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대학원 입학 면접.
지난 학기 정시 면접은 일정을 몰라 지원도 못하고,
그 다음 수시 면접은 지원자가 부족하여 자동 취소되었으니,
이번에는 면접이라도 본다는 것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1.
우선 대학원 입학에 알아본 결과 지원자 5명.
본교생 3명.
타교생 2명.
대학원 정원은 2명.
본교생 한명이 탈락하는 초유의 칼부림이 나기 직전.
본교생 3명중 한명은 나고, 한명은 절친한 후배고, 한명은 그래도 알만한 후배분.
우째 이런일이.
2.
칸트를 빌리자면 사람에게는 세 가지 일이 있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
나는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해야만 하는 일도 뭔지 모르겠다.
살면서 어떤 계획을 짜고 그것에 따라 실천을 하고... 뭐 그런 것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기분 내키면 바로 시작하고, 기분 사그라들면 그냥 때려 치고.
독하다는 소리, 깡이 있다는 소리... 뭐 그런건 나와는 먼 이야기.
삶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이성'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없다.
무능력하고 게으르다고 손가락질 받지만, 사실 그런거에 연연하는 성격이었다면 벌써 뭔가 이루었겠지.
계획도 없고.
약속도 없고.
할일도 없고.
그냥 멍하니 면접장에 들어가서 눈에 힘좀 주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 그러다가 밤이되면 또 술자리로 구겨들어가겠지.
삶이 불만족스럽지는 않다.
세상에는 볼 영화, 소설, 책,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래, 절실함.
절실함이 나에게는 없어.
하지만, 없는 절실함을 내가 쥐어 짜낼수는 없잖아.
제발 근엄한 표정으로 이 세계의 신비를 다 손에 쥔 듯이 내려보지 말아달라고.
3.
자자, 머리를 짜 보자고.
오늘 대학원 면접을 본 다음, 반 명함판 사진을 찍고 여권을 만드는거야.
그리고 남은 돈으로 깨진 안경을 다시 맞추는거지. 여기까지는 좋아.
그 다음에 후배 몇명과 섞여서 소주를 들이 붓자고. 응? 그러면 벌써 토요일이잖아.
그렇게 멍하니 주말을 보내고 나면 5월 말이야.
6월이나 그 이전에 소식이 오겠지. 떨어지던가 붙던가.
떨어지면... 그래도 뭔가 할 일이 있지 않겠어?
자, 그 다음에 8월이 되면 일본에 가서 여러 캠페인을 벌이는거지. 지문도 찍고 말이야.
9월이 되어 개강을 하면 사람들에 섞이고 수업에 쫒기며 멍하니 보낼 수 있을거야.
아니면 뭐... 또 무슨 일이 생기겠지.
그 다음 10월이 되면, 오피스텔로 들어가서 혼자 사는거지.
자.
책을 펴.
어께를 펴.
4.
샤워 했다.
면도 했다.
이 닦았다.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