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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 이제그만! 주민등록번호 이제그만!
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 goodbye cruel world
down...

만약 세상에 어떠한 기능을 알 수 있는 시금석이 있다면 - 우리는 꽤나 간편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가령, 사랑에 대한 시금석, 인간에 대한 시금석, 종교에 대한 시금석, 사회에 대한 시금석, 그리고 또 시금석 그리고 등등. 그러한 판단의 시금석은 사실 수 많은 또 다른 그림들, 상상들을 요구하고 우리는 그 복잡다단함에 질리고 지친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각자 은밀한 시금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편견이란 삶을 유지시켜주는 강한 동력이다. 그렇게 - 평론이라는 것이 성립한다면 최소한 무엇인가는 '이것이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영역에 놓여있어야 할 것이다.


수 많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있어서의 시금석이란 역사적으로 정형화된 몇 가지 틀이 존재한다. 파가니니에 대한 해석, 비발디에 대한 해석,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해석 등등. 문제는 음악이라는 - 높낮이로 영혼을 유린하는 장르라는 것이 도대체 평론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언어/비언어의 긴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긴장이야말로 음악이 음악이게끔 하는 것이리라.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정경화, 샤를 뒤트와

정경화의 연주가 훌륭한 이유는 그것이 지독히 에고이스트이며 자신밖에 모른다는 것에 있다. 위대함의 한 징표로서 - 그녀의 연주를 받혀주는 수많은 악기와 조성은 그녀-바이올린을 따라가기 위해 헐떡인다. 그리고 바이올린은  그것밖에 못하느냐고 다른 악기들에게 잔혹하게 채찍질을 해 댄다. 사라 장이나 혹은 여타 수많은 연주는 곡에 대한 풍부한 해석을 할 지언정 정경화만큼 잔혹하고 매섭지 못하다. 가령 풍부함을 위해 몇 박자를 살짝 끌거나 혹은 '잡것들'을 함께 고양시키기 위해 기다린다.

그러나 잡다함에 대한 느긋한 배려는 이 영웅적이고 독보적인 곡에 대한 해석으로서 썩 마땅치 않다. 이 곡은 오직 창공의 독수리처럼 매섭고 외로워야 한다. 정경화의 에고이즘은 이 연주에 있어서 최 정점에 이른다. 그녀(의 연주)가 원하는 것은 합주 혹은 그녀의 독주에 대한 반주가 아닌 영웅적인 화려함, 똑바로 쳐다 볼 수 없을 정도의 잔혹함이다. 그렇게 치고 올라간 그녀는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정경화의 화려함과 잔인함이야말로 이 서사을 오롯이 영웅적으로 남게 만든다고 강하게 확신한다. 위대함을 흉내나는 자는 호흡곤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미려함을 아무 표정없이 냉혹하게 처치하고 홀로이 고독속에 남겨지는 것이 천재의 의무임을 그녀보다 잘 표현한 바이올리니스트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안녕. 잔인한 세상.
안녕. 내 사랑.
안녕.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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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근을 하며.
각 인터넷 사이트에는 제각각 약관들이 있습니다. 약관들의 내용들은 다들 비슷비슷 합니다. 사용자(client)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간의 규약(protocol)들을 항목별로 적어 놓은 것입니다. 각 항목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정의, 이와 관계된 법령들, 사용자의 의무/권리, 서비스 제공자의 의무/권리등을 적어놓은 것이죠. 은행으로 예를들어 보면, 인터넷뱅킹 / 전자금융거래 / 전자무역업무 / 금전신탁거래 / 여신거래 / 예금거래 / 외환거래 / 에스크로 / 전자어음 / 현금카드 ... 등의 서비스를 해주고 각 항목마다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간에 약관이 별개로 있습니다(한 사이트 내에서도 열댓개가 넘는 약관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수 많은 약관들이 한 사이트 내에서 공통적으로 준수하는 것이 개인정보 취급방침/보호정책입니다. 각 사업자별로 거의 비슷한것은 제3자 제공이 사용자 동의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관계법령에 의해 개인정보 보관기간, 개인식별정보를 제외하고 제3자에게 학술용(통계)로 제공하는 것, 법령에 의해 제공한다는 것 등입니다.

차이점은 각 사업자의 서비스 형태별로 드러납니다. 예를들어 금융거래는 없는 통신사업자(게시판 운영) / 금융거래가 있는 통신사업자(보통 포탈) / 금융거래를 주로 하는 오프라인 기반의 사업자(은행) / 이동통신업자가이 제공하는 개인정보 취급방침의 세부 항목은 조금씩 다릅니다. 금융권은 각종 신용정보집중기관, 신용정보업자 및 각 금융지주회사에게 개인정보를 넘겨줍니다. 이동통신사업자 같은 경우는 수천개의 대리점 및 위탁업체와 컨텐츠를 제공하는 업체에게 개인정보를 넘겨주게 되구요.


복잡하게 적어 놓았지만 어찌 보면 단순합니다.

우리는 은행에 계좌를 만드는 순간부터 모든 개인정보가 집적되게 되어있습니다. (은행의 경우 최초 가입 이후 3개월간 제3자 제공 철회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보다 심도있고, 중요하며,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개인정보를 보기 위해서 신용정보집중기관에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로그인을 하기 위한 회원가입에서 또 개인정보가 집적되죠. ^^) 보통 10,000원을 내면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법령이 무료로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제공하게 하고 이를 알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포탈 이메일을 사용하시는 분들은 개인정보의 한시적 무료제공 메일을 받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 우리는 개인정보 제공에서 빠져나갈 틈이 없다는 것이죠. 이동통신사의 제3자 제공업체 횟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각 통신사별로 1000~1400개의 위탁업체에 정보를 제공하니까요. 포탈인 다음daum 같은 경우 주민등록번호 없이도 가입을 할 수 있지만, 실명인증을 하지 않으면 덧글을 달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으니 개인정보 없이는 식물계정밖에는 만들수 없습니다. 주민등록번호의 대체 인증수단인 i-PIn이라 해서 개인정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어짜피 연동되어서 '그' i-Pin의 주인은 이러저러한 주민등록번호를 지니고 있다고 나올 뿐이니까요.


각종 관계법령과 약관과 개인정보 취급방침속을 헤메이다 보면, 이래가지고는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입니다. 아마 제가 고이 죽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법적대리인을 통해서 저의 모든 개인정보를 각 사이트별로 삭제해달라고 요청을 해 달라 할까 하는데, 꽤나 엄청난 비용이 소모될 것입니다. 웹 상으로 검색되고 있는 데이타는 빙산의 일각일 뿐,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인터넷, 이메일 등을 통해 수집되고 누적되는 데이타의 DB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파고든 게 2000년 부터라고 선을 그어도 벌써 10년입니다. 그 수많은 '나'의 조각들은 어디를 헤메고 있을까요?

물론 친절히 법에서 개인정보의 주체는 개인 그 자신이기에 개인정보를 정정/삭제/열람 할 권한들을 밝혀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어떤 정보를 요구해야 할 지 항목들, 내용들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더욱이 포탈등에서는 자동수집장치에 의한 개인정보 수집 항목을 따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보통 자동 수집 항목이란 서비스 이용기록, 접속 로그, 쿠키, 접속 IP 정보 등을 말합니다. 이것의 사용 용도는 맞춤 콘텐츠 및 광고 표시 등의 서비스 제공, 서비스의 유지·보호·개선을 위한 데이터 심사·조사·분석, 네트워크의 정상적 운영, 신규 서비스 개발, 위법행위방지 등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우리는 그러니까 - 웹 상에 떠돌면서 수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생산한 정보들이 어디에 집적되고 어떻게 유통되어 다시 나에게 feedback이 되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고 검색하고 각종 웹 공간을 돌아다니는 것과 아닌 것과는 천지차이입니다. 물론 로그인을 하지 않았다 해도 인터넷 선을 타고 들어간 IP는 남겠지만요. 그런데 생짜 IP와 로그인 시 IP를 대조한다면?


뭐 이런건 단순히 [나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나 그런 것으로 한정되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쾌함을 떠나서 우리가 직접 생산한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개인의 윤리적 의식으로 환원 될 수 없는 주요한 사회적 생산관계가 놓여있습니다. 웹 공간을 제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서비스 제공자 측이 전적으로 집적하고 활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정보공개청구를 요구한다는 것이 유의미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막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IE를 기반으로 한 금융거래만 있는 상황이라 개인정보의 탄탄한 보안은 컴퓨터가 왕창 느려지는 것 밖에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최근의 개인정보 유출 범죄 동향은 해커가 서버를 상대로 벌이는 사건이라기 보다는 은행 등 업체의 내부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외부로 개인정보를 판매하는 행태가 더 많습니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것이 기술적으로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죠.

개인정보 유출 이야기를 잠시 꺼낸 이유는, 막대한 집적과 유출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보는 한번 방출되면 어떻게는 퍼지게 되어있습니다. 집적도가 높을수록 그 위험성은 더 크죠. 높은 탑은 더 먼곳까지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개인정보를 국가가 혹은 기업이 마구마구 누적하고 그것을 안보와 개인맞춤이라는 뻔한 이름으로 용인하는 상황에 대해서 다른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IE - ActiveX 기반을 버리는 것, 그간의 집적된 개인정보 암호화가 기술적인 문제라면(순전히 기술적인 문제만은 또 아닙니다. MS와 Korea의 기묘한...), 과연 이토록 많은 개인정보 집적이 필요한가는 정치적인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금융권은 엄청나게 많은 개인정보를 집적합니다만 (그래서 카드 돌려막기는 이제 요원해졌죠 ^^) 카드대란, 부도 등을 막지 못했습니다. (거칠게 말해서) 큰 손인 대기업에게는 공갈머니를 남발하고 그 빵꾸는 전부 소소한 개인가입자에게 빡빡하게 기준을 들이대며 전가하죠. 금융질서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개인의 정보를 죄다 집적한 다음 대출을 하지 않을 핑계, 이자를 받아낼 핑계, 담보를 빼앗을 핑계를 생산해냅니다. 어떻게?! "당신이 이미 약관에 동의했잖아요! 그렇게 쌓인 정보라니깐요!"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복잡하고 어려운 영역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생산한 보이지 않은 것들이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사태가 어디가 문제인지 하나하나 보는 건 너무 괴롭습니다. 이러저러한 법령들이 우리를 얽어매고 있다는 사실은 꽤 진땀나게 만듭니다. 이것이 '실제로' 우리 모두에 연관된 사안임을 설명하는 것은 쉽습니다 - 다들 이해하시니깐요. 그런데 어떻게 연관되어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꽤나 지난한 작업입니다. 그 사이에 또 개인정보 취급방침과 약관과 관계법령은 변화합니다. 이쯤되면 담배 한대 빨고 시작해야 합니다.

...





저는 주민등록번호 전면 공개를 하고 싶다는 공상을 해 봅니다. 한 200명쯤 되는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다 주민등록번호를 까놓고 "여기 있으니 맘대로 쓰세요."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저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신경쓰는 여러 정보들에 대해서 마치 아무것도 아닌냥 쓰레기처럼 굴러다니게 한다면 (실제로 그렇게 굴러다니고 있지 않나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공개자들은 처벌받게 될까요? 주민등록번호를 핵심으로 한 여러 제도적인 연쇄덩어리가 신음하게 될까요?



아... 그냥 야근하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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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601 실험실에서.

1.

사랑과 혁명은 본질적으로 나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내고, 빙하가 피요르드를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전자가 화학적이라면 후자는 물리적이다. 무엇인가를 오롯이 보전하면서도 다른 공명(resonance)을 불러일으키기. 물론 대부분의 경우 거대한 물리적 input은 화학적 변화를 낳기 마련이다. 어떤 경우 그 두항은 구분이 불가능하다. - 그러니까 명제들을 통해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 도대체 너는 무엇이냐고.

 

 

2.

예비군 훈련을 돌면서 주택들이 언덕길에 놓여진 동네의 옛 길을 걷다가 내가 사는 곳을 바라보았다. 작은 언덕길 저 너머 위압적으로 아파트들이 있었다. 무엇인가 미안한 느낌. 작은 동네 너머 바라다 보이는 아파트는 마치 메소포타미아 건축양식의 현대적 표현물같다.

 

여성 예비군을 처음 보았다. 그들의 역할은 커피 타주기, 빵 나눠주기, 우유 나눠주기였다.

 

 

3.

버스 안에서 30분쯤 생각하다가 두시간만에 후루룩 써 내려간 300번째 포스팅에 쎄뽁이 터졌다. 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사실은 2004년도부터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서술한 것이었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비판과 비난을 꼼꼼히 읽었다. '손에 피 뭍히기 싫으냐?' ... 멈춰서고 말았다.

 

 

4.

연애를 하고 싶다고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구인?을 해 볼까 잠시 망설였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이리저리 둘러다니는 시기는 지났다. 내가 지나온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지시하고 있듯이 느껴졌다. 당분간 고통스러운 이 기간에 대해 매 걸음마다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정도 힘은 있다고 믿는다.

 

 

5.

내 삶이 불완전 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마저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해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라고 느끼고 있다. 두 힘이 팽팽하다. 어떠한 육감도 작용하지 않는다. 이 불확실함이 나를 상심하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더 활기차질수 있는 것이다.

 

 

6.

사람들을 생각 해 본다. 그들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 정말 무서운 사람은 기억되지 않을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은 정말 강한 사람일 것 같다. 나는 강해지고 싶었으나 이내 무너지고 또 울고 말았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노름을 통해 자신을 실험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을 통해 자신을 실험했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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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빨은 왜 노무현을 추모하지 않나요?
(장문의 글을 날려먹었다. 아 씨발... 기억을 끄집어 다시 써내려가자 하니 마음이 아프구나.)


Q : 좌빨은 왜 노무현을 추모하지 않나요?

A : 질문이 참 원색적이여서 좋네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옛 사실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분명하지 않았던 것들이 분명해진 지금의 상황이 가지는 어느 정도의 결과론적 해석에 대해서도 몇가지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의 대답이 공염불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정도는 서로간에 받아들이는 걸로 알겠습니다.

결론으로 아주 급히 내려가보면, 근본적으로 좌빨은 국가를 부정합니다. 세련되고 정치적으로 건전하게 말하자면 좌빨은 국가를 넘어서려 합니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역사가 무엇인가를 좌빨들이 숙고함으로서 얻게 된 결론입니다. 이에 대해서 여러 이론서를 읽는 것은 큰 도움이 되겠지만 조금 힘드시다면 삐딱한 역사책을 읽어봄으로서 가벼이 접근 할 수도 있습니다. 국가-권력을 통해 인간-삶이 나아졌는가에 대해 좌빨은 회의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현실과 그에 따른 제약을 어떻게 지금의 국가-권력 형태보다 낫게 할 것인가에 대해 좌빨들은 늘 고민하고 행동합니다. 국가-권력이 인간-삶에 제공하는 선택지란 무엇인가에 문제에 있어서 좌빨은 직접행동으로 뱀처럼 교활하게 돌파하고자 합니다. 노무현 추모라는 긴장의 한 축이 여기에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충분히 설명되기를 희망합니다.



자, 2004년으로 돌아가보죠.

당시 탄핵이 있었습니다. 대중은 거리로 뛰쳐나갔죠. “조중동을 몰아내자”, “한나라당 폭파하자”, “민주주의 사수하자”가 대중의 주요 요구였습니다. 탄핵이 통과되던 날 바로 사람들은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 모였습니다. 당시 민주당을 사수하며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던 추미애에게 “추미애 씨XX"라는 욕을 공개적인 집회장소의 발언자가 할 정도로 격양되어 있었죠. 이런 분위기는 차츰 수위를 조절하게 되어 주요 타격지점을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잡고 수비지점을 민주주의에 두는 구도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대중은 봇물처럼 거리로 분노와 열의를 가지고 뛰어나왔죠. (이를 ‘즉자적 반응’이라고 하는 고색창연한 수사법도 있습니다.)

당시 좌빨들은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어요. 우선 대중들의 분노가 풀릴 지점들이 너무 뻔했기 때문이죠. 곧이어 17대 총선이 있었거든요. 대중과 함께 거리로 나가자니 결국 이는 총선에서 정당정치로의 수렴 - 왜곡 구조가 너무나도 선명했습니다. 그리고 거리로 나가지 않자 하니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죠. 좌빨들의 이러한 머뭇거림(이를 ‘대자적 반응’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앞에서 노빠들은 “행동하지 않는”, “기회주의적인”, “무능력한”이라는 딱지를 좌빨들에게 붙여줍니다. 물론 이 딱지의 참된 주인이 누군지는 머지않아 가려지게 됩니다.

어찌되었건 탄핵 이후 대중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화끈하게 복권해줍니다. 헌정이래 최초로 여대야소의 국면, 청와대와 의회를 같은 깃발아래 있는 정치세력이 잡게 된 것이죠. 그리고 이어지는 행보는 한미FTA, 추가파병, 4대개혁입법 삑살이로 이어집니다. 노태우 시절보다 더 많은 구속노동자, 대한민국의 이름 없는 소모품 이주노동자의 인간유린을 뺄 수 없겠죠. 아, 건국이래 최대의 부흥집회를 열었던 400조의 부동산 가격 상승과, 주식시장 숫자놀음도 잊을 수 없네요. 노무현 정권아래 새로이 돈 잘 벌고 등따수고 배부른 사람들이 많았을텐데 그들은 왜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았을까요? 헛웃음이 나옵니다.

“조중동과 한나라당 때문에 뜻을 펼치기 힘들다.”가 위의 반론에 대한 재 반론의 주요 골자였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의 여대야소 국면이었습니다. 반대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더 심해졌죠. 한나라당 결국 차떼기당 뽀록나고 조중동 그거 땜질하느라 신문인쇄 롤라에 물집 잡힐 때였습니다. 4대 개혁입법 걸레되고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존속합니다. 밀어붙였어야죠. 그 힘이 노무현의 정치적 죽음 - 부활의 위대한 서사 끝에 온 것이라면 흥분해 날뛰지 말고 밀어붙였어야죠. 너무 무능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우리는 한나라당처럼 강압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우리는 민주주의적 원칙을 지킨다.”가 무능론에 대한 주요 반론입니다. 근데 민주주의가 뭔데요?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통치 아닙니까?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이 직접 통치하기 힘들고 쪽수도 많아서 여러 문제가 있으니 몇몇 사람에게 권한을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통치하자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대한민국 국민이 국회와 청와대에 자신들의 권리를 보내줬다면,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은 ‘의무’입니다. 국민의 의지가 당신들을 임명한건데 한나라당과 조중동에게 어떤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대화와 합의로 이끌어 가는 것은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할 때의 일이죠. 대화와 합의는 민주주의의 최대 원칙이지 최소 원칙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맨날 한나라당에 떡실신 당하고 국민에게 굾신하며 징징대고 있죠.



2009년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무능이 결국 이명박을 당선시켰다.’ 이게 몇 달전의 언론의 주요 논조였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사망 이후 언론은 죄다 노무현 빨아제끼기에 바쁩니다. 벌써 몇몇은 입술이 퉁퉁합니다. 유명 만화가들은 열심히 노무현 얼굴 누가누가 잘 그리나 테스트하고 자빠졌습니다. 볼만하다고 믿었던 프레시안은 연일 노비어천가에 "누가누가 노쨩 죽음 많이 안다룬대요~♡"라며 네티즌에게 굾신대며 고자질하기 급급합니다. 징중궈는 정몽헌 추락사 남상국 자살 할 때는 “명예 때문에 자살하는 거잖아요. 자살하는 경우 자기 명예가 부당하게 구겨졌을 때 하는 건데 그게 위선이죠. 한마디로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일 안해요”라고 하더니 노무현에 이르러 “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당신은 내가 만나본 정치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분이었다. 참으려고 하는데 눈물이 흐른다"라고 하네요. 시간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미학의 오딧세이! 징중궈 사람 되었네요.

그런데 내용을 한 꺼풀 더 들춰 봅시다. 노무현은 매력적이야. 노무현은 서민적이야. 노무현은 타협을 안해. 노무현은 아버지 같아. 노무현은 자상해. 노무현은 푸근해. 네. 맞습니다. 맞고요. 노무현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요? 그게 우리가 그를 선택한 정치와 무슨 상관인가요? 그 수많은 웹툰, 기사, 논평, 회고 속에서 노무현이가 어떠한 정책을 밀고 해냈으며, 그것이 지금도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내용 있던가요? 그의 인성과 성품과 의지가 아닌 그가 정치로서 행한 바를 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노무현의 매력과 성품을 기대하며 투표한것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에게 기대하고 투표를 한 것이니까요. 어디에나 공허한, 인성(人性)에 기반한 지저분한 품성론만이 나올 뿐 정책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일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해 씹떠쿵 까더쿵 합니다. 이번 마이크는 민주투사이시고 훌륭한 책의 저자이신 노무현 정권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있더군요. 그분은 한미FTA 의약분야 협상 할 동안 낚시를 즐기며(네. 정말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의 생명권을 미끼로 FTA대어를 낚는 재미에 푹 빠졌었죠. 그러던 사람이 이제 샛노란 넥타이와 노란 풍선 들어보자고 다시 한번 낚시질에 나섰습니다 . 직접 종이위에 글을 쓰고 스캐닝을 떠서 포토샾으로 리사이징을 한 다음 사이트에 올리는 능력은 있을지언정 정치와 행정을 할 능력은 하나도 없으면서 말이죠. "민주주의적 가치"를 외칠려면 불편함과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것이 관철되게끔 만들어야죠. 그의 어처구니 없는 반바지와 샛노란 몸차림새 어디에서 민주주의적 가치가 실현되었나요? 노무현 정권은 스스로의 무능을 정책과 행정조직 장악이라는 실력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닌 “대통령 중임제”, “대연정” 등의 꼼수로 어찌 비비적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이 죽고 다시 사람들이 모입니다. 사람들은 작년의 촛불을 떠올립니다. 질문의 대답자인 저는 2004년의 탄핵을 떠올립니다. 아마 추모와 촛불의 기묘한 2인3각 경기가 펼쳐질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추도 분위기 속에서도 노빠의 귀환을 우려하는 유의미한 규모의 목소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마이크를 잡고 있는 것은 봉하마을 식구들입니다. 이명박 정권 이후 자리에서 죄다 물러나 실업률에 한몫하고 있는 그들이 마이크를 쥐어잡고 이번 주말을 어떻게 취업박람회로 만들지 궁금합니다. 슨상님께서 이미 서울역 광장에서 사자후를 보여주셨으니 죄다 취업원서 쑤셔넣겠죠.

문제는 취업원서를 받아줄 선거가 꽤 멀다는 것입니다. 지방선거가 1년 후고, 총선은 지금 이등병이 제대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카메라 앞에 얼굴도장 찍고 분위기 만들면서 움직이겠죠. “민주주의 사수하자”, “조중동이 죽였다”, “이명박은 물러나라” 네. 저도 참 좋아라 합니다. 하지만 노빠들의 복권은 정말 싫습니다. 거리에 나가는 대중의 액션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무능력하고 분파적이고 지 잘난맛에 살아온 이들을 강화해주는 것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하지만 추도식을 하루 앞둔 지금, "추모만 하세요", "추도식 끝나면 끝입니다"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들은 청와대에 있는 설치류들과 그것들에 접붙어있는 기생충들 뿐입니다. 좌빨들은 마음이 아픕니다. 의회라는 것이 전 지구적으로 한계상황에 직면해 대중이 거리로 나오는 오늘의 현실에 그렇게도 고민했다고 하면서 대답을 해 주지 못해 스스로의 머리를 찧습니다. 그렇다고 그저 멍하니 있어야 할까요? 누구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멍하니 있기 싫다고 움찔움찔 거리다가 노무현 기생파에게 사회적 힘들의 방향을 돌리게끔 하는 역할을 하기도 싫은 것입니다. 좌빨은 노무현을 추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추모라는 행위-효과를 보려 하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지금까지 설명했잖아요. 2004년 말이죠.


물론 또 좌빨을 까는 이들은 그러겠죠. "좌빨들은 언제나 그래." 그리곤 의기양양하겠죠. “우리들만큼 민주화에 피흘리고 땀흘린 세대가 어디있는가? 우리는 온몸을 바치고 죽고 다치면서도 민주주의를 사수했다.” 네 그래서 보상받으셨잖아요. 정권도 잡아보고 자제분들 해외유학도 보내고 적절히 아파트도 장만하고 검사 친구, 의사 친구에 대기업 부장하고 있잖아요.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무기력하고 연대의식도 없고 사회의식도 없고 공부도 안한다고 딱지붙이고 윗세대들에게는 권위적이고 촌스럽고 전쟁세대라고 딱지 붙였잖아요. 그 딱지 죄다 긁어모아 자살률 세계최강 남한반도 골목대장 했잖아요. 정치적으로 무능하고 내용 없는 이상에 사로잡혀 있던 그들이 말이죠. 그럼 좌빨들은 뭐하냐구요? 용산지키고 국보법에 털리고 부당 노동/계약/해고에 맞서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할려고 오늘도 대가리 박고 있죠. 티도 안나요. 안보여요.

자. 그들이 복귀하고 지금의 이 상황에서 무엇을 쥐려 할까요? 주어진 권력을 만인을 위해 선용하는 능력 하나 없이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막걸리를 목에 부으며 아침이슬을 부르던 그 감수성으로, 웹 상의 타이핑보다 손글씨가 더 정감있다 계산하여 호소문을 올리는 - 철저히 옛 성공모델을 못버리는 그들이 말이죠. 우리가 살아나가야 할 공동체에 대한 그림 없이(죽음을 슬퍼하는 소소한 윤리적 보상이 삶의 위대한 가치가 되는 그림 말고) 그들이 돌아와서 얼굴을 들이민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감성의 정치이건 감동의 정치이건 나발이건. 무능과 분열과 혼돈으로 점철된 영욕의 5년을 잊지못해 침흘리며 "소인배를 미워하기 위해 시체를 들썩이는" 짓거리는 도저히 못봐주겠습니다. 그건 정치인이 아닌 '인간 노무현'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날 좋다고 꿀을 맛보려는 흰개미처럼 땅위로 나옵니다. 자숙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며 전두환을 향하던 그들의 손가락을 안으로 구부려뜨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좌빨보고 거리로 나오라고요?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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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on _run like the h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