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고대: 근대 국민 국가의 동아시아 이야기>>, 이성시 지음, 박경희 옮김, 삼인, 2001

 

베네딕트 앤더슨 이후로 이런 담론들은 비판적인 역사학의 주류가 된 듯하다. 다시 말해서, 근대 국민국가에 의한 역사 '창조'라는 주제들이다. 여기서는 앤더슨의 '민족'에 대해, 동아시아의 '고대사'가 창조의 대상이 된다. 별로 새로울 건 없지만, 사례를 들어서 치밀하게 분석해 내고 있다. 가령, 한일간 고대사 해석의 차이를 낳는 결증적 사료일 광개토대왕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속민이어서 와서 조공을 바쳤는데, 倭가 辛卯년에 바다를 건너왔다. ...□...백제와 ...□□...新羅... 격파하여 신하로 삼았다.)

 

단파 라디오 방송의 지직거리는 멘트처럼 툭툭 끊긴 이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倭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이른 바 "임라일본부"설이 성립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건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 당시 광개토대왕비를 설립한 목적 자체가 오늘날 근대 국민국가들의 상호 경쟁체제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 있었다는 것이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왕릉을 둘러싼 여러 제도가 소멸함과 동시에 비문의 독자를 잃은 비석은 원래의 기능을 멈추었다. 그로부터 약 1,200년 후 비문은 새로운 독자를 얻게 되었다. 즉 근대 일본인은 비문을 베낀 묵본을 입수하면서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앞서 재빨리 자기의 문화적 컨텍스트에 끌어들여 비문을 해독하고 거기에서 근대와 아주 비슷한 국제 정세를 읽어 내었다. 그 위에 인쇄물로 만들어 낸 비문은 새로운 형태의 텍스트로서 광범위한 독자를 획득하게 되었다. 어느새 비문의 '왜'는 아무런 의문 없이 일본으로 읽혀져 고구려의 텍스트는 근대 일본의 텍스트로 커다란 전환을 하게 되었다.> p.77

 

사실 이제는 진부해져버린 주제이긴 한데, 실증적 치밀함과 논리의 기발함 사이의 간극을 연결짓는 글쓰기의 기교가 정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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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1 22:05 2006/11/1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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