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는 10월 말경에 하게 될 것 같다. 그 전에 집안 음식을 되도록 많이 먹어두려 노력하고 있다. 아마 이사를 하게 되면 김치냉장고에 푹푹 절여둔 찬물이 무척이나 그리울 것 같다. 이사가게 되는 곳이 한강 근처니까 집에 방치된 자전거도 들고 가야되고... 음, 방 배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책장을 어떻게 쌓아서 독립적인 공간을 구성할 것인가 - 대부분의 미천한 작자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뭔가 갖추어야 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 같다.
그까짓거 환경쯤 어찌하건 무슨 상관이야? 나에겐 상관 많은 것 같다. 되도록이면 조용하게. 되도록이면 협소하게. 좀 기형적으로 공간이 나뉘어 질 것 같은데 아직 잘 모르겠다. 노심초사하시는 부모님이 나의 공간설정에 너무 많이 개입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노트북이 생기니 멀쩡하니 훤한 방에서 양반다리 하고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블로깅 할 때보다 훨씬 아늑하게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등을 벽에 기대고 침대위에 앉아 베게를 허벅다리 위에 얹고 그 위에 노트북을 두고 글을 쓰고 있다. 누구도 읽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후배와 가볍게 맥주를 한 잔 마시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좋던 사람들. 그렇게 이야기 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그들이 '현재의 감정과 무관하게' 그립고. 서럽고. 내가 편해졌다고 느끼던 순간은 사람들과의 문제가 풀려 모두 하하하하 웃으며 맥주잔을 탕탕치며 노래를 한껏 부를때가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나의 문제가 아님을 - 그들과 나는 별개임을 담담히 받아들였을 때였다. 가끔 그런 나를 반성해보다가 무서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국가/권력/사회/공동체의 문제도 그러한 방식으로 해소/전이 되는 것은 아닐까? 오랜 나의 과대망상.
페미니즘/여성성에 대한 글들이 불로그에 자주 올라온다. 명확하게 알고 싶은 부분들, 반론을 제기 하고 싶은 부분들, 눈에 또는 마음에 밟히는 부분들에 대해 댓글을 열심히 달다가 지레 alt+F4를 누르고 만다. 내가 그렇게 그 문제에 관심이 있었나? 도대체 이런 질문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겠다는 거지? 속에서 찌글찌글한 마음이 짜게 끓고야 만다.
마음속 깊이 존경하는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분통을 터뜨린 일이 있다. 몇몇 학자들을 거론하면서 그들의 논지나 주장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한심하다고 개탄하셨다. 그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라면 -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기에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하나의 fashion이 되어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누구도 진지하게 그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내 문제만 다루어야지. 거기서 연관을 시작해야지. - 오, 당신은 아직도 주체성의 노예인가요? 이건 또 무슨 fashion이람.
새벽 5시부터 아침 10시 까지. 뇌에 숫나사 몇개가 빠진 느낌이다. 자동 기술적으로 그 어떠한 글도 무한히 써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멍청하고 몽롱한 감각이 느껴진다. 무척이나 피로한데 걸음을 멈추는게 더 귀찮고 힘든 그런 상황.
멈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