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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진보넷.

  • 등록일
    2010/12/16 01:17
  • 수정일
    2011/04/11 15:48

2011년 4월 11일 추가

 

http://picotera.tistory.com/

 


 

2010년 12월 15일을 마지막으로 저는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상근자 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저 나름의 이유기 있는 사직이었고 이 글을 통해 어떤 것은 감추어 질 것이고, 그럼으로서 어떤 것은 드러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2009년, 대학원을 그만두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시기가 맞아 진보넷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12월, 제가 일을 그만 두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에겐 단체의 상근자라는 것에 대한 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조직하고 내용을 구성하고 돈과 스펙과 인맥으로 똘똘 뭉쳐진 저들에게 균열을 내는 것에 대한 상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이는 자연스레 일에서의 무기력으로 이어졌고 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뭐 대충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폭력 관련 사건이 몇 개 있었습니다. 언어 성폭력과 관련된 것이었구요, 그에 대해서 뭔가 치밀하게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니까 나 자신을 정확하게 밝히는 작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몇 번 시도해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그 핵심에는 어디로 빠져나가야 할 지 모를 시커먼 구덩이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구덩이에 몇 번 맞닥들이게 되니 정말 어디서부터 나를 밝히고 그럼으로서 어떤 부분을 정당화 시키고 어떤 부분을 기각시켜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단체 내에서의 인간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구체적으로 서술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일단 이번 사직의 외연은 제가 트위터에서 섹드립을 친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특정 성을 비하하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었고 트위터에서 "섺쓰!" 뭐 이런걸 외치며 놀았던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문제제기의 당사자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기에 저 스스로 아직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문제제기는 저에게나 진보넷에게 있어서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출근하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원하는 시간에 대충 일하고 술이나 먹다 잠들고 정신이 멀쩡할 때 소설도 쓰고 번역도 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 '난 운동을 할꺼야'라는 생각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중이고 그에 따라 진보넷에서의 패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무엇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이 꼭 진보넷 상근자의 형태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저 스스로 받아들이면서 적절한 사직시기를 가늠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저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가는 눈빛이나 사소한 언어에서도 지독한 공기는 빠르게 감지되죠. 저는 어떤 문제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것의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판단이 한 축에 있고, 저는 문제아이며 그러나 그 문제되는 지점들은 사실상 다른 것으로 메워진다는 판단이 한 축에 있었습니다. 그 둘이 충돌했고 그 결과가 현재의 저입니다. 저는 타인을 불편하게 했고, 불편한 시선속에 놓인 저 자신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위에 상술한 일에서의 무력감 등이 꽤 오랜시간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시기 적절하게도 트위터의 섹드립 문제가 불거졌고, 저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단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꼴이 되었습니다. 시원하게.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일단 백수가 되었습니다.

 

저는 성에 있어서 자유롭기를 원합니다. 성과 자유 모두 쓰임의 맥락이 굉장히 많은 단어이며 저는 그것이 과연 무엇이며 어떠한 것이냐를 제 나름의 쓰임으로 구체화 시키는데 아직까지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자평합니다. 섹스자유주의자는 결코 아닙니다. 쾌락주의자 그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기는 합니다. 좀 더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하지만 몇몇 사건들과 단절로 인해 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대화의 부족이 아쉽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2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니까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보넷을 사랑합니다. 대학시절 내내 무슨일만 터지면, 어떠한 사회적 움직임이 발생하면 보던 곳이 진보넷이었고 그 공간에서 저의 적을 두었다는 것을 처음 일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나 보잘것 없는 제 삶에 작은 보석으로 여길 것입니다. 진보넷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보다 작은 단체이며 단체의 규모에 걸맞지 않는 많은 일을 하는 단체입니다. 그것은 모두 진보넷에서 일하는 상근자들과 진보넷 주변의 여러 의로운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힘입니다. 저는 그 힘이 확장되는 것이 온 우주의 평등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저의 믿음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진보넷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합니다.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국정원에 털렸네 경찰이 서버를 어쩌네 하지만 진보넷이 여러분들의 정보인권을, 여러분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서버를, 여러분의 웃음과 고뇌로 만들어진 컨텐츠를 지켜내지 못할 때 진보넷의 상근자들은 자식 잃은 어미마냥 슬퍼했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표면으로 드러나는 진보넷 서비스 외에도 해외의 여러 단체들과의 미러링, 새로운 이메일 서비스의 개발, 자본과 권력이 강제하지 못하는 영역으로의 탈주등을 시도합니다.

 

진보넷의 정책에는 대안이 있습니다. 감시와 일상을 침해하는 권력과 자본에 맞서 자유로운 개드립이 힘없는 잉여들의 뻘짓이라는 공격에 맞서 진보넷은 정책을 생산합니다. 비록 진보넷에는 사과상자를 전달할 차량도 돈도 없지만 여러 단체들과의 연대와 전 세계의 다양한 사례들을 수집하여 국회, 시민사회, 대중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 정보인권, 저작권 분야에 있어서 진보넷은 남한에서 가장 급진적이며 인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저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진보넷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매일 증거하리라 생각합니다.

 

 

 

일단 저는 오늘 독일로 여행을 떠납니다. 20일 일정인데 진보넷을 그만두게 되었으니 현지 상황에 따라 더 늘어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분은 홀가분합니다. 아직 백수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저의 태도에 있어서 큰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사과가 왜 나무에서 떨어지는가"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답니다. 자주 그 말을 생각합니다. 내가 서 있는 공간이 내가 편안한 공간인가. 내가 허물없이 웃을 수 있는 공간인가.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할때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인가. 여기가 내 고향인가.

 

진보넷을 그만두기 몇 달 전 홍대의 두리반 투쟁에 결합하게 되었고 제가 편하게 몸을 비비고 또아리를 틀 수 있는 공기가 무엇인지 살아생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비틀린 성욕과 과잉된 자의식들이 서로를 애처로이 핥아대는 대학공간도 아니었고, 정해진 시간동안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는 일터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잉여로 살기위해 노력할 것이고 무척이나 쓸데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 할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 이야기 하게 될 것입니다.

 

진보넷 사무실에서 저는 제가 무엇을 못하는지 알았습니다. 자괴감도 한계가 있는지 어느 순간이 되니 제가 무엇을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상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저의 소박함에 눈을 뜨고 있는 중이고 지금도 무척이나 기쁜 마음으로 그러한 시간들을 상상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단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영-한 번역을 할 것입니다.

저번에 문제가 되었던 그 소설을 구체적으로 쓰고 언더그라운드에서 발표해 볼 생각입니다. (이에 대한 코멘트는 일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면허를 따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뼛 속의 골수까지 전부 쏟아내는 연애도 할 예정입니다.

 

 

 

이상입니다. 저는 철이 없으며 섹스를 사랑하고 사랑으로 섹스하는 좌파보다 좌익이기를 원하는 30대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실업급여로 살 생각입니다. 술을 사주신다면 달게 마시겠습니다. 저를 욕하신다면 달게 듣겠습니다. 밤을 지새주신다면 달게 지새겠습니다. 저는 자유롭고 쓸데없습니다. 12시간 후에 저는 독일로 떠납니다. 이탈리아와 네델란드에도 잠시 들릴 생각입니다. 많은 것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해 보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서 요구할 생각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저는 진보블로그 역시 떠납니다. 인터넷의 매력은 현실의 중력에서 벗어남이라는 저의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저의 믿음은 어느곳에서나 상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잃은 신뢰는 전적으로 저의 것이며 따라서 진보블로그를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글에 대한 권한은 언제나 '정보공유라이선스 2.0 영리금지'입니다. 불시에 폐쇄될 수 있습니다.

 

2010년은 2000년과 마찬가지로 저에게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2000년에는 공장과 사랑과 학내농성과 ASEM과 군대와 방화와 빠이질이 있던 최고의 한 해였습니다. 야자키(무라카미 류, '69')의 1969년보다 재미있었노라 자부합니다. 2010년 역시 사랑과 노동과 필화사건과 트위터와 재판과 두리반과 친구들과 G20과 진보넷과 독일이 있는 한 해입니다. 스무살 그 때보다 더 재미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일수 있고 나 스스로에게 선언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는 한 해이므로 그 의미와 기쁨에 있어서 결코 2000년에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남은 시간 여러분들에게도 의미있는 2010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의미가 곧 다른 의미에 의해 사라져버리길 또한 바랍니다.

 

 

저는 진보넷에서 패퇴했습니다.

이제 진보블로그에서 패퇴합니다.

 

건강하십시오.

마음깊이 당신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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