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정리한다는 건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에 이렇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니...

내겐 용납될 수 없는 충격이다.

 

느낀 그대로를 쓴다는 것. 생각의 찰나를 붙잡고자하는 나의 욕심은 언제나

좋아하는 이에게 고백의 순간을 놓쳐버린 후 남겨진 패배감을

반복적으로 느낄 때 의미를 가졌다.

 

'칼의 노래' 한 일주일동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분명 많은 고민과 생각들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펜을 든 나는 적어도 이 소설에게 만큼은 빈털털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칼의 노래'의 후반부, 이순신의 죽음은 졸음처럼 찾아왔다. 가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던

소설 속 이순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온 달콤한? 졸음이었다. 그리고 꿈처럼 어린 면의

젖냄새와 백두산의 새벽안개냄새가 그에게 찾아왔다. 이 것이 졸음이라면

분명 내일 그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여기서 졸음과 깸을 반복하는 일상을 생각한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죽음과 위협, 민중들의

고통과 신음소리, 언제나 자신을 향해있는 일본군의 조총과 칼 앞에서 그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불면증은 어쩌면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두려움의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아침은 임금의 해소소리처럼 언제나 그를 전쟁속으로 밀어넣는다. 한편,

칼은 그런 두려움이 반복될 수록 더욱 날카로워진다.

 

소설은 그런 이순신의 삶을 그리고 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장렬한 최후와 비장한 한마디를

관념적으로 남기기 보다는 두려움과 절망으로 뒤덮힌 일상의 반복을 이순신의 고뇌와 함께

냉정하게 그리고 있는 듯 하다.

 

이렇게 치열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하루도 반복적이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반복을 난 어떤 멜로디와 음색으로 노래하고 있을까?

 

4년전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라는 제임스 딘의 글귀를 소중히 첫 장에 적어두었던 낡은 노트 한권에 이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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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8 23:48 2008/01/0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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