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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맑스.

언젠가 반지하의 고양이 이쁜이가 새끼를 낳았고,

마고의 건강상 이유로 분양을 해야 했을때.

동생에게 우리도 고양이 한마리 키워볼까? 물었다가,

'니 한몸이나 잘챙겨라!'라며 단호히 거절당했지만,

나중에라도 개나 고양이 혹은 그 어떤 것이라도 한마리 키우게 된다면,

나는 그에게 '맑스'라고 이름 붙일거다.

그리고 그가 짝을 찾으면 '엥겔스'라고 붙여줘야지.

그들이 새끼를 낳으면,

'야옹'거리든, '왈왈'거리든, 암튼, 시끄럽게 짖어대며 나대는 녀석에게는 '레닌'이라고,

좀 똘똘해보이는 녀석에게는 '레온'이라고 이름 붙일거다.

혹시 체구가 좀 작거나 몸이 불편한 녀석이 있으면 (그)'람쉬'라고 부르고.

서구적으로 잘 생긴 녀석중에 암놈은 '로자'라고, 숫놈은 '체'라고 불러야지.

동양적으로 생긴 녀석중에 통통하고 덩치가 튼 녀석은 '마오'라고, 작고 마른 녀석은 '태일'이라고 불러야겠다.

아 이 얼마나 어여쁜 이름들인가!

이런 이름들을 가진 녀석들이 집안에서 발발 돌아다니는 상상만해봐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맨날 사고만 치고 다녀서 별로 정 안가는 녀석은 '스딸린'이라고 부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닥 내키지는 않는다. 

     



왜 마르크스인가?

 이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여기서 "끝났다."는 말은 크게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동구 공산권의 몰락'이라는 거시적인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보다는 좀 더 미시적인 차원입니다. 먼저, 전자의 경우에서 봤을때, 자본주의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세계적 질서를 재편하고 있고, 거기에 어떤 사상으로 제동을 걸기는 너무나 힘들어 보입니다. 제2의 '공산주의 선언'이라 불리우는 네그리의 저작 '제국'이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음에도 그 사회적인 파장력은 (가시적으로는) 그리 크지 않아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패한 맑스의 저작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맑스주의 철학자들의 고찰이 있었습니다. 참고: 알튀세르<자본을 읽자>,  발리바르<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등등)

 다음으로는 좀 더 미시적이고도 우리에게 직접적인 차원에서 학술운동에서의 맑스의 현재성, 혹은 필요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과거 운동권에서는 정치조직 안에서 학술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학생운동권의 몰락이후, 정치조직과 분리된 학술단체들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거엔 맑스의 저작들을 세미나실에 숨어서 읽어야 했지만, 지금은 서점에서 돈만 주면 얼마든지 <자본론>을 구할수 있고, 웬만한 학술동아리에서 보다도 강의실 안에서 맑스를 훨씬 더 잘 가르쳐줍니다. 또 한편으로는 한 친구의 말처럼 "수업 시간에 잠깐,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평택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을 보니까, 문득 맑스를 공부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묻고 싶어지더군요."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냥 쉽게 얘기하자면, 지금 운동을 하게 하는 것은, 맑스의 '사상'보다는 어떤 '감수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맑스를 읽어야 하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란 그리 쉬워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이 세미나는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채, 기획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자본론>를 읽을것인가?

아시다시피, <자본론>은 그리 쉬운 책이 아닙니다. 또 기대했던 것 만큼 그리 재미있는 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자본론의 해법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체적으로 헤겔비판으로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정치경제학 '완성 혹은 보완'으로 읽기도 합니다. 하지만 니체가 "해석만이 있을뿐"이라고 말했듯이, 우리가 직접<자본론>을 읽는다고 해도 그것은 순수한(?)의미에서의 맑스는 될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직접 부딪혀보자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를 통해 우리는 맑스아저씨와 친해지고자 합니다. "맑스로 돌아가(알튀세르)"서 맑스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맑스이후의 맑스주의 사상가들, 레닌, 루카치, 그람시 등등과도 친해질수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한편 맑스와 직접적 관련성은 없지만 니체, 프로이트, 또는 맑스 이전의 스피노자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과도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 이러한 책 안의 사상가들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농민, 여성, 장애인, 성적소수자, 도룡뇽, 평택주민, 이주노동자 등등의 이 땅에서의 모든 차별받고 억압받는 것들과 친해지려고 합니다. 이들과 친구가 됨으로써 '그들'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고, '우리'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약속.

1. 세미나 시간 지키기, 발제부분에 대한 책임, 커리읽어오기

2. 세미나팀안에서 권력관계 지양하기. (특히, 선후배)

3. 뒤풀이때 흡연문제.

4. 세미나는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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