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콩 모자요? 꼬깔처럼 생긴 것은 농라라고 해서 그냥 전통 삿갓이고요. 군모처럼 챙긴 것은 남부에서는 농꼬이, 북부에서는 무꼬이라고 합니다.. 종이로 만들어졌고요. 칠이 되어 방수는 되나 베고 자면 한 참 후에 찌그러져있습니다. 금방은 찌그러지지 않더군요. 베트남 현용제식 군모입니다. 북부지방에서는 많이 쓰고 다니고요. 학생들이 군사훈련시나 군 입대하면 씁니다.
당시 동아리연합회 일원으로 백병원 사수하고 상여 모셨던 90학번입니다. 그날...비가 엄청 내려서 온 몸의 털이 다 설 정도였죠. 정문 앞에 유림들이 갓쓰고 나오셔서 상여 못들어가게 해서 후문으로 들어갔던 기억까지...
학교 앞 자주 못가네요. 부부식당 두 분 내외도 만나뵙고 싶고 그러네요.
5월에 쓰신 글인데 지금 읽으니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네요. 특히 '정치의 과잉'이라고 표현한 부분... 80년대와 90년대를 겪으신 분들이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를 부담스러워하거나 꺼려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서 아쉬웠는데 그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글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싸이에서 알아두었다가 들어왔음...안그래도 책 읽다가 옛날 생각나서 찾아들어왔더니만, 그 기억보다 더 오래된 기억을 꺼내게 만드네. 그때의 성대생만큼이나 옛날의 성대를 아는구나. 학교와 학교주변이 너무 변해서 추억을 더듬기도 힘들던데 말이야, 나는 가끔 명륜당과 은행나무에 가을 은행잎 질 때 한번씩 앉아있으러 가. 문화재관리청이 관리하면서 예전 기숙사로 쓰일 때와는 너무 많이 달라져서-낡아 보수하느라 여념없는- 낯설지만, 그래도 거기가 가장 덜 변한 듯 하더라. 세월도 흐르고 나이도 먹었는데 갑자기 반말하며 등장해서 미안...!!!
우리의 친구들이 성 정체성의 혼돈으로 삶의 기로에서 방황하고,괴로움 속에서 고통 당하고 있을 때,저는 가짜 일반으로 아무일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척~ 하는 방관자 였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아니 어찌보면 내면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숨기고 이중적이고,가면적인 삶을 살아 오고 있는 소극적이면서, 공개를 두려워 하는 용기없는 사람중의 한사람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커밍아웃 이라는 참으로 힘든 결정, 그리고 영화라는 대중적 매체를 통하여 대사회적으로 어렵게 공개하신 본 영화 관계자 모든분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며, 이로 인한 심적, 물적, 정신적 고통등에 대해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너무나도 고생 많으셨다고...
이제는 조금이나마 편안한 마음으로 늘 행복하고, 건강하시기를 두손 모아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