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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17
    백토 모교수의 자작 '당권파 위기원인론'을 보고
    먼동
  2. 2008/08/03
    서울시교육감선거 결과를 보며
    먼동

백토 모교수의 자작 '당권파 위기원인론'을 보고

어제 '백분설레발'에 나온 모교수가 말했다.

 

"이게 다 옛날 프랙션 활동의 낡은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그대로 합법정당활동을 하면서 비롯된 일이에요. 옛날에 말이에요... 사실은 지하 프랙션에서 대중조직에 다 '심고' '꽂고' 했던 거고 대중조직(여기서 예는 학생회)은 뭐 사실 그렇게 그려지고 만들어지고 했던 것에 불과하죠... 그래도 그땐 군부독재가 있으니 대중이 그걸 용인했죠. 근데 지금이 어디 그런 시절입니까? 그러니 안 통하죠."

 

단어는 틀릴 수 있겠으나 얘기는 이런 거였다.

 

근데 참... 너무 웃어주시는구만... 씁쓸하다. 그가 ‘실증’과 ‘형식적 민주주의-부르조아민주주의-’에 유독 강한 동기를 갖고 있음이야 익히 알고 있기에 별달리 새로운 언급으로 들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프랙션'과 대중조직의 관계는 그렇게 완벽하게 자동반사적으로 구성되고 온전히 일방 지배, 통행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는 구조만은 아니었다. (물론 일면 사실이었고.. 이더라도)

 

특히나 모교수가 학사를 마치고 난 이후의 시간대인 87년 노동자대투쟁과 6월 항쟁 이후의 대중조직의 성장과 분출 후의 변화로부터 80년대 끝트머리 여전히 군부독재치하에서였지만, 폭력의 또 다른 한편의 기만적인 상대적 유화국면 그 약간의 열린 공간에서 대중조직의 재생산이 조금씩 안정화될 즈음 소위 지하와 지상의 관계와 양상이 서서히 달라져가던 기억들이 있다.

 

당연히 그걸 모르지 않겠지만, 이 사람은 앞뒤 없이 “과거엔 다 그랬다”고 하고, 그 말은 TV 앞의 무작위의 사람들에게 도대체 언제부터 언제까지랄 것도 없이 “아, 뭐 그랬고, 그런 걸로 보면 지금도 그렇겠고... 대체로 그렇겠구나”로 들린다.사람들의 생각은 “그래 그러니 대중조직은 그저 역시 허수아비야.”라는 데까지 얼마든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아무리 '혁명적인' 당도 대중조직을 무시하거나 권리를 일방적으로 묵살, 부정하고는 혁명을 할 수 없다고 하듯이, 이미 89~91년경의 대중조직만 해도 그렇게까지 맘대로 그릴 수 있기만 했던 빈 도화지는 아니었다.

 

참, 대체 그런데 이 아픈 얘기를 이다지도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그는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기간의 이 양자의 관계와 역사를, 양자 그 자체 혹은 둘 중 하나라도 대변할 권리를 스스로에게서 흔쾌히도 부여받은 듯 보인다.

 

“그래 이른 바 ‘논객’이지..” 하며 듣다 보면, 무수한 이들이 맞아가며 쓴 ‘몸빵’의 역사를 입술로 쉽게도 훓는다. 대중에게 별로 친숙하지도 않은 단어인 '프랙션', '프랙션'을 계속 집어들며 반복하면서...

 

“그래도 진보를 애정있게 봐주세요~” 라는 마지막 멘트를 제외하면,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똑같은 해석을 되풀이하며, 자작 '당권파론'을 펼치는 듯 보인다. “'당권파에 대한 비난과 외면’의 역사적 필연성, 불가역성”을 폼나게 펼치며 논증(?)했음에 만족했을까.

 

혼자서 TV를 보며 씁쓸한 조소와 함께, 그가 언급한 부분이 아니라 또 다른 이유로 힘들어 하던 과거의 기억들까지 끄집어내주는 데에는 조용히 분노가 올라온다. 많은 사람들에게 80년대 끝~90년대 초반 즈음의 상황은 다소간의 힘겨움으로 기억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웃는 얼굴이 참 ‘경쾌’하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그 진작 버렸어야 할 그 ‘관행’이, 합법정당 하겠다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한 그 관행이 통합진보당 문제의 모든 원인인가? 과연 그럴까?

 

마치 '당권파'만의 타고난 속성인양 낙인찍혀진 '과도한 '프랙션' 편향의 '관행',  비민주성과 패권성만이 지금 이야기되어야 할 것들인가?

 

그래서 '나는 저들이 무얼 했는지 다 알고 있다' 는 듯 과도한 프랙션의 영향력을 비판하며 비단 통진당이 아닌, 결과적으로 훨씬 더 큰 범위의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 형성에 기여할 프랙션비판론을 누구보다 앞서 설레발의 밥상에 올려놓고 칼질을 하는가?

 

또는 '전과 27범'이 원하는 바 밑도 끝도 없이 끌려가는 종북주의 논쟁의 수렁이 지금 또 필요한 것인가?

 

그래서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주창하듯(!) "이제 'NATIONAL LIBERATION'은 물러가고 'PEOPLE'S DEMOCRACY'가 진보운동을 '장악(?)'하면 '건강한(?)' '진보정당'운동이 또한 새삼 자리를(?)" 잡는가?

 

소가 웃을 얘기다.

 

많은 이들이 주지하듯이, 자본가계급의 대변인들에게는 사실 '주사' 자체가 문제도, 유일한 적도 아니다. 그들에겐 맑스도, 레닌도, 트로츠키도, 로자도 모두가 섬멸의 대상일 뿐이다.(이 시점에서는 심지어 '스탈린'조차도 물론.)

 

그들에게는 '아래로부터'든 '위로부터'든, 역시 중요하지 않다.(종종 '위로부터'만을 주로 차용하지만)  단지 남한에서 살아가는 대중이 늘 겪고 목도하는 착취체제를 유일무이한 구현 가능한 세계로 설파하면 그만이고, 그 틀에 뭔가 아귀가 안 맞거나 덜 맞는 듯 비춰지거나 뭔가 다른 틀을 갖고 있는 듯 비춰질 여지가 있는 그 어떤  세력에 대해서든 대중적 환멸과 고립을 보다 더 조장하고 배가시키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새삼 '자본주의 틀내에서의 사민주의적 개량을 진짜 열심히 한번 잘 해'보라며 썩소 섞인 '고무'를 기꺼이 보내며 우경 사민주의의 또 다른 극점으로 'PD'를 설정해놓고 '칭찬'(!)하며 분열을 촉진한다.

 

다시 돌아가보면, 사람들은 단지 '당권파'만을 특정해서 왜 그렇게 '음모적'이었냐고 물어왔는가?

왜 대중정당하겠다면서 안타깝게도 아직도 '프랙션 편향'이며, '비밀결사적'이냐고 캐묻거나 원망하고 있는가?

이른바 '프랙션' 편향이 비판의 주된 촛점인가?

사람들은 왜 현존 '선거법'을, 가식적이기 짝이 없는 '부르조아민주주의'의 절차를, '법질서'를 어겼냐고만, 그 기준에 끼워맞춰지기 힘든 이유와 배경을 관행적으로 계속 싸짊어져왔냐고만 당권파 혹은 이 당에게 물어왔는가?

만일 그 뿐이었다면 당권파가 아닌 전체로서의 이 당에 대한 노동자들로부터의 신뢰가  이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을까?

 

이른바 '비민주성'과 '패권성'으로 표현되는 모습은 오로지 '당권파'만의 문제거나, 그들 당내만의 문제는 아니며, 도리어 대중조직과의 관계 혹은 대중조직 내에서 활동하는 당내 다양한 부분이 함께 상당부분 공유하며 보여주어온 모습이란 생각이다.

더 혹은 덜 '완고하고' '고집스런', 부분이든, 더 혹은 덜 '유연한' 부분이든, 함께 보여준...

   

정작 모교수에게 이런 말이 하고 싶었다.

 

나는, 또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실상 그 점에, 거의 '당권파론’ 내지 ‘학'으로 보이는 당신의 그 해석의 지점에 별 큰 관심을 주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오히려 그 좁은 ‘비평’보다는 ‘편한 길과 방식’을 찾아가고자 했던 '한 배'가,

쌍용차의 죽음을 생산한 전직 집권세력 자본가정당과의 ‘한 배’조차 '통전'과 '전술'로 설명(!)해낼 수 있는, '대중적 진보정당'이라는 그 정확히도 동일한 입장이,

단지 노동조합조직 상층부가 아닌, 다양하게 표출된 바 있는 노동자운동과 운동진영 내의 목소리를, 2차례의 당대회 결과가 말하는 바를 무시 혹은 방기하며 결국 묻지마 원샷통합으로 내달린... 크게는 같은 발자국이,

오늘에 함께 이르러서까지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서로 또 한번 먼 발치에 서 있기만 하려는 듯한 '더 큰 전체'로서의 모습이...

현상으로, 나아가 '원인'으로서 더 관심이 있지는 않을까.

 

또 그 중 어느 한 세력이 특별히 더 두들겨 맞을 때 대중앞에서 그들 스스로 서로에 대해 혹은 자신에 대해... 이 '사태'에 대해 말하고 설명(?)하는 논리와 방식에 진정 '관심'이 가지는 않나. 

 

이 당이 노동자계급으로부터는 물론, 또 달리 '대중'으로부터의 신뢰 또한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에,

그들의 불안정한 동거속에서의 이른바 '집권전략'이 만일 '실현'될 미래의 그 어느 시점에서도, 그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또 다시 얼마든지 표출될 수 있는 상황이 지금 앞당겨져 있음에 관심이 가지는 않나.

 

현재의 이 당이 스스로의 제한성에 대한 인식속에서 노동자, 민중의 운동과 평등한 소통을(총연맹 찾아가는 것만 말고) 더 해나갈 의지와 여력이 과연 남아있는 조직인지에 적든 혹은 크든의 관심이 주어지지 않나.

 

그리고 또 하나, '군부독재 시절엔 대중이 프랙션의 지배를 용인'했는데, 지금이 어떤 시절이냐고? ‘세상이 어떤 세상’이냐고?

 

세상으로 말하면, 그 때에 비해 착취율이 훨씬 더 높고 자본의 이윤율이 하락해 있는, 노동자계급의 과반 이상이 2년에 한번꼴로 해고(계약해지)로 간접살인을 당하는, (군부)자본가독재가 아닌, '날 것'의 자본가독재가 더없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른바 '지식정보의 섭취력'만 '세련화'된 자유주의적 구경꾼들만이 아니라, '원샷통합'의 대상으로서도 국참세력을 능히 포함하고도 남는 이른바 '진보적 대중' 뿐 아니라, 그것이 '지하'든 '지상'이든, 입 도마 위 불리우는 바의 '프랙션'이든 광범위한 이들을 포괄한 조직이든, 아래로부터 투쟁으로 불타오를 때 기꺼이 함성으로 맞으며 그 대열에 몸을 실을 '대중' 또한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 힘이 딸려서 안타깝게도 ‘논객’들의 공간이 너무 넓은 그런 세상이다.

 

만일 얼마나 멀든 가깝든, 훗날 그 어느 ‘시절’에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이, 바로 그 과거보다 훨씬 더 자각적이며 높은 사회적 의식을 확보한 '대중'이 '군부독재'가 아닌 '자본가독재’를, 착취체제를 박살내기 위해 대중조직의 권리를 더 튼튼히 보장할 것과 더불어 자신으로부터 탄생하고 순환하고 소환되는 자기 계급의 혁명적 부분(지난 밤 ‘설레발’ 상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뭉뚱그려진 ‘프랙션’ 및 써클주의가 아니라)의 활동과 그 공간을 더 폭넓게 '용인'하기를 강렬히 원할 땐...

 

그는 또 어떤 얘기를 하려 들지...도통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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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감선거 결과를 보며

7월 30일 투표권을 행사할 수조차 없는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 하루 2명꼴, 한해 600명이 넘게 자살을 시도하는 이땅 청소년들의 숨막히는 절망을 뒤로 하고 결국 공정택이 당선되었다. 

 

'촛불의 승리',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을 입증(?)이라도 해줄 하나의 계기로 의미 부여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최초의 교육감 직선이라는 포장을 쓴 기만적 정치의 한 지점에서 반동이 승리하였다. 

 

애초에 촛불에서 '직접민주주의'의 환상을 과도하게 유발하고, 그것이 교육감선거라는 계기를 거쳐 또 달리 촉발될 것이라는 다소 과한 기대가 있었다면 홀가분히 접고 이후의 견실한 투쟁을 생각하는게 정신건강에 유익하지 않을까. 수개월간 폭발한 대중의 힘찬 촛불의 의미가 이 선거결과에 따라 손상되거나 규정되거나 새삼 제한적으로 해석될 바는 아니지 않았던가.

 

대중이 자생적으로 불붙인 촛불의 연속성이나 정치적 응집, 재조직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후발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분명 중대한 질문이지만, 촛불 자체가 계속 자가발전하며 정세를 폭발적으로 고양시키거나 혹은 제도권 선거판에서 전교조를 후려치는 온갖 선정적 악선전을 뚫으며 더 큰 규모의 '투표'로 이어져 강남불패의 조직세를 뒤엎을 만큼의 '다목적 열쇠'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던 바가 아닌가.

 

평생을 감옥에 갇혀있는 무기수가 단 하루의 특별 외출을 받아 꿈에 그리던 연인과 반나절의 연애를 하고 다시 옥중으로 돌아가는 행위를 두고 자본주의 선거라 했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결과와 과정 모두에서 착취사회 선거의 본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명박의 당선이 또한 그러했듯이....직선의 외피를 쓴 이 부르조아선거에서 모든 경제적, 실질적 불평등은 역시 은폐되었다. 투표성향과 계량적 수치에 집착하는 자본주의 학자와 언론 그 누구의 눈에도 훤히 보일 만큼 이 땅의 부르조아와 기득권 수혜자들은 참으로 가학적인 표심까지 만천하에 드러내 보여주었다.

 

'사교육불패, 부동산불패의 신화'를 그려온 땅부자 강남,서초,송파 유권자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과 공정택 지지율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속에서 사적, 이기적 이익을 가장 잘 보장받을 수 있음을 직감하는 '열혈' 부르조아 혹은 상승하는 소부르조아 학부모들에게 투표의 '귀차니즘'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음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요 몇개월 답답해하던 그들은 '부모된 신념'에 불타 앞장서서 제 자식들의 탄탄대로를 위한 길을 닦아놓으며 다시 한번 절대다수 노동계급의 자식들에게 부디 허황된 꿈을 꾸지말 것을 경고하였다.

 

왜 평소 학교에서 그들의 입김이, 치마 혹은 바지바람이 그렇게도 드센지, 왜 학교운영위의 무력함이 입에 오르내리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결과이리라.

 

너무도 뜬금없이 87년 박종철열사가, 이한열열사가 돌아가실 때 내가 나온 고등학교가 생각이 났다. 졸업 후 그 학교 교장은 지역자본과 협잡해서 8층 짜리 스포츠센터를 학교운동장에 지었고, 아이들은 이제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예전 운동장에서 빽빽히 주차된 차들을 비켜가며 야간학습을 끝내고 집에 갔다고 했다. 그러더니 89년엔가 이사장인지가 뇌물로 구속되었다고 했다.

 

86년 고등학교 1학년땐가,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의 친구, '생활보호대상자' 였던 홀어머니를 모시던 그 친구가 어느날 쉬는 시간에 육성회장 아들이 던진 액자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다가 결국 사과 한마디 못 듣고는 조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날 난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그 얘기를 하다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못 이겨 지금껏 가장 많은 눈물을 하루 저녁에 흘렸었다. 그 후로도 그 육성회장인지 하는 부모가 내 친구와 그의 어머니에게 어떠한 사과를 했다는 소리를 들은 바가 없다.

 

지난 밤, 교육감선거 결과가 나올 즈음에 다들 성난 얼굴로 '그 새끼를 잡으러가자' 며 같이 내 친구의 교실로 향하던 그 시절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는 이제 사십을 목전에 둔 아저씨들이 되어 있다. 교육감선거 결과를 보며 갑자기 왜 그 친구 일이 생각났는지...22년전 기억이 떠오른 건지....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오래전 일은 참 잘도 기억한다.

 

그래...답답했나보다. 그 더러운 세월도 채 뿌리뽑히지 않은 채 우리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고, 무한경쟁의 이데올로기속에서 '새롭게', '자유롭게'(!) 차별하고 배제하고 줄세우는 교육이 강요되고 있고, 또한 앞으로 더욱 더 그러할 것이란 생각을 하면 나도...너무 답답하다.

  

그래, 더 생각해보면 자본과 노동자계급간 이데올로기의 전장에서, 50년 입시교육, 경쟁교육, 식민교육, 자본가교육의 토양에서 너무나 힘에 겹게 뚫고 나온 작은 싹을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이다.

 

적어도 한국전쟁 이후 제도화된 틀속에서 혹은 거리의 정치에서 개량적 사민주의 정치전통조차 경험하기 힘들었던 남한 땅에서 지금까지의 여러 부르조아선거들과 비교했을 때 이번 선거는 이슈상의 대립지점은 상대적으로 분명했던 선거였던 것 같다.

 

반이명박정서라는 지반위에 서서 '노동자와 선을 긋는 자기 한계를 부정하지 않은 이 ' 머뭇거리는 '시민후보'는 제한적일 지라도 '경쟁교육, 돈교육, 귀족학교 반대'라는 슬로건과 지향을 비교적 구체화된 형태로 대중에게 표현하고자 했고, 그런 선거에서 박빙세의 표 계산이 나왔다는 점은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의 득표를 되짚지 않는다 해도 이제 반년 정도 지난 기간의 작지 않은 변화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할 것이다. 이명박의 교육정책도 기본적으로는 사람들의 만만치 않은 분노와 박탈감과 마주해야 할 테니까.

 

이번 선거 자체에 대한 전술 차원의 고민이나 논란을 떠나 남원에서 주민들이 물사유화 기도를 막아내고, 제주에서 영리의료법인도입을 투표의 형식을 빌어서나마 잠정적으로 저지시켜낸 흐름속에서 보면 어쨌든 더더욱 속이 쓰린 일이다. - 단순히 속만 쓰리고 말 일이 아니다. 결국 이로 인해 자살하지 않을 수도 있을 어떤 친구들도 세상을 등질 것이고 실제로 바로 그 학생들의 생사가 달라지는 문제니까......

 

대중에 의한 거리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듯이 여전히 노동자의 투쟁이 있을 곳은 현장과 거리일 것이고 그 승리나 패배가 부르조아선거 따위로 평가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꾸로 부르조아선거는 계급투쟁의 큰 흐름속에서 원인과 결과가 이해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적' 노동자들이 투쟁을 담보하고 조직하지 못할 경우 자기 소임을 회피하며 '거리의 정치'의 미숙함을 탓하거나 대중에게 결과적 책임을 전가할 수 없듯이, 만일 주경복 후보의 당선이 있었다 한들 승리적 자아도취의 축포를 터뜨릴 일은 전혀 아니었다.  

 

선거결과가 더 이상의 안타까움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설혹 주경복후보가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교육을 저지해내고 교육에서 반신자유주의 기치를 지켜내고 견인할 수 있는 힘이 '교육감' 주경복 교수이거나 그 어떤 '시민사회' 일부 지식인들이거나 혹은 심지어 '선거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니까.

 

바로 그 교육으로부터 가장 철저하게 배제되고 노동력의 재생산 자체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노동자계급의 많은 투쟁들이 이 사회에서 주요한 승리들을 쟁취해나가지 못한다면, 교직원노동자가 각고의 투쟁을 전개해내지 못한다면, 자본가들의 통제수단이자 주요 보루 중 하나인 교육에서 '시장화 저지'라는 그 힘겨운 역사적 과제가 과연 수행될 수 있을까.

 

거기엔 이곳 남한땅 노동자계급의 최소한의, 또 주요한 승리들, 그 승리들의 전 사회적 축적이... 어느 노랫말처럼 '지금보다 더 강한', 반자본 반신자유주의 투쟁들이 '저변을 들어내는' 경험들, 그 변화들이 요구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아직도 더 많은 희생들이, 더 많은 노동자 투쟁의 피눈물이 요구되는 것이지 않은가.

 

"이 죽일 놈의 선거"는 비록 속이 쓰려도 우리가 와있는 지점까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는 되는 것 같다. 그것 외에 저들의 이 선거에 '대표성', 그 '얼어죽을 대표성'이란 애초에 없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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