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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조금씩 지끈거리기 시작하기에 아직 새로운 환경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 거겠지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고 괜찮겠지 하며 조금 무리를 하는 바람에 결국에는 몸져 누워버리게 되었다. 처음엔 하루정도 푹 쉬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었는데, 좀 괜찮아지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해지기 시작해서 열이 너무 높이 올라가는 바람에 몇 겹의 이불로 몸을 옥죄듯이 감싸야만 했다.
갑작스레 나를 덥친 이 열병은 밤새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도, 겨우겨우 잠이 들어 다음날 일어나보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말짱한듯 싶다가 또 어느 순간 열이 올라 또다시 몸을 꼭 웅크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게 만들었다.
그동안 몸 불편한것 말고는, 주사도 남들보다 쉽게 맞고 큰 통증도 없이 병원생활을 지내온터라, 그 꼴이 괘씸하게 보였던 탓인지, 몇일정도는 병원생활 제대로 하게 해주려나 보다, 생각하며 견디려 마음먹었는데, 이건 정말 처음 사고나던 때보다 더 하구나 싶다.
사고 때야 워낙 정신도 없었고, 어차피 인간의 인식이란 간사하기 마련인지라 현재의 고통이 지나간 기억속의 아련한 아픔보다 작을 수는 없겠지만. 이 다른 종류의 아픔의 형식은 지금의 것이 더욱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물론 응급실침대위에 누워서 덜그덕 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의사가 뼈를 맞춘다고 무지막지하게 당겨대는 그 순간에는 뼈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몸을 통해 들려와서, 손바닥을 꽉 물고도 새어나오는 비명을 어쩔 수 없어서, 당기는 힘이 좀 느슨해지고서야 그제야 헥헥 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할 정도로 아팠지만. 최소한 그때에는 어떻게든 이 순간을 견뎌 내야겠구나하는 오기라도 솟아올라 앙다문입에 더 힘을 주었지. 지금처럼 이렇게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듯한 아픔에는 아슬하게 떨어지는 링거방울을 멍하게 바라보며 시름시름 앓는 콧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온 몸의 힘이 쭉빠져 이불 끝자락을 겨우 붙들고 있는 손아귀의 힘을 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저께는 새벽에 너무 열이 심해져서 도저히 혼자 버틸 수 없게 되어, 숙직서는 간호사선생님까지 불러 주사를 맞아야 했고, 다음날엔 오전부터 열이 오르는 바람에 계속 헛구역질을 해댔는데 몇 일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해 애꿎은 위액만 토해내다가 결국은 거기에 섞여나오는 붉은 선혈을 보아야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진찰을 받고, 혈관이 몸안으로 꼭꼭 숨어버린 탓에 몇번씩 연거푸 찌른 끝에 겨우 링거를 맞고. 여러 번 굵은 바늘로 남의 팔을 쑤셔야했던 미안함이 숨길 수없이 드러나는 얼굴로, 혹시 오실 수 있는 보호자나 친구, 여자친구 없냐고 연거푸 묻는 간호사 선생님의 질문에, 없어요... 라고 몇번씩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헛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생은 지금쯤 아르바이트 갔을 거고, 핸드폰에 저장된 몇몇 친구들의 이름이 스쳐지나갔지만,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면 별일 없을거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 순간. 아직도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또 내 몸뚱아리 하나 조차 제대로 아껴주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라 애꿎은 전화기만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간호사선생님은 휠체어에 나를 태워 병실까지 바래다주고, 열을 내려야 하니 꼭 차고 있으라며 너무 차가울까봐서 베갯잇으로 감싼 얼음주머니까지 이불속에 넣어주시고. 근처 약국에서 직접 약까지 타와서는 얼마냐고 묻는 나의 말에, 약값은 나중에 몸나으면 천천히 주셔도 되요, 하고 말하며 소리가 크게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간다.
식당아주머니는 목이 부어 밥을 먹기 힘든 나를 위해 하얀 죽을 정성스레 끓여주셨다. 나와 병실을 함께 쓰는 강성순 아저씨는 불편한 다리에도 직접 자신의 수건을 적셔 내 이마위에 얹어주고 내가 잠들기 전까지 몇 번이나 다시 수건을 갈아주신다.
이 따뜻한 죽 한 그릇과, 이마를 덥고 있는 수건의 보드라운 감촉과, 타인의 아픈 곳을 미리 헤아려 어루만지는 이 손길 같은,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음악은
sparkle horse - saint mary
(sparkle horse의 리더격인 마크링커스는 약물과다복용으로 어느 호텔방에서 다리가 접질러 넘어지면서 다리가 그대로 꺽여버리는 바람에 병원에서 12주이상의 치료를 받아야했다. 이곡은 마크링커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때 그를 헌신적으로 간호해준 한 간호사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한다. 결국 이 사고로 마크링커스는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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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장에 써두었던 이 글을 블로그에 옮기는 지금은,목발집고 거의 팔팔 날아다닌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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