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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
좀더 인간적이고 보다 민주적인 것들이 혁명적이다
집단적인 몸의 노래, 우리들의 꼬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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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희 우창수 동지 결혼식에 부쳐

 

금강하구에 해가 지고 있습니다

직선의 경계들이 허물어지고 둥근 선에 매료된 저녁입니다

저녁노을이 삶 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고

가창오리 떼들도 저녁노을과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코스모스 향기를 따라 단풍들어 오는 여린 가을빛의 색감이 참 따뜻합니다

삶의 아픈 곳 구석구석까지 여린 가을빛의 색감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치유는 가장 따듯한 공감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비상은 장독대처럼 상처를 오래도록 품어 빚어낸 웃음의 광장일 겁니다

 

가창오리 떼들은 지금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 같은 좋은 예감 속에 있습니다

저녁놀빛의 가장 밝은 곳을 택해 일제히 가창오리 떼가 비상합니다

고정되어 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뒤집어집니다

비록 오늘 어떤 것도 쟁취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우리 생의 절정일지도 모릅니다


수평과 수직을 가로 질러 하나의 원을 그리는 가창오리 떼의 군무,

우리 생에 찾아온 봉기입니다

새로운 삶을 위한 거대한 토론회입니다


개인에서 집단적 몸으로 비상함으로써

우리는 따뜻하고 정서적 색감이 풍부한 거대한 협력을 만들어냈습니다

제 각각 개성 있게 날아도 마디 하나 없는 유려한 춤이 되고

이곳에서 우애와 연대로 충만한 음계가 태어났습니다

집단적인 몸의 노래, 우리들의 꼬뮨입니다


자주빛의 저녁노을도

가장 아름다운 음계로 날고 있는 가창오리 떼의 둥그런 몸짓에 매료된 저녁입니다

아프지 않게 살겠습니다

2008년10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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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10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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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마르크스주의자로 살겠다고 결의 결사 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다정하고 친절한 날들이고 싶었으나

다정하고 친절한 날들이었다고 애써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하고

걸어왔던 길 참, 허름합니다

 

뿌리줄기로부터 떨어져 지상 위에 고립된 붉은 단풍잎들

지난밤, 꽃별들이 떨어지던 행로를 따라왔습니다

메마르고 외로웠으나 잘 견디고 있습니다

사각 사각

좁고 허름한 골목길을 걷습니다

물기 없는 날들도 쌓이면 푹신푹신해지는지

저 붉은 단풍 담요 위에 눕고 싶었습니다

지난밤, 열띤 토론 뒤의 뒷풀이 숙취 때문이기도 했으나

이제 나이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모하게도

다시 젊은 마르크스주의자로 살겠다는 결의를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꿋꿋하고 허름한 골목길 한 켠

태평식당에 들어섭니다

허름하다는 건 태평식당만큼이나 오래된 세월

여백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제 자리에서 묵묵히 한 세월을 다 났습니다

백반 두 개요

할머니는 배추국과 들기름을 바른 김을

아침식사로 내왔습니다

애배추의 풋풋한 향이 나는 구수하고 얼큰한 배추국과

들기름을 바른 고소한 김의 내음이

사무치듯 정겹습니다

밥 한 그릇 더 떠와

"어여 더 먹어 어여"

할머니의 정겨움이 한 세월 날 힘을 줍니다

사르르

내 삶에 물기가 돕니다

 

다시 젊은 마르크스주의자로 살겠다는 결의가

밥 한 그릇 더 내주는 이 정겨움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애배추의 풋풋한 향이 나는 구수하고 얼큰한 배추국과

들기름을 바른 고소한 김의 내음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마르크스주의자, 나를 만나러 오는 모든 동지들을 위해

배추 속을 다듬어 양념으로 버무리고

쌀 뜬 물에 된장 풀어

배추국의 구수하고 얼큰한 정겨움을 차려주고 싶습니다

들기름을 바르고 약 불에 살짝 구어

입안 가득 고소함을 전해주는

김의 여백 깊은 향기를 차려주고 싶습니다

 

다가 올 10년은

모두에게 다정하고 친절하지는 못하겠지만

여백 깊은 향기로 살아

내 삶에 사르르 물기가 도는 투쟁으로 살아

구수하고 얼큰한 해방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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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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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리산행은 휴식과 재충전도 아니었고 어떤 낯선 곳으로 출발하는 설래임도 아니었다. 해방글터 후배인 신경현 시인이 지리산행을 제안했을 때 나는 꼭 가야겠다는 예감보다도 먼저 “알았어”라고만 말했다. 사실 특별한 휴가 일정을 잡고 있지 않았다. 나는 최근 격렬한 내부투쟁을 거쳐왔고 한 매듭을 지었다. 처음엔 이 매듭이 희망이라고 생각도 했으나 한 잠 자고 일어난 뒤에 난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걸어왔으나 맥이 탁 풀렸다. 정말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신경현 시인이 지리산행을 제안했다. 
 
지리산은 94년에 처음 갔었다. 지리산은 내게 사랑이었고 몸의 자유였고 빛나는 전망이었다. 새벽에 구례에서 내려 노고단을 오르는 계곡,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몸에 땀이 차고 호흡이 빨라질 때 쯤 여린 나뭇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세수를 하고 바위에 앉은 한 동지를 비추고 있었다. 젖은 머릿결이 빛났다. 연두빛의 맑은 웃음이 숲 전체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또 한 가지. 산행이 처음이라 모두가 서툴렀고 이내 지쳤다. 지친 몸을 이끌고 뱀사골 야영지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땀으로 범벅인 몸을 씻고 싶었다. 계곡물에 몸을 뉘였다. 뱀사골 물소리로 내 몸이 가득 채워졌다. 그 청아함, 내 몸이 맑은 물소리로 가득 채워져 노래가 되고 있었다. 별빛들은, 그 별빛들의 위치인 좌표는 몸의 노래, 몸의 자유가 날 찾아오는 열려진 싸립문이었다. 갂아지른 숲벽을 가로지른 곳에 발 디딜틈없이 촘촘하게 별빛들이 들어서 있었다. 내 몸의 자유가 찾은 좌표들, 빛나는 전망이었다.
 
2008년, 올해 지리산행은 내게 과연 사랑이고 몸의 자유이고 빛나는 전망일까? 사실 잘 몰랐다. 특별한 기대도 없이 난 지리산을 향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것이 채워지기를 고대하지도 않았다. 지리산이 나를 품지 않더라도 펑퍼짐한 멧돌처럼 그냥 지리산에 머물고 싶었다. 
 
노고산장 밖에서 비박을 했다. 침낭을 깔고 비닐을 덮고 누웠다. 별빛들이 발디딜틈 없이 빼곡히 노고단 정상에 들어차 있었고 좌에서 우로 은하수가 여리게 걸쳐 있었다. 별빛들을 하나의 질서로 묶고 있었다. 별빛들 사이를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는 바람들이 순회하고 있었다. 아주 찰나에 길게 선을 그리며 유성이 지고 있었다. 지는 유성을 보며 나는 특별히 소원을 빌지 않았다.
 
이 별빛들, 14년만이다. 이 별빛들은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내 심장은 여전히 따뜻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냥 깨달은 것이다. 난 지는 유성에 소원을 빌지 않았지만 내 심장에 가만히 손을 올려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다. 별빛들의 항로를 따라 나는 꿈의 은하수를 건너갔다.
 
잊었다고 했으나 사실 내 삶은 94년 뱀사골에서 본 별빛들의 좌표를 따라 왔다.  그래 품는 것이다. 내 삶을 다해서 품는 것이다. 당신을 품을 수 있다면 빛나는 전망이다. 정치적 허기 뒤에 빛나는 전망, 바로 당신을 품을 자리를 나는 이번 지리산행에서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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