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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끔찍한가

 "싸움의 전망이란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작년 '작은 꽃' 동지의 싸움의 현장에서 들었던 말이 오늘 따라 귓가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학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조정을 막아내기 위해 아니 이번 구조조정 싸움을 통해 죽어있는 강물같은 학교에 저항하고 강물을 거슬러보고자 시작해는데... 방학이라는 조건 탓, 학생회가 협조적이지 않다는 탓, 원래 뭐 우리가 하는게 그렇지, 우리 사람들이 다 그렇지 남을 탓하기에 바빴다. 그 시간에 한 분이라도 더 만나고 얘기듣고 우리에 싸움을 알려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언론보도를 통해 스무번째 쌍차 동지의 죽음 소식을 접했다. 이럴수가. 더 이상에 타살을 막아보고자 비록 힘들지만 우리 싸워봅시다 더 이상 죽지말자고 희망텐트도 시작했는데 우린 또 한 분에 노동자를 동지를 보내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차동지들은 여전히 야만적인 자본에 맞써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제 남 탓, 좌절은 개나줘버려야겠다. 그래야 먼저 가신 동지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구조조정 싸움으로 부당하게 퇴학을 당한 동지에게 힘을 보탤 수 있는 있는 길일 것이다.

 

 무엇보다 매년 해를 거듭할 수록 우리학교는 원래 그렇지, 대학이 다 그렇지, 뭐 어쩔 수 있겠어, 좀 괜찮은 총학은 안나오나 이런 학내의 분위기를 바꿔내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무기력한 학생사회는 원래 우리 회사는 다 그렇지, 사회가 다 그렇지, 뭐 어쩔 수 있겠어 좀 괜찮은 국회의원 안나오나 생각하는 사람들을 재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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