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

2006/12/26 00:39

내가 대학에 처음 들어와서 선생님들이랑 상견례를 했는데, 인상 깊은 분이, 김진균, 신용하 선생님이셨다. 김진균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러분과는 다른 사람, 가령 대학에 들어오지 못한 친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라"고.

 

거물 진보인사다운 인사말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정도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많이 하던 말 아닌가.

 

한편, 신용하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학에 왔으니 이제 정말 열심히 공부하라"고.

 

이건 좀 납득이 갔다. 이른바 '진정한 공부'라고 하는 말의 무게가 고등학교때의 공부와 비교되면서 상당히 무겁게 다가온 듯하다.

 

이후에 두 선생님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나에게는 무의식 중에 두 선생님을 일종의 수퍼에고화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두 선생님이 서로 입학동기라고 하던데, 두 선생님이 서로 다른 양 극단을 달리는 우리 사회의 전형을 내 무의식에 찔러넣어셨던 듯하다.

 

한분은 만석꾼 집에서 태어나 부러운 것 없이 자라 당시로서 힘들었을 재수까지 하면서 자신의 전망에 대해 충분한 성찰을 거치면서 대학에 진학하셨고, 다른 한분은 가난이 싫어 집에서 탈출하다시피 하여 대학에 들어왔고,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다.

 

전자, 곧 김진균 선생님은, 그래서 너그러운 포용력으로 나처럼 보잘것 없는 인간에 대해서도 조금 기억하고 계셨다. 물론, 진보인사들의 다수가 선생님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후자, 곧 신용하 선생님은 엄청난 저술로 유명하다.

 

나는, 지금 생각하건대, 그동안 너무 무책임하게 내 삶을 이런 '수퍼에고'들의 책임에 맡겨놓고 있었던 거 같다. 이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은 답이 뻔해서 내가 살 수 있는 삶의 스펙트럼은 결국 김진균 선생님과 신용하 선생님의 자리 사이에 있는 어디쯤인 거 같다. 특히 나처럼 x도 없는 인간은 이들이 마련한 전형 속에서 기회주의적으로 왔다갔다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이 조상을 신격화하고, 가문을 종법화한 것이 좀 이해가 간다. 그들에게 인간은 정말 x도 아니었던 것이다. 무기력하고, 게다가 빨리 죽어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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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6 00:39 2006/12/2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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