 : neoscrum (http://blog.jinbo.net/neoscrum)
댓글 목록
관리 메뉴
본문
이거 뿐이던가요... 참 많아서 세기도 힘들죠...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