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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행

 

 

 

이번 지리산행은 휴식과 재충전도 아니었고 어떤 낯선 곳으로 출발하는 설래임도 아니었다. 해방글터 후배인 신경현 시인이 지리산행을 제안했을 때 나는 꼭 가야겠다는 예감보다도 먼저 “알았어”라고만 말했다. 사실 특별한 휴가 일정을 잡고 있지 않았다. 나는 최근 격렬한 내부투쟁을 거쳐왔고 한 매듭을 지었다. 처음엔 이 매듭이 희망이라고 생각도 했으나 한 잠 자고 일어난 뒤에 난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걸어왔으나 맥이 탁 풀렸다. 정말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신경현 시인이 지리산행을 제안했다. 
 
지리산은 94년에 처음 갔었다. 지리산은 내게 사랑이었고 몸의 자유였고 빛나는 전망이었다. 새벽에 구례에서 내려 노고단을 오르는 계곡,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몸에 땀이 차고 호흡이 빨라질 때 쯤 여린 나뭇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세수를 하고 바위에 앉은 한 동지를 비추고 있었다. 젖은 머릿결이 빛났다. 연두빛의 맑은 웃음이 숲 전체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또 한 가지. 산행이 처음이라 모두가 서툴렀고 이내 지쳤다. 지친 몸을 이끌고 뱀사골 야영지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땀으로 범벅인 몸을 씻고 싶었다. 계곡물에 몸을 뉘였다. 뱀사골 물소리로 내 몸이 가득 채워졌다. 그 청아함, 내 몸이 맑은 물소리로 가득 채워져 노래가 되고 있었다. 별빛들은, 그 별빛들의 위치인 좌표는 몸의 노래, 몸의 자유가 날 찾아오는 열려진 싸립문이었다. 갂아지른 숲벽을 가로지른 곳에 발 디딜틈없이 촘촘하게 별빛들이 들어서 있었다. 내 몸의 자유가 찾은 좌표들, 빛나는 전망이었다.
 
2008년, 올해 지리산행은 내게 과연 사랑이고 몸의 자유이고 빛나는 전망일까? 사실 잘 몰랐다. 특별한 기대도 없이 난 지리산을 향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것이 채워지기를 고대하지도 않았다. 지리산이 나를 품지 않더라도 펑퍼짐한 멧돌처럼 그냥 지리산에 머물고 싶었다. 
 
노고산장 밖에서 비박을 했다. 침낭을 깔고 비닐을 덮고 누웠다. 별빛들이 발디딜틈 없이 빼곡히 노고단 정상에 들어차 있었고 좌에서 우로 은하수가 여리게 걸쳐 있었다. 별빛들을 하나의 질서로 묶고 있었다. 별빛들 사이를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는 바람들이 순회하고 있었다. 아주 찰나에 길게 선을 그리며 유성이 지고 있었다. 지는 유성을 보며 나는 특별히 소원을 빌지 않았다.
 
이 별빛들, 14년만이다. 이 별빛들은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내 심장은 여전히 따뜻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냥 깨달은 것이다. 난 지는 유성에 소원을 빌지 않았지만 내 심장에 가만히 손을 올려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다. 별빛들의 항로를 따라 나는 꿈의 은하수를 건너갔다.
 
잊었다고 했으나 사실 내 삶은 94년 뱀사골에서 본 별빛들의 좌표를 따라 왔다.  그래 품는 것이다. 내 삶을 다해서 품는 것이다. 당신을 품을 수 있다면 빛나는 전망이다. 정치적 허기 뒤에 빛나는 전망, 바로 당신을 품을 자리를 나는 이번 지리산행에서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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