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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사는 하나의 방법

 

 

생을 사는 하나의 방법. 이렇게 한 여자는 걸어갔다.

 

 

전혜린

 

 

니나는 글을 쓴다는 천직을 매우 중요시 한다.

사람과 글을 똑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니나는 [내 시가 형식에 있어서 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감상적이고 싸구려라면 내 속에도 감상성과 싸구려의 경향이 있다고 틀림없이 볼 수 있는 거야. 우리는 자기가 쓴 글과 똑같은 거야. 그것을 분리시킬 수는 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해.]

 

니나는 소설의 가치에 대해서 엄격한 요구를 가졌을 뿐 아니라 어떤 비극과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약속한 일을 이행하는 자기 극복력과 억제력이 있는 자기의 작업을 몹시 중요시하는 여자인 것이다.


[니나가 밤동안에 오래 걸려서 쓴 것은 일이었다. 숙제였다. 모든 피로와 절망과 이별에도 불구하고 지켜진 약속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언제나 일과 자기와 타인에 대해서 끊임없는 긴장된 관심을 쏟고 열렬하게 살고 있는 니나는 결국 니나대로 행복한 여자인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행복은 우리가 언제나 생기를 지니는 데에, 언제나 마치 광인이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듯 무슨 일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있는 것 같애.][잘 생각해 보면 몹시 불행할 때도 한편으로는 매우 행복했던 것 같애.] [ 고통의 한복판에 아무리 심한 고통도 와닿지 않은 무풍지대가 있어. 그리고 그 곳에는 일종의 기쁨이 아니 승리에 넘친 긍정이 도사리고 있어] 니나의 일-글 쓴다는 정열-과 생에 몸을 완전히 내 맡기고 있는 성실 없이는 이런 행복감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니나의 언니도 생각한다. 나는 여기에 니나가 창백한 수면부족의 얼굴을 하고 슬픔 때문에 몸 치장도 안하고 아무 희망도 없이 침울하게 그러나 생명에 넘쳐 서 있는 것을 바라 보았다.
니나는 마치 폭풍우에 좀 파손된 그러나 큰 바다에 떠 있고 바람을 맞고 있는 배와도 같았다.
그리고 볼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배가 어디든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을 것을, 아니 새로운 대륙의 새로운 해안에 도착해서 대성공을 거두리라는 것을 돈을 걸고 단언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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