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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26
    만리장성이 고구려의 경계?
    nero
  2. 2006/09/11
    쪽지가 전해주는 삶의 이야기들
    nero

만리장성이 고구려의 경계?

 

중국인들이 이른바 '천하제일관'으로 부르는 산해관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이 갈수록 그 도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우리의 조상 고구려와 발해. 그 고구려와 발해의 근거지는 바로 현재의 중국 22개 성 중에서 동북지역 3성인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지역 입니다.

중국이 보기에도 한반도가 대한민국 중심으로 통일이 될 확률이 높아 보이는지, 요즘 이 동북삼성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관리가 아주 치밀하고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통일 후 중국과 전쟁을 하는 내용인 가상 전쟁소설 '고구려의 꿈'을 연재하고 있는 저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그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현상황이 더욱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이 것입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 동쪽과 북쪽 경계를 긋고 있는 만리장성.


▼베이징의 만리장성 관광 지도. 동쪽과 북쪽은 만리장성이 가로지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베이징은 만리장성이 처음 세워졌던 진나라 시대, 한나라 시대만 해도 완전히 변방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와 발해가 있던 시기의 중국 왕조들인 한나라, 위진남북조, 수나라, 당나라 등의 수도는 북경에서 수천, 수백km 떨어진 장안과 낙양이었습니다. 낙양에 있는 룽먼(龍門)석굴.


▼장안(서안)에 있는 옛 성도인 장안성.


▼위에 있는 북경지도의 13번 지점인 거용관. 북경의 북쪽을 지키는 만리장성의 관문 중 하나입니다.


▼거용관과 팔달령장성 사이에 있는 수관(水關)장성.


▼이 팔달령장성을 넘으면 북경이 끝나고 하북성이 시작됩니다. 하북성도 한, 수, 당 시대에는 중국이 아니었다는 증거지요. 위 지도상의 14번 지점.


▼북경에서 동쪽으로 약 300km 가면 산해관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 산해관은 바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에 있는 큰 관문이지요.
산해관은 따로 '천하제일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즉,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쪽에 대한 방비를 아주 크게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산해관의 동문.


▼산해관에서 왼쪽으로 보니 큰 산이 있고, 만리장성이 산을 타고 오르고 있습니다. 성 안쪽은 중국인들이 지켜야 할 자기 나라가 분명 하겠는데, 성 밖은 도대체 어디 일까요?


▼일만육천리 만리장성 중 천하제일관이라는 산해관 오른쪽으로 약 2km 가면 바다가 나옵니다. 그 바다에 있는 산해관의 한 포인트가 있는데, 그 곳을 '노룡두'라고 합니다.


▼진시황때 축조를 시작하여 1,700여년에 걸친 대역사 끝에 명나라 시대에 완성한 만리장성. 즉, 명나라 까지도 이 만리장성 밖은 중국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산해관 뿐 아니라, 이 노룡두의 건축은 명나라 시대에 완성 된 것입니다. 노룡두의 누각.


▼만리장성의 진정한 끝인 노룡두의 모형. 저렇게 바다까지 성곽을 내밀어서 적이 건너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저 건너편의 방어해야 할 대상은 결코 중국인이 아닌 것입니다.


▼BC 214년 진나라 시대부터 16세기 중반 명나라 시대까지 수 천년 간 "이 선 밖은 우리땅 아니야!"라며 줄을 긋고 또 그은 만리장성. 이제 와서 자기네 조상이었다고 하기에는 선을 너무 화끈하게 그어 놓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선을 박박 그으며 두려워 했던 고구려와 발해가 이제 와서 자기 조상이라고 하는 것은 달에서도 보인다는 이 만리장성이 웃을 일 입니다. 이제 우리 정부에서도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처해야 하겠습니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 노룡두. 적의 우회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바다로 들어가 성을 쌓기 시작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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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가 전해주는 삶의 이야기들

 


over/1840*1520*120cm/종이,펜

쪽지
나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너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러나 비밀스런 말들이 많다.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종이에 마구 쓴다. 예쁜 종이에 쓰면 누군가가 읽어 볼 것 같다.
그 어떤 누구라도 허용하고 싶지 않다. 가슴 설레는 사연들을 몰래 몰래 적어 얼른 접어버려야지.

풀어서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길까? 바쁜 현대인들이 남의 얘기 따위에 관심을 가질까?

쪽지 작업을 하면 깊은 상념에 잠길 때가 많다. 기계를 쓰고 힘을 쓰는 작업이 아니라서 그런지 수 많은 잡념에 빠져들 때가 많다. 노동을 즐기는 ‘나’라고 생각했는데 가벼운 접기 운동에 행복해 하는 나를 발견한다.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 작업을 하는 중에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생각해본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생활에 베어 드는 작업, 작업에 생활이 묻어난다. (작가 노트)

작가로부터 날아온 수많은 편지들
어느 날 작가로부터 아주 사적이면서도 직설화법으로 가득 찬 편지를 받았다. 그것도 수천 수만 통이 넘는 편지다. 짐작해보건 데 그 편지에는 작가의 일상이 담겨 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 형식도 단문의 쪽지부터 구구절절한 편지까지 다양하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작품을 바라보면 그림 같기도 하고 시점을 조금씩 달리해 보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앗상블라쥬(assemblage,오브제들의 결합)가 떠오른다. 호기심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마어마한 분량의 편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음에 놀라게 된다. 그것도 하나하나씩 아주 정교하고 꼼꼼하게 접어 행여 내용이 세어 나올세라 꽁꽁 묶어놓기까지 했다.

보면 볼수록 호기심이 발동한다. 쪽지들을 하나씩 풀어 그 내용을 몰래 훔쳐보고 싶어진다. 애초에 작가가 의도해 놓은 덫에 걸려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정작 그 누구도 쪽지의 내용을 볼 수 없도록 꽁꽁 접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한없이 표현하고 주목 받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숨긴채 타인의 은밀한 일상들을 엿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비꼬는 것은 아닐까?

영혼을 향한 목소리
짐작이 가는가? 미술가로서, 여성, 엄마, 아내로서 작가는 참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언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부드러워 보이지만 때론 독설을 퍼부어대기도 하고 때로는 처절하지만 담담하게 끊임없이 삶의 이야기들을 토해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또 자신의 내면을 향해 끊임없이 편지를 쓰고 쪽지를 접는 과정을 거쳐 작가는 자신의 복잡한 영혼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가고 치유되는 과정을 겪었으리라.

그렇게 완성되어 캔버스 위에 집결된 쪽지들은 마침내 더 이상 하나의 개체(쪽지)가 아닌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마침내 수많은 메시지들은 사라져 버린다. 하나의 밀도 있는 형태는 더 큰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나갈 준비를 할 것이다.



over and/2320*880*140cm/비닐,펜



over and over/1840*1520*120cm/광목



쪽지/테라코타



쪽지/석고



작가 장지영



갤러리 정미소

일상적인 기억의 그림자, 온 몸 세포를 자극하는 심장 소리, 타자와의 균열, 자폐 되는 나. 소통의 부재를 감지하며 과민반응 환자처럼 한 보따리 거적이고 접고 또 거적이고 접는다.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는 생채기의 흔적들을 치유하고 위무하면서 정직하게 토해낸다.
나의 소통 게이트를 찾아 치유된 맑은 가슴을 펴고 기지개를 펼 때까지…. 오늘도 꿈을 꾼다. (작가 노트)

* 'over and over-장지영展'은 혜화동 갤러리 정미소에서 9월9일까지 계속됩니다.

[김수진] 컬럼리스트, 예술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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