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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평-구본준기자

남루한 이웃향한 눈길 삶의 의미를 찍어내다

△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최민식 글·사진 현문서가 펴냄·1만1000원

50년동안 서민에 천착해 온
최민식의 사진 에세이
서럽고 고통스런 일상의
역설적인 아름다움 담겨
“유럽인이 만든 작은 사진기에 미국 코닥 사의 흑백필름을 넣어 어깨에 둘러메고 1950년대 중반부터 이 땅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내가 카메라라는 도구를 눈에 들이댔을 때 망막을 통해 들어온 피사체는 바로 상처 입은 동족의 슬픈 얼굴이었다.”
그렇게 50년 동안 최민식(76)씨는 사진을 찍었다. 소재도, 주제도 언제나 ‘사람’이었다. 사람 가운데에서도 못사는 사람, 밥굶는 사람들을 집요하게 찍었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이 ‘가난한 사람’, ‘평범한 서민’들은 그를 사진기자나 특수기관원으로 알고 사진을 잘 찍어달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간첩으로 신고하기도 하는 순진하고 때론 어리숙한 사람들이다. 그의 사진에는 노인네의 깊고 진한 주름의 떨림이, 남루한 이웃들의 절을대로 절은 땟국물이 그대로 묻어난다.
한국 리얼리즘 사진계의 ‘대부’격인 최씨의 책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이 지난 96년판에서 80여점의 사진이 바뀌고 여남은 편의 새 글을 담아 새로운 얼굴로 다시 나왔다. 서울 이외의 모든 곳이 변방인 우리 문화풍토속에서 평생 부산을 터전 삼아 멋드러지고 화려한 사진 대신 처절하도록 사실적인 사진에만 천착해왔기에 사진계 안에서의 위상만큼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이 원로사진가의 예술세계를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책이다. 사진이 좋아 독학으로 사진을 배워 평생 사진가로 살아온 인생역정과 리얼리즘 사진만을 추구하는 예술철학을 최씨가 직접 들려주는 사진에세이집이다.

△  1975년 부산. 최민식씨의 사진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평범하고 가난한 한국사회의 서민들이다.
책속의 사진들은 한결같이 ‘인생은 고해’임을 웅변하고 있다. 사진 아래 찍힌 작은 연도표시를 보지 않으면 모두 50~60년대 ‘그때를 아십니까’ 시절의 모습 같지만, 뜻밖에도 상당수는 바로 얼마전까지의 우리들 모습이다. 엄혹했던 시절 그의 사진이 국가의 위신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사진집 가운데 세 권이 판매 금지 당했고, 한 권은 열네쪽이나 잘려 나가기도 했다. 외국에서 작품전 초대를 받아도 여권을 받지 못했고, 정보부에 끌려간 적도 여러번이었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르는 등산가처럼, “인간이, 그것도 서럽도록 착한 인간이 거기에 있기에” 찍은 사진인데, 비뚤어진 권력에게는 자신을 욕하는 것같이 비뚜로 보였던 것이다.
최씨는 “내가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에도 천 마디의 외침과 절규가 배어 있으면 한다”고 말한다. 실제 그의 사진은 처음 보는 순간에는 강렬한 이미지가 눈을 꿰뚫듯 망막을 친다. 그러나 곧 절규 이후의 묘한 정적같은 잔잔함, 그리고 서글픈데도 아름다운 역설적인 영상미가 눈을 감싼다. 그래서 ‘괴로운 바다’ 같은 서민들의 삶은 순간 ‘아름다운 호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서 서민들의 순수한 모습을 담아 그들의 주어진 삶의 의미를 작품화한다. 그곳에는 허튼 수작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게 하는 절대적인 빛이 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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