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녕하세요. 놀랐어요? 네, 저 여자예요. 레즈비언 그런 건 아니고... 그냥요. 끊지 마세요. ……저도 이 일하는 사람이에요. 끊지 마요. 그냥 우리 대화 좀 해요. 오늘은 쉬는 날인데, 그래서 집에서 그냥 있는데, 심심하고 누구랑 얘기도 하고 싶고 그래서... 이상하죠. 일할 때는 남자들 전화 받는 거, 사람이라고 수화기 너머로 숨소리 전해오는 거, 그게 그렇게 지긋지긋하고 따분한데. 회사에 있다가 집에 오면 그 소리, 전화기 잡음 섞인 목소리, 언 놈 목소리인지 구별도 안 가는 그 목소리들이 생각이 나. 난 평생 이 짓 하면서 살 팔잔가. 언닌,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언니라고 부를께. 언닌 안 그래요? …… 몇 살이에요? 아, 어차피 거짓말할 거죠. 저도 그러거든요. 손님 나이 따라 스물 셋부터 서른 하나까지 고무줄이야. 그 남자한테는 스물 여덟이라고 했어요. 뭐 어때, 볼 일도 없는데. 아, 그 남자는... 맨날 전화오는 남자가 하나 있어요. 매일, 가끔 가다 하루 이틀 빠질 때도 있는데, 그러고 나면 미안해하더라고요. 웃겨, 제깟 게 뭐라고... 그 남자,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까지 해요. 처음에는 전화를 해놓고 아무 말도 못하던 게, 내가 이거 통화료가 얼만지는 아냐고,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끊으라고 짜증내니까 그제야 하겠다고, 말을 더듬거리던 사람인데. 뭐 트럭 같은 거 몬다나봐요. 하루에 열댓 시간씩 고속도로 위에서, 차 안에서 사는 거 같아요. 전화 걸어서 그거 할 때도 꼭 차 안인 거 같애. 휴게소 한 구석에 차 대놓고 그러고 있을 거 생각하면... 징그럽지 않아요? 그러니까 나이가 서른 일곱이라는데 애인도 없이 허구헌날 전화방이나... 우린 몇 마디 들으면 딱 알잖아, 이 놈이 부인 몰래 이러고 있는 유부남인지, 멋모르는 새파란 놈인지, 사는 재미도 더럽게 없는 놈인지... 언 놈이든 여기다 전화 걸면 별별 음탕한 말을 다 입에 올리는데, 그 남자는 그런 말주변도 없어서 쓰잘데기 없는 소리나 해요. 언니도 알겠지만 그런 사람이 제일 힘들잖아, 차라리 더러운 소리나 지껄이는 놈들이 낫지... 한번은 전화 해놓고는 인사만 달랑 하고선 오 분간이나 한 마디도 안 하더니, 또 인사만 하고 끊더라니까요. ……아니, 실은 아무 것도 안 한 게 아니라 울었어요, 그 남자가. 언니, 이런 손님한텐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런 차 몰아봐야 몇 푼 남는 것도 없다든데, 그 사람 이런 데다 전화비로 나가는 돈만 다 합쳐도 휴, 어떡할까. ……아, 미안해요... 나도 별의별 놈 다 봐도,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하소연하는 인간들 참 싫던데. 일하는 데 괜히, 미안해요.

 

 

  리영희 선생의 저작 때문에 선정된 제시어에 이렇게 답하는 건 불경스러우려나. 어쨌든 마음에 드는 장면인데, 이미 나와 있을 법한 이야기인 듯도 하고... 제대로 조사 겸해서 060 한번 눌러보고 싶지만 어마어마하다는 통화료가 무서워 엄두가 안 난다. '실제로 음란폰팅에 연결, 정보이용료를 낸 피해자는 남성 320만명에 피해액만 230여억원에 달한다. 수치상으로 대한민국 거주 남성의 10% 이상이 음란폰팅에 연결한 것.'이란다. 분명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있을 테니 자진해서 얘기 좀 들려주면 좋겠다. 남자 사람 만날 때마다 폰팅해본 적 있냐고 묻긴 좀 그렇잖아. 친구녀석들 군대 가 있을 땐 "성매매 했어? 안 했지? 하지마..."라고 말한 적도 많았다만, 돌아보니 듣는 입장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그런 말을 참 잘도 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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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8 21:20 2011/02/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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