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 라고 적어본 것도 말해본 것도 아주 오랜만이다. 센치멘털리즘은 질 떨어지는 표현이라는 것이 요 일 년간 내가 배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적어보고 싶네. 타는 목마름으로 숨죽여 흐느끼며 남 몰래 쓰는 기분으로, 요새 난 미친듯이 외롭다니까! 라고 하하. 사는 건 원래 다 외로운 거라는 말은 위로가 못 된다. 내게는 외롭지 않은 시간들도 있었기 때문에,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또한 있을 거니까. 
  외로운 이가 할 일이란 한없이 기억을 헤집는 것 뿐. 기억하기 싫은 시간들만 골라 떠오르는 건지 아니면 내가 꼭 그렇게 부끄럽게 살았던 것인지 사라져버리고 싶을 때가 참 많은 요즘이다. 지워버리고픈 순간들을 왜 만들었던지 후회해봤자 후회할 짓은 부질없이 되풀이된다. 난 언제쯤이면 내 모든 시간들을 품을 만큼 커다래질 수 있을까. 그러나 사는 건 원래 부끄러운 거라고 순순히 받아들이게 될 때가 오는 것을 달가워해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갑작스레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여자의 몇 주를 담은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내가 곧 죽는다면 생각해 보았다. 뜻밖에도 그리고 당연히 즉시 떠올랐던 건 내내 파묻혀 있던 과거가 아녔다. 죽기 전에는 "I love you"라고 말해보고 싶었던 이가 아니라 "I have feelings for you"라고 말하고 싶은 이가 소중한 것을. 중요한 건 지난 시간이 아닌데 못된 습관은 쉬 고쳐지지 않네.

                               

                                                             

 

  내가 삼 주일 후에 죽는다면 데이트를 청하고 아프리카로 날아갈텐데 왜 지금은 못 하니. 이 두 가지 외에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뜨뜨미지근해서야, 그저 한심하다. 또 오랜만에 되뇌어 본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내 얼굴이 보기 싫어졌다.

스무 해가 넘도록 달고 살아온 예쁘지 않은 얼굴이

이제서야 원망스러운 건 아닐 것을

옛날이라면 옛날일 요사이 들어

거울도,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도 부끄럽다

나이 마흔이 지나면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지만

스물 하나라고 그 책임이 비켜가지는 않을 일이라

낯설어진 내 얼굴이 초라함은 별 수 없다

 

나에게는 산더미같은 짐이라도 있을까?

아름다운 사람들과 사랑,

지키지 않은 약속, 

즐거운 농담,

부치지 못한 편지,

알고 싶은 세상의 거짓말,

소주 한 잔같은 나의 정의 따위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엉긴 삶이 무얼로 엮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가운데를 톡 잘라낼지 말지의 갈등만이

실로 生의 의미일지 모른다

삶은 필시 허무에 대한 투쟁의 연속일 것을

그 지겨운 싸움의 허무함을 감내할 끈기가

내게 언제까지 남아 있을 것인가

용기 있는 사람은 살겠지만 난 용감한 사람은 아니다

현명한 사람은 죽어버리겠지만 난 현명한 사람도 아니다

So what?

Nothing matters.,

 

 

미래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하루씩 나뉘어서 실려와

오늘 내 앞에는 꼭 내일만 멈춘다

그 앞에 꼼짝없이 서서 태엽을 감아둬야 하는 모던타임즈에

무한도전하기란 매주 무한도전한다는 어떤 이들의 난리만큼도

재미있는 일이 못 된다

그래서 나는 내일 무슨 귀걸이를 할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내일 일어날까 고민하기도 한다

 

나는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 나를 매혹시키길

사무치게 바란다

시간은 초초이 흘러 나를 또 어둠으로 안아갈 오후에는

사랑할 수도 없는 나의 자리가

세상 어디에 누구의 마음에 있으랴만은

유난히 차갑지만 유난히 뜨겁게 봄은 또 왔고

그것은 결국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며

나는 제발 매혹당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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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4 12:36 2008/08/1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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